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의 민주주의, 희망과 의구심 사이에서

2025-04-28     황인정

이 글은 <가톨릭평론> 47호(2025년 봄, 우리신학연구소)에 실린 글입니다.

MZ의 민주주의, 탄핵봉과 백골단 사이의 간극

12·3 계엄 이후 윤석열 대통령 탄핵 집회에서 이른바 ‘탄핵봉’을 손에 쥐고 탄핵을 외치는 참석자들이 많은 주목을 받았다. 2002년, 2009년, 2016-17년까지 이어진 역대 촛불 집회에서 집회 참석자들의 도구가 촛불이었다면, 이번 집회에서는 아이돌 응원봉을 들고 나온 2030들이 국내외 언론의 주요 관심을 받았다. 제대로 절차를 갖추지도 않았고 헌법에서 명시한 계엄 선포 요건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 말도 안 되는 계엄령 때문에, 또다시 추운 겨울 국민이 여의도 국회 앞으로, 광화문으로, 용산 관저 앞으로, 공수처 앞으로 모여 민주주의 회복을 외쳐야만 했다. 그러나 세대와 소속 직업 등 많은 경계를 넘어 다양한 시민이 함께 노래하며 행진하는 케이-시위 문화는 이번에도 빛을 발했다. 게다가 평화롭고 축제 같은 시위 현장에서 주축이 된 것이 기성세대가 그토록 이해하기 힘들다며 연구 대상으로 여긴 MZ라니! 너무나 대견하기 그지없다. 이들은 많은 기성세대가 본 적도 없었고, 만져 본 적도 없고, 사 본 적은 더더욱 없던 오색 빛깔 찬란한 응원봉을 들고 나와 추운 겨울 시위 현장에 색깔을 입혀 주었다. 이전 시위에서 촛불은 따뜻했고, 함께 노래하고 자발적으로 연단에 올라 발언하며, 손수 만든 깃발로 정체성을 보여 주는 문화도 이미 재미있고 한국 민주주의의 발전을 보여 주는 자랑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등장한 형형색색 응원봉은 새로운 세대가 자신의 정체성을 또 한 번 즐거운 방식으로 드러내며 공유하고, 자연스레 새로운 시위 문화로 발전시키고 있었다. 우리 사회가 다양하고 역동적인 방향으로 민주주의를 젊은 세대에게 전하고, 시위 문화도 세대 교체와 함께 바뀌어 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기에 분명 탄핵봉 시위 장면은 한국 민주주의에 희망이다.

그러나 젊은 세대를 주축으로 이번 내란 사태를 기점으로 하여 민주주의 회복이 만연하게 이루어질 것인가에 대한 답이 긍정적이지만은 않다는 것을 보여 주는 사건들 또한 계속되고 있다. 윤석열 탄핵 저지를 위해 뭉친 일부 청년이 반공청년단이나 백골단 같은 시대가 이미 반민주 집단으로 명명한 이름을 스스로 차용하고, 전광훈에게서 신앙 훈련을 받았다는 청교도영성훈련원 소속 청년들이 윤석열 탄핵 반대 집회 현장 곳곳에 모습을 드러냈다. 양극화된 한국 사회의 정치 지형을 그대로 보여 주는 것 같은 2025년의 2030 청년 세대는 왜, 무엇으로 각자가 생각하는 민주주의 지향을 드러내는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 계엄 이후 계속 이어진 집회에 2030 여성들이 응원봉을 들고 나와 새로운 문화와 연대의 장을 만들었다. (사진 출처 = 춧불행동tv가 유튜브 채널에 올린 동영상 갈무리)

‘탄핵봉’에서 희망을, 연대에서 소망을

윤석열 탄핵 집회에 젊은이들은 또 다른 의미에서 민주주의의 희망을 보여 준 것은 이들이 또래 집단과 또 이질적인 집단과도 자연스레 연대하는 모습이었다.

