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책] “나의 인생”, “왜 굳이 기도하는가?”, “이탈리아 수도원 기행1,2”, “장소에 뿌리내리기”

2025-03-31     김지환 기자
“나의 인생”, 프란치스코 교황, 파비오 마르케세 라고나, 염철호 옮김, 윌북, 2025. (표지 제공=윌북)

“나의 인생”, 프란치스코 교황, 파비오 마르케세 라고나, 염철호 옮김, 윌북, 2025

프란치스코 교종은 가톨릭교회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도 가장 혁신적인 지도자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비롯해 세계의 정치 지도자에게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는 ‘시대의 어른’이다. 이 책은 그가 2013년 교종으로 선출된 이후 파격적 행보로 모두를 놀라게 한 말과 생각, 행동의 근원을 안내한다.

세 살 때 겪은 제2차 세계대전과 유대인 학살부터 세계적 경제 위기, 코로나19 감염병과 현재 벌어지는 전쟁에 이르기까지 인류에게 큰 영향을 미친 사건을 성찰한다. 또 어린 시절의 가정사, 사제가 되기로 한 뒤 겪은 어머니의 반대와 우연히 만난 여성에게 흔들린 경험, 군사정권 시절 비밀스럽게 박해받는 시민을 도운 일화, 외로웠던 유학 시절과 우울하고 어두웠던 유배 시절, 주교로 깜짝 임명된 뒤 겪게 된 국가적‧세계적 위기들, 베네딕토 16세의 갑작스러운 사임과 그 뒤 벌어진 일을 지극히 개인 입장에서 솔직히 풀어놓는다. 이 모든 것을 아울러 시대에 펼쳐진 자신의 삶을 돌아본다.

프란치스코 교종은 마치 한참 투병한 지금 상황을 내다보기라도 한 듯, “누군가는 제가 조만간 입원해서 그런 발표(교종직 사임)를 하기를 바랄지도 모릅니다”라며, 교종직은 “목숨이 다할 때까지(ad vitam)” 이어지는 것이며 사임할 이유가 없다는 점을 밝혔다. 물론 자신이 심각해질 경우를 대비해 국무성에 편지를 맡겨 놓았다고 한다. 그럴 때 자신은 은퇴 교종이 아니라 은퇴한 로마 주교가 될 것이며, 산타마리아 마조레 대성당으로 거처를 옮겨 고해성사와 봉성체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인간의 존엄성이 상처받을 때마다 사회적 또는 인종적 불의, 권력 남용에 대한 집단적 저항이 항상 일어난다는 것은 참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그래서 저는 비폭력 시위에 참여하는 사람들을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려고 일어난 ‘사마리아인들’이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인종차별이 일종의 질병이자 바이러스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43-44쪽)

“왜 굳이 기도하는가”, 리처드 레너드, 맹영선 옮김, 분도출판사, 2025. (표지 제공 = 분도출판사)

“왜 굳이 기도하는가”, 리처드 레너드, 맹영선 옮김, 분도출판사, 2025

예수회 사제 리처드 레너드는 이 책에서 ‘우리가 왜 기도하는지’, ‘기도라는 것이 우리를 위해, 하느님을 위해, 나아가 이 세상을 위해 대체 무엇을 하는지’를 간결하고 명료하게 설명한다. 

나아가 보석 같은 네 가지 지혜를 강조한다. 첫째 지혜는 ‘매일 어떤 기도라도 바치는 것이 기도를 전혀 바치지 않는 것보다는 낫다!’는 사실이다. 둘째, ‘기도란 무엇인가 보여 주기 위한 공연이 아니라, 하느님의 사랑을 만날 수 있는 어떤 공간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셋째 지혜는 ‘어떤 기도가 도움이 된다면 기도하라! 그렇지 않다면 하지 마라!’라는 조언이다. 넷째, ‘최고의 기도는 우리 자신을 잘 보살필 수 있게 한다.’

‘왜 굳이 기도하는가?’라는 물음에 저자는 이렇게 답한다. “하느님은 우리가 그분을 귀찮게 하기를 원하신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기도는 사랑과 기쁨으로 특징지어지는 관계를 발전시켜, 우리와 이웃과 세상을 변화시킨다.” 이 책은 기도를 둘러싼 풍부한 문헌 전통을 잇는 훌륭한 안내서로서, 독자들의 이해를 아주 수월하게 도와준다.

