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에게도 학생인권이 필요하다

2024-06-04     이윤경

스승의 날을 이틀 앞둔 5월 13일, 서울시의회 앞에 검은 카네이션을 단 교사들이 모였다. ‘학생인권조례 폐지에 반대하는 교사단체 스승의날 긴급 기자회견’ 현수막에는 “교사에게도 학생인권이 필요하다”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학생인권을 지키려는 교사들

기자회견에 참석한 서울의 한채민 교사는 “학생인권조례가 폐지되었는데도 축하받을 수 있는 스승의 날이란 도대체 무슨 의미겠냐”고 하면서, “학교와 한국 사회는 입시라는 거대한 차별 시스템 속에서 학생들과 교사들에게 획일적인 삶의 모양을 강요하고, 인권을 침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대부분의 학생은 바쁜 학업과 경쟁에 지쳐 자신들의 권리를 담은 조례를 폐지하려는 시도가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 자신의 삶에 대한 권리에 마음을 쓸 시간도 없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인권 침해적”이라면서 당사자의 의사를 묻지도 않고 권리를 폐지한 것에 분노했다.

이하영 초등학교 교사는 십대에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어 학교의 변화를 경험했다면서 “학생이었던 시절, 의무로 11시까지 남아 있어야 했던 야간자율학습은 선택으로 바뀌었고, 아침마다 치마 1센티미터의 변화로 인해 치마 길이를 단속받지 않아도 되었으며, 맞는 것이 당연했던 학교에서의 삶을 질문하게 했다”고 말문을 열었다. ‘교권 회복’을 명목으로 작년부터 시행한 학생 생활지도 고시는 교사와 학생들을 더 괴롭게 하고 있다면서, “문제 학생을 언제든 분리할 수 있다는 분리 조치는 교사들의 권리 보장과 연결되지 않으며 교사들은 분리를 위해 교실 내 서로를 감시하는 기구를 두고, 벌점제를 시행하고, 분리된 학생의 학습권 보장을 위해 별도의 자료를 준비해야 한다. 학생인권을 억압하는 방식은 교사와 학생 간의 관계 맺기를 어렵게 할 뿐더러, ‘정당하게 벌하는 교사’로 생존하기 위한 전략을 세우게 한다”고 지적했다.

전세란 교사는 지난 4월 26일, 학생인권조례 폐지 소식을 듣고 규탄하는 서명을 모았는데 이틀 만에 교사 1500여 명이, 현재는 1800명 넘게 서명에 참여했다면서 참여한 교사의 목소리를 대신 전했다.

“교사가 신념을 가지고 가르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달라는 것이지, 학생의 인권을 무시하겠다는 것이 아니다”, “인권이 가진 가장 큰 진실은 모두의 인권이 공존한다는 것이다. 인권은 서로 갉아먹지 않는다”, “교육의 후퇴, 역사의 역행에 교사로서 부끄럽고 분노합니다”, “우리의 고통과 뜨거웠던 요구를 학생인권조례 폐지로 입막음하지 말라!”

지난 13일 서울시의회 앞에서 교사들은 학생인권조례 폐지에 반대하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 제공 = 전국학생인권교사연대(준))

