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천에서 용이 나게 하지 말고 개천을 없애자
21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교육계도 여러 창구를 통해 교육 정책을 제안하고 있다.
영유아 교육부터 평생교육 분야까지 다양한 목소리가 쏟아져 나온다. 이처럼 공론화가 활발히 진행되는 것은 환영할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수십 년간 똑같은 요구를 반복할 수밖에 없는 교육계의 처지가 안타깝고 속상하다. 아무리 절박하게 요구해 봤자 결국엔 “교육 문제는 건드리지 않는 게 상책”이라는 정치권의 표 계산에 가로막혀 뒷전으로 밀려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교육은 역대 정부의 정치 성향과 무관하게 후퇴하거나 제자리였다.
균등한 교육, 평등한 학교부터
어린이·청소년은 학교가 사회다. 그런데 한국은 영유아 시기부터 ‘불평등을 당연하게 여기는’ 것을 학교를 통해 체득하게 한다. 부모의 재력에 따라 영어 유치원, 사립 초등학교, 외고, 자사고, 국제학교 등 특권 교육을 누리는 것이 이상하기는커녕 당당한 나라다. ‘균등한 교육’은 헌법에만 존재하는 조문일 뿐이다.
적어도 교육만큼은 평등해야 된다.
우선, ‘처음 교육’이 시작되는 영유아 시기부터 출발선상의 교육 불평등 해소를 위해 국가가 개입해야 한다. 현재는 어린이집 급식과 유치원 급식의 질이 다르고, 교사의 처우에 차이가 난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2023년 12월 정부조직법을 개정해 보건복지부 산하였던 어린이집을 교육부로 이관하는 유보 통합을 시행했지만, 1년이 넘도록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멈춰 있다. 차기 정부에서는 어린이집이든 유치원이든, 공립이든 사립이든 어느 곳을 다니든지 모든 영유아가 질 높은 교육을 똑같이 받도록 유보 통합을 하루빨리 안착시켜야 한다.
또한, 학습 격차가 생겨나는 초기 단계부터 공교육이 적극 개입해야 한다. 이를 위해 ‘7세 고시 국민 고발단’, ‘초등 의대반 방지법’처럼 사교육에 대한 법적 제재가 필요하다. 초등 저학년부터 1교실 2교사제 등 학생 지원 인력을 대폭 충원해 기초 학력을 보장하는 것도 중요하다. 방과후 과정, 학습 도움 센터 등 사교육 수요를 공교육으로 흡수하는 정책을 확대해 공교육을 강화시킴으로써 교육 불평등을 해소하는 방안을 추진해야 한다.
찾아가는 아동 복지로
복지 사각지대에 방치된 어린이·청소년이 너무 많다. 아동 복지 정책을 노인 복지 수준만큼 끌어올리는 것이 필요하다. 아동이 노인보다 인구 수도 훨씬 적은데 왜 노인 복지처럼 ‘찾아가는 아동 복지’가 실현되지 않는 것인지 이해가 안 된다.
현재 아동 복지 정책은 어린이 개인이 아닌 사업 중심의 분절적, 단편적, 단기적으로 진행되는 시혜성 정책들이 대부분이다. 단적인 예로 학생은 교육부, 학교 밖 청소년은 여성가족부가 담당하고 있고, 학교와 지자체 간 협력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려면 우선 학교부터 학생의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고 필요한 기관에 연계하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코로나19로 학교가 문을 닫으면서 그동안 학교가 담당했던 학습, 급식, 돌봄 등에 공백이 생기며 ‘인천 초등생 형제 라면 사건’처럼 안타까운 비극이 일어났다. 이제는 학교가 공부만 가르치는 곳이 아니라 학생의 삶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공공재라는 데에 중점을 두고 한 명도 놓치지 않도록 안전망을 촘촘히 엮어야 할 것이다.
