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부르는 탈가부장과 상호 부조의 서사

‘폭싹 속았수다’, 김원석 연출, 임상춘 극본

2025-04-30     김지환

동백파와 아저씨파가 만들어 낸 드라마

최근 넷플릭스에서 방영한 ‘폭싹 속았수다’는 ‘동백꽃 필 무렵’의 작가와 ‘나의 아저씨’의 연출자가 합작해 방영 전부터 큰 화제를 불러왔다. ‘동백꽃 필 무렵’과 ‘나의 아저씨’ 또한 엄청난 인기작이자 화제작이었는데, 두 드라마를 다 본 사람이라면, 그것과 연계해 ‘폭싹 속았수다’의 출연 배우가 반갑게 느껴질 법하다. 여러 주인공 중 하나인 양관식 역의 박해준 배우는 ‘나의 아저씨’에서 수능 전국 수석까지 했지만 스님이 된 이선균의 친구 역으로 출연했다. 이때 박해준 배우에게 머리를 빡빡 깎게 한 뒤 언젠가는 신세를 갚겠다고 했으니, 이번 드라마에서 분명 갚은 셈이다. “사랑이 죄야!”라며 불륜남으로 각인되기도 했던 박해준 배우는 ‘폭싹 속았수다’에서 ‘순정남’으로 거듭난다. 주요 배우 상당수는 박해준과 아이유를 비롯해 아저씨파이고, 동백파로는 ‘동백꽃 필 무렵’에서 부부였던 염혜란과 오정세가 여기에서도 잠시지만 부부로 나온다.

기존 넷플릭스 독점 드라마가 한꺼번에 공개된 것과 달리 매주 봄, 여름, 가을, 겨울 편으로 각 4화씩 공개되었다. 마침 비상 계엄하에서 많은 시청자에게 위로와 즐거움을 준 드라마로 기억될 것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은 계절 주기이지만 인생 주기이기도 하다. 계절이건 인생이건 시간은 계속해서 흘러가겠지만, 봄이라고 늘 따뜻하지만은 않다. 따뜻해지나 했더니 꽃샘추위도 찾아오고, 또 꿈을 꺾어야 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생명이 한창 자라나는 여름에 한 생명이 잦아들기도 한다. 하늘은 푸르고 땅이 누런 풍요로운 가을에 자라나는 자식 때문에 살림살이는 더욱더 줄어든다. 겨울이라고 마냥 춥기만 하지는 않다. 또 소중한 사람이 떠나가지만, 생기가 돋기도 하고 막힌 일이 풀리기도 한다. 결국 끊임없이 롤러코스터를 타는 인생의 모습을 펼쳐 낸다.

‘동백꽃 필 무렵’ 이은 탈가부장적 서사

배우는 대부분 아저씨파이지만, ‘폭싹 속았수다’의 서사 구조는 ‘동백꽃 필 무렵’을 떠올린다. 바로 탈가부장적 서사다. ‘동백꽃 필 무렵’에서 황용식으로 대표되는 가부장제 바깥의 인물에게는 행복이 찾아오지만, 그 안에서 헤매다가 길을 못 찾는 남성들에게는 쓸쓸한 인생만 남겨진다. 허세 쩔고 철딱서니 없는 노규태는 나중에 가서야 개선의 여지가 보인다. 노규태의 이야기를 복사한 인물이 ‘폭싹 속았수다’에서도 등장한다.

한결같이 집에서 키운 양배추를 파는 애순의 곁을 지키는 관식, 하지만 ‘소년중앙’에서 ‘창작과 비평’으로 바뀌면서 시간이 흘러갔음을 확인해 준다. (화면 출처 = '폭싹 속았수다' 갈무리)

‘폭싹 속았수다’의 서사 구조는 살짝 유명한 영화 ‘안토니우스 라인’를 떠올리기도 한다. ‘안토니우스 라인’은 안토니우스 할머니를 중심으로 그녀의 딸과 손녀들 이야기, 여성을 통해 대를 이어 가는 서사, 목소리 없던 여성의 목소리를 복원하고, 하나씩 맺힌 걸 풀어 가며 해방의 실마리를 찾아간다. ‘폭싹 속았수다’는 광례, 애순, 금명이 모녀 3대의 이야기를 그린다. 이들은 여성을 옭아매던 시대적 정서에 동조하지 않은 인물들이다. 주위의 시선을 이겨 내며 조금씩 조금씩 여성의 독자적 영역을 넓혀 간다. 광례는 비록 요절하지만 딸 애순의 미래를 위해 헌신했고, 애순은 엄마가 자기한테조차 시키지 않았던 물질을 시댁에서 딸 금명에게 시키려 하자 시댁을 박차고 나간다. 또 금명은 예비 시어머니의 일방적이고 파렴치한 행태에 맞서 과감하게 혼사를 엎는다.

