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세대에 전할 노인의 선물
1980년대 초반이었을 것이다. 경인 전철에 한 무리 청년이 전단 한 움큼을 황급히 뿌리면서 단말마처럼 “독재정권 물러나라!” 외치더니 닫히기 직전의 출입문을 빠져나갔다. 엉겁결에 받은 전단을 슬그머니 가방에 넣으며 청년이 잡히지 않기를 바랐다. 전단이 가방에 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대학 정문에 들어섰을 때, 보란 듯 무전기를 쥔 형사들이 지나는 학생을 무작위로 불러 세운 뒤 가방과 주머니를 뒤지는 모습을 보았다. 착실한 대학생으로 보았을까? 단정한 학생은 무사히 이학관 4층으로 올라갈 수 있었다.
4층 복도 창문은 늘 닫혀 있었다. 하루 멀다고 벌어지는 대학가 시위는 교정을 최루 가스로 물들었다. 학생들이 교문을 밀고 나가면 기다리던 ‘지랄탄’이라는 최루탄이 최루 가스를 뿜으며 대열로 파고들었다. 대열이 흩어지면 어디선가 떼를 지어 나타나는 ‘백골단’, 하얀 헬멧과 방독면을 착용한 그들은 몽둥이를 마구잡이로 휘두르며 머리채와 허리가 잡힌 학생을 트럭으로 내던졌다. 4층도 최루 가스가 스며들었지만, 안전했다. 신출귀몰한 백골단은 4층까지 뛰어와 구경하던 대학원생 잡으려 연구실 문을 걷어차지 않았다.
데모가 일상인 시절, 이따금 대형 강의실 구석을 차지한 사복 경찰은 들락이는 학생을 유심히 바라보다 별안간 학생 하나를 끌고 나갔다. 대학 교정에서 전단 소지를 무작위로 확인한 형사는 그 학생을 어딘가로 끌고 가 치도곤을 안기며 전단 작성 용의자를 탐색했고, 강의실에서 용의자를 검거한 것인데, 성공했을까? 실수가 잦았다. 엉뚱한 학생을 투사로 만들기 일쑤였는데, 최근 국회 기자회견장에 백골단을 자처하는 젊은이들이 어떤 국회의원 뒤에 배경처럼 늘어서 기세등등하던 일이 벌어졌다.
작년 12월 14일, 여의도 탄핵 촉구 집회에 참여했다. 어지러운 시국일수록 경륜과 책임감으로 행동하자는 노인들이 무대에서 조금 떨어진 치킨 집 앞에 모인 것이다. 형형색색 응원봉을 흔드는 젊은이를 경이롭게 바라보다 문뜩 다리와 허리가 저려 오는 걸 느꼈고, 꽉 찬 치킨 집에 겨우 자리 잡고 목을 축일 수 있었다. 국회 상황을 시시때때로 전화기로 확인하던 일행은 탄핵 가결 소식을 듣자마자 뛰쳐나갔다. 거리에 뒤엉킨 기쁨의 함성과 눈물에 뒤섞이다 집에 돌아왔고, 젊은이와 앉아 하염없이 눈물 흘리다 덩실덩실 춤추는 70대 노인을 <BBC> 뉴스 화면으로 며칠 뒤 보았다. 미안했다.
70대라면 군사독재 정권의 악랄함을 체험했거나 충분히 인식했을 게 틀림없다. 중년에 접어들며 당시 상황이 재현되지 않으리라 확신했을 텐데, 계엄이라니. 울분을 참지 못한 그는 응원봉을 든 젊은이 사이에서 기쁨의 눈물을 흘리다 일어나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얌체같이 생맥주와 치킨을 축낸 처지에도 현장 분위기를 같은 마음으로 공유했는데, 다시 움직여야 했다. 몸과 마음을 추스른 노인이 나섰다. 1월 4일 탑골공원에서 ‘60+기후행동’을 비롯해 10여 노인 단체가 모였고, “내란수괴 윤석열 구속 파면을 촉구하는 노인 시국선언”을 했다.
