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의료사업 공공성 실현 사활 걸고 연구해야
[인터뷰] 전 인천성모병원 간호사 홍명옥 씨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의 첫 회심은 경청이어야 한다. 경청에 대한 재발견이야말로 오늘까지의 여정의 가장 큰 결실 중의 하나이다.
(세계주교시노드 제16차 정기총회 제2회기 의안집 19항)
가톨릭 의료기관들이 의료 시장의 직접적 영향을 받으면서 벌어지게 된 노사 갈등과 의료 민영화 문제는 이미 겪었고, 또 앞으로도 겪을 수 있는 일이다. 따라서 교회가 경청하고 식별해야 할 여러 분야 가운데, 가톨릭 의료 분야도 길고 깊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교회가 운영하는 병원들이 어떻게 가톨릭 정신과 가르침을 따를 수 있을지 고민하고 대응하는 데 활용할 수 있는 첫 논문이 나왔다.
인천성모병원 간호사로 노조 지부장 활동을 했던 홍명옥 씨가 지난 8월에 박사 논문 '의료시장화에 따른 가톨릭 의료기관의 영리주의 경영과 반노동에 관한 연구'를 냈다. 이 논문은 교구 소속 병원 간호사였던 그가 1980년대 이후 한국 가톨릭의료기관의 변화 과정을 종교사회학의 시선에서 비판적으로 검토했다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노조활동 과정과 해고로 받은 상처로 논문을 시작했지만, 논문 작업하면서 그는 “1970-80년대 가톨릭교회가 민주화운동에 함께하면서 도덕적 권위를 높였다면, 그보다 앞서 밑돌을 깔았던 것은 1950-60년대 가톨릭 의료 사업이었다는걸 새롭게 알게 됐다”고 말한다.
지난 20일, 논문과 관련된 모든 과정을 마무리하고 산티아고 순례를 떠난다는 홍명옥 씨를 만나 나눈 이야기를 정리해 싣는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이하 지금여기) : 가톨릭의료기관에서 오래 일했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논문을 썼다. 논문 주제로 선택한 직접적 계기는 무엇이었나.
홍명옥 : 인천교구가 병원 경영을 시작한 2005년 10월부터 2019년 10월까지 14년 동안 병원 안에서 벌어진 일들, 특히 노조 활동과 관련된 일들은 충격적이었다. 오래전부터 어떤 형태로든 기록으로 남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신자는 아니지만 이것이 정말 가톨릭 정신에 부합하는 일일까 의구심이 생기는 일이 많았다. 그동안 병원의 압력으로 노조 규모가 축소되고, 마지막에는 조합원이 8명 남았는데, 당시 노조 지부장을 맡고 있었기 때문에 나밖에 경험하지 못한 일들이 너무 많았다.
노동조합의 경우 일반적 기록 형태가 ‘투쟁백서’다. 하지만 백서는 노동조합 내부 자료여서, 사회적으로 알리는 데에는 효과적이지 않았다. 고민하던 중 사회학을 공부한 동료가 논문으로 쓰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했고, 2021년에 성공회대 사회학과 박사 과정에 입학했다. 사회학에 대해 잘 알지 못했지만, 예전에 성공회대 NGO 대학원 석사 과정을 했던 것이 결심하는 데 도움이 됐다.
<지금여기> : 논문에서 1980년대 이후 가톨릭 의료 서비스의 변화를 분석했다. 인도주의적 선교 의료에서 보다 이익 지향적인 접근 방식으로 바뀌었다고 봤고, 그에 영향을 준 주요 요인이 신자유주의와 의료 시장화로 인한 한국 의료환경 변화라고 언급했다. 구체적으로 어떤 변화가 있었나?
홍명옥 : 의료체계가 정착되지 않았던 초창기를 제외한다면, 가톨릭 의료 사업 또한 한국 의료 제도와 환경에 직접적으로 영향 받았다. ‘시장화’가 관건인데, 전 세계적으로 신자유주의의 영향과 그에 따른 한국 의료 환경의 변화 이 두 가지 축으로 정리가 됐다.
