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가는 연극 '여걸 강완숙 골롬바' 다시 열린다
천주학에서 삶의 해답 얻은 한국 교회 첫 여성회장 일대기
서울가톨릭연극협회가 ‘찾아가는 연극 공연’으로 ‘여걸 강완숙 골롬바’의 일대기를 무대에 다시 올린다.
지난해 6월부터 본당(성당)과 교회 기관, 병원에서 36차례 공연한 이 연극은 올해도 열 예정이다.
2014년 복자품에 오른 강완숙 골롬바(1761-1801). 양반가에 태어나 혼인을 하고 아내와 어머니로 살던 그는 1786년 천주교에 입교한 뒤, 그토록 찾아 헤매던 삶의 이유를 깨달았다. 1794년 입국한 주문모 신부를 돕던 중 세례받았고, 한국 교회 최초 부녀회장으로 온 힘을 다해 전교하던 그는 1801년 신유박해 때 체포돼 처형당했다.
“박해 후에 (주문모)신부님은 강완숙 골롬바의 집을 거처로 정하고 6년 동안 교회의 중요한 사무에 모두 그녀의 도움을 받았으므로, 신부가 총애하여 신임함이 몹시 융성하여 견줄 만한 사람이 없었다. 조선 교회를 위해 노력한 사람 중 남녀를 통틀어 강완숙을 당할 사람이 없다”(황사영 백서 내용 중)
자신의 정체성과 삶의 이유, 죽음 등에 대한 궁금증에 목말라하던 강완숙이 천주학을 접한 뒤 얻은 해답은 “형벌을 받아 죽을지라도 버릴 수 없는” 것이었다. “예수 사랑의 힘으로 살았기에 그 사랑에 답하고자 한다”는 그의 삶과 신앙, 그리고 죽음. 전혀 다른 세상에서 예수를 구원자라 고백하는 우리의 삶과 신앙은 그와 다르기만 한 것일까, 아니면 오늘날 오히려 다시 만나야 하는 것일까.
17일, 서울 명동 영성센터에 마련한 연습실을 찾았다. 배우 4명과 방은미 감독이 대본 중 강완숙이 고문당해 약해진 그 아들 홍필주를 향해 “예수께서 네 머리 위에서 너를 보고 계시다. 네가 그와 같이 눈이 어두워 스스로 멸망할 수 있느냐. 내 아들아, 용기를 내고 천당 복을 생각하여라"라고 외치던 순간이었다.
올해는 강완숙 역에 배우 황려진(마리아), 노수산나(수산나) 씨가 더블 캐스팅됐고, 이한일(바보) 씨, 이영주(스텔라) 씨가 각각 해설과 주문모 신부, 이존창, 시모, 아들 홍필주, 윤정혜 등 다역을 맡았다.
한 회 공연에 세 명이 무대에 올라, 복자 강완숙의 일대기 그리고 함께 살았던 주요 인물들의 모습을 오롯이 살려낸다. 70분 공연은 강완숙이 천주교를 만나기 전 보낸 고뇌와 갈망의 시간에서 입교, 박해와 고난, 첫 미사, 신자 공동체의 모습 그리고 순교에 이르기까지 펼쳐진다.
해설과 이존창, 주문모 신부, 포자 등 역할을 맡은 이한일 씨는 지난해 공연부터 함께해 왔다. 강완숙 분량을 제외한 부분을 소화한다는 것은 배역이 달라지는 순간마다 호흡, 목소리, 감정도 달라져야 하고, 공연 요청하는 곳이 매번 달라 일정을 조율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이한일 씨는 “어차피 배우들은 일정 조정이 일상이니 문제가 되지 않고, 무엇보다 이 공연은 ‘봉헌’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 배우들에게 상당히 뜻깊다. 이 자체가 행복”이라고 말했다.
그는 순교자들, 초기 신앙 공동체에 대해 막연하게 알고 있던 것들을 공연에 참여하면서, 그 신앙이 정말 기억이었다는 것을 느낀다며, “박해와 순교 당시 그 어마어마한 사람들이 한의 신앙 공동체를 만들고, 꽃피우고 그렇게 꽃처럼 피었다 졌고, 한국 천주교의 뿌리가 됐다는 것을 새삼 절감한다”고 말했다.
강완숙 역을 맡은 노수산나 씨는 한국 천주교 초기, 박해 시대에는 상상도 할 수 없던 신앙의 자유, 편안하고 자신의 내적 평화를 지향하는 지금 우리들의 신앙을 돌아봤다고 말했다.
그는 “순교자들의 신앙은 곧 목숨이었다. 그 신앙의 힘은 무엇일까, 얼마나 예수님을 사랑하면 자신의 신념, 가치관, 생명, 전부가 될 수 있을까 생각한다. 그런 생각을 통해 매 순간 신앙과 사랑의 크기에 대해 많이 배우고 있다”고 말했다.
