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개신교와 극우, 그 불온한 쌍생아 사용법

2025-03-13     김진호

최근 개신교 극우 현상에 대한 시민사회의 관심이 뜨겁다. 실패한 ‘친위 쿠데타’를 이른바 ‘극우 시민’들이 이어 가고 있고, 그 규모가 점점 커져 사회를 위태롭게 할 정도가 되었다. 한데 이 현상을, 적어도 현재까지는 몇몇 개신교 지도자가 주도하고 있다. 이들은 성직자들임에도 욕설과 증오 표현을 망설임 없이 대중 앞에 쏟아내고 있고, 그들을 추앙하는 대중은 이 격렬한 선동에 부응하여 더 강렬하게 증오를 분출한다. 급기야 테러적 행위들이 일어났고 기획되고 있다.

한편 개신교에 대해 많이 알고 있는 이들은 개신교와 극우의 연관성이 훨씬 뿌리 깊은 연원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분명 그렇다. 대한민국 건국의 한 주역이 바로 극우적 개신교도였다. 그리고 이런 신앙 양식은 이후 한국 개신교 신앙의 가장 중요한 형성 요소로 작용해 왔다. 물론 개신교도들의 모든 신앙적 삶과 선택이 ‘적’에 대한 증오와 ‘적’을 근절시키려는 공격성으로 점철되었던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이런 극우적 신앙의 흔적은 잘 지워지지 않는 문신처럼 개신교 신자들의 영혼 속에 새겨져 있다. 그것이 특정 조건과 결합되면 언제든지 몸밖으로 분출하곤 했다. 해서 극우와 개신교를 이야기하려면 이 특정 조건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해야 한다.

그렇다면 개신교와 극우를 묻는 ‘지금’, 시점을 조금 더 분명하게 논하기 위해서 나는 21세기에서 이 질문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21세기, 특히 2010년대 이후 한국뿐 아니라 전 지구적으로 극우주의가 맹위를 떨치고 있다. 이 시점을 잡은 것은 자본주의적 세계화와 관련이 있다.

세계화가 한 전환 기점이 된 건 1980년대다. 하지만 자본의 운동이라는 관점에서 세계화가 꽃피우게 된 시기는, 재료의 원산지에서부터 최종 상품 판매에 이르는 최적의 방송통신망을 의미하는 글로벌 가치 사슬(global value chain)이 충분한 효력을 발휘하게 된 2000년대다. 그 첫 10년대에 자본의 세계화는 미친 말처럼 세계를 휩쓸고 다녔다. 무수한 사람이 이 미친 역동성 속에 몸을, 정신을 다 맡겼다. 그것이 기회로 돌아올 것이라는 믿음이 그 광포함에 무너진 이들의 절망 소리들을 충분히 가리고 있었다.

2010년에 이르러 절망 계층의 절규가 더 큰 소리로 메아리 치기 시작했다. 바로 이 시기에 약속이나 한듯 전 지구적으로 극우가 활개쳤다. 극우적 정치 세력들이 약진했고, 극우적 범죄율이 급증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그 무렵 한국 정치는 극우에 휘둘리고 있었고, 시민사회에도 극우적 기구들이 속속 출현했다. 또 온라인을 주요 무대로 하는 새로운 극우 현상이 공론장을 혐오 표현들로 먹칠해 댔다. 그러니까 세계화가 야기한 절망의 수렁에서 극우주의는 불타오르게 된 것이다.

여기서 하나 더 생각할 게 있다. 절망 계층이 왜 극우주의와 결합되었는가에 관한 것이다. 반대로 절망 계층 중에는 세계의 불평등과 차별 장벽을 무너뜨리는 운동에 투신한 이들도 적잖다. 또 어떤 이들은 성공과 실패의 선형적 질서에서 이탈하여 제3의 길을 도모했다. 나는 그런 이들을 ‘급진적 자유주의자’로 명명했고, '요한 복음'을 고대의 급진적 자유주의자들의 신앙의 기억록으로 해석한 바 있다. 그밖에도 여러 길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여러 경로 중 극우주의라는 길을 따라가려는 이들은 어떻게 출현하게 된 것일까. 이 물음에서 우리는 극우주의적 개신교를 만나게 된다.