“어머니 하느님은 훨씬 더 경쟁적인 이미지이다. 많은 사람이 하느님을 출산하는 여인처럼 상상하는 것은 충분히 편안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동전을 잃어버리거나 빵을 굽거나 집을 청소하는 한 여인으로 하느님 어머니에게 기도하는 것은 훨씬 더 어려워한다. 그것은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하느님을 부르는 어떤 호칭이 하느님을 사로잡지 못한다면, 아버지 하느님은 절대적으로 하느님이 누구인지를 표현하는 마지막 단어는 아니다. 하느님은 항상 우리가 말하거나 묘사할 수 있는 그 어떤 것보다 더 위대하시다. 둘째, 하느님이 우리가 믿는 어머니를 창조하셨고 모성이 좋은 것이라면, 모성 또한 하느님의 본성에 속해야 한다. 이것은 사람들 대부분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진실하다. 성경에서 자비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라하임은 자궁을 의미하는 레헴에서 유래한다. 자비는 구약과 신약의 어디에나 나타난다. 하느님의 가장 큰 속성 중 하나인 자비를 이야기할 때, 그 여성적인 하느님은 어머니 이미지이다.”(63쪽)

“이탈리아 수도원 기행 1, 2”, 이관술, 생활성서사, 2025. (표지 제공 = 생활성서사)

“이탈리아 수도원 기행 1, 2”, 이관술, 생활성서사, 2025

이탈리아 수도원의 역사와 현재를 이탈리아 성지 순례 안내자인 이관술 작가의 유려한 설명과 생생한 사진으로 전달해 준다. 그는 성지 순례 전문 안내자로 이탈리아 로마에서 30년 넘게 살았고, 로마 살레시오 대학교에서 신학을, 교황청립 라테라노 대학교에서 성지 순례학을 전공했다.

저자와 함께하는 수도원 기행은 하느님의 모습을 더욱 선명히 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다. 이 여정은 신앙인에게는 하느님나라로 가까이 다가가며 하느님의 시간을 미리 맛볼 기회를 준다. 비신자들에게는 이탈리아 중세 수도원의 역사와 변천을 엿보는 지적 충만함을 안기고 빼어난 경치를 자랑하는 숨은 보화를 만날 수 있게 한다.

1권에서는 수도 생활의 역사와 성 베네딕토회 등장과 성장, 수도회 세속화에 저항한 개혁 수도회들의 등장을 다룬다. 2권에서는 길 위의 순례자 수도원과 교회 개혁을 이끌며 가난과 나눔, 겸손을 살아간 성 프란치스코의 삶과 수도회, 성 프란치스코의 지우(知友)인 중세의 신여성 성 클라라의 삶과 수도회, 르네상스와 함께 초심으로 돌아간 몬테 올리베토 수도원과 성 베네딕토의 삶을 다루었다.

“수비아코의 거룩한 동굴 수도원의 조그만 입구 위에는 13세기에 만들어진 십자가 모자이크가 있습니다. 사람 한 명이 겨우 들어갈 이 좁은 문에 들어서니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이끄는 문은 넓고 길도 널찍하여 그리로 들어가는 자들이 많다. 생명으로 이끄는 문은 얼마나 좁고 또 그 길은 얼마나 비좁은지, 그리로 찾아드는 이들이 적다.”(마태 7,13-14)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이 들려오는 듯합니다.“(1권 35-37쪽)

“중세의 수도원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던 장소가 아니었습니다. 평민 중에는 글을 모르는 이들이 많아, 그들이 수도원에 들어가더라도 기도 생활에 전념하기보다는 콘베르시(노동 수도자)가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그 수도 적었습니다. 평민들에게 자기희생을 통한 하느님 체험을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순례’였습니다.”(2권, 29쪽)

“장소에 뿌리내리기”, 박경미, 한티재, 2025. (표지 제공 = 한티재)

“장소에 뿌리내리기”, 박경미, 한티재, 2025

저자 박경미 교수는 오늘의 삶에서 제기되는 문제의식으로 성서를 읽음으로써 그 속에서 진정한 삶의 가치를 찾고 옹호하고자 했다. 이 책은 그런 연장선에서 위기 속에서 두려움을 느끼는 이웃들에게 전하는 위로와 격려 이야기들이다.

오래전 로마제국 아래에서 그리스도 신앙을 통해 고난을 이겨 낸 사람들의 삶과 치열함, 그리고 과학 기술과 경제 성장, 근대의 ‘합리성‘이라는 미신에 끈질기게 도전해 온 이반 일리치 등 우리 시대 현인의 가르침을 성서와 수많은 고전 속에서 길어 올려 독자들에게 샘물처럼 전하고 있다.

학자로 살아왔으면서도 늘 문학을 사랑하고 동경한 그의 글은 시적 감동으로 빛나기도 하고, 동네 어른의 옛날이야기처럼 따뜻하고 웅숭깊은 안심감을 주기도 한다. 저자가 전해 주는 감동은 땅과 토착적 가치에 뿌리를 둔, 가난하지만 더불어 살았던 지혜와 거룩함의 문화가 우리에게도 있었고, 우리의 용기와 결단에 따라 그것을 조금씩이라도 복원할 수 있다는 믿음을 상기시킨다. 저자는 그것이야말로 참된 ‘종말론적 신앙’이라고 이야기한다.

“일리치의 말대로 본래 인간은 특정한 시간과 장소에 뿌리박고 거기 내포된 고난을 극복하고자 노력하면서, 동시에 그 고난에 순응하면서 인간으로서 존재한다. 고난과 역경에 거역하고 동시에 순종하면서 인간은 제 발로 서고 제 힘으로 사는 법, 곧 자유를 터득해 간다. 자유(自由)란 ‘스스로 말미암음’, 곧 ‘스스로 함’이라는 자치와 자립의 정신 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31-3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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