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 아웃', 어른이 되어 가는 과정

2024-08-26     김연희

얼마 전 개봉한 애니메이션 영화 '인사이드 아웃 2'는 전편 이후 9년 만의 후속작이다. 주인공 라일리가 13살이 되고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1편에 등장했던 ‘기쁨’, ‘슬픔’, ‘버럭’, ‘까칠’, ‘소심’은 어느 날, 낯선 감정인 ‘불안’, ‘당황’, ‘따분’, ‘부럽’이의 등장으로 계속 충돌한다. 이들의 위험천만한 모험은 결국 1-2편의 감정들이 서로 관련 있는 것들로 다뤄지는데, 이번 영화에선 라일리가 동경하던 아이스하키팀에 입단하기 위해 겪는 불안과 그 해소 과정을 다루고 있다. 내면의 감정을 의인화하여 라일리의 심리 변화를 묘사한 전편의 기조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사춘기 이후 생겨난 더 많은 감정을 등장시켜 복합적인 감정 속에서 자아를 형성하는 라일리를 묘사한 2편 역시 모든 관객에게 공감을 주었다.

'안시아드 이웃 2', 켈시 맨, 2024. (포스터 제공 =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영화의 캐릭터에 해당하는 여러 감정은 서로 관련이 깊다.

슬픔이가 당황이를 처음 본 순간부터 호의를 느끼고 당황이가 갑자기 슬픔이를 도와주는 장면을 보면, 창피함을 극복하는 감정이 ‘슬픔’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가 크게 당황할 때 실컷 울고 난 뒤에 창피함이 뒤늦게 몰려오듯 두 감정은 관련이 있다. 두려움(소심)은 실제적 위협 대상이 눈앞에 있을 때 움츠러듦을 느끼는 감정이고, 불안은 그런 대상이 눈앞에 없는데도 느끼는 감정으로, 둘 다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방어기제라는 점에서 유사성이 있다. 소심이가 낙하산을 가지고 친구들을 구하는 장면에서, 낙하산을 미리 준비하는 것은 먼 미래의 위협에 대비하는 불안이의 역할로, ‘불안’은 미래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기도 한다. 까칠이와 부럽이는 둘 다 아름다움을 추구하며, 캐릭터의 유사한 디자인이 그 둘의 연관성을 상징한다. 직접적인 공격성을 드러내는 버럭이와 수동적인 따분이는 공격성이라는 점이 유사하다. 영화 처음 장면에서 라일리가 하키를 할 때 버럭이가 조종하는데 실제로 공격성은 나쁘기만 한 것이 아니라 경기력의 성과에 도움이 된다.

1편의 ‘기쁨’이가 2편에서는 살짝 소외되는 듯하지만, 기쁨이의 침실에는 빙봉의 인형도 있다. 현재에는 이미 라일리에게 잊혀졌기에 등장하지 않았지만 기쁨이가 빙봉을 기억한 건, 라일리의 장기 기억 저장소인 무의식에 라일리의 상상의 친구 빙봉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사실 ‘기쁨’에 대립되는 감정이 ‘불안’이기에 1편에서 다룬 유아기에는 현재 감정에 충실한 ‘기쁨’의 상징인 ‘빙봉’의 활약과 마지막에 소멸하는 마지막 장면이 감동적이었다면, 2편에서는 ‘불안이’의 활약을 통해 어른으로 성장하는 과정의 심리 갈등을 잘 보여 준 것 같다.

'인사이드 아웃 1'(피트 닥터, 2015)에 등장하는 감정들. (이미지 제공 =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성장기 우리는 호르몬 변화, 인지 발달을 거치며 많은 감정의 변화를 겪게 된다.

