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세례 축일에 주술과 가스라이팅을 생각한다
예수를 잉태한 마리아가 세례자 요한을 잉태한 엘리사벳을 방문하면서 부른 노래 마니피캇은 세대를 뛰어넘어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도 불리어지고 있다. 불의에 억눌려 약하고 가난하고 힘없는 대부분 군중을 위로하면서 미래의 희망을 노래한 마니피캇이 사람들 입으로 전승되고 이어져 지금도 불리어지고 사랑받는 이유는, 불의한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정의롭지 못한 권력에 당당하게 맞서는 마리아의 마음가짐과 정의로운 하느님의 힘을 청하는 겸손한 자세에 있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니
그분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과연 모든 세대가 나를 행복하다 하리니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이름은 거룩하고
그분의 자비는 대대로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에게 미칩니다
그분께서는 당신 팔로 권능을 떨치시어
마음속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습니다
통치자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셨으며
굶주린 이들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유한 자들을 빈손으로 내치셨습니다
당신의 자비를 기억하시어 당신 종 이스라엘을 거두어 주셨으니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대로 그 자비가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영원히 미칠 것입니다
그러한 어머니 마리아의 가르침을 받으며 성장한 예수였다. 가난하여 성전에서는 세례를 받을 수도 없는 사람들에게 요르단 강에서 물로 세례를 주는 요한에게 사람들이 몰려든 까닭을 그는 이해하였다. 그러므로 예수는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수행할 공적인 일을 요한에게서 물로 세례를 받는 일로 시작하였다. 시작점이 권력층과 상류층에서가 아니라 불의에 억압받는 군중과 함께하는 일에 있음을 분명히 선언하고, 동시에 불의를 바로잡는 핵심이 회개에 있음을 분명하게 드러내어 주었다. 회개를 통한 새로운 세상을 향하는 여정은 결국 예수를 정치범으로 몰아세우는데, 구약에서 엘리야 역시 정치범으로 추방당하였다. 음모로 엘리야를 음해한 이들은 바로 주술을 행하는 이들이었다. 엘리야를 손에 가시처럼 여기던 왕과 왕비가 주술의 주장을 받아들여 엘리야를 반역자로 몰아세웠던 것이다. 주술과 가스라이팅의 허무맹랑한 조합이 늘 되풀이되는 이 기시감, 역사 안에서 쉬지 않고는 되풀이하는 이 기시감을 대체 언제쯤이면 종결시킬 수 있을 것인가. 주님의 세례 축일을 맞으면서 이 어리석고도 추악한 기시감을 돌아보고 싶다.
2025년 주님 세례 축일을 맞는 한국의 현실은 집단으로 가스라이팅 당한 사람들의 반역 행위로 얼룩져 있다. 일상생활에서 만나는 사람들 중에서 계엄을 찬성하는 사람들의 말을 들어 보면 윤석열과 여당, 극우 유튜버들의 주장을 그냥 그대로 베껴서 소리 높이기 때문이다. 즉 가스라이팅 당하고 있다는 증거다. 가스라이팅 당하는 사람들은 주술에 빠져 이성적 판단을 중지한 사람들의 반응과 흡사하다. 가스라이팅과 주술의 관계를 연관성의 입장으로 판단하기는 무리가 있지만, 윤석열 정권 등장과 그 부부의 행적들을 돌아보면 유달리 가스라이팅과 주술이 긴밀한 연관을 갖는다는 의심을 품지 않을 수 없다.