1970년대 말부터 시작된 신자유주의는 결과적으로 아시아와 라틴 아메리카, 아프리카 대륙 약소 국가들의 공공 영역을 시장화했다. 한국 의료 영역도 예외는 아니다. 검토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 의료시장 변화의 결정적 요인은 두 가지다. 하나는 시장화에 따른 대기업의 의료 산업 진출, 다른 하나는 IMF 외환위기 이후 정부 주도로 추진된 의료민영화 정책이다.
대기업이 의료 사업에 진출한 결과는 간호사로서 생생하게 체험했는데, 시설과 자본 투자가 대규모다 보니 기존 병원들과 상대가 되지 않았다. 그 전에는 중증 환자는 주로 대학병원으로 갔지만, 이제는 아산병원, 삼성병원을 먼저 고려할 정도가 됐다. 이는 단지 중증 환자가 갈 수 있는 병원이 늘어났다는 의미가 아니다.
대학병원은 고유의 정체성이 있고, 의료인 교육을 병행한다는 점에서 대기업 병원과는 정체성이 달라 노골적으로 영리 추구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대기업 병원이 등장한 이후부터는 경쟁이 고도화되고, 환자와 우수 의료 인력을 빼앗기면서부터 경쟁 대열에 완전히 빨려 들어갔다. 호텔을 방불케 하는 최고급 병원 시설, 환자의 필요와 큰 관련이 없는 최첨단 고가의 의료 장비 도입 등 경쟁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 갖추어야 할 항목들이 늘어나면서, 많은 대학병원이 병원을 신축, 증축했는데, 가톨릭 병원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의료시장 민영화와 관련해서는 IMF 경제위기 이후 경제자유 구역에 영리 병원을 허용한다든가, 실손보험이 활성화되는 등의 규제 완화가 김대중 정부 말에 있었다. 노무현-이명박-박근혜 정부로 이어지며 의료 민영화 정책이 추진됐다. 단적 사례가 의료 민영화 정책으로 가능해진 병원경영 지원회사(MSO) 법인 설립 추진이다.
MSO는 의료기관 경영을 지원하기 위한 법인인데, 가톨릭대학교 가톨릭중앙의료원(CMC)에 있는 ‘평화드림’이 이에 해당한다. 과거에는 가능하지 않았던 병원 의료 사업을 매개로 한 부대 수익 사업이 허용된 것이다. 이전에는 법과 무관하게 가능한 선에서 해 왔던 일들이 부대시설의 범위가 확장되면서 병원 안에 기존에 없던 쇼핑몰이 생기고 각종 편의시설이 생겼다. 과거 병원 주변의 음식점, 매점들이 병원과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였다면, 이제 병원 안에 엄청난 규모의 식당과 편의시설이 들어서면서 병원을 중심으로 한 지역 사회에도 큰 지각 변동이 일어났다.
이러한 의료민영화 정책들이 추진될 때마다 시민사회 진영의 엄청난 저항이 있었다. 시민사회단체가 일부는 막아내고 또 일부는 실시되면서 어쨌든 의료민영화는 조금씩 조금씩 확장되었다. 가톨릭 병원들도 이러한 변화 흐름 속에 있었다.
<지금여기> : 논문에서 가톨릭 의료기관의 정체성 혼란에 대한 대응을 세 유형으로 나눴다. 신자유주의 압력에 대한 반응으로 수녀회를 중심으로 의료 사업에서 ‘철수’하는 전략, 변화한 환경에서도 사회 취약 계층에 집중하면서 초기 가톨릭 의료 사업의 취지를 실현하는 ‘유지’ 전략, 신자유주의 질서에 편승하여 일반 의료기관들과 경쟁하며 경제 성장을 함께 모색한 ‘전환’ 전략. 이러한 전략들이 어떻게 선택되었고, 관련 기관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이었는가.
홍명옥 : 이 세 유형은 이번 연구를 통해 도출된 개념이다. 1970년대까지의 가톨릭 의료 사업에 대한 자료들은 가톨릭 정체성에 부합하는 활동들이 많았던 이유였는지 모르지만, 선행 연구가 매우 많았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는 한국 의료계 변화와 함께 가톨릭 의료기관도 사회적 비판이 되는 등 정체성 혼란이 시작된 시기였는데도 이에 대한 연구 자료들이 거의 없었다.
