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천주교인 고하나입니다"

[인터뷰] 국회 앞에서 '아무것도 너를' 불러 시민들 위로한 리디아 씨

2025-01-03     경동현 기자

"아무것도 너를 슬프게 하지 말며, 아무것도 너를 혼란케 하지 말지니"

12월 3일 윤석열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의 충격과 공포로 많은 시민이 4일 밤 국회 앞에 모여 "내란범 윤석열을 탄핵하라"는 목소리를 울렸다. 

이날 집회에서 마지막 발언자로 선 사람은 자신을 “저는 천주교인입니다”라는 한마디로 밝히고, "종교를 떠나서 하늘 무서운 줄 아는  사람은 그러지 않습니다. 노래 한 곡 불러드리겠습니다"라며 노래를 시작했다. 그가 부른 성가 '아무것도 너를'의 가사는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의 기도문이다.

현장에 있던 이들뿐 아니라 유튜브 영상을 본 많은 시민에게 감동을 주어, "도대체 누구냐"는 궁금증을 불러일으킨 이 주인공은 고하나 씨(리디아, 오류동 성당)다. 지난 12월 30일 의정부교구 시국 미사에 참석한 그를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이하 지금여기)가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12월 4일 국회 앞 집회에서 고하나 씨가 '아무것도 너를'를 부르는 영상. (출처 = 촛불행동TV 유튜브 채널)

<지금여기> :  먼저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고하나 : 천주교인 고하나 리디아이고, 서울대교구 오류동 성당 신자다. 어려서 외조부모님과 함께 살았는데, 부모님이 맞벌이셔서 외할머니의 돌봄과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랐다. 초등학교때 외할머니가 천주교 입교를 제안해, 외할머니와 엄마, 저까지 함께 세례를 받았다.

<지금여기> : 보통 종교를 밝히지 않고, 사안에 대한 발언을 하기 마련인데, ‘천주교인’이라고 소개하시고 성가를 부른 것에 많은 이가 큰 위로와 깊은 인상을 받았다. 어떤 마음에서 나서게 되었는가. 

고하나 : 대학에서 도예를 전공했는데, 노래에 미련이 남았다. 뒤늦게 대학원에 들어가 성악을 전공하면서 음악 활동을 꾸준히 해 왔고 크고 작은 성과도 있었다. 학위 논문을 써야 해서 국회도서관을 자주 가는데, 12월 4일에도 국회도서관에서 논문 작업을 하고 집에 가는 길이었다.

국회 앞, 추운 거리에서 대통령 탄핵을 요구하는 시민들을 만났다. 노래하는 걸 좋아해서 성당에서 건축헌금 모금을 하러 다른 성당에 나갈 때 노래하는 일을 한동안 맡기도 했었다. 12월 4일에도 직업병인지 습관인지 노래를 하고 싶어졌는데, 추운 거리에서 집회하시는 분들께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집회 끝 무렵 자유 발언이 마감되었다는 이야기에 꼭 한 곡만 부르게 해 달라고 간곡히 부탁해서 부르게 됐다.

<지금여기> : 전에도 집회에 나가 노래한 적이 있는가?

실은 10여 년 전 세월호 참사 때에도 유가족들이 모인 광화문 집회에서도 노래를 불렀다.  당시에는 소위 말하는 운동권도 아니고, 진상에 대해 잘 알지 못했지만, 너무 속상한 마음에 교복과 구명조끼를 구해 입고 나가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 앞에서 서태지의 ‘교실이데아’라는 노래를 개사해 불렀다. 그 뒤에 박근혜 대통령 탄핵 집회 때에도 나가서 뮤지컬 곡 '레베카'를 개사해서 불렀다. 이런 방식으로 크고 작게 문화 활동을 통해 사회 안에서 나만의 의사 표현을 한 기억이 난다. 정치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그저 집회 때 시민 한 일원으로 보탬이 될까 해서 참여했다. 

고하나 씨(리디아). (사진 제공 = 고하나)

<지금여기> : 그날 '아무것도 너를' 성가를 통해 특별히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었을까? 

