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성생활은 수도생활인가요?

2024.11.21-2025.10.28 한국 축성생활의 해

2025-02-17     정현진 기자

교회가 공적으로 가르치고 기념하고 있는 ‘축성생활’이란 무엇이고, 축성생활자는 누구며, 교회가 시기의 의미를 제대로 살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보편 교회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 교회 헌장 ‘인류의 빛’에서부터 수도생활 쇄신 교령 ‘완전한 사랑’ 그리고 축성생활에 대해 가장 본격으로 다룬 ‘축성생활’(성 요한바오로 2세 교종 권고)과 같은 문헌을 통해 축성생활을 가르쳐 왔다.

1997년에는 성 요한바오로 2세 교종이 ‘주님 봉헌 축일’을 ‘축성생활의 날’로 제정한 뒤부터 해마다 지내며, 올해로 29년을 맞았다. 또 프란치스코 교종의 선포에 따라 2014년 11월 30일부터 2016년 2월 2일까지 축성생활의 해를 지낸 바 있다.

한국 교회는 작년 11월 21일부터 올해 10월 28일까지 특별히 '평화를 향한 길 위에 있는 희망의 순례자들'이라는 주제로 축성생활의 해를 지내고 있다. 

자체적으로 이 해를 지낸 데에는 ‘축성생활 신학회’(이하 신학회)가 한국 교회에 여전히 축성생활의 의미가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봉헌생활’이라는 제한된 틀 안에 머물러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신학회는 이에 2023년 남자수도회 사도생활단 장상협의회에 한국 교회의 ‘축성생활의 해’를 지낼 것을 제안했고, 장상협의회는 주교회의에 2024년 11월 21일(교회에 관한 교의 헌장 ‘인류의 빛’ 반포 60주년)부터 2025년 10월 28일(수도 생활의 쇄신에 관한 교령 ‘완전한 사랑’ 반포 60주년)까지를 기념하며 '축성생활의 해'로 지내길 요청했다. 

요청문에서 신학회는 2019년에 '비타 콘세크라타'(vita consecrata)를 ‘봉헌생활’에서 ‘축성생활’로 바꿔 옮기기로 한 것은 “단지 번역 문제만이 아니라 신학적으로, 특히 사목 차원에서 더욱 중대한 결과를 가져오는 획기적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이들은 “그동안 복음 삼덕(청빈, 정결, 순명) 서약으로 봉헌한 ‘수도자’에게만 해당된다고 여기던 ‘봉헌생활’이라는 용어와 달리 ‘축성생활’은 세례 축성에 토대를 둔 혼인, 사제, 복음 권고의 선서에 따른 축성을 받은 세 신원의 동등하고 상호 보완적이며 상호 내재적인 고유한 관계를 드러내 준다”고 설명했다.

또 “하지만 여전히 한국 교회 안에서 이러한 인식이 거의 드러나지 않고 있고, 용어 변경에 따른 홍보와 교육을 통해 한국 교회 구성원들에게 그 의미를 알리는 것이 필요하다”면서, “특히 평신도들에게 자신이 받은 세례 축성과 혼인 축성에 대한 깊은 인식과 그 사명을 각성시킬 필요가 있다. 평신도, 축성생활자, 성직자는 각각의 축성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국춘심 수녀(신학회 회원, 성삼의 딸들 수녀회)는 평신도들이 세례 성사를 통해서 축성되었는데도 자신들은 축성받지 못했다고 생각하면서, 사제만 축성되고 수도자는 봉헌된다고 믿어 교회 구성을 수직적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고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말했다.

지난해 12월 22일 서울대교구 명동대성당에서 봉헌된 한국 교회 '축성생활의 해' 개막 미사. (사진 제공 = 한국천주교 여자수도회 장상연합회)

‘축성생활자’는 누구인가

“한국에서는 많은 사람이 축성생활과 수도생활이 동의어인 것으로 오해합니다. 이 둘은 같은 말이 아니며, 축성생활이 더 넓은 개념으로 그 안에 수도생활이 포함됩니다. 포함된다는 것은 수도생활 외에도 다른 형태의 축성생활이 있다는 것이죠. 평신도 중에는 자신이 축성 받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 세례는 평신도가 되기 위해서 받은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 받은 것입니다. 세례성사를 통해 첫 축성을 받습니다. 사제, 혼인, 복음 권고 서약을 하는 사람들이 받는 축성은 모두 이 세례 축성에 토대를 두고 받는 것이며 그래서 세 가지가 다 ‘새롭고 특수한 축성’입니다.”

