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오니아 철학자들, 만물의 근원과 불변하는 원리 찾다

2025-03-24     이찬수

학문과 철학

오늘의 ‘철학’에 해당하는 사유 체계가 없던 곳은 거의 없다. 고대 인도와 중국 등도 대표적인 철학의 발상지다. 서아시아에서는 이슬람 사상이 전개되었으니, 철학은 지중해 연안을 포함하여 그 동쪽 지역에서 두루 전개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인도, 중국, 서아시아의 사상을 ‘철학’보다 ‘종교’로 보려는 이들도 있지만, ‘철학’이 세계의 원리를 탐구하고 인생의 지혜를 사랑하는 학문이라면, 크게 보아 모두 철학의 전개 양상들이다.

물론 이때의 ‘철학’은 오늘날의 분과학으로서의 철학이 아니다. 사실상 학문 전체를 의미한다. ‘학문’에는 그 이전까지의 담론이었던 ‘전승되는 이야기’(뮈토스)와 달리, 지성과 논리적 일관성에 기반한 자연(퓌지스)의 원리 및 우주에 대한 사색과 같은 것이 들어 있다. 그래서 ‘학문’으로 불리며, 분과학으로서의 철학의 시원이기도 한 것이다.

철학은 세계 곳곳에서 발생했지만, 그럼에도 서양 문명의 패러다임에 큰 영향을 받고 있는 오늘의 세계에서는 ‘철학’ 하면 서양을 먼저 연상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중에서도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등을 배출한 고대 그리스를 먼저 떠올리는 경향이 있다. 실제로 고대 그리스는 서양철학의 토대를 닦은 곳이다.

헬라스와 아나톨리아

‘그리스’는 라틴어 Graecia에 기원을 두는 이름이다. 그리스인들은 자신의 거주지를 ‘헬라스’라고 불렀다. 에게해 서쪽 지역의 헬라스는 오늘의 그리스와 비슷하기는 하지만 동의어는 아니다. 헬라스는 비슷한 언어, 종교, 문명을 기반으로 적게는 수천 명, 많게는 수만 명이 모여 살던 여러 폴리스의 집합체였다.

에게해 서쪽과 동쪽은 많이 달랐다. 트로이 전쟁이나 페르시아 전쟁에서 알 수 있듯이, 헬라스는 에게해 동쪽 지역과 싸웠고, 양쪽은 대립적이었다. 하지만 ‘싸우면서 배운다’고 하듯이, 사상적 차원에서는 섞였다. 대등한 쌍방의 교류라기보다는, 그리스(헬라스)가 에게해 동쪽인 아나톨리아에서 배우면서 자신의 사상을 키워 갔다고 보는 편이 옳다. 아나톨리아 반도(오늘의 튀르키예 일부)의 사상과 문명이 없었다면 오늘의 그리스 철학도 없었을 것이다. 서양 최초의 철학자로 알려진 탈레스(기원전 625-547)도 아나톨리아 사람이었다.

아테네 국립 카포디스트리아 대학교 건물에 있는 탈레스 그림. 19세기 화가 칼 라흘과 에드워드 레비에츠키가 그렸다.  (사진 출처 = commons.m.wikimedia.org)

‘실체’를 고민한 사상가

탈레스는 아나톨리아의 서쪽 해안가 지역인 이오니아의 식민 도시 밀레투스에서 태어나고 활동했다. 탈레스가 직접 남긴 저작은 없지만, 후대 그리스의 철학자인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을 통해 그가 추구했던 사상의 요지를 확인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탈레스는 모든 것을 낳고 그 모든 것을 귀환시키는 근원(arche)을 추구한 최초 철학자였다. 탈레스는 만물 안에 있으면서 변화하지 않고 남아 있는 그 무엇, 다양성 속에서 통일성을 이루는 원천을 탐색했고, 그 원천이 ‘물’이라고 보았다. 가령 액체 상태의 물은 얼음, 수증기와 서로 순환하지만, 그 가운데 변형되지 않고 남아 있는 것은 물이라는 것이었다. 땅도 물 위에 떠 있으며, 물 위의 배가 흔들리듯이, 물 위에 있는 땅도 흔들린다(지진)고 생각했다. 우주에는 이성(nous)이 있으며, 그것이 ‘신’이라고 보기도 했다. 제우스가 번개를 던진다는 식의 신화적 세계관에서 벗어나, 자연을 자연 자체로서 보고 그 원리를 탐구할 줄 알았던 것이다.

현대 과학의 관점에서 만물의 근원이 물이냐 아니냐, 물보다 더 심층적 근원이 있지 않겠느냐 따지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기원전 7세기경에 이미 변화하지 않고 남아 있는 그 무엇을 상상했다는 사실이다. 이런 상상에는 인간의 감각으로 파악되는 외적 현상보다 감각 대상 이전의 세계가 진정한 실재라는 생각이 들어 있다. 이런 생각은 나중에 서양 철학의 근본 개념인 ‘실체’(substance, 만물의 근저에 놓여 있는 것)로 이어졌고, 실체 개념은 그리스도교 신학을 정교하게 정립하는 데 기여했다는 점에서 탈레스 사상의 의미는 적지 않다.