첫 번째 ‘철수 전략’ 유형은 최대한 확인한 조사 범위 내에서 86퍼센트가 1980년대 이후 주로 수도회가 운영하는 병원에서 진행됐다. 철수하게 된 이유로는 의료 수혜 대상자 축소, 병원 운영의 경제적 어려움이 주된 외적 환경 변화였고, 그로 인한 철수 결정을 자료에서 확인했다. 철수하는 방식도 아예 의료 사업을 중단하는 경우도 있고 교구로 넘기는 경우도 있는데, 1980년대 이후 철수한 가톨릭 병원들은 대부분 교구로 운영권이 넘어갔다.
두 번째로 ‘유지 전략’을 선택한 경우는 초기 가톨릭 의료 사업의 정신을 유지하면서 현대 사회에 새롭게 등장한 사회 취약 계층을 위한 병원으로 운영하는 경우다. 가령 알콜중독자나 독거 노인, 외국인 노동자와 같이 의료 혜택의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을 대상으로 후원에 의존해 소규모로 병원을 운영하는 형태다. 가톨릭 의료기관에서는 매우 적은 비율이지만 1980년대 이후에 생겨난 병원들도 있어서 감명 깊고 의미 있는 시도라고 봤다.
마지막으로 ‘전환 전략’은 가톨릭 의료기관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다. ‘전환 전략’이라 이름 붙인 이유는 사업의 목적 자체가 전환되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전환 전략을 선택한 병원 중에는 가톨릭 의료사업 초기부터 시작한 병원도 있고, 철수 전략에 따라 수도회로부터 운영권을 넘겨받은 곳이다. 현실적으로 의료 사업을 중단하기 어려운 조건에서 80년대 이후 의료가 무한 경쟁 시대로 넘어가면서 그 흐름에 편입됐다고 볼 수 있다. 목적이야 무엇으로 표현하던 상관없이 수익 추구 자체가 그냥 생존 전략이었기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바로 이 지점에서 가톨릭 의료원의 딜레마가 생겼다고 본다.
<지금여기> : 논문에서 가톨릭 의료기관 내 ‘종교 권력’이란 개념을 강조했다. 이를 어떻게 정의하는지, 현대 가톨릭 의료 관행에서 어떤 방식으로 작동되고 있다고 보는가?
홍명옥 : 오토 마두로라는 종교사회학자의 이론이다. 그의 종교 권력은 성직자 내부 또는 성직자와 평신도의 관계에 존재하는 교회 내적 개념에 국한되었다. 그런데 강인철 교수가 여기에 더해 한국 가톨릭은 대사회적, 대외적 종교 권력의 영향도 굉장히 크게 작동한다고 보았다. 바꿔 말하면 종교의 대사회적 영향력이다. 거의 모든 가톨릭 의료기관은 최고경영자(CEO)가 성직자다. 모든 병원에서 CEO는 그 자체로 권력이다.
가톨릭 의료기관은 그런 점에서 자본가 권력과 성직자라는 종교 권력이 합친 ‘이중 권력’이 작동된다. 이 이중 권력이 상황과 편의에 따라 분리됐다가 합쳐졌다가 하면서 특권 형태로 발현되는 경우가 많다. 가령 모든 직원이 신자가 아님에도 각종 회의나 행사 때, 심지어 노사 교섭을 할 때에도 시작기도, 마침기도를 포함해 가톨릭 의례가 당연시된다. 병원 내 다양한 직종, 직책에 따른 호칭이 있음에도, 일부 직종을 ‘자매님’(보통은 ‘여사님’이라 부름)으로 호칭하는 등 교회 문화를 당연시하면서 일부 부서장들은 세례를 받지 않으면 불이익을 당할 것 같은 분위기를 만드는 흐름이 있다.