교회법과 보편 교회의 가르침에 따르면 축성생활자는 수도자뿐 아니라 제3회, 재속회원, 은수자, 동정녀, 배우자와 사별하고 축성된 이, 그리고 현대 사회에서 성령의 이끄심에 따라 새로운 형태로 태어난 공동체 구성원들까지 포함된다.

국춘심 수녀는 “교회 문헌은 축성생활자를 ‘복음 권고의 선서로 이루어지는 신분’이라고 정의한다. ‘선서’는 가장 포괄적인 표현으로 축성생활자들이 하는 선서를 서약이라고 하며, 보통 ‘서원’이라고 부른다. 서약 내용은 복음 권고로 가난, 정결, 순명 이 세 가지를 핵심으로 한다”고 설명하고, “축성생활자와 수도자를 같은 말이라고 알고 있지만, 축성생활자는 수도자를 포함하는 더 넓은 범위”라고 강조했다.

그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하나 이상의 축성을 받기에 어떤 이들만을 축성생활자라고 부르는 것은 원칙적으로 맞지 않으나, 수도자에게 축성생활자 외에 더 적절하고 고유한 이름이 없기 때문에 교회 안에서 합의된 것이며, 여기에는 나름의 신학적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국 수녀는 "‘축성생활자’의 우선 임무는 존재 자체와 삶으로 사제나 평신도들에게 축성을 상기시키고 고무하는 일이다. 그래서 축성생활자를 볼 때 성직자, 평신도들도 자신이 받은 축성을 기억하고 그 축성을 충실히 살아가기 위한 다짐을 하기를 교회는 바라는 뜻에서 그 이름을 우리에게 부여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축성'과 '봉헌'은 다르다

국춘심 수녀는 ‘축성생활’과 ‘봉헌생활’이라는 말의 차이에 대해서도 “축성은 하느님의 행위를 우선 드러내는 말이고, 봉헌은 인간의 의지와 주도성을 드러낸다”고 설명했다. “‘축성 받았다’는 의식은 내가 나를 바치기 전에 이미 하느님께 사랑받아 은총으로 그분께 속하기에 감사와 찬미로 나를 바치는 것이며, 하느님 우선성, 수위성, 중심성을 드러내는 말이기에 ‘축성생활’이 더 적절하다. 자신이 하느님께 축성되었다고 믿는 사람과 자신이 먼저 하느님께 바쳤다고 믿는 사람의 의식 차이는 엄청나다”고 말했다.

그는 “‘축성’이라는 주제는 평신도, 사제, 축성생활자 이 세 관계를 연결해 주는 동일한 신학적 핵심어이며, 모든 신자는 축성을 받아 하느님께 봉헌된 삶으로 연결될 수 있다”고 했다. 또 “평신도, 사제, 축성생활자는 교회라고 하는 동등한 하느님 백성의 친교 안에서 서로 보완하고 연대하는 친교적 관계란 걸 말해 주는 것이 축성생활”이라고 설명했다.

