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수녀원을 새롭게 활용하는 사례

댄 스톡먼 수녀

2024-08-26     박문수

우리 수도회는 2018년 포틀랜드 남쪽 교외 오레곤주 레이크 오스위고에서 운영하던 대학 문을 닫았습니다. 학생 수가 줄어 부득이 폐교하게 되었습니다. 수도회는 폐교로 비게 된 기숙사 두 채와 강의동 하나를 주택으로 리모델링해 주거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지역 주민에게 제공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다행히 시와 주 정부가 협조하여 리모델링이 성공리에 끝나 곧 100가구를 입주시킬 예정입니다. 토지는 수도회가 소유하지만 리모델링한 아파트는 주 정부가 예산을 지원했기에 오레곤주가 운영권을 갖고 있습니다. 이 아파트는 미국에서 가장 저렴한 임대 주택 가운데 하나입니다.

우리 수도회 린다 패트릭 수녀는 오레곤주에서 추진하는 ‘머시 하우징’(Mercy Housing, 은총 주택) 프로젝트에 이사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공공 재원을 투입하여 빈집이나 무상 임대한 땅에 임대 아파트를 지어 시세보다 싸게 빌려주는 공공 주택 보급 운동입니다. 수도회 땅에 지은 임대 아파트도 같은 방식으로 추진하였습니다. 시의회는 수도회의 좋은 뜻을 높이 사 만장일치로 건물 용도 변경을 허가해 주었습니다.

"이 아파트는 아주 부유한 두 동네인 레이크 오스위고와 웨스트 린 사이에 있습니다. 레이크 오스위고는 아마도 오레곤에서 가장 부유한 동네일 겁니다. 그럼에도 시는 이 지역에 저렴한 주택을 공급할 필요를 느끼고 있었습니다. 식료품점과 스타벅스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먹고사는 사람들도 살 곳이 필요하니까요."(패트릭 수녀)

수녀원 인근 지역은 방 하나짜리 아파트의 한 달 임대료가 1940달러(약 257만 원)입니다. 방 2개짜리는 4000달러(약 530만 원)가 넘습니다. 그러나 우리 땅에 지은 공공임대 주택은 방 3개짜리가 1641달러(약 218만 원)에 불과합니다. 패트릭 수녀는 "임대료가 싼 주택이 여전히 많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새 입주자들은 과거처럼 대학생이 아니라 가난한 노동자들이 될 것입니다.

우리 수도회는 2000년에도 이와 비슷한 일을 했습니다. 회원 수가 줄어 관리하는 데 무리가 되었던 관구 건물터에 은퇴자를 위한 타운을 지었습니다. 대신 관구 공동체는 규모를 줄여 다른 공간으로 옮겼습니다. 이 자리엔 현재 은퇴자 800명이 사는 커뮤니티가 되었습니다. 이 커뮤니티는 우리 수도회가 관리하고 있습니다. 이곳에 사는 은퇴자 다수가 ‘머시 하우징 프로젝트’를 후원하고 있습니다. 자원봉사도 많이 하고 싶어 합니다.

외진 동네에 있는 수도원 건물을 노인 커뮤니티로, 대학 기숙사를 저렴한 주택으로 전용하는 프로젝트는 수도회가 소유한 부동산을 사회에서 절실히 요구되는 일에 사용하는 애덕 활동 가운데 하나입니다.

수도자 수가 줄어듦에 따라(CARA에 따르면 2000년 8만 명이던 여성 수도자 수가 2022년에는 3만 6321명으로 줄었다) 큰 규모 학교, 대학을 운영하는 것이 어려워졌습니다. 한때 이러한 학교들을 운영하기 위해 학교 안에 지었던 큰 공동체 건물도 더 이상 쓸모가 없어졌습니다. 큰 수도원의 경우는 한창일 때 관구 건물에 수백 명이 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건물을 의미 있게 활용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 항상 쉬운 일은 아닙니다. 과거 사용하던 시설이 너무 낡고 요즘처럼 효율적인 관리 시스템을 갖추지 못해 개조하기 어렵거나 불가능합니다. 수도원을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조용하고 목가적 환경에다 지었는데 한창 일해야(출퇴근해야) 하는 사람들에게는(예비 입주자) 이런 공간이 그리 좋은 조건이 아닙니다.

레이크 오스위고 일부 모습. (이미지 출처 = Flickr)

성 바실리오 수녀회는 수도원 건물을 이전에 생각하지 못한 방식으로 사용하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이 수녀회 회원인 플란테 수녀는 2022년 지역 수녀 연합회 연례 컨퍼런스에서 수녀회에서 시도했던 사례를 다음과 같이 발표했습니다.

“바실리오 수녀회는 유니온타운에 있는 250에이커(약 101만 제곱미터, 31만 평) 규모의 수도원을 어떻게 사용할지 몇 년에 걸쳐 회원들이 머리를 맞대고 의논했습니다. 이 건물은 1965년 100명이 살 수 있게 지었는데 2022년 당시에는 14명만 살게 되었습니다. 남은 회원의 연령도 매우 높았습니다. ‘잔디에서 생활비가 나오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잘 가꾼 잔디밭과 정원을 가진 수녀원 건물이 보기는 좋아도 관리비만 들어갈 뿐 수입이 없다는 뜻) 이에 회원들은 수도원 건물을 매각하기로 하고 수녀원이 소재한 펜실베니아주 전역의 예비 구매자들에게 구입 의사를 타진했습니다. 그렇게 구매 제안 안내문을 보낸 곳이 700여 곳이 넘었습니다. 한참 기다렸지만 네 곳에서만 답이 왔습니다. 실망스럽게도 이 네 곳도 구매하고 싶어 연락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천신만고 끝에 구매자가 한 명 나타났지만 이 사람도 계약 이틀 전에 취소하고 말았습니다.”