앞서 말한 내용이 가톨릭 의료기관 안에서 작동하는 종교 권력의 모습이었다면, 과거 의약 분업으로 사회적 논쟁이 있었을 때 가톨릭의료협회 명의로 의약 분업 반대 성명을 낸다거나, 신자들을 동원해 서명을 받아 정책 영향력을 행사하는 등의 사례는 대사회적인 종교 권력의 작동 방식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지금여기> : 가톨릭 병원이 일반 의료기관보다 덜 자본화되었다고 평하기도 한다. 전환 전략을 선택한 가톨릭 의료기관들이 의료 시장 경쟁에서 생존 가능성을 확보하는 것과 동시에 소외된 사람들에게 돌봄을 제공하는 교회의 핵심 사명을 조화시킬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홍명옥 : 가장 핵심적인 문제이자 화두다. 논문의 한계로 밝히기도 했는데, 사실 지금 질문은 별도의 연구 주제가 돼야 하고, 개인이 아니라 가톨릭교회가 사활을 걸고 연구해야 할 주제다.
가톨릭 의료기관이 일반 의료기관에 비해 일부 긍정적인 활동과 사업들을 한다는 건 알고 있다. 다른 곳에서 하지 않는 호스피스 사업을 비롯한 사회 사업들도 많고, 물리적으로 어려운 조건에서도 어떻게 가톨릭 의료 영성을 구현할 것인가에 대해 가톨릭중앙의료원(CMC)에서도 많은 고민을 하는 것으로 안다. 워낙 사업 규모가 크다 보니 이러한 영성 구현 노력들이 잘 드러나지 않을 수 있지만, 내부 고민은 엄청나게 깊을 거라고 본다.
하지만 나는 이 논문에서 이 질문에 답하려고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분리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내 논문은 1980년대 이후 가톨릭 의료기관의 흐름을 비판적으로 검토한 것이니, 여기에서 한 걸음 나아가 가톨릭교회가 고민할 과제라 생각한다.
답까지 주장하는 것은 내 몫을 넘어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30년 동안 가톨릭 의료기관에서 일한 사람으로 이 정도 이야기는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교회가 현실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하면 좋겠다.
1970-80년대 가톨릭교회가 민주화운동에 함께하면서 도덕적 권위를 높였다고 한다. 그보다 앞서 밑돌을 깔았던 것은 1950-60년대 가톨릭 의료 사업이었다는 것을 논문을 쓰면서 새롭게 알게 됐다. 어려움이 있겠지만 경제적 성장주의 비중을 줄여야 새로운 가능성이 열리지 않을까. 이른바 빅5 병원에 들지 않더라도 일반 병원들과 차별화된 종교적 가치 지향으로 경쟁력을 유지할 방법을 안에서 찾는다면 그게 훨씬 더 강력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지금여기> : 이 논문을 통해 가톨릭교회의 의료 사업과 관련해 기대하는 변화가 있는가, 가장 어려웠던 점과 가장 보람이 된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
홍명옥 :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 목적이었기 때문에 사실 기대 같은 건 없다. 다만 1980년대 이후 가톨릭 의료 사업에 대해 정리된 자료가 없는 관계로 이 논문을 통해 교회가 의료 사업의 현실을 직시하는 계기로 활용하면 좋겠다.
어려운 점은 과거의 일들을 복기하는 것이었다. 2-3년 사이에 고소 고발을 18건 당할 정도로 혼자 감당하기 힘든 싸움 과정을 거치면서 트라우마가 생겼다. 치유가 잘 안된다는 걸 알면서도, 논문을 위해 대면하면서 정신, 신체적으로 무척 힘든 시간이었다. 아직 치유가 필요한 일이다.
나 말고도 어려움을 겪은 노조 간부와 조합원, 직원들이 정말 많다. 인천교구와 인천성모병원은 14년간 경영에서 벌어진 일로 상처와 고통을 당한 모든 사람에게 정식으로 꼭 사과해야 한다. 두 번째 어려움은 끊임없는 자기 검열이다. 단어 선택도 신중해지고, 전체적으로 논문을 통해 주장하고 싶은 내용과 결론 정리가 어려웠다. 그리고 가톨릭 신자가 아닌 외부자의 시선에서 내 의지와 무관하게 오류를 범할 수도 있기에 그런 점도 어려움으로 다가왔다. 보람이라고 한다면 기록을 남긴다는 목표를 이뤘다는 것이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