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골프 외교의 전망
진영 대결 구도의 약화
도널드 트럼프가 차기 백악관 주인으로 화려하게 귀환했다. ‘미국 우선주의’를 내건 트럼프의 귀환으로 세계 최강대국 미국의 정책이 급변하며 국제 정세도 요동칠 전망이다. 트럼프가 집권하면 미국과 중·러 간 대결을 축으로 한 진영 구도가 약화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가 중국 수입품에 일괄적으로 60퍼센트 관세를 부과하고 중국을 ‘전체주의적’이라 규정하며 강경한 대응을 천명하고 있지만, 미국의 리더십보다 경제적 이익을 우선하는 현실주의 입장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동맹국과 파트너국을 규합해 줄 세우며 민주주의 대 권위주의 대결 캠페인을 벌임으로써 신냉전이라 불리는 진영 대결 구도를 만들었다. 이에 반해 트럼프는 가치와 이념을 앞세우는 동맹에 관심이 없고, 미국의 대외 의존도를 줄이고 자국 산업의 보호·육성에 최우선하겠다는 방침을 갖고 있다. 또한 트럼프는 바이든이 주도해 만든 인도·태평양 프레임워크(IPEF) 탈퇴를 공언하고 있다. IPEF는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의 경제적 영향력 확대를 견제하기 위한 것이다. 트럼프는 타이완에 대해서도 “중국이 타이완을 침공할 경우 미국이 방어에 나설 것”을 명확히 했던 바이든과 달리 “반도체 사업을 뺏어가 부를 축적한 타이완은 방위비를 내야 한다”며 무조건적 타이완 방어에 선을 긋고 있다. 이를 종합할 때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미·중 진영 대결 구도는 완화될 전망이다.
트럼프는 자신이 당선되면 24시간 내에 러-우 전쟁을 끝내겠다고 호언 장담해 왔다. 트럼프 캠프의 종전안에 의하면 무기 지원을 수단으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를 압박해 휴전을 시키겠다고 한다. 현재 전선을 기준으로 한 휴전과 우크라이나의 나토(NATO) 가입 절차 중단을 핵심으로 하기에 우크라이나가 반발하겠지만, 미국 지원 없이는 전쟁을 수행할 수 없는 처지에서 마냥 반발하기도 어렵다. 미국의 패권 약화로 트럼프 구상이 그대로 실현되기는 어렵겠지만 전쟁 확전을 멈출 것만은 분명하다. 러-우 전쟁 종전은 러시아 제재를 목표로 한 서방 진영의 결속을 흩뜨려 놓을 것이기에 진영 대결 약화에 기여할 것이다. 또 북한군의 러시아 참전을 계기로 강화된 북·러 밀착도 이완될 것이다.
한반도에 밀려올 폭풍우
트럼프는 한반도에 대해서도 메가톤급의 정책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우선 북한에 대해 “나는 김정은과 잘 지냈고 우리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중단시켰다”고 자랑하며, “핵을 가진 자와는 잘 지내는 게 좋다”고 말하고 있다. 지난 2016년 대선에서 힐러리 클린턴 측의 ‘친북주의자’란 비난을 감수하면서도 김정은과 만나겠다는 소신을 꺾지 않았던 점을 감안하면, 트럼프의 대북 관여 의지는 일회성이 아니다. 김정은 역시 북미 회담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따라서 북미정상회담은 시기 문제일 뿐 언젠가는 열릴 것이다. 트럼프의 귀환과 북미 협상 제안은 북한에게 ‘불감청 고소원’이다. 2019년 하노이 회담 당시와 비교할 때 북한 핵과 미사일 능력은 대거 향상되었고, 러시아 지원으로 사실상 핵보유국이 된 지금, 회담에서 북한 비핵화만 일방적으로 요구받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 측에서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새로운 비전 제시가 없는 한, 북미 회담이 열릴 경우 트럼프 행정부가 요구할 것은 미국 본토에 위협이 될 중·장거리 미사일 시험 발사 중단과 핵무기 동결 등일 것이다.