비슷한 시기, 고대 이스라엘

탈레스의 철학이 등장하기 직전 이스라엘에서는 예레미야(기원전 650?-570?) 같은 예언자들이 활동했다. 예레미야는 이스라엘이 분단되고 남쪽의 유다가 몰락하던 즈음 외적으로는 몰락해도 내적으로는 몰락하지 않는 진리에 대한 희망을 품었다. 신의 율법이 새겨진 돌판이 깨져도, 신이 임재한다는 성전이 무너져도, 신이 이끈다는 국가가 사라져도 계속될 내적 진리에 대한 상상이었다. 이른바 주체성 발견이라고도 할 수 있다. ‘마음에 새긴 비가시적 법’의 개념 정도로 그가 철학을 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신을 인간 밖만이 아닌 인간 안에서도 보도록 방향을 전환시키고, 종교가 성전과 같은 특정 공간에서만이 아닌 어디서든 가능하다는 것을 제시한 셈이다. 탈레스와는 다른 각도에서 외적 변화에도 흔들리지 않을 근원적 진리의 가능성을 제시한 셈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아나톨리아로 돌아가 보자.

(왼쪽) '아테네 학당' 일부에 있는 아낙시만드로스. (오른쪽) 헤라클레이토스. (이미지 출처 = commons.wikimedia.org)

로고스 철학의 시작

아나톨리아 출신인 아낙시만드로스(기원전 610-546)와 헤라클레이토스(기원전 535-475)도 만물의 근원을 탐구하고, 변화 속에서 불변하는 요소를 찾으려 했다. 아낙시만드로스는 왜 ‘물’이어야 하는지, 물보다 심층의 근원이 있지 않겠는지 의심했다. 세계라는 다양성은 물, 불, 공기, 흙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보면서도, 이 네 요소를 네 요소 되게 해 주는 더 심층의 원천에 대해 생각했다. 그 원천은 눈에 보이지 않을 뿐더러, 이성적 판단에 따른 추상적 개념으로만 존재하는, 무엇으로도 한정될 수 없는 ‘무규정적인 것’이었다. 아낙시만드로스는 이 ‘무한정자’, ‘무규정자’를 ‘아페이론’(apeiron)이라고 불렀다. 그 자체로는 규정될 수 없지만, 물, 불, 공기, 흙으로 분화될 수는 있는 그 무엇이었다. 헤라클레이토스도 비슷하게 사유했다. 그에 따르면, 모든 변화는 불변하는 법칙에 따라 일어나는 것이었다. 불변의 법칙이란 다양성 속에 있는 통일적 원리, 즉 ‘로고스’였다. 현상적 다양성[다多]과 근원적 통일성[일一]의 관계를 고민한 것이다.

피타고라스. (이미지 출처 = commons.wikimedia.org)

형이상학의 시작, 본질과 불변의 사유

이오니아의 사모스섬 출신인 피타고라스(기원전 570-495)는 원소와 같은 ‘물질들’에 초점을 두지 않고, 수학적 ‘원리’ 같은 것에 관심을 기울였다. 수학적 원리가 모든 사물의 근본이라고 생각했다. 사물은 변화하고 사라져도 변화를 가능하게 하는 원리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었다. 수학적 지식의 확실성을 여러 가지 논리로 드러내기도 했다. 삼각형 두 변의 제곱의 합은 가장 긴 변의 길이의 제곱과 같다는, 유명한 ‘피타고라스 정리’가 대표적이다. 다양한 요소들을 하나로 묶는 보편타당하면서도 통일적인 원리에 관심을 기울인 결과다. 이오니아 출신인 아낙사고라스(기원전 498-428)는 피타고라스의 영향하에서 하나의 정신이 무수히 많은 원소를 어떤 목적에 맞게 변화시킨다고 보았다.

신학의 형성

이런 관점들은 그리스도교 신학 형성에 영향을 끼쳤다. 탈레스, 아낙시만드로스, 헤라클레이토스, 피타고라스 등 이오니아의 사상들이 그리스에 전해졌고, 그리스의 탁월한 철학자,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을 만나면서 정교하게 종합되기 시작했다. 그 영향사 안에서 신학도 형성되기 시작했다. 그리스 동쪽, 이오니아의 철학자들이 제기한 보편타당한 원리, 사물의 근원, 로고스 등의 개념은 후에 몇 단계를 거치며 그리스도교인들이 ‘신’을 해석하는 근간으로 작용했다. 신(theos)에 관한 말(logos)도 그것이 인간이 하는 말인 한, 거기에는 역사가 있기 마련이다. 여느 학문이 그렇듯이, 신학도 집단 지성을 탁월하게 재해석한 선구자의 견해를 다시 집단 지성이 녹여내고 새로운 개념과 언어로 만들어 가는 과정에 형성되어 왔다. 신이 철학의 언어로 해석되고 전승되면서 당대 지성인들 사이에서 살아 있는 언어가 되어 온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찬수
서강대 종교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강남대 교수,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HK연구교수, 보훈교육연구원장 등을 지냈다. 신학, 불교학, 철학을 중심으로 이십여 년 종교학을, 십수 년 평화학을 강의하고 연구했으며, 아시아종교평화학회를 창립해 부회장으로 봉사하면서, 가톨릭대에서 평화학을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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