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견디어 준 '지금여기'의 거룩함에 대하여

2024-06-18     이진영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창간 15주년을 맞아 응원하는 릴레이 기고를 진행합니다. 글과 인터뷰, 영상 등 다양한 방식으로 <지금여기>가 첫 마음 잃지 않고, 한국 가톨릭교회의 공론장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편집자

15주년이 된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의 역사를 바라보면서 견디어 주어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그동안에 수많았을 우여곡절 속에서도 꿋꿋하게 견디어 준 <지금여기>는 독자들과 세상에 거룩함을 선물하고 있습니다.

<지금여기>를 응원하는 릴레이 글을 청탁받았을 때 저에게 맨 먼저 떠오르는 것은 <지금여기>와의 인연이었습니다. 10년 전쯤 <지금여기>에 일 년 동안 매월 한 차례씩 원고를 쓴 적이 있었습니다. 소소한 삶에서 느낀 것을 나누었는데, 마지막 원고를 쓰고 게재된 다음 날 아침, 신부님 한 분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신부님은 제가 소임을 옮기게 되어 연락처를 모르셨으니(당시에 저희 수도회는 소임을 옮기면 휴대폰도 후임에게 인계해 주는 것이 상례였습니다) 본원으로 전화하여, 어렵게 통화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여기>에 쓴 저의 글을 보고 전화 주었다고 하시면서 글을 고치던지 내리면 어떤가 하고~ 기사를 본 신부님 몇 분에게서 전화를 받았다시면서, 본인은 공감하는 이야기라 한편으로는 속이 시원하기는 하나, 걱정이 되니 글을 내리면 좋겠다고 하셨습니다. "특별할 것도 없는 이야기가 왜 관심의 대상이 되었을까요?"라고 물으니, 당시 교회 장상이 집중하는 사업을 수도자가 대놓고 비판한 것이 된 것이라는 말씀이었습니다. 평소에 늘 마음 써서 어려운 이웃들과 함께하는 사목을 펼치던 분이자 신부님이셨기에 무엇을 걱정하는지 이해가 되었고, 혹시 미칠 공동체에 영향도 우려가 되어 결국 제목을 바꾸는 것으로 일단락을 지었지요. 이 시점에 왜 그때의 일을 곰곰이 되짚어 봅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리할 일이었나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이지요. 세상 한가운데서 하느님을 찾는 사람들의 마음을 미약하게나마 시원하게 해 주었다면 그저 글을 읽고 불편할 몇 분을 위해서, 제목을 바꾸는 일 따위는 하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말입니다. 무엇이 두려웠을까요? 어떤 마음에서였을까? 교회와 사회의 현안을 공개적으로 식별하고 생각하게 하고, 하느님을 찾는 사람들이 품었을지 모를 갈증을 해소하고, 위로와 힘이 되어 줄 수 있는 것은 용기와 담대함을 필요로 합니다. 지금 나에게 똑같은 일이 일어난다면 과연 자유로운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는 창간 목적이 '교회에 약이 되고 세상에 밥이 되는 언론'입니다. 또한, 복음적 소통을 위한 공간으로서 예언자의 정신을 지켜 나갈 수 있도록 다독이고, 교회의 아프고 나태한 부분을 치유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자 창간한 매체입니다. 그 몫을 향하여 15년을 달려온 <지금여기>는 교회에 대한 사회의 기대와 희망을 찾는 이들에게 샘물과 같은 존재입니다. 그러할 수 있도록 계속해서 용기를 내준 매체라고 생각합니다. 참 고마운 일이고 거룩한 일입니다. 교회의 제도적 선교의 수단으로서의 매체가 아닌 사회와 교회의 비전을 모색함으로써 세상과 교회의 변화를 위한 여론을 형성하고자 모두를 초대하는, 그래서 개방적이고 책임감 있는 토론 문화와 여론을 형성하고자 하는 노력이 서려 있는 매체로서 척박한 세상에 빛줄기를 선사하고 있다고 봅니다.

수많은 매체가 생겨났다가 사라지고 있는 현실 속에서 <지금여기>를 때로는 터덕터덕, 때로는 씩씩한 글발로 거룩하게 견딜 수 있게 한 힘은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교회를 사랑하고 세상을 사랑하는 이들의 마음과 노력들, 주님 안에서 사회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대변하고자 했던 숨어서 애쓰는 이들의 노력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지금여기>가 사회 안에서 도덕적이고 영적인 의미를 발견하고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언론, 대안 매체로 지속적으로 새로워지기를 희망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초심이 무엇이었는지 늘 되새기는 작업이 필요할 것입니다. 기후위기의 시대, 생태위기의 시대라 일컫는 이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이기에 어디를 향해 출발했고 어디를 향하여 가고 있는지를 놓치지 않도록 다잡아야만 합니다. 날마다의 쇄신과 혁명을 이루는 <지금여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혁명의 원래 의미는 소통의 작업이라고 합니다. <지금 여기>가 교회와 세상의 소통의 창구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지속적으로 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생명이 돌게 하는 에너지를 제공하는 일을 계속해 나가기를 희망합니다. 그러하기를 지치지 않도록 힘을 보태는 일은 함께하는 ‘나’의 몫이고 ‘우리’의 몫입니다. 오늘도 살고 죽고 부활하는 예수님을 증거하고, 우리 마음 안에서 뜨겁게 타오르는 열정이 지속되게 하기 위하여 우리가 소통이되고 혁명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를 알리고 <지금여기>가 교회와 세상을 잇는 적극적인 목소리로 소통과 혁명의 장이 될 수 있도록 물적 영적으로 지지하고 격려하며, <지금여기>에도 약을 주고 밥을 주는 우리가 됩시다.

이진영 수녀(세실리아)

사랑의 씨튼 수녀회 JPIC(정의 평화 창조 보전) 담당으로 일하며 온전한 생태로 나아가기를 희망하며 날마다를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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