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직주의 완화하려면 평신도와 협력, 포용해야"
[인터뷰] 주한 독일어권 가톨릭 공동체 에드가 크룸펜 종신부제 부제는 봉사직, 예수는 최초의 부제
한국 천주교회에서 종신부제는 퍽 낯설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당시 초대 교회 봉사직을 염두에 둔 종신부제직을 공식 복원시켰지만, 오늘날 한국 교회 안에서 부제직은 여전히 사제직의 준비 단계로만 알려져 있다.
2024년 교황청에서 발간한 "2022 교회 통계 연감"에 따르면, 전 세계 사제 수는 10년째 줄어들고 있는 반면, 종신부제 수는 꾸준히 늘어났다. 2022년 기준 전 세계 종신부제 수는 5만 150명으로 전년 대비 2퍼센트 증가했다. 이 중 97퍼센트 이상이 아메리카와 유럽 대륙에서 활동하고, 아프리카, 오세아니아, 아시아 대륙은 3퍼센트에 못 미치고 있다.
지난 2일 서울 한남동 국제성당에 있는 주한 독일어권 가톨릭공동체 사무실에서 한국에서 유일한 종신부제로 활동 중인 에드가 크룸펜 씨를 만나 종신부제와 주한 독일어권 가톨릭공동체 그리고 그가 경험한 한국 교회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1. 종신부제는 한국 교회에는 없는 직무다. 독일 교회의 종신부제 현황을 포함해 자기 소개를 부탁드린다.
나와 독일어권 가톨릭공동체에 대해 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감사하다. 나는 독일 바이에른주 아우크스부르크 교구에서 파견된 종신부제 에드가 크룸펜이다. 아내 크리스틴과 결혼한 지 33년이 되었고, 두 아들이 있다. 신학을 공부해 1998년에 전례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수년간의 사목 훈련을 했고, 종교 교육교사 자격을 갖고 있다. 공부를 마친 뒤에는 정신적이거나 육체적으로 고통당하는 이들을 위한 긴급 사목 돌봄 분야에서 일했다. 거리에서 고통당하는 이들, 심리 돌봄이 필요한 이들을 만나면서 나름의 소명을 발견했고, 2002년 부제로 서품받았다.
독일에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를 계기로 종신부제직이 다시 도입된 이후 현재 3300명 종신부제가 활동하고 있다. 사제직으로 가는 과도기적 부제직과 달리, 종신부제는 결혼해서 평생 이 직무로 봉사할 수 있다. 종신부제는 세례와 혼인, 장례 예절 등의 성사를 포함해, 다양한 사목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고, 교회 조직의 고유한 부분으로서 교회 사명 실현에 의미 있게 기여하고 있다. 나는 국제 종신부제협회에 소속되어 있는데, 아시아 지역에서 활동하는 종신부제는 한국에 파견된 나를 포함해, 상하이와 홍콩, 필리핀에 각 1-2명이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부제(deacon)라는 직무가 봉사를 뜻하는 라틴어 ‘디아코니아’(diaconia)에서 비롯됐다는 점에서 예수는 이 세상에 봉사하기 위해 오신 최초의 부제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사실을 종종 잊고 지내는 듯하다. 이러한 맥락에서 전임 교종인 베네딕토 16세가 자의 교서 '모든 이의 관심'(OMNIUM IN MENTEM, 2009)에서 주교와 사제에게만 유보되어 있는 “머리이신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행동”할 사명과 권한이 부제에게까지 확대되지 않도록 차이를 강조한 것은 옳은 방식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부제로서 우리는 가톨릭 성직자의 일원이다.
2. 한국의 독일 교회 공동체는 어떤 공동체인지 간단한 소개를 부탁한다. 그리고 당신은 이 공동체에 언제부터 파견되었고, 현재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가?
크룸펜 : 한국의 독일어권 가톨릭 공동체는 1986년에 시작해 38년 정도됐는데, 그 이전에도 독일어 미사는 있었던 것으로 안다. 독일 주교회의의 ‘해외사목’ 부서의 사목적 돌봄 아래 세계 20-30개 나라에서 독일어권 가톨릭 공동체들이 조직되어 있다. 한국에서는 한국에 온 독일어권 외국인들과 한국 내 다른 독일어권 가톨릭 신자들을 위한 공동체로 활동하고 있다.
