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청년들은 어떤 언어로 민주주의를 말해야 하는가"

예수회 인권연대연구센터, 여성들이 나눈 '다시 만날 세계'

2025-04-25     정현진 기자

지난 19일 예수회 인권연대연구센터가 윤석열 파면 뒤의 새로운 사회상을 함께 생각하고 말하는 집담회 ‘다시 만날 세계’를 열었다.

연구센터는 이른바 ‘광장의 시간’에서부터 “한국 사회가 다시 그려 갈 민주주의와 인권, 평화의 풍경을 신앙과 실천의 언어로 함께 상상하는 자리”라며, 이 전환 시기에 시민들의 시선에서 한국 민주주의를 위한 대안적 사유를 나누고자 한다고 밝혔다.

이날 연구자, 활동가로서 지난 123일간 광장을 지켜 낸 30대 여성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비상계엄령 이후 투쟁 일지와 광장의 무지개 목소리들'을 주제로 장예정 씨(차별금지법제정연대 공동집행위원장)가 기조 발제하고, 이보나 씨, 조은나 씨, 최지은 씨가 논찬했다.

집담회 '다시 만날 세계'에 참석해 이야기 나눈 (왼쪽부터) 장예정 씨, 조은나 씨, 최지은 씨, 이보나 씨. ⓒ정현진 기자

4개월간 광장 지킨 무지개들
“윤석열 없고, 차별금지법 있는 나라”
내란 종식과 차별 없는 세상은 맞닿은 문제

지난해 12월 3일 윤석열의 비상 계엄 직후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시민들의 외침이 이어졌다. 파면 선고까지 124일간 이틀이 멀다 하고 집회가 열렸고, 1000만 명 시민과 1000여 번 발언이 있었다. 이 요구와 목소리들은 11개 분야, 118개 사회 대개혁 과제로 정리됐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에 함께한 주체 가운데 ‘차별금지법제정연대’와 소수자들이 있었다.

장예정 씨는 광장의 수많은 시민 중 여성과 성소수자들을 주목했다.

2016년 박근혜 탄핵 국면에서 열린 광장과 8년 뒤, 윤석열 탄핵을 촉구하는 광장은 여러 면에서 차이가 보였다. 그중 성소수자 당사자들의 발언 참여가 5배 정도 늘어난 변화 외에, “차별과 소수자 혐오”가 어떻게 민주주의를 파괴시킬 수 있는지 깨달은 시민들의 의식 변화가 두드러졌다.

“(12월 3일부터 11일 간 집회가 열린) 광장의 시민들은 여성, 성소수자, 장애인, 어린이, 청소년, 이주민 등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혐오 발언은 배제하자는 광장의 약속을 만들었다. 차별과 혐오 없이도 우리는 이길 수 있다고 선언하며 함께 싸웠다. 우리는 이 광장에서 차별과 혐오에 단호하게 맞서는 평등이 지금 우리 사회의 기본 원칙이 되어야 함을 확인하였다.”(2024년 12월 14일,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입장문 중)

“현재 한국 사회에서 피청구인(윤석열)에 대한 파면 요구와 차별, 혐오를 넘어선 새로운 민주주의에 대한 요구가 서로 뗄 수 없는 하나의 요구로 결합해 등장하고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2월 28일 차별금지법제정연대 헌법재판소 제출 의견서 일부)

“평등은 윤석열을 파면시킬 우리의 힘이며 미래다. 국회 앞에서, 남태령에서, 한강진에서 광화문으로, 서로를 배우는 용기, 아끼고 돌보는 연대로, 존엄과 평등의 민주주의는 이미 시작되었다. ... 윤석열을 파면시키고 우리가 나아가려는 세상에서 누구도 나중으로 밀려나지 않을 것임을 선언하자.”(3월 29일 민중의 행진 선언문 일부)

광장은 발언과 행진, 시국 선언과 누군가를 기억하고 무엇을 기념하는 일들로 날마다 채워졌고, 차별과 배제를 경험한 이들의 말들은 점점 더 큰 공명을 일으켰다. 그리고 2016년에는 보지 못한 극단 세력과 폭력은 일부 소수자에게만이 아닌 사회 전체를 향해 드러났다.

