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진 105적’ 국민의힘은 들으라

2024-12-09     조현철

국민의힘은 들으라.
지금 윤석열 대통령은 사실상(de facto) 우리나라 대통령이 아니다. 지난 3일 10시 23분 “헌법을 수호할 책무”(헌법 제66조 2항)가 있는 대통령이 반헌법적 비상계엄을 선포하여 헌법을 일거에 짓밟았다. 지금 윤석열은 그저 법적으로만 대통령직을 간신히 붙들고 있을 뿐이다. 지난 대선에서 그를 지지했던 사람까지 포함해 국민 대다수는 이제 그를 대통령으로 여기지 않는다.

국민의힘은 들으라.
지난 7일 국회 탄핵 소추를 앞두고 윤석열이 대국민 담화를 했다. 담화를 시작하며 설핏 드러낸 미소와 2분짜리 담화는 그의 속내를 드러내기에 충분했다. “이번 비상계엄 선포는 국정 최종 책임자인 대통령으로서의 절박함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국민들께 불안과 불편을 끼쳐 드렸습니다.” 담화에서 윤석열은 ‘비상계엄 선포’를 사과한 게 아니라 ‘대통령의 절박함’으로 정당화했다. 기껏해야 비상계엄으로 국민에게 끼친 “불안과 불편”에 형식적으로 사과했을 뿐이다. 윤석열은 계엄 선포로 인한 “법적, 정치적 책임 문제를 회피하지” 않겠다고 해 놓고 대통령 임기와 정국 안정 방안을 “우리 당에 일임”한다며 문제를 떠넘겼다.

국민의힘은 들으라.
수많은 국민이 윤석열이 진두지휘한 불법 계엄을 현장에서 또는 방송으로 지켜보았다. 그는 내란죄 현행범이다. 현행범은 현장에서 바로 체포하는 게 원칙이다. 증인과 증거는 차고 넘친다. 윤석열을 체포, 구속, 수사하는 데 시간이 걸릴 아무런 이유가 없다. 그가 대통령직에 있다는 사실 빼고는.

국민의힘은 들으라.
그가 권력에서 내려오는 법적 절차는 단 두 가지, 사임과 탄핵밖에 없다. 윤석열은 사임하지 않았다. 한밤에 계엄군이 침탈하는 국회로 달려간 수많은 시민, 다음 날부터 이어진 전국 곳곳의 계엄 규탄 성명서와 기자회견과 집회, 탄핵 소추 당일 국회 앞 국회대로를 가득 메운 시민. 이 모두가 윤석열은 이제 우리나라 대통령이 아니라고 선언한다. 그런데도 본인이 사임하지 않으니 남은 것은 탄핵뿐이다. 국민의힘은 지난 7일의 탄핵 소추에 협조해야 했다. 최소한 투표는 해야 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단체로 본회의장을 떠나며 투표 자체를 거부했다. 내란 수괴 혐의를 받는 윤석열의 대통령 직무 정지를 당 차원에서 방해했다. 당시 국민의힘 의원은 독립적 헌법기관이 아니라 우두머리 지시에 일사불란 움직이는 ‘조폭’의 행태를 보였다.

지난 7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김건희 여사 특검법 표결 국회 본회의에서 국민의힘 의원 108명 중 105명이 탄핵소추안에 대해 투표하지 않고 집단 퇴장했다. (사진 출처 = KBS 뉴스가 유튜브 채널에 올린 동영상 갈무리) 

국민의힘은 들으라.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 이유로 헌정 중단과 국정 마비를 내세운다. 탄핵 대신 ‘질서 있는 퇴진’을 주장한다. 하지만 탄핵 소추야말로 윤석열이 그토록 강조하던 ‘법과 원칙’에 의한 질서 있는 퇴진 절차다. 자기 마음대로 “임기와 정국 안정 방안을 우리 당에 일임”한다는 것, 내란 방조 혐의를 받는 국무총리와 여당 대표가 공동으로 국정을 운영하는 것이야말로 불법적이고 무질서한 발상이다. 대통령 권한은 대통령의 사유물이 아니다. 우리나라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국민의힘은 들으라.
국민의힘 원내 대표는 대통령 탄핵이 “증오와 혼란의 길”이라고 했다. 증오와 혼란의 길로 가자고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수많은 시민이 주말 오후에서 밤까지 국회 앞 차가운 아스팔트에 앉아서 탄핵을 외쳤나? 그건 민주 시민을 무시하고 모욕하는, 상황을 호도하려는 망발이다. 대통령 박근혜가 법에 따라 탄핵, 파면됐을 때 어떤 증오와 혼란이 일어났는지 나는 기억에 없다. 당시 대다수 국민은 혼란이 아니라 환호의 도가니에 빠졌다. 혼란은 당시 여당이었던 새누리당이 겪었을 뿐이다. 혼란이 있었다면 그것은 탄핵이 아니라 ‘국정농단’ 때문이었다.

국민의힘은 들으라.
국민의힘은 탄핵 투표를 거부한 결과를 감당할 수 있겠나? 탄핵의 목소리는 점점 커질 것이다. 그럴수록 국민의힘을 향한 분노도 커질 것이다. 투표를 거부한 채 본회의장을 빠져나간 국민의힘 의원들은 그때 국회의원 자격도 내팽개쳤다. 기본적인 민주주의 절차를 거부하고 자기들을 뽑은 주권자를 모욕하고 폭력을 가했다. 그런 행태를 보이고도 다음을 기약할 수 있겠나? 국민은 잊지 않는다.

국민의힘은 들으라.
나라 안팎으로 위중한 상황이다. 윤석열이 대통령직에 있는 한 상황은 혼란스럽고 꼬일 수밖에 없다. 혹여나 있을지 모를 또 다른 돌발행위를 막으려면, 속히 국정 정상화와 사회 안정을 이루려면, 수많은 사람의 피로 키워낸 우리나라 민주주의를 지키려면, 윤석열의 대통령 직무를 정지해야 한다. 하루가 급하다. 윤석열을 탄핵해야 한다. 그리고 탄핵은 결국 이루어진다. 국민의힘은 아직도 도도한 국민의 뜻이 무엇인지 읽지 못하는가.

갑진 105적, 국민의힘은 들으라.
탄핵 투표가 무산된 다음 날 광주 5.18민주광장 집회에 나온 한 여학생이 투표를 거부한 국민의힘 의원 105명의 이름을 종이에 빼곡히 쓰고 나서 거기에 ‘갑진 105적’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국회의원으로서 나라의 안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개인의 안위와 당리당략만 챙겼으니 적확한 이름이 아닐 수 없다. 국민의힘은 좌고우면, 꼼수에 연연하지 말고 이제라도 탄핵 대열에 동참해야 한다. 그게 사는 길이다. 살려고 하면 죽고, 죽으려고 하면 산다.

조현철(프란치스코)

예수회 사제. 서강대 명예교수, 비정규 노동자의 집 꿀잠 대표, 녹색연합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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