한국에 대해서는 ‘머니 머신’이라며 “내가 대통령이었다면 그들은 연간 100억 달러를 낼 것”이라고 방위비 분담금 대폭 증액을 예고했다. 연간 100억 달러는 현재 금액 11억 달러의 9배 규모다. 뿐만 아니라 트럼프 행정부는 한미 연합 군사훈련 비용과 전략자산 전개 비용도 한국 측에서 부담하라고 할 가능성이 크다. 그간 기회 있을 때마다 트럼프는 한미 훈련에 대해 비용이 많이 든다며 부정적 입장을 피력해 왔다. 무역 분야에서도 압박이 예상된다. 한국은 지난해 대미 무역 흑자가 444억 달러에 달해 8위에 오른 대미 흑자국이다. 한미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을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윤석열 정부 골프 외교의 전망
트럼프 귀환으로 윤석열 정부에게 폭풍우가 밀려오는 상황이다. 윤석열 외교·안보 정책의 핵심인 반북·친미의 토대가 무너지고, 윤 정부와 트럼프 정책들이 거의 모든 분야에서 엇갈리고 있기 때문이다. 한미 관계에서 윤 정부는 가치 동맹을 원하고 있지만, 트럼프는 거래적 관계를 원한다. 윤 정부는 북한과 적대적 대결 일변도인데, 트럼프는 김정은과 친분을 과시하고 북한과 잘 지내고 싶어 한다. 윤 정부는 한미 연합 훈련 강화와 미국의 전략자산 전개를 안보의 핵심으로 여기고 있지만, 트럼프는 이를 비용만 많이 드는 탐탁치 않은 일로 간주한다. 윤 정부는 한·미·일 협력을 자신의 최대 치적으로 자랑하고 있지만, 트럼프는 한·일을 상대로 방위비 인상에 의욕을 보이고 있다. 윤 정부는 가치 외교를 내세워 우크라이나 승리를 위해 무기 지원을 거론하고 있지만, 트럼프는 러-우 전쟁 종식을 추진하고 있다. 정상 간 관계에서도 직선적이고 솔직한 트럼프의 기질을 감안할 때, 트럼프가 윤석열 대통령의 입장을 헤아리고 존중해 줄 것 같지도 않다. 남북 관계 악화로 북한 정보가 없고, 중·러와 소통도 없는 윤석열 정부가 만일 북미 협상에 나선 트럼프 행정부의 발목을 잡을 경우 노골적으로 무시당할 가능성이 크다.
폭풍우 예보 속에 용산 대통령실에서 내놓은 대책은 윤 대통령이 골프를 좋아하는 트럼프와 개인 친분을 쌓기 위해 골프 연습을 열심히 하고 있다는 보도자료다. 그리고 트럼프 행정부에서도 한미 동맹은 굳건히 유지될 것이라고 애써 주장한다. 이념 중심으로 굳어진 윤석열 외교·안보팀 사고로는 이익 중심의 트럼프 시대를 헤쳐 나가기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트럼프의 각종 요구에 윤 정부는 속수무책일 것이다. 국민적 지지 기반이 약한 윤 정부가 주한미군 철수를 앞세운 방위비 대폭 인상 요구를 뚝심 있게 견디기 어렵다. 한미 연합 훈련, 미국의 전략자산 전개 비용 청구도 미국의 확장 억제(핵우산)에 목을 맨 윤 정부 입장에서 거부하기 힘들다. 이 과정에서 보수 진영 내 분열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벌써부터 보수 일각에서는 친미 노선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일고 있다. 미국의 동맹국으로서 중국 견제라는 미국의 대외 전략에 기여하는 나라임을 스스로 입증하고, 미국의 안보 지원에 비용을 더 부담하는 게 마땅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보수의 다른 일각에서는 트럼프의 무리한 요구에 대한 원망이 커질 것이다. 미국의 확장 억제에 대한 의구심이 커질 경우 ‘독자 핵무장론’이 크게 떠오를 수 있다. 이미 국민의힘 중진들이 불을 지피고 있다. 핵무기는 핵무기로만 상대할 수 있기 때문에, 미국에게 북핵 위협을 막을 수 있는 대책을 요구하고 독자 핵무장을 준비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한국의 독자 핵무장은 핵확산금지조약(NPT) 질서의 토대를 허무는 것이기에 이를 트럼프 행정부가 용인할 리 만무하다. 결국 보수 진영의 미국에 대한 실망과 원망이 커지게 될 것이다.
트럼프 귀환을 맞아 우리는 결단해야 한다. 트럼프는 한·미·일 대 북·중·러 진영 대결을 완화시키고, 북미 회담을 통해 한반도 문제를 풀 수 있는 기회의 창을 열어 주고 있다. 이 기회를 잡기 위해서는 우리의 결기가 필요하다. 남북 관계를 개선해야 한다. 그리고 북핵 문제 해법에 대한 새로운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지금 상황에서 북한의 비핵화만을 요구하는 것은 타당하지도 않고 현실적이지도 않다. 윤석열 정부의 변화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윤석열 주변의 각종 스캔들과 정치 역량 · 리더십 부족으로 지지율이 10퍼센트대로 떨어진 상황에서, 윤 정부가 보수 진영의 지지를 받아 성공적이라고 자부하는 기존의 외교·안보 정책을 바꿀 리 없다. 대한민국의 생존과 번영을 위해 윤 정부에게 정책 전환을 압박하고, 이를 거부할 경우 퇴진을 요구하는 길밖에 없다. 윤 정부의 잔여 임기 2년 6개월은 나라를 거덜내고도 남을 긴 시간이다.

백장현
정치학 박사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 운영연구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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