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생활의 미래 예측

주디스 셰퍼

2024-08-12     박문수

이 글은 <NCR>(National Catholic Reporter)에 네 차례 연재된 글로벌 여성 수도자 보고서(Global Sisters Report)의 후속인 ‘수도생활의 진화’라는 기사의 번역입니다. 우리말 표현이 어려운 문장은 생략하거나 의역하였음을 밝혀 둡니다.

이 에세이의 저자들은 최근 미국에서 새롭게 시도하고 있는 다양한 수도생활 방식을 이십 년째 연구하고 있는 전문가들입니다. 이 연재는 전환기에 있는 여자 수도회의 현실과 새로 실험하고 있는 수도생활 형태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여자 수도회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으므로 이 시리즈를 연재하는 동안 남자 수도회는 별도로 다루지 못함을 송구하게 생각합니다. 이 번역 글을 다 연재하고 난 후 이를 전제로 저의 생각을 나누겠습니다. 이때 남자 수도회도 다루겠습니다. 


수도생활의 미래 예측 - 주디스 셰퍼

진화하는 수도생활

많은 공동체가 적어도 현재 형태로는 더 이상 존속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사실이 더 명료해지는 요즘 수도생활, 특히 여성 수도자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요? 사실 아무도 모르지만, 여성 수도자 개인과 그들이 속한 수도회의 진화는 로버트 케건(Robert Kegan) 이 "진화하는 자아"(The Evolving Self)에서 인간 발달의 ‘제도적 단계’라 부르는 데서 ‘개인 간(間) 단계’로 진화해 갈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습니다. 이 새로운 단계는 자신을 고유한 개인으로 여기는 태도와 대인 관계를 기반으로 하게 될 것입니다.

지난 몇 세기 동안 여성 수도자들은 자신을 주로 기관/제도에 기반을 둔 수도 단체의 구성원으로 보았습니다. 여성 수도자에게는 수도원이나 모원처럼 함께 사는 공간이 있었습니다. 병원, 학교, 보육원처럼 수녀들이 설립하고 관리, 후원하는 곳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기관과 시설 외에도 관련 문서와 전통을 기반으로 교회 문제와 문화적 관계에서 이런 기관과 공동체의 방향을 설정해 왔습니다.

수도회는 그 회의 수녀들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하여 교회 법전, 창립자와 창립 규범, 회헌, 회원들의 공동 결정 그리고 직권자의 지시 등을 통해 결정해 왔습니다. 예를 들어, 최근까지 수도자들은 수도복 착용, 거주 가능 공간, 봉쇄 구역, 공동 결정을 내리는 방법을 이러한 문서와 전통을 통해 배웠습니다.

결론적으로 여성 수도자들은 콜로라도 스프링스의 ‘영원한 도움의 성 프란치스코 수녀회’와 같이 특정 수도 단체의 구성원으로 여겨 왔습니다. 따라서 그 수도회 회원들은 안정적인 공동 사도직에 안주할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대다수 가톨릭 신자와 비 가톨릭 신자가 여성 수도자들의 위신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여성 수도자들은 소속 수도회가 운영하는 기관/시설을 통해 그들이 수행한 대부분의 사도직에서 투명성, 큰 열정과 놀라운 효율성으로 존경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사회가 발전하고 많은 정부 기관과 사회 기관이 평판이 나빠지진 않았어도 생존할 가능성이 낮아지면서 상황이 변했습니다. 이제 여성 수도자들도 다른 많은 기관의 구성원들과 마찬가지로 이런 제도적 방식 이후의 발전 단계로 이행하라는 요청을 받는 중입니다.

그러나 새로운 단계로 이행할 수 있기 위해서는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혹은 않을)" 방식을 의식적으로 포기해야 합니다. 서원 생활이나 창립 카리스마같이 수도생활과 개별 수도회의 고유한 방식은 계속 고수해야겠지만 그동안 수도자임을 드러냈던 표지들 가운데 더 이상 적합하지 않은 것은 과감하게 바꿀 수 있어야 합니다. 이제 수도자들은 다르고 낯선 것을 포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결과적으로 이는 정체성 혼란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수도자들은 오랫동안 편안했던 “집”에서 상호 의존성과 대인(개인 간) 관계에 기반을 둔 새로운 “집”으로 옮아가야 합니다.

이 작업은 의미를 찾는 방법에도 영향을 줄 것입니다. 수도회 내부와 수도회, 수도자 주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타당하고 설득력 있는 해석을 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생각이 필요합니다. 여성 수도자들은 마음 깊은 곳에까지 영향을 줄 수 있는 새로운 태도를 선택해야 합니다. 여성 수도자들은 좌절과 분노를 표현하는 방법에서 겪는 어려움과 함께 고통스러운 두려움과 우울증을 경험할 가능성도 높은 상태입니다. 이런 문제는 과거처럼 "자신에 갇혀" 혼자 해결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개별적으로 그리고 공동체와 함께 대처해야 합니다. 건전하고 세심하게 고안된 표현 방식을 찾아야 합니다.

