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풍경 속에서 전망해 보는 미래의 한국 교회

2025-05-19     정희완

수도회의 현실

얼마 전 어느 수녀원 연 피정을 동행했다. 최근 몇 년 동안 수도회 연 피정을 동반할 때마다 현실 교회에 대한 어두운 전망을 확인한다. 30년 전쯤 처음으로 수녀회 연 피정에 참여했을 때 느꼈던 수도 공동체의 생동감을 이제는 발견하기 어렵다. 한국의 모든 수도회는 조금씩 늙어 가고 소멸해 가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지난 30년 동안 한국 수도회에 도대체 어떤 일들이 있었던 것일까.

수도회뿐만 아니라 한국 교회의 모습 역시 지난 세기에 정점을 치고 이제 조금씩 쇠퇴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외부적으로 한국 교회의 위상은 분명 높아졌다. 통계상 신자 수는 미약하게나마 상승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교회 내부의 현실은 조금씩 활기를 잃어 가고 있다. 90년대 초 내가 초짜 신부로 살아갈 때의 그 시절 본당(성당)의 모습과 오늘날 본당의 모습을 비교하면 많은 것들이 변했다는 사실을 확연히 인식할 수 있다. 신학교의 현실을 비교해 봐도 그렇다. 내가 신학교에 입학할 때, 신학교의 기숙 인원이 250명 가까이 되었다. 지금은 3분의 1 수준이다. 지난 30년 동안 한국 교회에 도대체 어떤 일들이 있었던 것일까. 그 시절 한국 교회는 왜 30년 후의 미래를 전망하지 못했을까.

수도회의 모습은 내부적 동력과 활력을 잃어 가고 있는 한국 교회의 미래를 미리 보여 주는 것 같다. 한국 수도회는 구성원들의 평균 연령이 60대를 훌쩍 넘기고 있다. 수도 생활의 핵심인 기도와 영성 생활은 정형화된 관습적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어서 내적 기쁨과 삶의 동력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서원 생활 역시 오늘의 시대에 적합한 방식으로 새로운 재해석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그저 의무와 규범으로만 존재하는 서원 생활은 기쁨의 원천이 되기보다는 어떤 굴레로 작동되고 있는 현실이다.

수도회가 초기부터 지향했던 공동체적 삶에 대한 이상(理想)은 불가능한 꿈이 되고 있다. 모든 사람이 이기적이고 개별적인 주체가 된 현대 사회에서 질서(order)와 소명(vocation)에 대한 강조만으로는 함께 살아가기 어렵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제 안다. “함께 행동하기 위해서는 서로를 이해하고 응답하는 기술을 터득해야 하는데, 그 과정은 매우 어려우면서도 분명한 해답조차 없는 형극의 길이며, 흔히 파괴적인 결과로 이어진다.”1) 그렇지만 우리는 공동체를 여전히 꿈꾼다. 우리가 공동체를 꿈꾸고 지향하는 이유는 “불안전한 세상에서 따뜻함과 안전을 찾고, 우리가 필요하다는 느낌을 느끼고, ‘그들’이 아니라 ‘우리’와 같다고 지각되는 사람들과 함께 있기 위해서”2)일 것이다. 더욱이 삼위일체 하느님을 고백하는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공동체적 관계와 친교를 지향하는 일은 본성적이다. 공동체적 삶을 향한 노력을 포기할 수는 없다. 다만 공동체를 살아가는 방식을 이제 새롭게 바꾸어야 한다.

수도회의 사도직 현실은 더 어려운 처지에 빠져 있다. “최근 몇십 년 동안 축성/봉헌 생활이 수행해 온 봉사는 사회, 경제, 정치, 과학, 기술의 발달로 예전만큼 다양하지 못하게 되었다.” 또한 “새로운 사도직 활동에서 나오는 풍성한 시너지”를 잘 얻지도 못하고 있다. 교회 내부에서조차도 수도자의 정체성을 내적 생활과 공동체적 소명으로만 축소하는 경향이 자주 일어난다. 수도자는 일이 아니라 존재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야 한다고 쉽게 말한다. 하지만 사도직 수행이 배제된 수도회는 활력을 갖지 못한다. “모든 인류의 선을 위하여 축성/봉헌 생활자는 교회 안에서 예언자적 직무를 수행하라고 부름받았다.”3) 사도직의 위기가 수도 성소의 위기다. 한국 교회의 차원에서 수도자들의 사도직 수행을 위한 공간과 역할이 더 많이 제공되어야 한다. 한국 교회는 수도회의 약화와 소멸 현상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교구 중심의 교회만으로는 지역 교회는 생동감을 갖지 못할 것이다. 사도직의 현장에서 수도자들은 공동체적 삶에 대한 이상과 복음과 신앙의 기쁨을 증언하는 성사이기 때문이다.

새 교종으로 선출된 레오 14세. (사진 출처 = 바티칸뉴스가 유튜브 채널에 올린 동영상 갈무리)

콘클라베, 프란치스코 교종, 레오 14세 교종

어쩌면 내 생애에 처음으로 콘클라베 과정에 대해 나름 상세히 목격했다. 물론 콘클라베 내부의 여정을 지켜보았다는 뜻이 아니다. 프란치스코 교종의 선종 이후 추기경단의 흐름과 외부적 전망들을 다양한 언론을 통해 살펴볼 수 있었다는 의미다.