고하나 : 거창하게 메시지라고 할 수는 없고, 그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다는 의미를 알리고 싶었다. 살면서 누구나 자주 그걸 잊을 때가 있고, 저 또한 마음속 파도에 휩쓸려 정신을 잃고 하느님께서 원하실 리 없는 언행이 나올 때가 많다. 종교인, 비종교인, 정치인, 시민 등 그 누구도 그걸 잊으면 쉽게 어딘가에 휩쓸리기 쉬우니, 다 같이 기억해야 하는 것은 ‘푸른 하늘’뿐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여기> : 대통령 비상계엄 선포에 개인적으로 가장 크게 우려한 부분이 있다면 무엇이었나?

고하나 : 국가 수장이 폭력과 힘에 기대려고 하는 모습에 실망과 우려가 컸다. 이러한 환경이라면 결혼, 출산해서 육아하는 아름다운 꿈을 꾸는 게 자꾸 두려워질 것 같아 마음이 무너졌다. 대통령이라면 아픈 과거 때 행해진 폭력적인 방식보다는 시대가 공감할 수 있는 소통 방식을 더욱 간절히 겸손하게 찾아봤더라면 어땠을까 싶다. 모든 사람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스트레스를 푼다. 정도는 다 다르겠지만 윤석열 대통령은 늘 타인을 아프게 하는 방식으로 해소한 게 아니었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들었다. 그건 모두가 꺼리는 방식이니까. 평범한 시민 한 사람으로서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을 가져야 하는 연말 뉴스가 너무 슬펐다.

<지금여기> : 그날 한 발언과 노래가 온라인에서 큰 주목을 받은 것을 알고 계신지? 반응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하다.

고하나 : 지금까지 그렇게 큰 주목을 받아 본 일이 없었다. 그래서 기쁘면서도 책임감도 생겼다. 천주교인이자 노래하는 사람으로서 더 성실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싶다는 꿈도 생겼다. 현재까지는 개인적인 공연 수익으로 살아왔지만, 논문 통과 뒤엔 성악 공연과 연주, 전시회를 하는 1인 기획사 대표로 활발히 활동할 예정이다. 하지만 제 능력이 너무나 작고, 배울 것은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리고, 삶의 바다는 가늠할 수 없이 깊고 넓다고 느낀다. 그래서 자주 한숨도 나오지만, 사랑을 받으면 그 사랑을 돌려줄 수 있는 그릇이 큰 사람이 되고 싶다. 혼자 힘으로 안 되는 것을 잘 알기에 <지금여기> 독자 분들께 기도를 부탁드리고자 한다. 제가 무슨 일이 있어도 어둠이 아닌 하느님을 택하도록 말이다.

<지금여기> : 가톨릭 신자로서 한국 사회에서 종교적 가치와 정치 행동이 어떻게 연결되기를 기대하는가?

고하나 : 종교는 어머니의 역할이고 정치는 자식이 아닐까 한다. 사제단 신부님들은 ‘사람이 어째서 이 모양인가?’라고 표현하셨는데, 아마도 윤석열 대통령의 본질을 더 많이 알고 계셨던 것 같다. 저는 대통령 개인 문제를 넘어서 엄마들의 교육 혁명이 일어나는 것이 좀 더 근본적인 해법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 봤다. 자녀의 앞길을 그저 지지해 주고 돕는 역할만을 하며 마음을 내려놓는 일이 출발점이지 않을까 하는데, 제가 교사 경험은 있지만 자녀가 없기에 쉽게 꺼낼 수 있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만일 그렇게 된다면, 우리가 바라는 평화로운 세상 ‘넬라 판타지아’는 한발 더 다가올 것이다. 저는 예술가라서 다소 이상적인 꿈만 꿀 줄 알지만, 탄핵 너머 새로운 민주주의를 꿈꾸는 분들을 위해 누군가가 노래로 응원하고 있다는 걸 알아주시면 감사하겠다. 그래서 각자의 자리에서 잘할 수 있는 역할을 해 주십사 하는 말을 전하고 싶다. 그리고 "2025년, 우리 같이 힘내요!"라고 꼭 말씀드리고 싶다.

12월 30일 의정부교구 시국 미사에서 특송을 부른 고하나 씨(리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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