매주 50-60명 정도가 한남동 국제성당에서 드리는 독일어 미사를 비롯해, 우리의 뿌리와 연결되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나는 2년 전부터 독일어권 가톨릭 공동체의 선교 책임자를 맡아 미사 준비와 강론, 세례성사, 첫영성체와 견진성사 등의 준비 역할을 맡았다. 독일에서의 긴급 사목 돌봄에 참여한 경험을 살려 서울뿐만 아니라 지방에도 아프고, 외로움에 힘들어 하는 이들을 방문하기도 한다. 2022년 이태원 참사가 났을 때, 돌아가신 독일 사람은 없었지만, 그 참사로 인해 정신적, 심리적 트라우마로 고통받는 외국인들을 돌보는 활동에도 함께했다. 그리고 주한 독일 가톨릭교회의 대표 자격으로 각국 대사관과 각종 회의 행사 등 다양한 일정도 소화하고 있다. 또한 서울 소재 독일인 학교와 다양한 기관에서 갈등을 중재하고, 사목 및 심리 문제에 대한 상담과 교육을 하기도 한다.
3. 한국에서 독일어권 가톨릭 공동체를 이끌며 가장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것이 있다면 무엇이고, 왜 그렇다고 생각하는가?
공동체 안에서의 일체감을 느끼고 이를 지원하는 역할은 내가 매우 소중하게 생각하는 부분이다. 지난 2년 동안 이 공동체에서의 경험은 대체로 긍정적이었다. 하지만 다른 공동체와 마찬가지로 우리도 문화 차이를 해소하고, 다른 사회적 맥락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우리의 문화적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더 폭넓게 한국 교회와의 접점을 모색하는 일은 단순하지 않지만, 더 깊이 이해할 기회를 준다. 우리는 타국에서 소수 집단으로서 전통을 유지하면서도 통합에 열려 있는 자세를 갖고자 노력한다.
4. 최근 한 교계 잡지에 쓴 글을 보니 "한국 교회와 독일어권 유럽 교회는 같으면서도 다른 부분이 있다"고 언급했는데, 좀 더 구체적인 이야기를 듣고 싶다.
사실 한국과 독일어권 유럽 교회는 모두 보편 가톨릭교회의 일원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많다. 하지만 각 문화의 맥락에서 교회 운영 방식에는 많은 차이가 있다. 가령 독일 교회는 의사결정 과정에 평신도의 참여를 더욱 강조하는 등 분권화 경향이 강한 데 반해, 한국 교회는 성직자의 결정 권한이 높아 위계적 경향이 강하다.
주한 독일어권 가톨릭 공동체의 유튜브 채널(@dkgkorea)에 다양한 공동체 구성원의 인터뷰를 게시하고 있다. 이 인터뷰를 통해 일부 본당(성당)의 전례에서, 특히 한국인 신자들을 통해 한국과 독일 교회의 차이점에 대한 좋은 통찰을 얻기도 한다. 여성 신자들의 경우는 미사보를 쓰기도 하고, 독일보다 더 엄격하다고 한다. 하지만 내가 직접 참여한 한국 본당 미사에서는 좀 더 차분하고 따뜻한 느낌과 연대 의식을 느낄 수 있어서 감사했던 기억이 있다. 결국 이러한 차이는 각 국가 고유의 역사, 문화, 사회적 요인에 따라 형성되는데, 이를 이해하는 것이 나에게는 흥미로운 여정이다.
5. 한국 교회의 상황에서 성직중심주의를 완화하기 위해 평신도 의사결정권이 많아지는 것이 대안이라고 보는가? 더 고려해야 할 것이 있다면 무엇인지 듣고 싶다.