국 수녀는 “평신도들이 이 축성생활을 더 잘 이해하고 축성생활자들이 스스로 서약한 복음 권고를 충실하게 잘 살아갈 수 있도록 보호하고 돕는 것이 필요하다”면서, “무엇보다 평신도들이 축성생활의 해에 자신들이 받은 세례 축성과 혼인 축성의 의미를 잘 알고 충실히 살아가기 위한 도움을 얻을 수 있기를 바란다. 축성생활은 교회를 위한 은혜로운 선물”이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성 요한바오로 2세 교종의 권고 ‘축성생활’에서 밝히고 있는 ‘축성생활의 해’(1997년 제정)의 의미와 목적도 전했다. 그는 ‘축성생활의 해’는 “축성생활이라는 크나큰 선물을 주신 주님께 감사하고 더욱 성대히 주님을 찬미하려는 것, 하느님의 모든 백성이 축성생활을 더 잘 알고 존중하게 하려는 것, 축성된 사람들이 그들의 생활 양식 안에서 성령에게서 받는 하느님의 아름다운 빛을 더욱 분명한 신앙으로 발견하며, 교회와 세상 안에서 고유한 사명을 더욱 생생히 깨닫도록 부름 받고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축성생활은, 교회 안에 존재하는 실존 그 자체로써, 성직자와 평신도를 막론하고 모든 신자의 축성에 봉사하려는 것입니다. 축성된 사람들 역시 다양한 차원에서 그리스도와 교회의 신비에 충만하고 완전하게 일치하여 살아가는 다른 성소들의 도움을 받는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렇게 서로 풍요롭게 하는 가운데 축성된 사람들의 사명은 더욱더 감동적이고 효과적인 것이 됩니다.”(교종 성 요한 바오로 2세 권고 ‘축성생활’ 33항)

'축성생활의 해' 로고. (자료 제공 = 한국천주교 여자수도회 장상연합회)

교구 사제, 수도자들과 협력 필요
평신도 스스로 축성된 존재로 인식해야

박현동 아빠스(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는 “‘축성생활’은 하느님께서 먼저 우리를 선택하시고, 그 선택에 대한 우리의 응답으로 이뤄지는 삶의 형태를 강조한다. 하느님의 주도적 축성과 이에 대한 인간의 자유로운 응답인 봉헌이 결합된 삶을 의미한다”고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말했다.

그는 ‘축성생활의 해’에 동참하는 교구 사제와 평신도의 역할에 대해서, “교구 사제들은 축성생활자들과 협력해 교회가 이루는 조화와 상호보완성을 더욱 깊이 인식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교구 중심의 한국 교회는 수도회나 축성생활단과 협력하기보다 본당(성당) 중심의 사목이 우선되기 때문에 사제들이 축성생활자들의 고유한 영성과 사명을 존중하고, 수도회와 재속회 및 사도생활단과 협력을 더욱 강화함으로써 교회 전체의 선교 역량을 풍요롭게 하기를 바란다고 했다.

또 평신도들에 대해서는 “자신의 삶 속에서도 하느님께 축성된 존재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세례를 통해 모든 신자는 하느님께 봉헌됐고, 각자 삶의 자리에서 ‘거룩한 삶을 살아가도록 부름받았다”고 말했다.

박 아빠스는 축성생활의 해는 수도자만을 위한 것이 아니란 걸 강조하고, “모든 신자가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나는 하느님께 어떤 응답을 하고 있는가‘를 묻는 시간이어야 한다. 교구 사제와 평신도 모두가 자신의 신분에서 하느님께 봉헌된 삶을 재인식하고, 교회의 공동체적 사명에 동참하는 기회”라고 했다.

올해 축성생활의 해를 통해 한국 교회가 더 나아갈 방향에 대해, 그는 신학적 차원의 발전, 사목적 차원의 개선을 제시했다.

신학적으로 ’축성생활을 세례 축성을 포함한 보다 넓은 개념으로 이해하고, 그 다양한 형태에 대한 신학적 연구와 교육이 필요하다면서, “특히 새로운 형태의 축성생활들이 탄생하고 있다. 기존의 수도원적 형태뿐 아니라 더 유연하고 개방적 형태의 발전 가능성을 두고 신학적 연구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목적 차원에서는 “특히 각 교구에서 평신도와 사제들이 축성생활의 의미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홍보와 교육을 해야 하며, 수도회뿐 아니라 재속회원들의 존재와 역할을 알리는 노력이 필요하다. 성소자가 줄어드는 현실 속에서 수도 성소뿐 아니라 다양한 축성생활의 길을 안내하는 사목적 접근이 필요하다. 그것이 또한 시노달리타스(함께 걷기)를 강조하며 함께 걷는 교회의 모습일 것”이라고 말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s://www.catholic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