콘클라베의 과정이 단순히 교회와 신앙적 관점에서만 작동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이제 안다. 최종적으로는 성령께서 이끄시는 일이지만 콘클라베의 과정 안에 권력과 정치의 역동이 작용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교회의 역사 안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두 달 전 ‘신학서원’ 공부 모임에서 영화 '콘클라베'를 감상하고 토론한 적이 있었다. 그 영화는 문학적 상상과 영화적 상상의 산물이다. 하지만 그 영화는 공부 모임 구성원들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권력과 힘에 대한 유혹은 정치의 영역뿐만 아니라 종교의 영역에서도 작동한다는 현실을 깨닫게 했다. 교종의 자리는 권력과 힘의 상징이 아니라 복음화를 향한 봉사와 헌신의 자리라는 신앙의 진실을 믿지만 말이다.

이번 콘클라베 이전과 이후의 짧은 여정을 지켜보면서 무엇보다 프란치스코 교종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앞섰다. 12년의 재위 기간이었지만 프란치스코 교종은 많은 것을 변화시켰다. 복음화와 복음의 기쁨이 진정 무엇인지, 거룩함과 성덕을 지향하는 신앙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 세상 속의 교회가 가정과 혼인의 현실을 어떻게 이해하고 청년과 청소년들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하는지, 생태적 삶과 형제애의 삶을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예수님의 마음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을 실현하기 위해 교회가 살아가는 방식을 어떻게 바꾸어야 하는지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과 화두를 던져 주었다. 그리고 프란치스코 교종은 교회의 통치와 운영에서도 지혜롭게 정치력을 행사했다. 복음화와 선교를 지향하는 방식으로 로마 꾸리아 제도를 쇄신하고, 변방 교회 출신을 선호하며 사목적인 마음과 태도를 지닌 추기경들을 뽑음으로써 교회 지도부의 인적 구성을 새롭게 했다. 그 결실이 이번 콘클라베에서 분명하게 드러난 것 같다.

전통적으로 콘클라베 전에 일종의 교종 후보자들(papabiles)에 대한 언론의 분석과 평가는 교회와 세상의 쟁점들에 대한 접근 방식과 교리적 해석에 있어서 진보와 보수라는 이념적 잣대, 통치 기간을 가늠하는 나이의 문제, 출신 지역의 대표성이라는 기준으로 이루어져 왔다. 실제 콘클라베 과정에서도 그러한 요소들이 중요하게 작동하는 것 같다. 하지만 이번 콘클라베는 그 이전의 콘클라베와 분위기가 달랐던 것 같다. 세속적 의미의 통치자로서의 이미지와 능력보다는 모든 신자를 잘 돌볼 수 있는 사목자적 자질을 갖추었는지, 교회 안팎의 쟁점들과 도전들 속에서 복음화와 선교의 사명을 수행할 수 있는 비전을 갖고 있는지 여부가 교종 선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 것 같다.

레오 14세 교종이 어떤 모습을 보일지는 아직 모른다. 언론들은 교종 이전 시절의 말과 태도와 행동들을 통해 앞으로의 행보를 추론하고 가늠하고 있다.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언론을 통해 드러난 레오 교종의 지난 시절의 궤적은 적어도 나에게는 희망적인 전망을 갖게 한다. 취임 미사 강론에서 보여 준 사목적 비전과 따뜻하고 겸손한 모습은 인상적이다. 레오 14세 교종이 자신의 소명을 잘 수행하기를 기도하고 응원할 뿐이다.

“이 성당[아시시의 프란치스코 대성당]의 뜰에서는 가시 없는 장미가 자란다. 고원 위의 대성당은 세상을 버리거나 세상이 버린 자들이 머무는 곳.”(최현우의 시, '오전 미사'에서)4) 한 젊은 시인이 노래하는 것처럼, 교회가 신앙을 살아내는 수행자들의 장소이며 버려진 약자들을 돌보는 희망의 거처이기를 기대한다.

수도 공동체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생생하게 살아 있는 한국 교회이기를 희망한다. 레오 14세 교종께서 제시할 사목적 비전에 동참하면서 지역 교회의 고유함과 생동감을 잃지 않는 한국 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1) 리처드 세넷, "투게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기", 김병화 옮김, 현암사, 2013, 18.
2) 토니 블랙쇼, "커뮤니티 연구란 무엇인가?", 강의혁 외 3인 옮김, 한국문화사, 2021, 27.
3) 교황청 봉헌생활회와 사도생활단성, "새포도주는 새 부대에", 한국천주교주교회의, 2019, 25-26.
4) 최현우, "우리 없이 빛난 아침", 창비시선 517, 창비, 2025104.

정희완 신부

안동교구 사제. 가톨릭문화와신학연구소 소장. 조직신학을 전공했다. 대구가톨릭대학교에서 오래 강의했고, 지금은 광주가톨릭대학교에서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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