원래 주술은 인간이 약해질 때 불안감이 생기고 그 불안감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구를 막연하게나마 처방해 줌으로써(물론 상관없는 처방이지만) 자기 힘을 과시하면서 음지에서 커 간다. 인간성을 주로 성악설로 정리하듯이 나약한 인간성은 주술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주술이 인류 역사 안에서 사라지지 않고 암약하는 이유, 주술이 21세기 이성과 과학 시대에서도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는 배경이 바로 그러하다. 한편으로 극우 유튜버들의 악영향은 집단적으로 가스라이팅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에 있다. 주로 개인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이 가스라이팅인데 이 가스라이팅이 집단적으로 이루어지도록 확장된 이유에는 이에 대한 제재가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방관할 수밖에 없는 법적 보호를 받고 있으니 말이다. 민주주의의 허약함이 바로 이런 점에서도 드러나는데, 반대로 이야기하면 윤석열 정권이 계엄을 강행한 이유도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법치주의는 결국 우리 스스로를 모순 속에 살게 하기도 한다.
아무튼 2024년과 2025년으로 이어지는 한국의 현재 상황은 집단 가스라이팅이 주술과 혼종 교배하여 묘한 신생체제를 생산하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가스라이팅을 집단화시켜 확장해 나가는 극우 유튜버들, 집단 가스라이팅을 자신들의 주술로 연결시켜 확장력으로 악용하는 윤석열 부부, 과연 그 뒤에는 무엇이 도사리고 있을까? 영구한 집권과 장악을 위해서는 가스라이팅과 주술을 연결한 신앙화 작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만일 그러했다면 이제 다음 단계는 사이비 종교의 등장이다. 이런 의심을 갖는 이유에는 이들이 정치 경제 문화 모든 분야에서 민주주의의 메커니즘 안에서 이루어지는 체계와 단계를 무시하거나 외면한다는 점들이다.
사이비 종교 역시 구분하는 경계선이 명확하지 않다는 문제점 또는 위험성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담하게 사이비 종교라고 선언 당하는 집단이 많은 이유에는 나름대로의 공통점과 진단하는 기준이 있기 때문이다. 사이비 종교의 대표적 공통점에는 소속 추종자들에게 금전과 기타 귀중한 무엇까지도 봉물로 바칠 것을 요구하는 데에 있다. 즉, 질병 치유나 장래 성공을 보장하는 조건으로 과도한 금전과 여성의 몸을 요구하는 셈이다. 일반적인 종교들이 취하는 구원을 얻기 위한 조건으로 회개하거나 참회하여 인간 본연의 참된 모습을 되찾도록 힘쓰게 하지 않고 오히려 먼저 진정성을 증명하기 위해서 과도한 금전이나 자신의 소중한 것을 바치도록 요구하는 것이다. 사실 사이비 종교의 교주에게는 자유와 구원을 가져다줄 능력 자체가 없다. 즉, 사기의 정점에 바로 사이비 종교가 있는 것이다. 모든 사이비 종교 교주들은 자신이 그러한 정점에 서 있기를 기대한다. 독재자의 도취에 빠져버리면 그 강력한 중독성으로 인하여 헤어나기 힘들어 재범, 더 나아가 죽을 때까지 되풀이를 시도한다.
군중이란 원래 존재하지 않는다. 독재자들의 우민 정치로 그렇게 내몰릴 뿐이다. 집단 가스라이팅으로 멈춰 서 버리기 때문일 뿐 원래 우매하지 않다. 지금은 모든 사람이 시민이 즉 주인이 되는 시대다. 군중에서 시민으로 성장한 시대다. 정부와 언론은 시민에게 정확하고 공정하게 판단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해 주어야 시민으로 올바른 자리매김을 할 수 있다. 이를 가로막는 가스라이팅이나 주술의 현혹이나 사이비 종교를 획책하는 자 또는 집단이 있다면 그 음모들을 벗겨내고 모든 국민이 주체적인 시민으로 바로 설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해야 한다. 오늘도 아침 해가 찬란하게 그 빛을 드러내었다. 주님의 세례 후 첫발은 군중 속으로 들어감이다. 더 이상 군중을 종이라 부르지 않고 벗이라 불러 세상을 변화시키는 주체들이 되도록 만들기 위함이다.
조욱종 신부(사도요한)
부산교구 은퇴 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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