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다, 괜찮다' 하지만 어디가 괜찮으냐!

민주주의 회복이 국민 트라우마 치유의 시작이다

2025-01-23     정경일

2024년 12월 3일, ‘서울의 밤’ 이후, 우리는 요동치는 감정으로 괴로워했다. 자신의 위헌적 비상계엄으로 온 국민이 상처를 입었는데, 사과는커녕 망상적 자기 정당화에만 열을 내는 윤석열 대통령을 보며 생긴 감정적 고통 때문이었다. 그것은 단순한 정치적 반감이나 실망감이 아니라, 억울함, 분노, 공포, 수치심, 모욕감 등이 섞인 무겁고 어두운 감정이었다. 이런 복합적 감정 상태를 ‘집단 트라우마’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12월 12일, 윤 대통령의 대국민 겁박 같은 담화로 국민 분노가 비등점을 넘은 날, ‘국민공동체 치유와 복원을 바라는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510명이 비상계엄 사태로 온 국민이 “심리적 고통”을 겪고 있다고 주장하는 시국 성명을 발표했다. 성명서에서 의사들은 “군부 독재와 국가 폭력의 역사를 기억하는 많은 국민께서는 그 트라우마를 재경험하며 심각한 공포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라며, 국민적 집단 트라우마의 심각성을 일깨웠다.

비상계엄은 실패했지만, 일어난 그 자체만으로 이미 온 국민의 가슴에 깊은 트라우마를 남겼다. 1980년 5월 17일 신군부 세력의 비상계엄 전국 확대와 그로 인한 광주 학살의 참혹한 기억을 갖고 있는 중장년 및 노년 세대는 국가 폭력의 집단적 트라우마를 다시 경험했다. 민주주의는 ‘일상’과 같은 거라고 여겼던 청소년과 청년 세대는 민주주의가 이토록 쉽게 위협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경악했다. 영화 '서울의 봄'과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를 통해 기억하거나 새로 배웠던 과거 군부 독재의 불의와 폭력이 갑자기 현재 사건이 되어 버리는 너무나 비현실적인 현실에 모든 국민의 개인적, 사회적 안전과 안녕이 산산이 부서졌다.

하지만 대한민국 국민은 파커 파머의 표현처럼 “부서져 흩어지는” 대신 “부서져 열리는” 길을 선택했다. 비상계엄이 선포되자마자 국회로 달려 나간 시민은 무장 계엄군을 맨몸으로 막았고, 여의도 국회 앞에서 빛나는 응원봉을 들고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행동했다. 국민 저항에 힘입어, 마침내 12월 14일,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되었다. 상처 입은 국민이 차가운 겨울 거리에서 뜨겁게 외친 것은 오직 하나였다. 대통령을 포함해 위헌 행위를 한 모든 자를 민주주의 법·제도와 절차에 따라 엄정 수사 처벌하여, 다시는 이런 파국이 일어날 수 없도록 나라의 근간을 다시 세우는 것이었다. 이는 국민의 ‘최대’ 요구가 아니라 ‘최소’ 요구였다. 그 최소 요구를 국회의 탄핵소추안 가결이라는 최소한의 법·제도적 절차를 통해 관철했던 날 밤만큼은 불안한 가슴에도 잠들 수 있었다.

하지만 내란의 어두운 밤은 계속되었다, 탄핵소추 가결과 함께 윤 대통령을 지지하는―그리고 윤 대통령이 의지하는―극우 세력의 결집과 거센 반격이 시작되었다. 국민의힘도 내란 사태 초기에만 잠시 눈치를 보다가, 곧 노골적 윤 대통령 옹호에 나섰다. 한국 정치와 사회의 기본인 민주주의를 위태롭게 한 내란 행위에 대한 반대에서는 보수·진보가 다를 수 없을 거라는 기대가 너무 빨리 배반당하면서, 우리 사회의 집단적 트라우마 곡선은 다시 가파르게 올라갔다. 윤 대통령의 막무가내식 버티기 농성으로 해를 넘기면서, 극우 세력의 ‘2차 내란’을 매일 보고 겪느라 국민의 심신이 피폐해졌다. ‘내란성 스트레스’, ‘내란성 불면증’ 같은 말이 이때부터 큰 공감을 얻었다.

많은 이가 민주공화국에서 극우 논리에 따라 반민주적 폭거가 일어난 것을 황당해하고 수치스러워하지만, 사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극우 포퓰리즘이 부상하는 것은 전 지구적 현상이다. 신자유주의가 초래한 극심한 불평등, 사회적·문화적 다양성에 대한 반발, 정치적 양극화 등이 극우주의의 온상이 되었다. 특히 정치적 양극화는 자신과 생각이 다른 ‘그들’을 ‘적’으로 인식하고 증오하는 정서 양극화를 수반한다. 국민 간 증오와 충돌을 막기 위해 정치가 있는 것인데, 한국의 정당들은 정치가 아닌 정쟁에만 치우쳐 오히려 정치적·정서적 양극화를 부추기고 있다. 더 위험한 것은 분열적 극우 정치와 극우 종교의 동맹이다. 타자를 악마화하는 선악 이분법적 종교 서사가 덧입혀지면 극우의 증오에 찬 행위는 ‘거룩한 행위’가 되어 더욱 폭력화하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을 지지하는 극우 집단 사랑제일교회 전광훈 목사가 최근 교인들을 계속 선동하고 있다. (사진 출처 = ko.wikipedia.org)