“군사 쿠데타와 비상계엄을 겪은 노년 세대로서 더는 좌시할 수 없다”며 대통령 파면과 내란 세력에 엄중한 처벌을 요구한 색다른 노인의 시국선언을 많은 언론은 보도했다. “눈 떠 보니 선진국”이라는 말에 자랑스러웠지만 “눈 떠 보니 후진국”이 되고 만 현실에 분노하면서, 몰지각한 행동을 보이는 노년을 향해 “어른으로서 더는 추태를 부리지 말 것을 촉구”하는 내용을 소개했다. 조국 근대화에 젊음을 바친 노인들이다. 과정마다 난폭한 부정의를 직시한 노인은 계엄에 치를 떨었다. 기득권의 탐욕으로 억압되는 사회를 결코 물려줄 수 없으므로.
과거의 영욕을 앞세우며 자기 몫 챙기려는 노인의 노여움은 위기를 맞은 시국에 어울리지 않는다. 기득권의 탐욕이 행복할 권리마저 빼앗긴 젊은이는 노인의 이기심을 양해하지 않을 것이다. 탑골공원의 노인 선언을 이해하면서, 한편 아쉬움이 크다. 눈 떠 보니 선진국이 된 대한민국이 흔들리는 근원적 이유는 무엇인가? 여의도와 광화문 광장, 그리고 헌법재판소 앞에 운집하는 젊은이가 빛나는 응원봉을 흔드는 행동은 분명 아름답다. 하지만 홀연히 나타난 현상은 아니다, 독재 시절부터 행동한 노년이 여전하기 때문이리라. 정의로운 행동이 연연히 이어지지만, 기후위기 시대이므로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기후위기에 원인을 제공한 주역이었으므로, 탄핵 정국에서 내일을 더 생각해 보자.
탑골공원에서 “경제 불평등과 기후위기 등 어두운 그림자를 떠안게 된 젊은 세대에게 부끄럽지 않겠”다고 외친 노인은 “국민 두려워하는 정권이 들어서 나라를 안정시키고 우리 사회를 개혁하는 데 힘을 보태겠다”라고 다짐했다. 가슴 벅차게 동의하면서, 새로운 정의가 추가하기를 희망한다. ‘세대정의’와 ‘생태정의’다. 심각해지는 기후위기는 인류 멸종을 예고하기에 영국을 비롯한 유럽 시민들은 ‘멸종저항’ 행동에 나선다. 기후위기는 노력하기에 따라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지만, 모든 생물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운 좋은 인류는 일부 살아남을 수 있다. 생태위기는 다르다. 예외가 없다.
60+기후행동은 다시 나서기로 했다. 헌법재판소의 심판은 ‘기후정치’의 출발점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선진국 대열에 진입했다고 자화자찬하면서 그에 따른 책임을 다하지 않은” 대한민국은 대표적 ‘기후악당국가’로 지목된다. 자국은 물론이고 아시아 여러 국가에 초대형 화력발전소를 추가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핵발전소 수출을 자랑하면서 안전이 전혀 보장되지 않은 소형 핵발전 시설을 유치하려 든다. 화석연료 소비를 억제하는 세계에 반해 매장이 불투명한 석유를 채취하려 막대한 예산을 퍼붓는다. 도저히 용인하기 어렵다.
어떤 황제보다 풍요롭게 살아가는 우리는 미래세대의 에너지는 물론이고 생태 자원까지 바닥내고 있다. 밑도 끝도 없이 발전을 되뇌며 기후와 생태계를 위기로 몰아넣는다. 눈 떠 보니 미래세대가 위기에 빠졌다. 국가의 발전이 내 발전이고, 내 발전이 자손의 발전이라 믿으며 젊음을 불태운 노년은 이제 생각을 바꿔야 한다. 누리던 삶에서 나누는 삶으로 후손에게 선물을 전하는 개과천선이다. 선물은 사실, 줄 때 더욱 행복하다. 받은 선물은 쉽게 잊지만, 내가 전한 선물은 기억하지 않던가. 미래세대에 선물을 전하자. 선진국 타령이 아니다. 세대정의를 생각하며 솔선수범하는 삶이다. 곧 입춘이다.

박병상
60+기후행동 운영위원, 인천 도시생태ㆍ환경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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