하지만 어떤 이에게는 드라마 속 서사가 크게 공감되지 않았다고도 한다. 광례가 애순에게 헌신하듯, 남아 선호 사상 속에서 딸에게 그리 헌신한 어머니는 너무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항상 딸보다 아들을 앞세운 엄마가 있던 여성에게는 오히려 드라마가 불편했다고도 한다. 해서 이 모녀 3대의 이야기는 어찌 보면 아주 현실적이지 않을 수도 있다.

광례는 어린 애순을 꼬옥 끌어안고 ‘유언’ 같은 말을 남긴다. 시어머니와 손을 꼭 잡고 영정 사진을 찍으러 간다. 그렇게 광례는 해녀 생활로 인한 후유증으로 얻은 ‘숨병’으로 세상을 떠난다. 잠깐 등장하지만 광례 역을 맡은 염혜란 배우의 연기는 많은 찬사를 받았다. (화면 출처 = '폭싹 속았수다' 갈무리)

이 모녀 3대에겐 계속해서 도전의 연속이다. 거기엔 제주도라는 배경이 또 작용하는 듯한데, 이 대사가 무척 인상적이다. 애순이 친할머니의 도움으로 관식에게 배를 사준 뒤 일이다.

애순: 여자가 배 타면 재수 없대잖어. 용왕님이 배 뒤집는대. 배가 도로 못 돌아온대.

관식: 나는 그런 거 안 믿어.

애순: 그런 말 하지 마. 용왕님, 신령님 다 성격 꽁해 다 뒤끝 있어.

……

금명(해설): 엄마는 그때 딸에게 말할 수 없었다고 했다. ‘니가 배 타면 재수 없대’라고. 먼저 상을 엎었다.

결국 모녀는 힘차게 배에 올라탄다. 이렇게 선을 조금씩 넘고 틈새를 하나씩 비집는 데는 관식이란 조력꾼이 있다. 남녀가 따로따로 식사하는 밥상에 뒤로 확 돌며, 애순과 금명이 있는 밥상에서 밥을 먹는다. 금명은 훗날 그런 작은 행동 하나하나가 작은 혁명이었다고 말한다. 모녀 3대의 서사는 탈가부장적 관식이라는 기둥에서 완성된다.

드라마 속 관식의 손이 눈에 걸린다. 자기 아이 사망신고서를 작성하던 그 거칠고 변형된 손, 가족을 위해 고된 노동을 마다하지 않았던 그 손. 금명의 예비 시어머니는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었다. 그녀는 그 손을 모욕했다. 금명이 결혼 판을 엎은 결정적 순간이다. 그때 금명이 말한다. 결혼을 준비하면서 자기 집이 훨씬 ‘품위’ 있었다고. 이는 과장이 아니라, 품위는 부르주아지 또는 기득권층이든 상류층이든 사실 그들의 전유물이 될 수 없다. 우리가 여러모로 착각하는 대목 중 하나다. 하지만 작금의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우리는 자칭 엘리트라고 하는 집단이 얼마나 ‘품위 상실’ 그 자체인지를 목도하고 있다.

동명이의 사망신고서를 작성하는 관식의 손. 드라마 보는 내내 관식의 뒤틀린 손이 눈에 걸린다. 금명의 예비 시어머니의 아버지 손에 대한 모욕은 궁극적으로 삶에 대한 모욕으로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어버린 것이다. (화면 출처 = '폭싹 속았수다' 갈무리)

이 드라마의 탈가부장적 서사는 알고 보면 페미니즘이 지향하는 바일 수 있다. 기존 완강한 가부장제를 넘어서는 남자와 거기 갇힌 남자의 행불행을 비쳐 주는 방식이 효과적인데, 마치 낄낄대고 즐겁고 아무도 지지 않는 쉘 실버스타인 선생의 ‘껴안기 싸움’ 효과 같다. 드라마 속 여성의 주체적 삶과 탈가부장적 주체의 조화가 이 드라마의 미덕으로 느껴진다. 반면 ‘학씨’로 유명해진 부상길은 철저한 가부장적 인간이다. 알고 보면 찌질하면서 안하무인인 그 자체로 정떨어지는 인물인데, 예수회 김정대 신부의 책 제목처럼 “왜 남자들은 기를 쓰고 불행하게 살까?”라는 질문을 떠올리게 하지만, 나중엔 차츰 조금씩 방법을 찾아간다.