현 상황에서 심히 우려스러운 것은, 윤석열 대통령을 지지하고 있는 한국 극우 정치 세력의 중심 동력이 전광훈 목사가 대표하는 극우 개신교 집단이라는 사실이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후 급격히 동력을 잃은 극우 집단을 대체하며 구해 낸 것이 전광훈 집단이다. 물론 이들이 한국 개신교를 대표하는 것은 아니고, 보수 개신교와 어느 정도 구별되는 것도 사실이지만, 정치적 양극화가 장기화될수록 극우와 보수의 간격은 좁혀진다. 이미 전광훈 집단과 어느 정도 긴장 관계에 있던 보수 대형 교회 목사들도 윤 대통령 감싸기에 나서고 있다. 대형 교회가 극우 집회에 직접적으로 신자를 동원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들이 고수하는 보수의 좌표가 정치적 양극화에 따라 극우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것은 교회적, 사회적으로 매우 위태로운 현상이다.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최소 절차인 탄핵을 복잡한 최대 사안인 것처럼 왜곡하고, 심지어 ‘반국가세력’이 주도하는 최악의 사태인 것처럼 호도하는 내란 피의자 윤석열과, 당리당략에만 눈이 멀어 그를 옹호하는 국민의힘, 그리고 증오의 정치를 선동하는 극우 집단과 극우 개신교의 결탁을 목격하면서, 히브리 예언자 예레미야의 분노가 떠오른다.

"위아래 할 것 없이 남을 뜯어먹는 것들, 예언자, 사제 할 것 없이 속임수밖에 모르는 것들, 내 딸, 내 백성의 상처를 건성으로 치료해 주면서 '괜찮다, 괜찮다.' 하지만 어디가 괜찮으냐!"(공동번역, 예레미야 8,10-11)

예레미야가 살던 때는 우상숭배와 불의가 판치던 시대였다. 예레미야도 그렇지만 여러 예언자가 공통으로 규탄한 것은 정치 권력과 종교 권력의 불의한 야합이었다. 히브리 성서의 여러 예언서에 ‘거짓 예언자’에 대한 비판이 빈번히 나오는 것은, 그만큼 거짓 예언자가 많았다는 것을 나타낸다. 예레미야의 규탄에서 알 수 있듯이, 거짓 예언자의 속성은 탐욕과 거짓과 기만이다. 오늘날에도 거짓 예언자가 넘쳐난다. 이 또한 세계적 현상이다. 특히 세계에서 정치적 양극화가 가장 극심한 두 나라로 알려진 미국과 한국에서 개신교 거짓 예언자들이 준동한다. 민주주의 소양이 전혀 없는 극우적 인물인 도널드 트럼프와 윤석열을 선택하고 지지한 미국의 공화당과 한국의 국민의힘, 복음과는 거리가 먼 트럼프와 윤석열을 두둔하는 미국과 한국의 보수·극우 개신교 집단, 이들이 우리 시대의 거짓 예언자들이다.

2025년 1월 15일, 윤석열 대통령을 체포하고, 19일 구속함으로써 내란은 진압되었지만 ‘내란 이후’는 계속되고 있다. 게다가 윤 지지자의 서부지법 폭동 사태처럼 극우가 폭력화하고 있다. 그런데도 거짓 예언자들은 비상계엄은 “장난 같은 계엄”, “평화로운 계엄”이었고 “고도의 통치 행위”였다면서 ‘괜찮다, 괜찮다’ 한다. 하지만 깊이 상처 입은 국민은 결코 괜찮지 않다. 국가 폭력을 겪으며 생겨난 집단적 트라우마는 내란 이후에도 개인에게서 사회에서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여의도, 남태령, 한강진역을 밝힌 응원봉의 빛은 우리에게 치유의 희망을 보여 주었지만, 진정한 치유를 위해서는 그 빛에 의지해 더 길고 어두운 밤을 지나야만 한다.

민주주의 회복은 치유의 완성이 아니다. 민주주의는 그 안에서 치유가 일어나게 하는 장이다. 바로 그렇기에 민주주의는 더욱 중요하고 필수적이다. 민주주의 없이는 비상계엄으로 인한 집단 트라우마 치유가 일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앞에서 언급한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들의 성명서는 “헌법에 근거한 단호한 해법만이 우리 국민과 대한민국을 폭력의 트라우마에서 회복시킬 수 있다”고 밝혔다. 위헌적 비상계엄 사태를 일으킨 윤석열 대통령을 헌법에 따라 파면하고, 그와 공모자들을 형법에 따라 철저히 수사하고 처벌하는 것, 그것이 불의로 인해 상처 입은 국민을 치유하는 출발점이다. 민주주의 회복은 국민 트라우마 치유의 최소 조건이며 시작이다.

정경일
해방신학과 참여불교를 비교 연구했으며 사회적 영성을 탐구하고 있다. 성공회대 신학연구원 연구교수, 심도학사 원장으로 일하면서 차별과 혐오 없는 평등세상을 바라는 그리스도인 네트워크, 4.16생명안전공원예배팀, 한국민중신학회에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 "지금 우리에게 예수는 누구인가", "아픔 넘어 : 고통의 인문학"(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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