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위 없는 사회
최근 우리 사회는 권위를 상실하고 있습니다. 정치 지도자나 종교 지도자들에게서 존경과 존중의 마음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참된 교제도 불가능해지고 있습니다. 불행하고도 슬픈 일입니다.
일반적으로 자유와 민주주의의 여정에는 부정적인 사고와 비판적인 사고가 핵심 가치였습니다. 부정적인 사고와 비판적인 사고가 충만한 열린 사회에서는 힘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발적인 복종에 의해서 지배됩니다. 그러나 권위 없는 닫힌 사회에서는 부정적인 사고와 비판적인 사고를 억압하고 통제합니다. 자발적인 복종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힘에 의한 지배를 강요하는 권위주의가 팽배합니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참된 권위와 그릇된 권위를 구별하지 못하는 독재적 전체주의적 사고가 지배하고 있습니다. 참된 권위는 맹목적 복종을 기피하고 회의와 확신이 따르는 반성적 태도를 환영하지만, 그릇된 권위는 자신이 가진 힘을 이용해서 강제적 복종을 최상의 가치로 보고 있습니다. 그릇된 권위는 일체의 변화를 두려워하고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자신의 지위나 힘을 이용하여 벌을 주고자 합니다.
야스퍼스는 참된 권위는 개방되어 있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그는 권위는 인간해방의 도구일 수 있으며, 교제를 통하여 다른 권위와 만나게 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릇된 권위는 교제를 단절시킵니다. 그릇된 권위는 타자들에게 군림함으로써 스스로 권위주의에 빠지게 됩니다. 모든 독재 사회는 권위 없는 권위주의 체제였습니다. 이것이 정치뿐만 아니라 종교와 학교 등 우리 사회 곳곳에서 기생하며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오랜 시간 동안 부정적인 사고와 비판적인 사고를 위해 훈련되고 학습된 사람들에게서만 올바른 권위가 작동됩니다. 그러나 오랜 시간 동안 사람들을 범죄자 취급하는 법률적 인성에 갇힌 자들은 권위와 권위주의를 혼동합니다. 그들은 권력과 힘에 의한 복종에 훈련된 권위주의자들입니다. 그들은 그들 스스로 선이라고 생각합니다. 타인들은 악마화의 도구일 뿐입니다. 그들에게서는 참된 권위를 찾을 수가 없습니다.
시민의 동의를 얻은 정부가 만인을 위한 정의를 추구하고 공동선을 획득하려는 노력은 소망스러운 것입니다. 모든 정부는 권력을 가지고 있지만, 모든 권력이 권위를 갖는 것은 아닙니다. 시민의 자발적 복종을 가져오게 하는 정부의 정치적 권위는 정의로운 정부만이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정의롭지 못한 정부에 저항하는 시민불복종은 당위성을 갖게 됩니다. 그것은 시민의 의무이기 때문입니다.
*이 글은 1983년에 출판된 신득렬 교수의 "권위"라는 책을 참조했습니다.

장영식(라파엘로)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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