첫 번째 연대는 청년들 내부에서 그들에게 익숙한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2016-17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 집회와 그 이전의 촛불 집회에서도 인터넷은 주요 소통 창구였다. 네이버, 다음 같은 포털 사이트의 카페를 비롯해서 정치와 무관한 취미와 지역 공동체 누리집에서 집회 참석과 지지 글이 올라오고 공유되었다. 이번 탄핵 촉구 집회에 참석한 청년들에게 어떻게 참석하게 되었냐고 물었을 때는 X와 인스타그램, 카톡 오픈채팅방 등의 다양한 답이 나왔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이후 8여 년 동안 청년 세대가 주로 사용하는 인터넷 공간 변화에 대한 정확한 반영인 것이다. 누리소통망과 함께 유년 시기를 보내며 과용에 대한 우려의 시선도 많이 받았던 2030은 이제 자신들에게 익숙한 소통 수단을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소통에 적절하게 쓰는 젊은이로 자랐다.

청년들의 연대는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났는데, 주목할 만한 것 중 하나는 집회에 참석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인 이들에 대한 배려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통과된 2024년 12월 14일 국회의사당 집회 현장에 등장한 ‘키즈 버스’는 젊은이들 간 연대의 결과물이라고 볼 수 있다. 두 살 아기를 둔 엄마가 휴가를 가려고 모아 놓은 돈으로 직접 전세 버스를 대절해 영유아와 함께 집회에 참석한 이들을 위한 휴식처를 마련한 것이다. 버스 안에서 기저귀도 갈 수 있고 수유를 비롯해 아기와 보호자 그리고 임산부가 쉴 수 있게 했다. 이 소식이 누리소통망을 통해 알려지자 젊은이들은 물품 후원으로 지지와 연대를 표현했다. 비단 내가 아기와 함께 시위에 참석하는 사람 본인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런 상황에 있는 내 또래의 시민을 위해 연대한 경우도 있다.

두 번째 연대는 젊은이들이 일반적으로 동조하지 않거나 관심이 없을 것으로 생각했던 집단과의 조우로 나타났다. 12·3 비상 계엄 사태 이후 “민주노총이 길을 열겠습니다”는 2030을 비롯한 많은 이가 이용하는 누리소통망 공간에서 밈(인터넷 유행 콘텐츠)이 됐다. 첫 번째 탄핵소추안 표결이 예정됐던 12월 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경찰들이 방어벽을 치고 시위에 참석한 시민들이 앞으로 나아갈 수 없게 되자, 마이크를 잡은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이 “민주노총이 길을 열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조합원들이 팔짱 끼고 횡대를 이루어 방어벽 앞으로 이동하고 시민들이 “열어라”는 구호를 외치자 경찰은 길을 열었다. 그동안 386, 기성세대, 귀족 노조 등으로 불린 민주노총이 젊은 시위 참석자들과 연대를 형성한 순간 중 하나였다. 민주노총과 2030의 연대는 1월의 시위 현장과 인터넷 공간으로까지 이어졌다. 반민주적 사태를 겪으며 역설적이게도 도저히 만나기 어려워 보였던 젊은 민주 시민과 기성세대 민주 시민이 지속적으로 연대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해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2030은 보다 유연하게 다른 집단과 연대할 수 있다는 것을 여러 차례 보여 주었다. 12월 21일 전국농민회총연맹과 전국여성농민회총연맹의 전봉준 투쟁단이 서울 남태령 고개에서 경찰에게 저지당했을 때도 청년들은 달려갔다. 농민들의 트랙터 투쟁단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앞두고도 서울에 들어오지 못한 채 경찰차 벽에 막혀 돌아갔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농민들의 소식을 유튜브와 X를 비롯한 누리소통망으로 전해 들은 청년들은 남태령으로 몰려갔다. 21일 밤에도 열리지 않던 경찰의 차 벽 문이 22일 오후 주최 측 추산 1만 명 시민이 모이자 열렸다. 농민 시위대와 이들과 함께한 청년들 그리고 탄핵 촉구 집회에 참석한 시민들은 한강진역에서 만났다. 그리고 트랙터를 몬 농민들은 탄핵을 촉구하기 위해 한남동 관저에 가려는 목적을 이뤄 냈다.