장예정 씨는 이 입장문들과 수많은 발언을 통해 탄핵안 가결까지 시민들이 얼마나 평등에 합의하며 나아갔는지, 차별 없는 세상을 이야기했는지 말했다. 또 “서부지법에서의 폭력 사태를 보면서 이를 낯설어 하는 이들이 많았지만, 소수자들 입장에서 그것은 전혀 낯선 것이 아니었다”면서, “차별금지법을 반대해 왔던 이들의 모습이었고, 결국 소수자들을 재물 삼아 힘을 키운 결과는 내란을 옹호하는 극우 세력의 준동이었다”고 말했다. 차제연과 무지개행동은 이를 분석한 자료 '극우리포트-소수자 혐오에서 내란 옹호까지'를 펴내기도 했다.

장예정 씨는 ‘비상행동’이 계엄 선포 뒤부터 윤석열 파면까지 평일과 주말 집회, 한남동과 남태령 밤샘 집회에서 나온 발언문과 온라인 공론장 핵심어를 분석한 결과를 제시했다. 그는 2월 22일까지의 발언문 811건 가운데 어떤 알고리즘에도 변하지 않는 1위는 “차별 없는”, “평등한 세상”이라며, 이는 광장에 모인 이들이 꿈꾸고 합의해 간 세상의 모습을 보여 준다고 말했다.

2024년 12월 21-22일, 남태령의 밤은 농민과 시민의 연대로 승리한 명실상부 첫 싸움이라고 할 수 있다. ⓒ정현진 기자

이어 '가톨릭 청년 시국 선언과 신앙의 언어로 말하는 민주주의'를 주제로 조은나 씨(서강대 신학대학원 박사과정)가 논찬했다.

그는 2024년 12월 12일 가톨릭 청년 946명이 국회 의원들의 탄핵 표결 참여를 촉구하는 시국 선언에 참여한 경험을 바탕으로, 어떻게 신앙 언어로 민주주의를 요구할 수 있는가를 이야기했다. 이를 위해 그는 주교회의 입장문, 사제와 수도자 시국 선언문, 서울대교구 정순택 대주교 입장문을 신학적 틀 안에서 들여다보고, “각 주체들의 입장을 보면서, “가톨릭교회가 말하는 민주주의가 무엇인가, 교회는 민주주의를 어떻게 생각하는가를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조은나 씨는 먼저 시국 선언에 나선 가톨릭 청년들은 “신앙의 언어로 어떻게 민주주의와 사회적 정의에 응답했는가를 물었고, 성명의 내용은 가톨릭 사회교리 가르침에 따라, 계엄과 같은 시대착오적 행위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것이었으며, “헌법과 민주주의의 가치를 굳건히 지켜 달라는 요청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계엄, 민주주의 위기, 헌법적 질서와 시민의 권리에 대한 요구라는 사회의 징표들 속에서, 어떤 언어로 민주주의를 말할 수 있는가?”를 물으며, “신앙은 현실을 외면하는 도피처가 아니라 역사 속에서 하느님의 뜻을 식별하고 실천하는 여정이다. 삶이 곧 신앙이고, 이 신앙으로 기도와 말씀, 연민과 저항을 통해 구체적 현실과 접속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인간 존엄과 공동선은 단순 이론이 아니라 복음적 가치 안에서 우리가 지지하는 힘과 연대하고 일치하는 것이 민주주의를 위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중립은 종종 불의의 공범이 된다”('모든 형제들' 70항)
“정의 없는 사랑은 없다”(“간추린 사회교리” 206항)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한 8,32)

조은나 씨는 청년들이 교회에 바라는 것은, “헌법재판소 판결 수용 이후, 정의롭고 신뢰받을 수 있는 결정이었는지에 대한 성찰, 결과보다 과정에서 드러난 상처와 불균형에 귀 기울이는 것”이었다면서, “청년들은 교회에 관망자가 아니라 동반해 줄 것을 간절히 바라고 있고, 교회는 지금 누구 편에 서 있는가 묻고 있다”고 말했다.

