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등록 이주 아동에게 '구제'가 아닌 꿈꿀 기회를

법무부 구제 대책 2월 말 종료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이들, '본국'은 어디인가

2025-01-02     정현진 기자

법무부가 장기 체류 미등록 이주 아동을 구제하겠다며 시행한 대책 시한이 오늘(1월 2일)로 87일 남았다.

‘국내출생 불법체류 아동 조건부 구제대책’은 2021년 4월 19일 시작돼 올해 2월 말에 종료된다. 구제 대책은 2020년 국가인권위원회가 장기 체류 미등록 이주 아동의 체류자격 부여 제도가 없어 제도를 마련하라고 권고한 결과였다.

2021년 8월 당시 외국인 등록 없이 초중고교를 다니고 있는 이주 아동은 3196명이었다. 2024년 8월 말까지 3년간 구제 대책을 통해 체류 자격을 받은 이들은 962명뿐이다.

왜 이렇게 적은 수일 수밖에 없었을까.

법무부가 이름 그대로 조건부로 이 제도를 한시적으로 시행하는 이유는 “국내 출생 아동 모두를 대상으로 상시 시행할 경우 아동을 수단으로 한 가족 단위 불법이민 유입 증가 등 부작용에 대한 우려”라고 밝혔다.

따라서 구제 대책은 한국에서 태어나서 자라고, 생의 대부분을 한국에서 산 아동들을 포용하는 것이 아니라, 불법이 될 수 있는 이들을 배제하는 것이 더 중요했다. 그 내용을 보면, 구제 대상은 “2021년 2월 28일 이전에 초등학교를 졸업한 아동으로 국내 출생, 15년 이상 국내 체류, 신청일 기준 국내 중,고교 재학 또는 고교 졸업 상태에 있는 아동”이다.

조건이 충족된 아동이 체류 승인을 받으면 고교 졸업까지 학업을 위한 체류 자격을 주고, 고교를 졸업하면 유학 또는 취업 자격 요건을 갖추어야 체류 자격을 준다. 이를 충족하지 못하면 1년간 임시체류 자격을 갖는다. 한국에서 태어나 약 19년을 살아온 아동에게 학업이나 취업을 조건으로 한시적 체류 자격을 준다는 것이다.

체류 자격을 위한 조건은 이뿐만이 아니다. 이주 아동들이 체류 허용을 받기 위해서는 부모가 그동안의 불법체류(법 위반)에 대한 범칙금을 내야 한다. 법무부는 아동의 미등록 체류 범칙금은 면제해 주고 있지만 부모에게는 부과하고 있다. 일괄 70퍼센트를 감면해 주고 있지만 7년 이상 미등록으로 체류한 경우 1인당 900만 원으로, 부모 2명은 1800만 원에 달한다.

한국에서 미등록 이주민들에게 가장 절박한 것은 경제 문제다. 가족과 자신들의 삶을 위해 돈벌이를 해야 하지만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급여를 받거나, 이마저도 체불되고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어려움으로 부모들은 자녀의 체류권을 위해 범칙금을 내지 못할 뿐더러 내더라도 기본 생활이 위협받는다.

지난해 11월 국가인권위원회가 마련한 ‘장기체류 미등록 이주아동 체류권 보장을 위한 토론회’에서 김사강 연구위원(이주와 인권연구소)은 “범칙금을 낸 대부분 부모는 비용을 스스로 마련하지 못해 빌리기도 했고, 그 결과 매달 빚을 갚기 위해 생계에 어려움이 커졌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체류 보장을 받기 전에 이미 건강보험에 가입하지 못해, 외국인 의료수가 기준의 의료비와 자녀의 부수적 학비도 감당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지난해 11월 16일, 이주 아동들이 결성한 단체 ‘위아더드리머스(WE ARE ALL DREAMERS)’는 기자회견을 열고 목소리를 냈다. ⓒ정현진 기자

법무부 구제 대책의 한계는 경제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물론 대책을 통해 복잡하고 어려운 신청 서류 준비, 부정확한 정보 등의 어려움을 해결하고, 체류자격을 얻은 뒤에 건강보험 가입, 아동의 학교생활 안정, 단속과 강제 퇴거 불안이 줄어든다. 그러나 구제 대책으로 받는 것은 ‘기타(G-1) 체류자격’이므로, 종사 업종 제한에 따른 구직 어려움, 자녀가 성인이 되면 부모가 출국해야 한다는 불안, 즉 가족 해체 문제가 따른다.

올해 2월 말, 법무부 구제 대책 종료를 앞두고 이주 아동들은 구제 대책 필요와 현행 구제 대책의 한계 보완, 그리고 안정적 체류 권리에 대한 목소리를 내기 위해 ‘위아더드리머스(WE ARE ALL DREAMERS)’를 조직했다.

지난해 11월 16일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이주 아동 당사자와 연대 시민들은 기자회견을 열고 입장을 밝혔다.