관식과 이별하는 애순. 예전의 모습으로 서로 마주하는 모습이 가슴 찡하게 한다. (화면 출처 = '폭싹 속았수다' 갈무리)

상호 부조의 향수

외국 관객의 ‘폭싹 속았수다’ 관람 반응 장면을 유튜브에서 보았다. 문화 차이와 맥락 때문에 이해하지 못하는 장면도 종종 있지만, 드라마가 이야기하는 보편적 정서에 깊게 공감한다. 어느 시대, 어느 사회나 결국 사람 사이의 온기를 그리워하고 동경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런 점에서 ‘폭싹 속았수다’에서는 점점 우리에게서 사라져 가는 ‘오래된 미래’ 또는 향수일 수도 있는 상호 부조의 서사도 깊다. 어려운 일에 처했을 때 도움을 요청할 사람이 없다는 것이 현대 한국인의 불행 지수를 높인 원인 중 하나라는 보고에서 알 수 있듯이, 드라마 속 상호 부조나 상호 지원은 그리움을 불러낼 만하다.

애순의 일생 내내 그를 지지해 주는 해녀 이모의 모습, 월세살이 시절 텅 빈 쌀독을 채워 주는 주인 내외, 미안한 마음에 애순의 세 달치 월세를 내 주고 떠나는 양아버지의 새 여자, 동명이를 잃고 힘겨워하는 애순이 가족을 향한 주변 사람의 배려, 훗날 애순의 시어머니에게 극장 표를 안겨 주는 ‘츤데레’ 사장. 물론 살아가는 내내 발목을 잡는 악당도 많지만, 그 악당을 밀어내는 것도 사람의 힘이니. 가슴을 훈훈하게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이 드라마의 또 다른 인기 비결이기도 하다.

광례와 함께 물질했던 해녀 이모들은 애순을 정말로 아낀다. 나중에 애순이에게 챙겨 줄 전복을 아까워하는 듯한 표정을 지을 때, 왕언니가 말한다. “광례 똘(딸)이다.” 이에 “하도 오랜만이라 나도 만져만 봤수다. 만져만.” (화면 출처 = '폭싹 속았수다' 갈무리)

이 드라마의 몇몇 평을 보노라면 제주를 배경으로 하면서도 제주 4.3을 이야기하지 않았다거나 87학번인 금명이 시대와 무관하게 자신과 가족만 바라보며 산다는 비판도 있다. 이처럼 역사와 시대를 비껴갔다는 지적도 일리는 있다. 또 결국 가족에 대한 헌신만으로 귀결되는 가족주의 서사도 불편해 할 수 있다. 살짝 넘치는 듯한 가족 신파도 있다. (한국의 콘텐츠를 소비하는 외국인은 이 신파를 무척 좋아한다고 한다.) 그런데 애순과 관식 못지않게 우리 부모 세대는 정말 고생을 많이 했다. 가족 이야기에 갇혀 역사와 현실을 뒤로했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정말 열심히 살아온 우리네 민중의 이야기로도 읽힐 수 있다. 어찌 보면 그 또한 역사의 중요한 한 부분이다. 제목처럼 이 땅의 사람에게 ‘폭싹 속았수다’(정말 수고 많았다)라고 격려하는 목소리이기도 하다.

결말에서 ‘폭싹 속았수다’는 애순의 삶이 펴낸 시집 한 권의 이름으로 등장한다. 편집자 클로이가 광례의 환생으로 비치는 것은 금명이가 보내 준 원고를 읽고 눈물 흘리며 "참 장해"라는 감탄사를 흘리기 때문이다. 문학소녀였던 애순은 아주 늦게 자신의 꿈을 이룬다.

가끔 드라마의 해설이 어떤 아련한 향수를 뿜어낸다. 지금은 스마트폰을 보느라 고개를 푹 숙이지만, ‘모두 고개를 들었던 시절’이라는. (화면 출처 = '폭싹 속았수다' 갈무리)

‘폭싹 속았수다’는 곳곳에 흐르는 우리 대중가요를 비롯한 대중문화 그리고 우리 삶의 흔적이 육화된 드라마다. 1970년대생 내 또래도 반백 년을 넘게 살다 보니 드라마 속 옛 모습이 아련하게 다가오며 그 안에서 향수를 느낀다.

김지환(파블로)

마포에서 나서 한강과 와우산 자락의 기운을 받으며 살아왔다. 역사를 공부했고 그중에서도 라틴 아메리카 역사를 한참 재미있게 공부했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도 이 지역 이야기는 가슴을 뜨겁게 한다. 여전히, 좋은 책이 세상을 바꾼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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