“청년들은 정의로운 공동체를 만드는 주체는 우리이며, 이것은 단순한 정치적 동의, 어느 정당을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청년으로서 우리의 목소리를 내고 깨어 있는 교회에 대해 기대하고 있습니다. 성전 밖 세상 속의 예언자적 교회를 갈망하고, 정의와 믿음 안에서 사랑을 실천하고 싶습니다. 함께 걷고, 약자와 연대하고 기도로 응답하는 청년 공동체가 머무는 곳이 교회이기를 바랍니다. 교회 안에 청년이 없다고 말하지 말고, 교회에 과연 이런 청년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지 먼저 성찰하고 비판적으로 숙고해야 합니다.”

조은나 씨는 “지난 123일은 청년들이 사는 세계와 교회의 어른들이 바라보는 세계가 다른 것이 아닌가라는 슬픈 생각에 빠진 날들이기도 했다”며, 그래서 시국 선언에 나섰다고 말했다. 그는 “신앙은 현실 도피가 아니라 식별 여정이며, 시대의 징표를 식별하는 영적 민감성이 필요하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세상과 더불어 산다는 것을 교회에서 배웠지만, 정작 교회는 123일 동안 무엇을 했는지 알 수 없다”고 꼬집었다.

그는 “새로운 실천의 발걸음은 중세 시대의 신학처럼 반복하고 외우는 것이 아니라 신앙으로 다시 시작하는 용기”라면서, “우리는 서로를 비추며 더 넓은 연대로 나아갈 것이고, 광장으로 나가 함께 연대하며, 목소리 높여 함께 노래할 것이다. 세상의 한복판에서 그리스도의 정의와 평화를 살아내고, 광장에서 울려 퍼진 우리의 말과 만남이 하느님나라를 향한 실천이 될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광장을 지켜 낸 수많은 깃발과 이야기들. (사진 제공 = 차별금지법제정연대)

탄핵, “차별과 혐오를 조장하는 정치의 끝을 외치다”
광장의 시간은 위기 전복하는 전환

두 번째 논찬자인 최지은 씨(서강대 신학대학원 박사과정)는 '소수자 신학으로 전망하는 위기와 전환'을 주제로, 광장의 연대를 소수자 관점에서 해석하고, 이러한 관점이 신학에 주는 가능성을 돌아봤다.

“(탄핵을 촉구하는 광장은) 이 사회의 소수자들이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해 온 주체이자 동료 시민이란 것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또 시민 모두가 어느 정도의 소수자성이 교차하는 자리에 있으며, 그것이 개인 문제가 아니라 구조 문제란 것을 확인하는 시간, 모두가 서로의 삶에 깊이 연루되어 있다는 감각을 아주 직접적으로 체득하는 시간이었다.”

최지은 씨는 먼저 여성의 관점에서 탄핵과 파면 정국의 광장을 바라봤다. 그는 윤석열 정권의 첫 시작이 “여성과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정치적 전략으로 활용한 것”이었다면서, 여성가족부 폐지, 성폭력 무고죄 처벌 강화, 병사 월급 인상 정책은 안티(반) 페미니즘에 기댄 지지를 불러왔고, 이후 정책 역시 여성, 성소수자, 장애인, 노동자, 이주민 등 사회적 약자의 피해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차별과 혐오 정치의 말로’에 대한 통찰은 광장에서 직접 말로 드러내고, 또 충돌하면서 전환점이 이뤄졌다.” 그는 윤석열 탄핵 집회에서 성소수자, 장애인, 페미니스트의 발언은 “나중에”로 미뤄지고, 탄핵의 “초점을 흐린다”며 야유와 공격을 받기도 했다고 기억했다. 그러나 그는 오래전부터 수없이 외쳐 온 “나중에”가 결국 소수자들에 대한 사회적 인정을 뒤로해, 오늘의 결과를 가져온 것이라고 지적하면서, “탄핵은 소수자 배제, 차별과 혐오 요소를 불편하게 여기며, 저항의 목소리를 내고, 그 존재를 끊임없이 확장한 결과”라고 말했다.

최지은 씨는 광장에서 기억에 남는 발언 가운데 하나는 “배제와 소외”를 인식하고 이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자성의 목소리였다면서, “한국인이 아니”라며 외국인 노동자, 이주민의 발언에 대한 비판이 나왔을 때, “우리는 한 사회에서 함께 사는 시민이며, 계엄 상황에서 우리 모두가 위험해진다”는 말이었다고 했다.

