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옥주 작가, 전국 주일학교에 기증할 동극집 내

15편 창작 성극 담은 "놀이하며 사랑하기"

2024-09-05     오세택

극문학은 문학의 원천이자 정수이자 뿌리다. 국내에서야 소설을 더 쳐주지만,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문학 하면, 희곡을 첫손가락에 꼽는다. "일리아드", "오세이아" 같은 서사시와 함께 희곡은 서양문학의 시작이자 효시다. 이를테면, 희곡은 문학의 맏형이다. 문화 차이도 있겠지만, 서구와 달리 근대적 의미의 문학 역사 100년을 갓 넘긴 국내에선 희곡이 그리 인기 있는 문학 장르가 아니다. 홀대받는다는 표현이 더 걸맞는다. 한국문인협회에 가입된 순수 희곡 작가의 수만 봐도, 122명에 불과하다. 문협 등록 문인 1만 5667명의 0.78퍼센트다. 채 1퍼센트도 안 될 뿐더러 활동하지 않는 작가를 빼면 더 줄어든다. 애초 희곡은 우리나라에서 가무, 곧 노래와 춤이 중심이 된 중국 전통 춤쯤으로 치부됐다. 희곡이라는 단어도 실은 중국 전통극을 지칭하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근대 문물 도입과 함께 일본에서 드라마라는 단어를 번역하면서 상연을 전제로 희곡이라는 단어를 끌어다 썼고, 희곡을 전통극과 동일시하는 그런 문화는 ‘보이지 않게’ 계속돼 왔다.

이처럼 척박한 문학 풍토에서 원로 희곡 작가 전옥주 씨(시에나의 가타리나, 85)는 60년 넘게 작품 생활을 했다. 1962년 <현대문학>에 희곡 ‘운명을 사랑하라’가 추천되면서 등단했으니, 올해로 만 62년을 희곡 작가로 살았다. 그간 "낮 공원 산책" 등 희곡집 3권, 동화집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차"를 비롯해 산문집 3권과 숱한 공저를 냈다.

그런데 이번에는 동극집 "놀이하며 사랑하기"(기쁜소식)를 냈다. 그것도 창작 성극만을 한데 묶은 성극집이다. 성극이라니, 본당(성당) 주일학교에서 부활이나 성탄 때 어린이들이 출연해 상연하는 그 연극을 말하는 것인가 싶어 작가에게 물어보니 “맞다”고 한다.

전옥주 동극집 "놀이하며 사랑하기", 기쁜소식, 2024. (사진 제공 = 전옥주)

맨 먼저 든 생각은 잘 팔리지 않을 텐데, 굳이 냈나 싶어 “어떻게 이 책을 내게 됐는지”부터 물어봤다. 그러자 전 노작가는 “출판사에서도 그랬지만, 나도 잘 팔리지 않을 거라는 건 이미 잘 알고 있었다”며, “그래서 생애 처음으로 자비 출판이라는 걸 하게 됐는데, 그 이유는 더 많은 주일학교 어린이가 이 성극을 볼 수 있도록 전국의 본당 주일학교에 기증하기 위해서”라고 털어놓았다.

제작비가 적잖게 들었을 텐데, 주일학교 어린이들에게 성극집을 안겨 주고 싶어 하는 작가의 자비 출판이라니, 좀 마음이 먹먹해졌다. 해서 이 책을 성당에 보급하기 위해 지난 7월 초 서울대교구에서 교회 출판인가도 받았고, 기쁜소식 출판사에서도 전국 본당에 전화를 돌려 주일학교가 있는지 여부를 파악한 뒤 동극집을 보내기로 했다.

“오래 품고 있던 숙제 같은 동극집이었어요. 문단에 ‘희곡 작가 전옥주’라는 이름을 올렸고, 또 열심히 하지는 못했지만, 그간 작품집을 8권이나 낸 터에 욕심을 부려 첫 동극집을 낸 건 어린이들이 성극 무대에 올리고 싶어도 작품이 없어 올리지 못하는 일은 없게 하고 싶어서였어요.”

또한, 동극집을 내게 된 건 2001년 초, 서울대교구 청소년국에서 내는 잡지 <가톨릭 디다케>에서 부활 축제에 맞갖은 동극 한 편을 써 달라는 전화를 받게 된 것도 계기였다. 하지만 전 노작가는 “희곡 작가로 등단한 지 40년째였는데, 전혀 예상하지 못한 청탁이었다”며, “가톨릭 신자라고는 하지만, 성극을 한 번도 써 본 적이 없었고, 성극을 쓸 마음 준비도 돼 있지 않았다”고 술회한다. “그런데도 청탁을 수락하게 된 것은 ‘동극’이라는 말 때문이었다”면서, “그 청탁에 마치 전율과도 같은 느낌이 와서 수락하게 됐고, 그게 재청탁, 재청탁으로 이어지면서 여러 편을 썼고, 그게 이번 동극집을 내게 된 동력이 됐다”고 고백한다.

원로 희곡 작가 전옥주 씨. (사진 제공 = 전옥주)

희곡 작가로서도, 신앙인으로서도 쉽지 않았을 작업을 3년 동안 교회 잡지에 15편을 연재했고, 그 덕에 이 책이 나오게 됐다. 노작가는 “잡지 마감 시간에 쫓겨가며 쓴 터라 동극으로서 미진함이 없지 않았지만,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성극을 쓰는 작업이어선지 흐뭇한 마음 반, 보람찬 마음 반으로 썼고, 다시 작품을 손봐 이번에 냈다”고 전한다.

전옥주 작가가 동극에 빠져들게 된 것은 벨기에 극작가 모리스 마테를링크(1862-49)의 동극 "파랑새"를 읽게 되면서였다. 어린이와 어른, 모두에게 공감을 주는 작품을 읽고 난 감동이 동극 집필에 매진하게 된 원동력이 됐던 것이다.

그 덕에 "놀이하며 사랑하기"라는 제목 아래 15편의 성극이 공개됐다. 잡지 연재 당시 썼던 원고를 새삼 고치고 또 고쳤고, 다듬고 또 다듬었다. 성극은 ‘병아리가 된 부활달걀’, ‘꿈에 본 천사를 찾아서’, ‘아기 예수님 도난 사건’, ‘그 마을의 산타 할아버지’ 등 제목만 들어도 부활 시기에 쓸지, 성탄 시기에 쓸지 금방 알 수 있는 성극이 차례차례 수록됐다. 상연을 목적으로 하기보다 단순히 읽기 위한 목적으로 쓰는 레제 드라마로도 아무런 부족함이 없다.

전 작가는 끝으로 “감히, 모리스 마테를링크가 쓴 "파랑새"에 비견할 수 없는 소박한 작품들이지만, 그래도 성극집으로 나오게 돼 감회가 깊다”면서, “주님의 소중한 어린 자녀들이 이 극본을 가지고 친구들과 즐겁게 연극 놀이도 하고, 주님 사랑도 느끼고, 이웃 사랑도 배우고, 아름다운 꿈을 지닌 신앙인으로 성장한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고 출간 소감을 남겼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