학생 개인별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려면 학교마다 사회복지사와 상담 전문가를 필수로 두어야 한다. 예를 들어 학생과 상담을 하다가 보호자가 알코올 중독인 것을 알게 되었다면, 전문 기관과 연계해 보호자 치료 지원을 병행해야만 제대로 된 학생 지원이 이루어진다.
또한, 저소득층 학생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 학교에 다니는 데 필요한 비용이 적지 않다. 교육청들이 입학하는 모든 학생에게 ‘입학 준비금’ 명목으로 지원금을 주는 것처럼 정부가 저소득층 학생들에게 매달 학습 지원금을 지급하면 어떨까. 현재 논의 중인 아동 수당 지급 연령 확대에 적극 동의하면서, 시행 전에라도 저소득층 학생들부터 우선 지원할 것을 제안한다. 특히 학교 교육 과정 활동에 참여하는 비용은 전액 지원하는 것이 옳다. 요즘 중·고등학교 수학여행비가 인당 70만 원에 달하는데, 기초생활수급자나 차상위 계층 등에 해당되지 않는 사각지대 학생은 수학여행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 ‘여성청소년 생리용품 지원 조례’도 일부 지자체에서만 시행하고 있는데 상위법으로 제정해 전면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다. 화장실에 휴지를 비치하는 게 당연해진 것처럼 전국 학교 여학생 화장실에 생리용품을 비치하는 것부터 시작하자.
가난을 증명하지 않아도, 어디에 거주하든, 모든 아동이 기본적인 삶을 보장받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학생 중심의 교육 재정 확대
교육 불평등을 없애려면 당연히 비용이 소요된다. 하지만 정부는 학생 수가 줄어든다는 이유로 교육 재정을 줄이려 하고, 고교 무상교육 예산 지원 특례도 폐지했다.
교육청의 지방교육재정 교부금이 남아돈다고 하지만, 여전히 초·중·고등학교 시설은 낙후되어 있고, 쪼그려 앉는 화변기 화장실이 있는 학교가 서울 14퍼센트, 경기 75퍼센트에 달한다.1) 학교 운영에 필요한 고정 비용에 추가해서 학생 한 명당 필요한 경비를 기준으로 학생 수만큼 예산을 배정한다면 학생들의 삶의 질이 조금은 나아지지 않을까.
학부모 부담 비용 제로, 질 높은 교육 제공은 국가가 마땅히 담당해야 할 책무다.
대통령 선거뿐만 아니라 국회의원, 교육감, 지자체장들도 교육의 국가 책임제, 맞춤형 교육, 보편 복지를 공약으로 내세우지만 수십 년 동안 학교 현장은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
부모의 소득, 거주 지역, 장애, 학습 속도, 출신 국가 등 다양한 이유로 어린이들이 겪게 되는 교육 기회의 불평등은 대학 입시, 취업 등 결과의 불평등으로 이어져 ‘인생 역전’이란 불가능한 얘기다.
지난 4월 서울시가 저소득층 학생들에게 사교육 인터넷 강의를 제공하는 ‘서울런’의 성과로 주요 대학 입학 인원을 게시한 “개천에서 용 났다”는 방식은 전형적인 특권 의식의 발로다.
21대 대선 후보들에게 ‘개천을 일급수로 만들어 개천 자체를 없애는 평등 교육’을 기대해 본다.
1) '“우리 아이 어떻게 일 보라고요”…초등학교에 아직도 이런 화장실이', <매일경제>, 전종헌 기자, 2024.1.18.

이윤경
사교육 기업에서 홍보 업무를 담당하다 2011년 여성단체 상근 활동가로 취업한 후 마을공동체 살리기, 차별 반대, 교육개혁 운동 등 활동가의 삶을 살고 있다. 소비자를 설득하는 마케터에서 활동가, 상담가, 조직가로 지나온 시간 속에 언제나 ‘진심’을 다했던 경험들이 자랑이자 자산이다. 공저로 "대한민국 교육트렌드 2024", "한국 교육의 오늘을 읽다", "학교, 회복을 담다", "체벌 거부 선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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