그는 연대의 ‘확장’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역설적이게도 비상 계엄으로 일어난 "무력감, 수치심, 죄책감과 같은 감정의 근원에는 인간의 존엄과 권리가 존중되는 사회가 당연한 것이 아니며, 우리 모두 폭력 앞에 취약할 수 있다는 감각이 자리잡고 있다"면서, “우리의 취약함은 타인의 삶이 살 만하지 않고서는 나의 삶도 살 만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만들었다. 그래서 진정한 의미의 ‘우리’는 거침없이 경계를 판단하고, 타자와 서로 의존할 수 있는 관계를 구축할 때 비로소 향상된다”고 말했다.

이는 복음의 가르침과도 맞닿는다. 그는 예수께서 사는 동안 자신을 초월해 끊임없이 타자를 향하고, 가장자리에서 사람들을 만나 왔듯이, 주변부에서 울려 퍼지는 목소리는 우리 시대의 표징이며, 사회적 소수자들의 경험에서 출발한 목소리들에 응답하는 것이 새로운 사회를 위한 전망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12일가톨릭 청년 946명이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가톨릭 청년 연대'라는 이름으로 '국회의원의 탄핵 표결 참여를 촉구하는 시국선언'에 참여하고, 기자 회견을 열었다. ©경동현 기자

“평화와 갈등은 떨어질 수 없는 개념”

마지막 논찬은 이보나 씨(강원대 평화학 박사과정)가 이어 갔다.

'우리가 만들어 갈 새로운 세계와 평화'란 주제를 다룬 그는 평화학 관점에서 평화의 진정한 의미와 가능성을 살피고, 이 전환 시기에 우리가 가져야 할 평화와 화해, 환대의 모습을 나눴다.

이보나 씨는 먼저 “평화는 갈등과 절대 떨어질 수 없는 개념이며, 갈등 없이 사는 것도 가능하지 않다”고 말하며, “갈등 없이 사는 것이 과연 평화인가? 인간에게 필요한 공기처럼 갈등은 사회생활에 필요한 요소이자 도전이다. 갈등은 문제를 드러내지만 사람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갈등을 통해서 더 나은 미래를 바라보고 그려 보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광장에서 시민들은 최선을 다해 안전한 공간을 만들고, 확보하기 위해서, 또 모든 과정을 최대한 평화롭게 이어 나가기 위해 서로 굉장히 많은 노력을 했다. 그리고 그런 현장에서 서로 평화가 무엇인지 배울 수 있었다. 서로 힘이 되는 그런 체감이 광장을 넘어 연대로 확장되는 것은 감동적이었다.”

“이쪽과 저쪽의 공존은 가능한가?”

이보나 씨는 그러나 탄핵 찬반을 두고 극명하게 갈린 공간, 극단으로 다른 목소리를 들으면서 ‘공존’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물과 기름 같은 이쪽과 저쪽의 평화로운 공존은 과연 가능한가”를 고민하면서, “서로 다른 존재를 인정하고 공존을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과거 규명과 관계 회복을 통한 정의 실현”이라고 말했다.

이어 “올바른 정의가 실현되고 나서야 우리가 광장에서 외친 민주주의가 실현되고, 되풀이해 온 악순환이 종식되면서 사회와 개인의 자유까지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명확히 짚었다. 그는 “공존에 대한 규정도 필요하다”면서, 공존이 어떠한 상태를 가리키는 것인지, 그 상태를 사용하는 과정을 말하는 것인지, 공존을 위해 적극 함께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맥락에서 그는 더 나은 상황으로 나아가기 위해 생각해야 할 가치 중 하나로 ‘환대’를 들었다. 그는 “환대의 개념에서는 주체와 객체가 분명히 나뉜다. 누구의 것도 아닌 동시에, 누구의 것도 될 수 있었던 광장을 통해서, 누구를 타자라고 여기는지, 타자를 스스로 받아들이는 것인지, 혹은 타자에게 자신을 내어 주는 것인지를 생각해 봐야 한다”며, “환대의 개념을 더 확장할 것인가, 아니면 다른 개념으로 대체해 볼 것인지도 생각해 볼 수 있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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