지난 3월 26일 윤석열 탄핵 집회에 참여하고자 상경한 전봉준투쟁단의 트랙터들이 남태령에서 경찰차 벽에 가로막히자, 많은 시민이 밤샘 시위하며 "차 빼라"를 외쳤다. (사진 출처 = KBS NEWS가 유튜브 채널에 올린 동영상 갈무리)

다른 편에서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려는 2030

그러나 또 한편에서는 비슷한 나이대 청년들이 젊은 극우로 불리며 탄핵을 반대하는 각종 집회에 모습을 드러냈다. 반공청년단과 백골단을 자처하는 젊은이들이 여당 의원의 소개로 국회에서 기자 회견을 하고, 청교도영성훈련원 조끼를 입은 청년들이 탄핵 반대 집회 현장에 앞장섰다. 서부지방법원에 난입해 시설을 부수고 경찰, 민간인, 기자를 상대로 폭력을 휘두른 폭동 사태의 난동범 중 52퍼센트가 2030이라는 보도도 있다.

폭동에 관여한 젊은이들은 그야말로 일부 ‘극우’ 윤석열 지지자라고 차치하더라도, 한남동 관저 앞에 양쪽 진영의 시위대가 모여 대치하던 때에 윤석열을 옹호하는 집회 참석자 가운데, 실제로 젊은 시민도 다수 포함해 있었다. 8년 전 박근혜 탄핵에 반대하는 태극기 집회의 주요 구성원은 노년층이었다.

탄핵 무효와 대통령 윤석열을 외치는 청년들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분명한 것은 탄핵 촉구 집회에 나온 2030과 마찬가지로 윤석열을 지지하는 청년도 다양한 이유로 정치적 행동을 한다는 점이다. 계엄령 직후의 여론 조사에서는 대부분 청년이 계엄에 반대하고 윤석열 탄핵에 찬성했지만, 점차 응원봉을 든 2030 여성이 탄핵 촉구 집회 주요 참여자로 조명되자 2030 남성 사이에서 경계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는 주장이 있다. 수년째 '이대남 이대녀' 현상으로 불리며 정치권에서 이용당하는 청년 세대의 젠더 갈등이 수면 위에 오른 양상이라는 것이다.

윤석열 본인과 탄핵 반대 집회의 주최 측 또한 청년 간의 갈등 국면을 기민하게 활용하고 있다. 윤석열은 1월 15일 공수처 체포영장 집행에 앞서 공개한 대국민 메시지 영상에서 ‘청년’을 콕 집어 언급했다. “우리 청년들이 자유민주주의의 소중함을 정말 재인식하게 되고 여기에 대한 열정을 보여 주시는 것을 봤다”는 발언을 통해서다. 정말 보고 싶은 장면만 보는 행태가 아닐 수 없다. 탄핵 반대 집회에 참석한 청년들은 극우 논객이 유튜브에서 주장하는 반공, 이재명 대표와 민주당의 방탄 국회 운영, 선관위의 불법성, 기존 매체의 한계 같은 쟁점을 윤석열 지지의 이유로 이야기한다. 신남성연대 등 극우 유튜브 채널은 탄핵 반대 집회의 논거를 제공하고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

지난 1월 10일경부터 윤 대통령 탄핵 무효 집회 사회자는 아예 청년만을 무대 발언자로 불러 세웠다. 13일에 이르자 집회는 이름부터 ‘2030 윤석열 탄핵 무효’로 바꿔 달았다. 기성 정당들이 청년을 대변해주지 못한 데 반해, 극우 유튜버들과 정치인들은 이들을 적극 불러 주고 있다. 청년들에게 자신들만의 의제와 소통 창구가 딱히 없고, 경쟁 사회에서 고군분투하는 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준다고 느낄 만한 정당이 없는 상황에서 극우의 호명에 기꺼이 동조하게 된 것이다. 이는 유럽의 극우 포퓰리즘 정당 지지자들이 경제, 사회, 문화적으로 점점 설 자리가 없어지는 자신들을 대변할 생각이 없어 보이는 엘리트 정치인 대신, 구체적 희생양을 찾아 공격하는 극우 정당의 단순한 주장에 매료되는 것과 유사한 맥락이다.

지난 3.1절, 신남성연대를 비롯한 2030 남성들이 태극기와 성조기를 들고 윤석열 탄핵 반대를 외치며 광화문광장으로 행진했다. 

