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가출을 꿈꾸들랑
그대 가출을 꿈꾸들랑
예전에는 학교 선생님들이 일직과 숙직까지 담당했다. 봄의 일요일에 일직을 서는 날에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은 운동장 저쪽 끝 플라타너스 나무 아래 벤치에 홀로 앉아 있는 중년 여인의 모습이었다. 잘 차려입은 옷차림에 챙이 있는 모자를 쓰고 운동장과 그 너머 교실들을 바라보는 여인.... 그런 풍경을 보면서 선생님들은 이렇게 말했다. 봄이 왔구나! 봄은 여자의 계절이라고 하듯이 봄의 활력이 찾아오면 현재의 쳇바퀴 도는 일상의 반복에서 탈출하여 과거 꿈 많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충동에 가출을 했던 것이다. 물론 당일치기의 짧은 여행이지만 그 성격은 가출이었다.
가을이 되면 남자들은 괜히 영화관에 혼자 가고 홀로 포장마차나 호프집에서 술잔을 기울이곤 한다. 가을은 우울함으로 다가와 남자를 쓸쓸함에로 끌어당긴다. 그 역시 가출이다. 당일치기이고 단 몇 시간이지만 인생은 어디로 흘러가는 걸까 한숨 내쉬며 한 잔 술을 마시는 그의 마음 상태는 결국 가출이다.
그러나 십대의 가출은 그러하지 않다. 나도 10대 때에 가출을 한 적이 있었다. 집을 떠나 일주일 만에 겨우겨우 돌아올 수 있었다. 17살 나이에 왜 그랬는지, 스스로 보잘것없는 존재에 불과하다는 자책에 짓눌려 살았다. 그래서 쓸모없는 나라는 존재를 내던져 버리고 싶어서 무작정 집을 나섰다. 12월 성탄절 심야에 부산역에서 경부선상의 북쪽으로 올라갔다. 춥고 배고프고 도움 청할 사람 하나 없는 곳으로 가기로 마음먹었지만 정작 가진 돈만큼 끊은 차표로 새벽에 내리다 보니 이름 모를 작은 역의 을씨년스러운 풍경과 살을 파고드는 추운 날씨, 더구나 배고픈 현실은 하루가 지나고 이틀을 넘기면서 무조건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러나 주머니엔 동전 하나 없었다. 그때부터 귀향하기 위한 몸부림의 여정을 시작하였다. 놀랍게도 많은 사람이 천사같이 등장하여 도움의 손길을 건네주었다. 겨우겨우 일주일 만에 집으로 돌아오면서 묻지도 않고 말없이 도와준 천사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참으로 고마운 천사들. 드디어 귀향한 나는 집에 들어가기 전에 성당에 들러 하느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말없이 천사들을 통해 함께해 주신 하느님께 드린 감사의 기도였다. 그리고 어렴풋이 이런 깨달음도 있었다. 문제의 핵심이란 나를 남들과 비교하는 데 있지 않고 바로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아껴 주고 사랑해 주어야 한다는....
그래서 거리를 방황하는 십대 청소년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그대 가출을 꿈꾸들랑, 내 이야기 한번 들어 주렴? 멋있는 가출을 하려면 말이야. 가출의 이유야 갖가지라서 아는 체할 수도 없고 더구나 상상을 초월한 이유 앞에선 공감한다고 감히 말할 수도 없지만, 그래도 가출을 멋있게 해치우고 새로운 힘을 얻어 세상을 멋지게 살아가려면 말이야.
진정 가출한 청소년들 옆에는 하느님을 대신하여 함께해 주는 천사가 많아야 한다. 그들이 가정 밖으로 학교 밖으로 내던져지는 순간, 즉시 필요한 건 천사의 손길이다. 검은 악마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도록 우물로 데려가고 빛에로 안내해 주는 천사들, 바로 가출을 해 본, 즉 홀로 모교를 찾는 여인들과 가을에 홀로 포장마차에서 소주잔 기울이는 남자들, 바로 그들 어른 이웃들이 절실하게 필요한 순간이 바로 그때다. 우리는 대개 가출이라는 이름으로 이심전심 공통점을 가지고 사는 인생들이므로 청소년들에게 손을 내밀어 주며 이렇게 말해 주면 어떨까? 그대 가출을 꿈꾸들랑, 내 이야기 한번 들어 주렴?