“외국인 학생들은 신분증이 없어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도대회에서 1위를 했는데도 팀과 함께 전국대회에 나가지 못합니다. 또 가족관계를 증명할 서류를 발급받지 못하고 온라인에서 본인 인증을 하지 못해 물건을 사는 것도 힘듭니다. 통장 개설조차 어려운 상황입니다. 우리가 바라는 건 한국에서 한국 친구들이 누리는 기본 권리와 기회를 함께 나누는 것입니다. 우리도 꿈이 있고, 그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와주셨으면 좋겠습니다.”(이주 아동 데슬리)

“저는 한국에서 태어나서 15년 동안 한국에서만 살았습니다. 나이지리아 국적의 부모님들은 본국에서 위험한 일이 생겨 한국으로 오셨습니다. 하지만 난민 인정을 받지 못했고, 아빠는 어느날 출입국사무소에 구금되기도 했고, 할아버지의 장례를 위해 나아지리아에 들어갔다가 못 돌아오고 있습니다. 엄마 홀로 아이 5명을 키우고 있고, 4명은 구제 대책으로 등록증을 얻었지만, 4살 막내는 구제 대책이 종료되면 혼자 미등록으로 남아 있어야 합니다. 한국에서 태어난 저희는 이제 와서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로 가면 적응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이주 아동 주시)

“제 아이는 한국이 고향이고 한국 문화를 배우며, 이 사회의 가치를 익혔습니다. 그럼에도 아이들은 이 나라의 구성원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떠난 적 없는 이 땅에서 이방인입니다. 어머니로서 저는 아이들의 미래가 걱정됩니다. 미래가 불확실한데, 어떻게 꿈을 꿀 수 있을까요. 법 앞에 존재하지 않는데, 어떻게 교육과 건강, 복지를 계획할 수 있을까요. 그들을 보살펴야 할 사회가 그들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보호할 수 있을까요? 저는 제 아이가 학교에 다니고, 의료 서비스를 받고, 소속감을 느낄 수 있는 미래를 요청합니다. 제 아이가 태어난 환경으로 처벌받는 것이 아니라 이 나라 미래의 일부로 인정되기를 바랍니다.”(이주 아동 부모 베이비(별명))

등록증, 자신의 정체를 증명할 수 있는 문서가 없는 이들은 이 땅에 살고 있지만 살지 않는 존재가 된다. ⓒ정현진 기자

이들은 이날 입장문에서 “체류자격을 얻고 당당하게 아플 수 있고, 학교생활을 하며 친구들과 수학여행을 가게 됐다. 단속에 대한 불안감 없이 자유롭게 다니고 어디서든 신분증을 보여 줄 수 있게 됐다”면서도, “그러나 구제 대책은 미등록 이주 아동의 안정적 거주와 정책을 보장하기에 여전히 한계가 분명하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 부모가 출국해야 한다는 규정은 신청을 가로막는 장벽이며, 고교 졸업 후 진류에 대해 대학 진학 외에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막혔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으로 이주하며, 오늘까지 한국에 살게 된 것은 우리가 선택한 것이 아니다. 한국에서 자란 우리가 다른 나라로 돌아가는 것은 두렵고 무서운 일”이라며, “한국에서 살게 된 것은 우리의 선택이 아니었지만, 앞으로의 길은 우리가 스스로 선택하며 찾아가고 싶다. 한국 국적이 없고, 체류자격이 없다고 꿈마저 없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국가인권위 토론회에서 박혜경 조사관(국가인권위 인권침해조사과 이주인권팀)은 이주민, 이주 아동의 체류권 부여는 법무부의 정책 재량 영역이지만, 관련된 판단은 공익 측면과 헌법상 규정된 피해자들의 존엄성, 행복추구권, 국제 협약이 보장하는 피해자들의 권리, 사회 기반, 가족결합권 등을 종합해서 봐야 한다고 말했다.

또 그는 “법무부가 강제 퇴거 명령을 통해 달성하고자 하는 공익보다 한국에서만 사회 기반을 만들어 온 피해자들이 입게 되는 개인적 불이익이 더 클 것이 확실히 예견된다”며, 이는 대한민국 헌법 제 10조가 보장하는 인간의 존엄성 및 행복추구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박 조사관은 이후 체류권 부여 개선 방향에 대해, “국내 체류 중인 미등록 이주 아동들은 교육만을 위해 입국한 유학생이 아니며, 그들이 아동으로서 보장되어야 할 권리는 교육권에 국한되지 않는다”면서, “이후 미등록 이주 아동들이 보다 안정적으로 체류하고 미래를 계획할 수 있는 거주 기반의 체류자격 부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인과 같은 정체성을 이미 형성한 이들에게 이해되지 않는 행정을 강제하는 것이 과연 국익이 되는가”라며, “미등록 이주 아동에게 체류자격을 부여하는 것은 단순히 시혜적 조치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장기체류 미등록 이주 아동의 체류권 보장을 위한 제도 이름에 ‘구제’라는 표현부터 바꿔야 한다”고 요청했다.

이주 아동 체류권 보장을 촉구하는 캠페인 서명하기 https://letusdream.campaignus.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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