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 삶" 화폭에 옮긴 최형규 작가

서울 명동 갤러리1898에서 '기름부음 받은 이' 개인전

2025-01-23     정현진 기자

성경 말씀과 복음을 오늘날 한국의 시대상과 역사에 비춰 낸 그림을 그려 온 최형규 작가(여호수아).

최형규 작가가 지난 2023년부터 2년 간 그린 작품을 서울 명동 갤러리1898에서 17일부터 26일까지 전시한다.

이번 주제는 '기름부음 받은 이'로, 같은 제목의 그림을 비롯한 25점 작품을 내보인다. ‘다윗과 골리앗’, ‘겟세마니’, ‘부활’, ‘가난한 이들은 늘 너희 곁에 있지만’,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게라사의 광인’, ‘오병이어’ 등 그가 성경 내용, 특히 예수의 삶과 죽음 과정에 있던 주요 사건을 한국 상황 속에서 다시 바라보고 표현한 것들이다.

작품 '오병이어' 옆에 선 최형규 작가. 그는 박근혜 탄핵 당시 집회 현장의 연대를 '오병이어' 기적으로 표현했다. ⓒ정현진 기자

2023년에도 ‘탈출기’를 통해 한국 사회의 아픔과 모순, 고통을 들여다본 최형규 작가는 당시 “예수의 생애와 죽음을 주제로 작품을 해 보는 것이 어떠냐”는 제안을 받아 이번 작품들을 그려 왔다.

이번 작품들의 각 성경 내용 역시 수해로 인한 신림동 반지하 주민 사망 사건, 이념적 반목, 성직자와 언론인, 검찰, 정치인들에 대한 풍자와 비판, 세월호 참사와 일본군 위안부 문제들이 녹아 있다.

최형규 작가는 복음과 신앙, 삶이 따로인 현실을 인식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오늘날 어떻게 살아낼 것인가, 즉 복음의 현재화를 고민하면서 그린 작품들”이라고 설명했다.

'겟세마니', 최형규 작가, 2024. ©최형규
'조롱'.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혔을 당시 언론인들이 있었다면. 최형규, 2024. ©최형규

그가 처음부터 이런 작품을 그린 것은 아니다. 미대 졸업한 뒤 도시 풍경을 주로 다룬 그는 2003년 세례를 받고 본당(성당)과 빈첸시오회에서 활동하면서 화풍도 그림 주제도 바뀌었다고 했다.

“특히 가난한 이들과 함께하는 빈첸시오 활동을 통해 가난한 이들이 가난할 수밖에 없는 사회 구조를 보게 됐고, 그것이 복음과 교회 가르침과 만났죠. 시간이 지나면서 제 그림 안에서 그 둘이 만나는 정도가 많아지고 깊어지면서 지금까지 오게 됐습니다.”

최 작가의 그림은 오래 들여다보고서야 의미를 알게 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직설적이고 급진적 표현을 담고 있다. 이에 대해 그는 “여러 계기가 있었을 것”이라면서, “살고 있는 지역에서 신부님과 생태환경 운동에 참여한 적이 있다. 그때 직접 현실 문제에 부딪힌 경험과 ‘찬미받으소서’의 영향이 가장 컸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그 때에 지자체와 환경 문제로 부딪히고, 법적 다툼까지 겪으면서 ‘이제 내 몸에도 예수님의 상처가 생겼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면서, “그전까지는 미사 열심히 드리고 그림만 열심히 그리면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신앙인으로서 공동선을 위해 자기 희생 경험이 있었는가 여부가 우리 삶에 엄청난 차이를 가져온다는 것을 알았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에서 유일하게 개인적 마음을 담은 작품, '게라사의 광인'. 게라사라는 지역에서 예수가 만난 광인의 모습과 삶은 최형규 작가가 돌봤던, 지금은 세상을 떠난 지인의 모습이기도 했다. 조현병과 그로 인한 알코올 중독으로 세상을 떠난 지인이 가장 두려워했던 것은 병 자체가 아니라 주변의 혐오와 배제였다고 말했다. ⓒ정현진 기자

최형규 작가는 “그리스도교의 핵심은 자기 희생이라는 것, 자기 희생 없이는 아무것도 안 된다는 스스로의 깨달음이 내 그림의 큰 전환점이기도 하다”면서, “오늘 전시된 그림도 그런 활동과 경험 속에서 영감을 받게 된 것들이고, 아주 자연스럽게 표현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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