이주 노동자와 함께 농사짓기
가톨릭교회의 노동상담소는 미조직 사업장의 노동자들을 주로 상대한다. 노조가 조직되어 있는 사업장에서의 문제들은 개별 노조와 노총 차원에서 도와주고 해결한다. 그러나 노조가 아직 없는 미조직 사업장에서는 그런 역할이 없기 때문에 노동상담소가 대신 역할을 해야 한다. 노동상담소는 종교 단체에서 시작하였고, 민주노조가 결성되기 이전 시대에 특히 큰 역할을 하였다. 요즘은 노총 차원에서도 노동상담소를 운영하다 보니 교회의 노동상담소들은 점차 국내 노동자만이 아니라 이주 노동자들을 위한 활동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 미사를 해야 하므로 이주 노동자들이 자연스럽게 모이고 미사가 끝나면 흩어져 일하는 사람들끼리 어려움을 나누고 그래서 상담을 하는 구조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이렇듯 도시의 이주 노동자들은 노조나 노동상담소를 통해서 해결할 수 있지만 그러나 농촌의 이주 노동자들은 거의 혜택을 입지 못한다. 농촌에서 이주 노동자를 고용하는 경우가 대부분 5인 이하 개인 사업장인 경우인 탓도 있지만, 농어업민안전보험에 가입하여야 이주 노동자 고용을 허가받을 수 있는데, 거기다가 산재보험도 들어야 일하는 노동자의 사고를 처리할 수 있고 질병으로부터 보호해 줄 수 있으나, 산재보험료가 연간 50만 원을 넘는다고 꺼려 하고 회피하기 일쑤다. 그러다 보니 주간 40시간, 합의하의 12시간 연장근무 노동법이 지켜지지 않음은 물론이려니와 합의 없이 하루 10시간 넘는 노동이 이루어지는 게 관행처럼 굳어 있다. 그런 강도로 일을 하면 산재가 더 많이 생기고 체력 저하로 심각한 위험이 발생할 수도 있지만 감독이 힘든 농촌 환경은 막무가내로 진행할 뿐이다.
숙소 문제는 이주 노동자를 인간으로 생각하지 않는 대표적인 사례다. 그들은 일하는 기계로 취급받는다. 돈 벌러 왔으니 어떤 어려움도 감수해야 한다는 비인간적인 논리가 횡행한다. 따뜻한 말 한마디, 건강을 염려하는 당부나 위로 없이 빨리만을 요구하니 그들은 그저 기계일 뿐이다.
구조적으로 이주 노동자의 인권이 사각지대로 몰려나는 이런 상황에서 나는 천주교 신자 농민들이 먼저 솔선수범하여 이웃 사랑의 관점으로 접근하기를 희망한다. 나도 곧 오지로 들어가면 텃밭이나 가꾸는 전원생활이 아닌 진정 농사를 짓는 농부로 살아야 할 테니 아마도 이주노동자의 도움을 빌릴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 나 혼자서는 힘들어 한두 사람과 함께 일할 가능성이 많다. 그래서 그럴 때 내가 해야 할 일을 생각하면 바로 이주 노동자를 사람으로 대하고 내 이웃으로 대하는 기본 자세를 떠올리게 한다.
논밭에서 일하는 농촌은 주로 새벽과 아침에 일을 한다. 낮에는 실내에서 일하거나 쉬어야 한다. 한국 농민들은 다 그렇게 한다. 이주 노동자들도 그렇게 해야 한다. 노동법 준수를 뛰어넘어 배려를 통한 교감은 오히려 생산력을 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노동자와 만남은 사람을 만나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묻는다. 과연 나는 잘해 낼 수 있을까? 그래, 적어도 내가 그리스도인이 되려고 노력하는 한 잘해 낼 거야.
조욱종 신부(사도요한)
부산교구 은퇴 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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