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중 대주교, "갈등과 혼란 앞, 그리스도인들이 촛불 들자"
민주주의 회복 염원하는 미사
28일 교구와 평신도 단체 12개 단위가 윤석열 대통령 파면 이후 ‘민주주의 회복을 염원하는 미사’를 봉헌했다.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이날 미사에 김희중 대주교(광주)가 주례와 강론을 맡았고, 100여 명이 함께 “내란 종식과 민주주의의 온전한 회복”을 기도했다.
“70년대, 80년대에 우리나라의 민주화를 위해 헌신하셨던 선배, 신부님들과 민주 열사 어르신들, 학생들, 그리고 최근 몇 년 동안 차가운 길바닥과 광장에서 촛불을 들고 함께해 준 20대, 30대 친구들을 비롯하여 인류의 보편적 가치에 부합한 정의와 평화, 인간의 기본권을 구현하는 자유와 해방, 민주주의 가치를 수호하기 위해 함께해 주신 애국 시민들에게 감사드립니다.”
강론에서 김희중 대주교는 애국지사와 민주 열사, 노동자와 농민들을 비롯한 정치, 사회 운동을 위해 십자가의 길을 걷다가 조국에 생명을 바친 이들을 위한 묵념을 청했다.
그는 12.3 비상 계엄과 대통령 탄핵으로 분열과 갈등, 폭력이 벌어진 이 상황에서, “사회적 병리 현상을 치유하고, 화합을 이루기 위해 구체적으로 할 수 있고,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깊이 통찰하고 실천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미사 지향을 밝혔다.
“교회라는 문을 나가서 역사의 현장에 야전 병원을 차리고, 사회 불의의 희생자들을 보살피자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호소를 기억하고, 우리의 투신을 돌아보자”고 요청한 김 대주교는 “이 혼란을 극복하기 위해 무엇보다도 헌법이 지향하고 있는 바와 같이 모두가 함께 살아가는 민주공화국의 기초를 다시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소위 보수와 진보는 상호 보완적 관계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윤석열 전 대통령의 탄핵 문제에 있어서, 양 진영은 모두 헌법 정신과 가치, 헌법 자체를 기준으로 삼아 해결되기를 바랐습니다. 만약에 헌법 정신과 가치, 헌법 자체를 우리가 거부한다면,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대열에서 이탈하게 되는 것입니다.”
김 대주교는 “대통령 탄핵 심판은 한 개인에 대한 심판일 뿐 아니라, 반민주주의적이고 반헌법적인 계엄 행위가 자행되기까지 이를 부추기거나 방조한 모든 세력에 대한 심판이었다는 것을 깊이 새겨들어야 할 것”이며,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세력의 준동을 막고, 통제받지 않는 무소불위의 권력이 집단 이기주의적 카르텔(이권 공동체)을 형성해 국민 위에 군림하려는 어떠한 시도도 앞으로는 허용되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과감하게 우리의 의견을 피력하고, 할 수 있는 행동을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갈라진 모든 국민이 민주주의의 가치인 진리와 정의, 자유와 평등의 길에서 서로 화해하고 화합하도록 봉사해야 할 사명이 있음을 자각해야 하겠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는 이러한 혼란 속에서 모든 국민의 갈등을 치유하고 화합하는 데 필요한 벽돌 하나씩이라도 쌓아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그는 “다리를 놓아 서로 소통하고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위해 봉사하자”는 프란치스코 교종의 호소를 다시 말하면서, “그러나 용서와 화합이 모든 잘못을 덮어두고 있는 것을 없는 것처럼 지나치자는 것이 아니며, 잘못한 사람은 거기에 상응한 반성을 충분히 해야 하고, 했다는 표시를 삶으로 보여야 할 것”이라고 일침했다.
이어 김 대주교는 잘못한 사람들이 아직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르고, 수적으로 약세여서 졌다고 생각하는 이 상황은 두고두고 갈등 문제일 것이라며, “그리스도인들은 다시 한번 촛불을 들어야 한다. 개인이 가지고 있는 촛불은 바람에 쉽게 꺼져 버리지만, 수백, 수천 명이 함께 든 촛불은 모여서 횃불이 되고 그 횃불은 쉽게 꺼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 횃불이 모여서 이집트인들을 광야에서 인도하였던 불기둥이 된다면, 우리 사회는 쉽게 누군가 탐욕과 권력 욕심으로 지배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선진국이란 경제 대국 혹은 강한 군대가 있는 나라이기보다는 어떠한 사람도 차별받지 않는, 특히 장애인 등 사회적 소외 계층도 부끄러움 없이 떳떳하고 인간답게 살 수 있는 나라를 말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김희중 대주교는 복음의 가치와 인류의 보편 가치 증진을 위한 협력, 권력 감시하는 그리스도인의 의무와 책임을 이야기하는 한편, 대화를 통한 다양성 공존과 상생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사회에서 나의 의견이나 주장과 다름을 곧바로 ‘틀림’으로 단정짓고, 서로를 배척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러나 많은 경우 다름은 곧 틀림이 아니라, 다양한 색깔이나 다양한 악기처럼 다양성 안에서 조화를 이룰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면서, “서로 다른 의견을 틀림으로 단정해 무의미한 소모전으로 정치력을 낭비해서는 안 된다”고 호소했다.
김 대주교는 마지막으로 숨가쁘고 때론 비정하게 돌아가는 국제 사회 정세 속에서도 어렵고 가난한 나라를 계산 없이 도와주어야 한다고 당부하고, “집단 이기주의적 사고에서 벗어나 우리 모두가 상생하고 평화롭게 공존하는 대동 사회를 이루면서, 새로운 공화국을 열어 나가는 길에 동참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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