(이미지 출처 = Pexels)

따라서 ‘제도적 해결 방식’에서 ‘개인의 주체적 해결 방식’으로 이행하는 것은 여성 수도자의 행동 방식에도 영향을 줄 것입니다. 여성 수도자들은 그동안 자신을 정의하는 데 활용했던 역할 가운데 어떤 역할은 더 이상 수행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여성 수도자들은 새로운 것을 배우고 이 새로 배운 방식에 따라 살아야 합니다. 여성 수도자들은 시대의 요구, 즉 타인과 자신의 요구를 충족시킬 새로운 기능을 배우고 또 실천해야 합니다. 여성 수도자들은 과거처럼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지를 정의하는 규칙에 의존하는 수준을 넘어서야 합니다. 대신, 각자 주어진 시간과 장소에서 실현 가능하고 현실적이며 건전해 보이는 것을 기반으로 새롭게 정의를 내리고 결정도 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이렇게 사는 방식이 자신과 다른 이에게 최선이라면 평신도에게 수녀원을 개방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다른 각도로 보면, 여성 수도자의 결정은 본능뿐 아니라 구체적인 상황에 놓여 있는 고유한 개인이 각자 고유한 상황에서 어떤 형태의 사랑을 필요로 하는지에 대한 판단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이는 관계자 모두가 참여하는 식별에 따라야 합니다.   

데이비드 매클럴랜드(David McClelland)는 "The Achieving Society"에서 개인 간 발달 단계로 이행하는 것은 성취 지향을 버리고 친밀감 지향을 수용하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즉, 수행해 왔던 일에 덜 의존하고 자신이 누구인지 또는 될 수 있는지에 더 큰 비중을 두는 것입니다. 외부 권위에 의존하기보다 내적 권위를 획득해 가는 문제입니다. 이는 규칙으로 통제하는 삶의 방식에 충실하기보다 자신에게 진실한 것이 더 큰 과제가 됩니다. 이는 자신이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는지에 대해 개인이 책임을 지는 문제입니다.

이러한 움직임은 거대한 패러다임 변화를 수반합니다. 여성 수도자가 이러한 전환을 하게 되면, 인간 발달의 개인 간 단계를 정의하는 특징인 자율성과 친밀성을 통합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성 수도자는 인류 역사상 찾아보기 힘든 수준의 성숙 단계에 이를 것입니다. 캐럴 길리건(Carol Gilligan)과 머피(JM Murphy)가 쓴 것처럼 여성 수도자들은 폐쇄적 자기 만족과 집단 만족 체계에서 "상황을 새롭게 정의하는 것을 포함하여 더 개방적이고 변증법적인 과정"으로 이행하게 될 것입니다. 이들의 삶의 방식은 "이것 아니면 저것"과 같이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방식, 객관적 규율을 부과하는 방식이 아닌 "둘 다"를 포용하는 사고와 대화가 특징이 될 것입니다.

실제로 이러한 패러다임 전환은 다른 사람과 심리적으로 가까워지는 것뿐 아니라 다른 사람과 자신을 법과 질서 위에 두면서도 영향을 받지 않는 방식을 선택하는 것을 뜻합니다. 수도회들은 여전히 ​​회원들에게 그들이 하는 일과 자신을 정의하는 방법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겠지만 이것이 궁극적인 결론은 되지 않을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이 방식은 여성 수도자들과 다른 사람이 수도생활을 경험하는 방식에 큰 변화를 줄 것입니다. 관련된 모두는 주어진 상황에서 진정으로 사랑받고 있다고 느낄 것입니다. 사랑은 더 이상 좋은 의도나 추상적 표현에 그치지 않을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좋겠습니다! 이러한 전환을 할 수 있으려면 여성 수도자들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것을 의식적으로 포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반갑지 않은 소식은 여성 수도자들이 과거처럼 자신이 "옳은 일"을 하고 있는지 확신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성 수도자들은 새롭고 생명을 주는 방식으로 역사적 예수와 우주적 그리스도로서 우리 가운데 계신 그분의 현존을 인식하게 될 것입니다. 더욱이 그들은 자신과 협력하는 사람들, 그리고 모든 피조물에 대한 진실성을 바탕으로 새로운 형태의 진실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참으로 하느님의 모든 백성은 하느님의 아드님이 여전히 그들 가운데 계시다는 것을 증거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들은 "오늘날 힘들고 위험한 상황에서 진정한 사랑과 관심을 받을 가치가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여성 수도자들은 교회와 사회 기관의 이상적 구성원이 아닌 한 인간으로서 자신을 더 잘 돌보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을 “모든 사람”을 위해 봉사하는 데 바쳐 왔습니다.

여성 수도자들은 제도적 수준에서 개인 간 발전 수준으로 의식적으로 전환하기로 선택하게 될까요? 수 세기에 걸친 여성 수도자들의 진지함, 진실성, 고결함으로 미뤄 보면 아마도 그럴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지금까지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요구하시는 것에 적응해 온 그들의 삶은 참으로 놀라웠으니까요.

박문수

가톨릭 신학자이자 평화학 연구자
우리신학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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