강완숙 역의 모든 대사가 기도문 같다는 그는 “무사하다는 것이 신앙 선조들에게는 정말 어마어마한 일이었다. 그래서 ‘자비를 베푸소서’, ‘하느님 감사합니다’라는 기도는 목숨을 다해 내뱉는 말이었다. 그 마음을 끌어 올리려 하고, 또 매일 차오르는 것 같다”고 말했다.
황려진 씨는 “복자 강완숙의 신앙은 삶과 나에 대한 궁금함에서 시작됐고, 하느님을 만나면서 답을 얻었다. 그 깨달음 뒤의 맹목적인 신앙과 삶이 나에게도 필요했다는 것을 느꼈다”면서, “특히 여성에게 더 엄혹했던 시기에 ‘여걸’이라는 호칭이 붙을 만큼 자신의 신념을 끝까지 살았던 한 여성을 표현하는 것이 가장 큰 목표”라고 말했다.
그는 이 공연으로 만나는 관객들이 신앙이 없을 수도 있고, 있지만 습관적일 수도 있고, 또 교회 안에서 힘든 상황을 겪는 이들도 있을 것이라면서, “그들 모두에게 이 연극이 어떻게 받아들여질 수 있을지 가장 많이 생각하고 기대가 된다. 어떤 곳에서 공연을 하든 그 공동체와 구성원들 모두에게 기쁨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연극 ‘여걸 강완숙 골롬바’는 고정 공연장 없이, 공연을 요청하는 이들에게 찾아간다. 올해는 8월 15일 당진 합덕 성당에서 첫 공연을 한다.
공연 문의와 요청은 홈페이지(바로가기)에서 할 수 있다.
순교자를 주제로 연극을 올리게 된 계기, 이유는 무엇인가요?
2011년 7월 17일에 제주 강정마을에 연대 방문을 갔다. 2박3일 일정이었는데, 3일 후에 서울로 돌아오질 못했다. 마을을 강도질 당한 주민들에게 착한 사마리아인이 되고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일주일 연기 열흘 연기.... 살다 보니 12년을 강정에 살며, 경찰, 군인, 거짓 언론과의 싸움, 재판.... 결국, 기지 완공되고 나니 해군기지 찬성하는 주민들과의 분열. 그 미봉책을 쓰는 도정이나 정부의 기만 그리고 내부 갈등, 이런 태풍 회오리를 겪으며 견딜 수 있었던 힘은 ‘주님의 집에 사는 것’이었다, 주님이 주신 깨달음이었고 나에게 강정은 ‘주님의 집’었고 정말 그 힘으로 살았다. 순교 선조들도 주님의 집에 사셨고, 죽음은 더 좋은 주님의 집으로 이사하는 것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하며, 그분들의 신앙과 삶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렇다면 수많은 순교자 가운데, 강완숙 골롬바의 이야기를 선택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사실 강완숙 골롬바님이 신유박해에 순교하신 분이라는 것 외에는 잘 몰랐다. 그런데 서울가톨릭연극협회 최주봉 회장님이 적극 강완숙 골롬바의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권유했다. 김묘임 로사리아님의 짤막한 대본을 주셨는데 사실 나에겐 조금 어려웠다. 그래서 자료를 찾아보니 정말 여장부의 면모를 지닌 분이셨고, 그것에 매료되어서 음악과 삶의 이야기 등 대중성을 담아 뜨거운 마음으로 연극으로 만들게 됐다.
순교자, 최초의 여성 회장이었다는 것 외에, 오늘날 강완숙 성인의 삶과 죽음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무엇일까요?
당시에 천주교인이었던 분들 모두가 그러셨을 것이지만, 특히 복자 강완숙 골롬바는 참으로 성부 아버지의 뜻으로 사는 게 삶이었고, 일상이 신앙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분은 매일 매순간을 주님께 봉헌하며 사는 게 제일 큰 기쁨이셨던 것 같다. 아버지가 말씀하시는 사랑을 실천하고 그것으로 칭찬받으며 기쁘게 살고, 죽어서는 그 아름다운 분을 만난다는 믿음, 그분들에게는 순교가 죽음이 아니고, 배교가 죽음인 것이었다.
지금 우리에게, 신앙은 미사 참례나 피정, 성지순례를 통해서도 이뤄지지만, 거창하지 않아도 눈 뜨고 잠들 때까지 소소한 하나하나를 아버지께 드리고, 아버지께서 마음 아파하시는 이웃과 나누는 일상의 신앙의 소중함을 체험하시면 좋겠고, 그게 천국을 사는 거 아닐까 생각한다. 그분들에게 그리스도 안에서 산다는 것은 공기 안에서 산다는 것과 같은 뜻이었을 것 같다.
관객들에게, 또는 이 연극에 초대하고픈 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 부탁드립니다.
연극을 보시면, 일단 재미있고 신나고 즐겁다. 그리고 감동을 넘는 감격도 있다고 자부한다. 무엇보다 모든 것이 주님 안에 있다. 예수 성심을 더 뜨겁게 느끼고픈 분들, 자신의 신앙에 회의감이 든다는 분들, 천주교가 궁금하신 분들 모두에게 ‘하느님의 말씀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느끼고 깨닫게 하는 펄펄 살아 뛰는 좋은 교재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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