민주주의가 당연한 2030이 만들어 갈 민주주의

사실 젊은 세대의 민주주의 불만족은 세계적 현상인 것으로 보인다. 선진 민주주의 국가에서 청년 불만의 주요 원인은 경제적 배제다. 2023년 비영리 기구인 오픈소사이어티재단(OSF)에서 30여 개국 민주주의 국가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청년 실업률과 부의 불평등이 클수록 절대적 및 상대적 측면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불만이 늘어나며, 청년 세대와 노년 세대 간의 민주적 기능에 대한 평가 격차가 커진다. 한국과 동아시아 국가의 경우 그나마 다른 민주주의 국가들보다 민주주의에 대한 평가와 만족도에서 세대 간 차이가 적은 편이다. 그렇다면 민주주의에 대한 젊은 세대의 야박한 평가가 꼭 나쁜 것일까? 날 때부터 민주주의가 당연한 2030이기에 민주주의 자체에 대해서도 엄격할 수 있지 않을까?

이번 탄핵 국면에서 청년들은 스스로 연대했고 장애인, 소수자, 노동자, 농민과 연대했다. 철모르고 하고 싶은 말을 하며 기성세대를 무시하는 ‘맑눈광’(맑은 눈의 광인)으로 불린 MZ 세대 시위대가 아니었다면, 농민 트랙터는 남태령에서 막혔을 것이고, 민주노총이나 장애인 시위 참석자들은 연단에 서기 어려웠을 것이다. ‘꼰대적 시각’으로 혀를 차며 MZ를 바라봐 온 기성세대는 이들에게 우리의 미래가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게 되었다. 지금의 2030세대는 심각한 이념 갈등을 겪으며 자라지 않았고, 반공 교육을 받지도 않았으며, ‘학생 인권’이라는 단어에 익숙한 채로 학교에 다녔다. 이들에게 민주주의는 태어날 때부터 당연한 것이고, 2030은 그들의 전 생애 동안 민주주의의 혜택과 구멍을 동시에 체득했다. 권위주의에 물든 학창 시기를 살았고, 군대식 위계질서로 점철된 직장생활을 했으며, 가정에서마저 평등을 잃은 생활에 익숙한 기성세대의 민주주의와 2030의 민주주의는 분명 다른 색을 띨 것이다. 반공을 비롯한 흑백 논리와 일상의 폭력이 용인되던 냉전 시대에 살아온 기성세대는 2030에 대한 우려의 시선을 접어 두고, 청년들의 정치적 관심과 역동성에 주목해야 한다. 이들의 목소리를 더 자주 귀 기울여 들으며 이들이 소외감에 다시금 역사가 버린 흑백 논리와 권위주의를 선택하지 않을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래서 청년들이 자신들의 더 많은 자유뿐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이들과, 나아가 이웃 국가의 세계 시민과도 함께 더 많은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진정한 연대를 이뤄 낼 수 있게 도와야 할 것이다. 

참고 자료

김미루, 김선아, 박진호, '“이 시국에 무슨 여행?”…탄핵집회에 ‘기저귀 버스’ 대절한 엄마[르포]', <머니투데이>, 2024.12.14.
심규상, '트랙터 끌고 서울 입성한 전봉준투쟁단 “130년 만에 꿈 이뤘다”', <오마이뉴스>, 2024.12.22.
오동욱, '2030여성은 왜 남태령 대첩에 모였나', <한겨레>, 2024.12.23.
김수호, '尹, 갑자기 “우리 청년들” 언급한 이유 있었나…“유튜브로 집회 나온 2030 봤다”', <서울경제>, 2025.1.15.
기민도, '‘서부지법 난동범’ 86명 중 남성 77명…52%는 2030: 윤건영 의원실 자료', <한겨레>, 2025.1.22.
임재희, '2030 ‘윤 탄핵 반대’ 늘었지만, 지지층으로 보긴 어려워', <한겨레>, 2025.1.23.
“Younger people more likely to doubt merits of democracy–global poll”, <Guardian>, 2023.9.11.

황인정

서강대학교에서 프랑스 문화와 정치학을 공부하고 미국 뉴욕주립대학교(올바니)에서 유럽 극우정당을 비교하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성균관대학교 좋은민주주의연구소 전임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유럽정치와 극우정치, 민주주의 등 비교정치의 다양한 주제에 대해 연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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