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외롭지 않아도 좋은 성탄절
남태령에서 농민과 젊은이들이 함께 시위한 밤
[함께걷는예수의길] "내가 세상을 이겼다"(요한 16,33) 복음 묵상
성탄절 아침이면 천주교 신자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성탄을 축하한다”고 말합니다. 정작 아기 예수님을 낳으신 분은 마리아뿐인데, 왜 우리가 축하 인사를 받아야 할까요? 여기엔 깊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성탄절에 우리도 마리아처럼 예수 아기를 낳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전통적으로 교회에선 마리아를 신앙인의 모범으로 삼았습니다. 그분은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 하며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바가 제 몸으로 통해 이뤄지기를 허락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마리아처럼 제 몸으로 메시아를 낳아야 한다는 뜻이고, 그걸 허락한 서로를 축하하는 게 그리스도교 신앙입니다.
한편 제 몸으로 메시아를 수태하고 낳는 일이 얼마나 당혹스러운 일이었는지 천사는 줄곧 “두려워하지 마라”(1,30)고 마리아를 다독거려야 했습니다. 마리아가 수태했던 시절을 마태오 복음에서는 헤로데 같은 폭군이 다스릴 때라고 합니다. 복음서에서는 다른 임금이 태어나는 것을 경계한 헤로데가 베들레헴 인근의 아기를 모두 학살했다고 전합니다. 루카 복음서에서는 유다가 로마 제국의 총독이 직접 통치하던 식민지였다고 전합니다. 그러므로 메시아가 될 아기를 출산하는 것은 그 자체로 위험한 반역 행위였습니다. 실제로 예수는 훗날 자연스럽게 늙어 죽지 않고 국가 권력에 의해 십자가에서 살해당했습니다.
마리아는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마리아가 부른 노래, 마니피캇을 읽어 보면 그걸 당장 알 수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당신 팔로 권능을 떨치시어 마음속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습니다. 통치자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셨으며 굶주린 이들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유한 자들을 빈손으로 내치셨습니다.”(1,51-53) 가난하고 비천한 이들을 두둔하고, 통치 권력에 저항하는 이는 제 몸에 수태하기로 허락한 마리아는 과연 “은총이 가득하신” 분이고 “복되신” 분입니다.
마리아와 예수의 처음은 외롭고 나중은 슬펐습니다. 마태오 복음서는 갓 태어난 예수가 부모와 함께 이집트로 피신을 떠나야 했다고 전합니다. 그곳에서 난민처럼, 이주민처럼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겠지요. 헤로데가 죽고 나서도 베들레헴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나자렛으로 가야 했지요. 루카 복음은 마리아가 베들레헴에서 몸을 풀 방을 구하지 못해 구유 위에 아기 예수를 누였다고 전합니다. 짐승의 거처에서 짐승의 밥처럼 태어나신 것이지요. 사실 첫 번째 크리스마스는 요셉과 마리아와 예수에게 신산하고 외로운 밤이었을 것입니다. 예수가 십자가 위에서 “ “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마태 27,46) 하고 외마디를 지르며 돌아가실 때에도 그분은 참 외롭고 쓸쓸했습니다. 제자들은 모두 뿔뿔이 흩어지고, 여인들만이 십자가 아래 있었지요. 요한 복음서에는 그들 가운데 마리아의 슬픔이 가장 깊었을 것입니다.
성탄절에 목자들과 동방박사들마저 찾아와 주지 않았다면, 우리는 성탄절을 내내 쓸쓸한 정경 속에서 기억해야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춥고 외롭고 쓸쓸한 밤에 아기 예수를 방문해 “우리 아가, 예쁘다” 했던 사람들이 있어서 다행입니다. 그들이 당대에 천대받던 양치기들이었고, 이방인이었다는 사실은 참 묘한 느낌을 받게 합니다. 역사 책에 한 줄도 기록되지 않을 사람들이 메시아를 알아보고 그분 곁을 지켰기 때문입니다. 아마 이 사람들도 외롭고 추웠던 사람들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보잘것없은 이들이 보잘것없는 이들을 위해 오신 메시아를 마중 나간 것이지요.
그런데 2024년 성탄절을 앞두고, 아기 예수와 목자들이 며칠 앞당겨 지난 12월 21일, 22일 남태령에 나타났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국농민회총연맹 전봉준 투쟁단이 윤석열 대통령 구속 등을 촉구하며 트랙터 상경 시위에 나섰다가 경찰의 차 벽에 막혀 스무 시간 이상을 찬바람을 맞으며 길바닥에서 외롭고 차가운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이 소식을 듣고 21일 막차를 타고, 22일 첫차를 타고 남태령으로 달려온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오기 전까지 경찰은 길을 틀어막고 농민들을 폭력적으로 연행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젊은 시민들이 찾아오고, 항의하고, 카메라를 들이대면서 경찰은 뒤로 물러나야 했고, 외롭고 추웠던 농민들은 가슴이 따뜻해졌습니다. 마음만 따뜻해진 것이 아닙니다. 난방 버스가 오고, 핫팩과 뜨끈한 음식이 나오고, 차가운 아스팔트가 아기 예수를 낳았던 포근한 움막으로 변했습니다. 그리고 한남동 대통령 관저로 가는 길목이 열렸습니다.
이 젊은이들은 “피 흘리며 민주주의를 지켜낸 앞세대에게 감사한다”고 했습니다. 이를 지켜본 농부이며 작가인 김혜형 씨는 “이제 그 감사를 저 젊은 친구들에게 돌려주고 싶다. ... 그대들… 우리 세대가 다음 세대로 교체되는 것이 기껍고 반갑다. 지난 시대와 함께 늙어 소멸하는 것이 조금도 슬프거나 억울하지 않다”고 했습니다.
“한밤중에 문득 깨고 보니 2시 40분. 계속 자려고 뒤척였지만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아 어둠 속에서 휴대폰을 더듬었다. 유튜브를 여니 실시간 영상이 뜬다. 아니, 오밤중에 웬 라이브? 열어 보니 농민들(전봉준투쟁단)의 트랙터가 남태령 고개에 멈춰 있고 그 앞을 경찰차가 가로막고 있는데, 세상에… 놀랍게도 형형색색 응원봉을 든 젊은이들이 현장에 가득하다. 막차 끊긴 지 오래인 이 시간에, 국민 대다수가 깊이 잠든 한밤중에, 극심한 추위를 견디며 젊은 친구들이 길바닥에서 농민들과 함께 싸우고 있다니. 울컥, 목이 멘다.”(<민들레>, 2024.12.22.)
교회에서 성탄절을 즐겁게 기념하는 이유는 폭압과 불의가 난무하는 세상 한가운데서 우리가 함께 모여 ‘오늘 우리 시대에 태어나는 예수와 그 어머니들’을 더 이상 외롭지 내버려 두지 말자는 것이겠지요. 부패한 주술사 정권을 혁파하려는 이들의 손에 들려 있는 응원봉과 촛불이 시청 서울 광장의 19미터나 되는 대형 성탄 트리보다 아름다운 성탄절입니다.
한상봉
<가톨릭일꾼> 편집장
도로시데이영성센터 코디네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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