한국 사회에서 민주주의의 목소리가 사회 변화를 추동하는 강력한 동력으로 작동하던 때가 있다. 1990년대 어간부터 2000년대 초다. 그 시기엔 한국 현대정치사에서 거의 처음으로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세력이 두 번이나 집권했다. 반면 권위주의적 세력은 구심력을 잃었고, 이 세력을 규합하고 ‘보수’로 포장하는 정치 연합이 부활했다.

이때 보수 대연합 부활의 중요한 촉매 역할을 한 것이 개신교 극우파였다. 이 분파들은 한국기독교총연합(이하 한기총)을 중심으로 활동했다. ‘전성기 한기총’의 시대가 온 것이다. 그 시기는 2003년부터 2012년 사이다. 그 이전에 한기총은 그다지 영향력 없는 기구로 10여 년을 꿈틀댔고, 그 이후는 다시 유명무실해졌다. 아무튼 한기총은 개신교를, 아니 한국 사회 전체를 극우주의로 결속시키려는 흐름의 중요한 변수로 작용했다. 극우주의의 촉매제로서 한기총은 절망 계층을 불러 모아 증오의 한판 굿을 사회 곳곳에서 벌여 댔다. 그 과정에서 많은 이가 무너졌던 자존감을 되살릴 수 있었다. 이른바 극우적 대중이 자라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전성기 한기총의 시대가 저물었다. 그럼에도 극우주의는 사그라들지 않았다. 그때는 전 지구적으로 극우의 시대였기 때문이다. 또 한기총에서 스타로 떠오르기 시작한 극우의 화신들이 새롭게 활동을 개시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극우적 기독교 정당들이 만들어졌고, 몇몇 극우적 선교단체가 활개쳤다. 온라인에선 극우적 플랫폼이 속속 만들어져 대중에게 증오의 놀이판을 제공해 주었다. 이때 극우의 특급 스타가 등장한다. 전광훈이다. 한기총의 중간 지도자 하나였던 이가 이젠 극우의 원 톱이 되었다.

그리고 새로운 극우의 특급 스타가 또 나왔다. 손현보는 전광훈과는 달리 개신교의 전형적 엘리트였다. 그는 미국발 온라인 극우 개신교의 정치종교적 상품을 수입해서 공론장에 마구 뿌려 댔다. 미국발 온라인 극우 개신교 분파는 자신을 신사도 운동이라고 명명했다. 21세기 버전의 카리스마적 지도자가 위기에 빠진 세계를 구원할 것이라는 서사가 그들의 핵심 논지다. 이 카리스마적 지도자가 바로 사도다. 민주적 과정을 통해 선출된 지도자들이 국가를 이끌던 20세기는 민주주의의 시대였다. 그런데 이런 대의적 체계는 더 이상 효력을 잃었다. 해서 신사도 운동은 민주주의 시대를 새로운 권위주의 시대로 전환시켜야 한다는 믿음으로, 그들이 실각한 트럼프를 부활시켜 다시 대통령이 되게 하는 데 일익을 담당했다. 나아가 그들은 그 이후까지 계속되는 반민주주의적 정치를 구축하기 위해 활동하고 있다. 그런 21세기적 극우주의 서사를 수입해서 한국 사회에 적용하려는 것이다.

내가 보기에 전광훈과 손현보로 표상되는 오늘 한국의 극우주의는 성공할 것 같지는 않다. 그들에겐 아직 수련의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들이 당장은 권력 장악에 실패해도, 사회 전체가 증오 감정에 휘둘리게 할 수는 있다. 바로 이것이 문제다. 절망 계층을 분노 감정으로 주체화하고, 그들이 사방으로 뿌려 대는 증오의 오물 덩어리에 사회 전반이 오염되면, 조만간에 위험스러운 극우파시즘의 시대가 도래할지도 모른다. 해서 당장 우리는 극우주의적 파시즘 체제를 도모하려다 탄핵의 심판대에 오른 윤석렬이 처벌받게 하는 일에 매달려야 하지만, 동시에 극우화된 대중의 ‘분노’라는 감정 바이러스를 대처하는 법을 찾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분노의 감정 바이러스가 모두를 파괴하는 팬데믹(범유행) 상황에 이르지 않고, 서로 갈등 관계에서도 공존하는 법을 배워 가는 엔데믹(일상적 유행) 상황에 이르는 길을 찾는 것, 그것이 우리가 직면한 또 하나의 숙제다.

김진호

제3시대연구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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