성보란 경기도 고등학교 교사는 경기도교육청이 학생인권조례 대안으로 내세운 ‘학교 구성원의 권리와 책임’ 조례를 비판하며, “이 조례는 공동의 윤리와 돌봄의 가치가 사라진 현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적 자원 관리와 통제의 근거가 될 것이 명백하다”고 강조했다. 현재 한국의 청소년들은 능력주의를 내면화하며 죽음의 입시 경쟁과 각자도생의 현실에 내몰려 있다면서, “그런 현실을 함께 겪으며 상호작용하고 있는 교육 노동자, 교사들의 인권도 이와 같은 기만적인 조례로 빼앗으려 하지 말라”고 덧붙였다. 또, 학생들의 인권은 고작 학습할 권리를 보장하기 위함이 아니고 성별 정체성과 성적 지향, 장애, 종교, 임신 여부, 인종과 민족, 계급 등을 이유로 차별받지 않을 권리이며, 학생 인권이 삶에서도 적극 보장받을 수 있도록 많은 공적 자원, 예산, 공공 인력을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북의 고영주 교사는 전북학생인권조례 덕분에 조금은 교사로서 덜 부끄럽게 살게 되었다며 자신의 경험을 전했다. “학생인권조례를 몰랐다면 저는 아직도 체벌을 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인성 교육을 한다면서 학생에게 모욕감을 주는 언사를 하고서는 아무렇지 않게 여기고 살고 있을지 모릅니다. 야간자율학습 시간에 도망가는 학생들을 잡겠다고 현관문을 쇠사슬로 잠그고 그 앞을 지키고 서 있으면서 학생의 안전을 도외시한 채 살고도 문제를 느끼지 않고 살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학생들을 위한다면서 강제로 야간자율과 보충 수업을 강요하고, 참여하지 않는 학생들에게 생활기록부 나쁘게 써 줄 거라고 위협하면서도 문제를 모르고 살고 있을지 모릅니다. 학생이 수업 시간에 핸드폰을 사용했다고 핸드폰을 뺏고서 일주일 뒤에 돌려주는 것이 교육이라고 생각하고 살고 있을지 모를 일입니다. 다행히 학생인권조례 덕분에 저는 그런 잘못을 멈추고 더 교육적인 일들에 관심을 두고 좀 더 의미 있는 교사 생활을 하고자 노력할 수 있었습니다. 전북학생인권조례 덕분에 저는 저 자신을 긍정하면서 교사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대구의 현유림 교사는 대구를 예로 들면서 “학생인권조례가 없다고 해서 교사의 인권이 지켜지는 건 아니다. 왜냐하면 교권, 즉 교사의 노동권을 침해하는 것은 학생인권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보다 특수한 지원이 필요한 학생들을 방치하는 교육청, 마음대로 일을 만들어 놓고 평교사들한테 온갖 실무를 떠넘기는 교감, 기존 출근 시간보다 일찍 와서 맨발걷기 하라고 하는 교장, 학급당 학생 수는 안 줄이면서 출생율 운운하며 교사 수는 자꾸 줄여서 독박 교실 만드는 정부와 교육부, 이들이 교사들의 교권을 침해하고 있다”면서 “직접적으로 교사들을 괴롭히는 이들의 잘못은 시치미를 떼고, 별 관련도 없는 학생인권조례의 발목과 머리채를 잡아 끌고 오는 이유는 ‘교사들이 죽어 가는 이유가 자신들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학생이라는, 또 다른 약자 탓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강원도의 남정아 교사는 네 번이나 실패한 강원도학생인권조례 사례를 들면서 학생인권조례가 왜 필요한지 절실함을 담아 설명했다. “학생은 사람입니다. 한 해 300명이 넘는 학생, 그 속에 고등학생은 200명 가까운 학생이 세상을 스스로 버렸습니다. 거의 매일 한 명의 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이틀에 한 명씩 고등학생들이 세상을 등졌습니다. 학교에 죽음의 그림자는 항상 드리워져 있습니다. 교실이 무너졌다, 교권이 땅에 떨어졌다는 말로 학교를 학생들이 살고 싶은 공간으로 만들 수 없습니다. 죽음의 시간 앞에서도, ‘학생인권조례 폐지’는 강행되고 있습니다. 학교는 어떤 곳이어야 하는지, 교육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우리는 다시 물어야 합니다. 최소한 학교는 사람이 견디는 곳이 아니라, 살고 싶은, 살 만한 곳이어야 합니다. ‘지도’와 ‘훈육’은 교육이 아닙니다. 차별과 불평등으로 삶에 대한 배움과 성장은 기대할 수 없습니다.”

교권침해 가해자인 제자들

작년 7월 이후 발표한 교권보호 대책은 학생 분리뿐만 아니라 학생을 벌주는 수단으로 학교 현장에 급속도로 확산하고 있다. 상황에 따라 교권침해 여부를 알려 주고 대처 방안을 안내하는 세부 매뉴얼도 배포했다.

올해부터 교육지원청으로 이관한 교권보호위원회에는 주로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등 특수한 지원이 필요한 초등학생들이 가해자로 신고되어 참석한다. 교사는 청구인, 가해 학생은 피청구인이다. ADHD 학생 관련 사안 대부분이 고의성 여부를 입증할 방법이 없어 교권 침해로 인정되어 조치를 내릴 수밖에 없는데, 도대체 이 학생들에게 반성을 하게 할 조치가 무엇인지 매번 난감하다.

한국은 학생으로 살아가기 힘든 나라다. 교사도 학부모도 모두 힘들다고 얘기하지만 학생에 비할까. 그럼에도 검은 카네이션을 단 선생님들이 쏘아올린 불꽃에 한 가닥 희망을 걸어 본다. 평등과 존엄을 향한 신호탄이 되길.

자료 출처 : 전국학생인권교사연대(준) 보도자료

이윤경

사교육 기업에서 홍보 업무를 담당하다 2011년 여성단체 상근 활동가로 취업한 후 마을공동체 살리기, 차별 반대, 교육개혁 운동 등 활동가의 삶을 살고 있다. 소비자를 설득하는 마케터에서 활동가, 상담가, 조직가로 지나온 시간 속에 언제나 ‘진심’을 다했던 경험들이 자랑이자 자산이다. 공저로 "대한민국 교육트렌드 2024", "한국 교육의 오늘을 읽다", "학교, 회복을 담다", "체벌 거부 선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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