대만, 아시아 탈핵의 희망
2025년 5월 17일 밤 10시 10분. 대만은 마지막으로 가동 중이던 마안산 핵발전소 2호기의 운영을 중단함으로써 ‘핵발전소 제로 시대’의 문을 열었습니다. 마안산 핵발전소는 1980년대 초부터 40년 이상 운영되어 온 대만의 대표적인 핵발전소 중 하나였습니다. 이 핵발전소의 가동 중지는 민진당 정부가 2016년 공표한 ‘2025년 탈핵’ 공약을 공식적으로 완수한 중요한 이정표가 되었습니다.
대만의 “탈핵사회”라는 이 역사적인 날을 기념하기 위해 한국을 비롯한 일본,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 아시아 각국의 탈핵 활동가들은 대만 타이베이에서 열렸던 '2025 반핵아시아포럼'(Anti-Nuclear Asia Forum)에 참석하기 위해 집결했습니다. 포럼은 5월 16일부터 17일까지 국립대만대학 도서관에서 열렸으며, 참가자들은 각국의 탈핵 운동 사례를 공유하고 에너지 정의와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국제 연대를 논의했습니다.
역사적인 5월 17일 밤, 포럼 참가자들과 대만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은 대만전력공사(Taiwan Power Company) 본사 앞에서 ‘핵발전소 제로’ 달성을 기념하는 시민 집회를 함께 열었습니다. 집회는 촛불 퍼포먼스(속공연), 탈핵 선언문 낭독, 핵 피해 지역 주민 증언 등이 어우러진 가운데 진행되었으며, “우리의 연대는 국경을 넘는다”라는 구호 아래 아시아 각국의 반핵 목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반핵아시아포럼 이후, 참가자들은 5월 20일까지 대만의 주요 핵발전소 지역을 방문했습니다. 신저우(新竹)의 진산·구산 핵발전소와 타이중의 룽먼 핵발전소, 남부 핑둥현의 마안산 핵발전소 등이 그 대상이었습니다. 이들은 현지 주민들과 간담회를 갖고, 핵발전 해체 과정, 폐기물 처리 문제, 지역 공동체의 안전과 생계 문제 등에 대한 현장 이야기를 직접 듣고 기록했습니다.
이번 견학은 단순한 방문이 아니라 아시아 각국의 탈핵 운동이 서로 교류하고 배우며 새로운 탈핵 전략을 모색하는 자리였습니다. 반핵아시아포럼 한국참가단 이헌석 단장은 “섬나라이면서 우리나라처럼 반도체 산업이 활성화되어 있는 대만에서 이룬 탈핵 성과는 우리나라에서도 탈핵이 가능하다는 걸 보여 준 좋은 예가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한국에서 참가한 한 활동가는 “대만의 성공적인 탈핵은 우리 모두에게 큰 영감을 준다.”라며, “이제는 한국도 기후위기 시대에 걸맞은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을 본격적으로 추진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습니다.
대만의 원전 수명 연장 여부는 여전히 정치권에서 논쟁 중이며, 8월 23일에는 마안산 2호기의 재가동 여부를 묻는 국민 투표도 예정되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만은 2025년 5월, 아시아 최초로 ‘탈핵 국가’라는 이정표를 세웠습니다. 그 역사적 현장에는 아시아 탈핵 활동가들이 함께 있었습니다.
이번 반핵아시아포럼과 집회, 견학은 대만의 탈핵 여정을 축하하는 동시에, 아시아 시민사회가 핵 없는 미래를 향해 국경을 넘어 연대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 사건이었습니다.

장영식(라파엘로)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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