자신만 뒤쳐지고 소외되어 있다고 느끼면서 유아기보다 상대적으로 행복도가 줄어들게 되는 것이다. 기쁨이가 “불안 일을 멈출 수 없고 그게 어른이 되는 건가 봐”라고 말하는 것처럼 불안은 늘어나고 행복은 줄어드는 시기가 누구에게나 온다. 그럼에도 우리가 불안을 멈출 수 없는 이유는 과거와 미래의 감정을 현재에 귀속시키기 때문이다. 현재가 아닌 미래를 준비하는 시기가 되면서 지금의 내가 아닌 어른이 될 나를 위해서 살게 된다는 말이다. “내가 누군지가 아닌 어떤 사람이 돼야 하는지가 중요하다”라는 불안의 말처럼 그때부터 우리는 성공하기 위해서 불편한 생각이나 느낌, 기억들을 의식 속에서 멀리 밀어내게 된다. 이런 것을 영화에서는 억눌린 감정들이 통 속에 갇히는 것으로 표현된다.

체계적인 시스템을 가진 이 불안이라는 감정은 1단계에서는 신체적 반응으로 심장 박동이 빨라지고, 마지막 단계에서는 실제 아무런 위협도 되지 않는데 지나치게 반응하여 걱정이 비극으로 전환되기도 한다. 영화 후반부에 불안이가 폭풍을 만들어 버리는 장면은 라일리가 불안으로 인한 공황발작(恐慌發作, Panic Attack)을 일으키는 시각적 장치라고 볼 수 있다.

이처럼 불안은 미래의 위협에 대비할 수 있게 해 주고 행동 변화를 이끌 만큼 강력한 감정이지만, 이러한 이유로 우리는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게 되는 삶을 살게 된다. 영화에서 라일리는 좋아하는 밴드를 싫어 하는 척해야 했고, 더 이상 하키는 놀이가 아닌 스포츠 경기가 되고, 골판지 맛이 나는 초코밥도 맛있는 척을 한다. 이렇게 타인에게 인정받기 위해 ‘어떤 사람이 되려고’ 나의 모습을 연기하는 것은 미래의 행복을 위한 노력이지만, 예상치 않은 파국적 결과를 맞기도 하는 것이 인생이다.

안시아드 이웃 2'에 새로 등장한 감정들. (이미지 제공 =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이러한 불안을 해결하기 위한 답은 영화의 결말에 있다.

기억 구슬이 쌓여서 신념의 줄기를 이루고 자아 고리를 형성하는 것처럼, 기억이 쌓여서 신념을 형성하고 자아가 완성된다. 영화에서는, 좋은 기억만 담아서 만든 더 행복한 미래를 위해 만든 자아와 모든 기억이 쏟아져서 만들어져 버린 자아가 나온다. 그러나 라일리를 공황발작에서 지켜 준 것은 기쁨도 불안도 아닌 라일리 스스로가 만들어 낸 자아였다. 즉 감정에 조종당한 것이 아닌 스스로 만들어 낸 자아야말로 우리가 힘든 순간을 이겨 낼 수 있게 해 준다. 그리고 친구에게 상처를 준 슬픈 과거나 낯선 고등학교 입학이라는 미래의 불안에 얽매이지 않고 현재의 부족하고 이기적인 나와 착한 나, 모든 기억을 라일리가 받아들이는 순간 현재의 감각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게 된다.

전편과 2편을 연결해서 생각해 보면 기쁨, 슬픔, 불안 등 모든 감정은 우리에게 도움을 주는 존재며 감정에 휘둘리기만 해서는 스스로를 지켜 낼 수 없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선 감정을 억누르기만 하는 것도, 감정을 분출하는 것만도 아닌 모든 감정과 기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라일리가 이제 미시간이 아닌 미네소타로 불려도, 절친과 헤어지는 입학 결정에도 웃을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스스로 의연하게 행동하는 것을 배우는 그 과정이 바로 어른이 되어 가는 과정이고, 이를 통해서 형성된 신념이 우리의 자아를 건강하게 이루는 것이 아닐까 한다.

“너희는 언제까지나 지금의 모습이고 있는 그대로를 사랑한다.”

김연희

홍익대학교 예술학 박사(미술 비평 Art Theory and Criticism ph.D)

미술 평론 및 대학에서 예술 이론 강의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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