같은 수도회 회원 수잔 시스코 수녀는 건물 매각은 포기했지만, 수도원을 선교와 남은 회원이 힘을 모아 새롭게 시작할 사도직에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다고 했습니다. “부동산 업자마다 수녀원의 넓은 부지와 큰 건물을 활용하려는 생각이 달라 매각이 쉽지 않습니다. 회원들은 수도원 건물을 역사가 있고 아름답고 영적 보물로 여기지만 ‘개발자 눈에는 그저 낡은 배관만 보일 뿐입니다.’ 창립 때부터 지금까지 회원 누구도 부동산이 우리에게 얼마나 돈을 벌어 줄 수 있을까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항상 이 건물이나 땅이 우리 사도직을 활성화하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될까만 생각했습니다. 누군가가 우리와 비슷한 비전을 갖고 이 땅이나 건물을 사용하리라는 것은 기대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의미 있는 일을 하려 애를 쓰지만 생계도 필요하고 중요한 일입니다.”

보스턴 외곽에 있는 펠리시아 수도회(Felician Convent)는 본원을 밀입국 미성년자 보호소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아이들은 보호자 없이 미국 남부 국경으로 들어왔습니다. 수녀원에서는 이 아이들이 먼저 들어와 있는 가족과 연락이 닿을 때까지 보호합니다. 이 보호소 운영은 수녀들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습니다. 회원들은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회의 사명을 계속 수행할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되어 매우 기뻤습니다. 회원들은 피츠버그 교외에 있는 수녀원 건물에서 사용하지 않는 공간을 어떻게 사용할지 검토하던 중 숙소와 사무실을 3층으로 옮기고 1, 2층을 보호소로 쓰기로 했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나사렛 성가정 수녀회가 후원하는 성가정 연구소는 연방 정부에게서 미국 남부 국경에 도착하는 보호자 없는 미성년자에게 임시 거처를 제공하는 ‘희망을 향한 여정 프로그램’을 확대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2021년부터 성가정 연구소 어린이 절반은 한때 성가정 수도원에서 운영하는 고아원이었던 건물에 머물고 나머지 절반은 펠리시아 수녀원에 머물고 있습니다. 보호자 없이 밀입국한 미성년자 보호는 법률과 법원 결정에 따라 엄격히 규제됩니다. 대부분의 아이가 가족과 만날 때까지 이곳에서 30-40일 동안 머물게 됩니다.

성가정 연구소(Holy Family Institute) 소장 마이클 섹사워는 “이 일은 이민자의 아이들을 돌보기 위해 처음(200여 년 전) 이 나라에 진출한 두 수도회 간의 놀라운 협력 결과입니다. 두 수도회는 100년 이상 이와 비슷한 일을 해 왔는데 지금 이런 일을 하고 있고, 이런 일을 계속해야 한다는 것(불법 이주를 할 필요가 없는 세상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에서)은 안타깝지만 여전히 필요한 일에 계속 투신하게 되리라는 것이 놀랍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수도원 건물을 비워 두기보다 아이들에게 돌봄을 제공하는 이런 공간을 더 보고 싶어 하는 것 같습니다”라고 말합니다.

보스턴의 봉쇄수도원 Poor Clares(가난의 클라라회) 원장인 클라라 프란치스카 수녀는 시내에 있는 수녀원 건물을 다른 곳으로 옮긴 사례를 다음과 같이 소개합니다. “이 수녀원은 1934년 보스턴 시내에 5층짜리 수도원을 지었습니다. 70년 동안 잘 유지되었습니다. 그러나 2004년 70명이 살려 지은 수녀원에 9명만 남게 되었습니다. 이 숫자로는 이 크고 낡은 건물을 관리할 수 없었을 뿐 아니라 비용도 너무 많이 들었습니다. 새 공간을 찾으려 했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건물이 낡아 가니 부동산 가격도 덩달아 내렸습니다. 가격이 떨어지니 다른 곳으로 이사할 비용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부동산 교환이라는 방식으로 교외에 있는 공간으로 이사하게 되었습니다. 마침 수도회 은인들도 도심을 떠나 대부분 교외로 이사한 상태였기에 수도원이나 은인들에게나 좋은 계기였습니다. 새롭게 이사한 곳은 이미 많은 이가 교회 일치 대화와 기도 장소로 활용하고 있었고 정원도 잘 가꿔져 수도원으로도 적합했습니다. 마침내 우리 공동체는 2023년 12월 15일 새 수도원으로 이사할 수 있었습니다. 회원들은 이 공간에 만족하고 감사해 합니다. 수녀원이 있던 자리는 도심에 적합한 시설로 탈바꿈하고 있습니다.”

박문수

가톨릭 신학자이자 평화학 연구자
우리신학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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