그렇다. 나는 평신도의 의사결정 참여 확대가 한국 교회의 성직주의를 완화하는 강력한 수단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독일에서는 평신도의 참여가 모든 구성원의 재능과 통찰력을 소중히 여기는 더 협력적이고 포용적인 교회 분위기에서 이뤄진다. 하지만 이 모델이 한국 교회에서도 효과적이려면 이것이 가능한 교회 분위기를 만들고, 나아가 단계적으로 실행하기 위한 방안이 고려돼야 한다. 무엇보다 이러한 변화를 이해하고 수용하기 위해서는 성직자와 평신도 모두를 위한 교육 및 양성이 중요한 과제라 할 수 있다. 또한 교회 공동체 안에서 대화와 상호 존중의 문화를 만들어 가는 것이 이러한 변화에 대한 저항을 극복하는 데 필수라 하겠다.
6. 작년 우리신학연구소 줌 세미나에서 독일 교회개혁 그룹 ‘위아처치’의 마르틴 쇼켄호프 박사에게서 독일 교회에서 바라본 제16차 세계주교시노드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다. 독일 교회 시노드의 길이 많은 논란을 낳고 비판을 받았음에도, 대다수 세미나 참가자는 독일 ‘시노드의 길’이 이번 세계주교시노드의 선구자 역할을 하고 있다는 데 대체로 공감했다. 독일 ‘시노드의 길’을 어떻게 전망하는가?
독일 교회 ‘시노드의 길’은 매우 중요한 주제다. 실제로 독일 안팎에서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분열을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하는 사람들의 비판에 직면해 있지만, 나는 이것이 교회가 심각한 문제에 대해 열린 대화를 해야 할 필요를 보여 주는 중요한 사안이라고 본다. 독일 교회가 ‘시노드의 길’을 선택한 이유는 끔찍한 성적 학대 스캔들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또한 성적 학대 스캔들을 다루는 과정에서 벌어진 교회 지도층의 권력 남용에 대해서도 독일 교회는 많은 생각을 하고 있으며, 이제 막 다루기 시작한 영적 학대에 대해서도 주목하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독일에서는 교회에 대한 신뢰가 매우 크게 떨어졌다.
독일 교회 ‘시노드의 길’은 현대의 도전 과제를 해결하고 교회가 신자들의 요구에 더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는 개혁을 모색하기 위한 선구적인 노력의 여정이다. 완벽한 해결책은 아닐지라도 쇄신을 향한 용기 있는 발걸음이며, 비슷한 도전에 직면한 다른 지역 교회에 모범이 될 수 있다고 본다. 궁극적으로는 ‘시노드의 길’을 통해 교회가 활기차고 포용적인 신자들의 공동체로 남는 것이 목표다.
7. 앞으로 한국에서 얼마나 활동할 계획이며, 이곳 독일어권 가톨릭 공동체의 주요 활동 계획은 무엇인가? 아울러 한국 교회에 기대하는 바가 있다면 들려 달라.
한국에서 활동하는 종신부제로서 독일어권 가톨릭 공동체를 위한 사목, 전례 봉사, 공동체 활성화를 위한 다양한 활동을 지원할 계획이다. 주요 계획은 교회력을 따라서 진행되는데, 사순 시기 동안 성찰의 날이나 떼제 노래와 함께하는 특별 기도 시간 같은 영성 프로그램을 늘려가는 것이다. 이 모든 계획은 가톨릭 신앙의 가치에 충실하면서, 해외 생활의 어려움을 헤쳐 나갈 수 있는 강하고 신앙으로 충만한 공동체 육성을 목표로 한다. 또한 한국 교회와 더욱 긴밀히 협력하여 독일 교회의 통찰과 경험을 공유함으로써 한국 교회에도 도움이 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
한국 교회에 바라는 바가 있다면 대화와 교류에 대한 개방성을 갖는 것이고, 이를 통해 서로 배우고 협력하여 복음 전파라는 공동의 사명을 더욱 풍성하게 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의 준비 여정이 시작되었는데, 나도 웹사이트를 통해 서울 세계청년대회에 참가하고자 하는 독일어권 교회에 이에 관한 정보를 계속 나누고 있다. 대회 준비를 위해 함께 협력하고 있는 국내외 모든 사제와 평신도에게 따뜻한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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