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노드, 아직 끝나지 않았다
베트남과 ‘야전병원’
40여 년 만에 베트남 호치민에서 옛 친구를 만났다. 우리신학연구소 청년 프로그램인 ‘베트남 이동학교’ 참가자들과 작별 인사를 나누고 남은 하루. 친구의 수녀원으로 향하며 설레는 마음 따라 기억도 먼 그때로 돌아가고 있었다. 자그마한 본당의 중고등반을 하나로 합쳐서 ‘성 프란치스코 성서반’으로 이름 붙인 곳에서 우리는 30-40여 명의 친구, 선후배와 함께 꿈 같은 중고교 시절을 보냈다. 교리반에서 주던 ‘노을빵’과 커다란 머그컵에 담긴 따뜻한 우유 한 잔은 또 그 시간을 얼마나 기다리게 했던가! 수산나가 호치민 수녀원에 온 지는 15년이 됐다고 했다. 그 사이 여러 공동체를 일구었고 베트남 수녀 성소자도 많이 양성해낸 ‘한국 교회의 보배’라는 극찬을, 정작 그곳에 파견된 다른 수녀회 양성장에게서 들을 수 있었다. 서로 세월의 흔적을 제대로 일별할 사이도 없이 청원자 수녀 수십 명에게 둘러싸여 점심을 먹으며 밥이 어디로 들어가는지, 입보다 귀와 눈이 더 호사를 누렸다. 가장 가난하고 어려운 곳에 공동체를 세우고 힘들고 고통받는 사람을 돕는다고 했다. 베트남 공산정부 통치 아래 거미줄처럼 엮인 공안들의 감시망 아래서 활동해야 하니 어려움이 컸을 텐데, 이들의 표정이나 행동거지에서 그런 흔적은 찾기 어려웠다. 고통스럽고 힘겹게 살아가는 이들이 있는 곳으로 가야 하는 것이 ‘선교하는 제자’임을 글자 그대로 살아내야 하는 게 복음이라는 듯, 이들의 얼굴은 풋풋한 미소로 빛났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말한 ‘야전 병원’으로서의 교회가 있다면 이런 사람들의 모습으로 싹트는 게 아닐까. 옛 불교인들의 땅이자 자본주의와 공산주의가 별거 중인 부부처럼 가까운 듯 멀게 살아가는 베트남에서 그 가르침을 그렇게 실천하는 것이 마치 유일한 길인 것처럼 절실하게....
절실한 평신도 사목활동가 양성
어쩌면 그런 절실함은 지금 벌어지고 있는 시노드에 임하는 평신도, 특히 교회 개혁을 염원하는 평신도 신학자와 사목 활동가들에게서 느껴지기도 하는 듯하다.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성직자와 동등한 파트너로 일해 본 적이 없는 한국 평신도들에게 외국 교회의 사례는 놀라움으로 다가온다. 지난해 10월 초 시노드 총회가 막 시작하는 시점에 독일의 한 평신도 기구에서 세계 평신도 사목 활동가를 대상으로 개최한 워크숍에서 언급한 사례를 간단히 소개해 보자. 먼저 독일의 에센 교구에서 사제 부족의 어려움을 겪는 교구 상황을 고려해 독일에서 처음으로 평신도 사목활동가(lay ministers) 18명이 세례성사를 집전하도록 공식 허용한 사례가 눈에 띈다. 또한 오스트리아 비엔나교구에서 유급 사목 협력자들이 미사 강론을 하도록 공식 허용한 일이나 또 유럽이 아니라 저 남미의 볼리비아에서 유급 평신도 사목활동가들이 팀을 이루어 교구나 지구 차원의 평신도 교리교사 양성과 신자 교육 및 전례를 담당하고 있는 사례들은1) 한국 교회에서는 요원하기만 한 듯 보이지만 이 나라들의 교회에서는 이미 일상의 현실이다.
사실 평신도 사목 활동가를 조력자나 보조자가 아니라 동등한 협력자요 파트너로 활약하고 있는 외국 교회의 예는 조금만 눈여겨본다면 여러 곳에서 찾을 수 있다. 프랑스의 대표적 교회개발 지원기구인 CCFD, 독일 아헨 및 뮌헨교구의 미씨오, 캐나다 카리타스 등의 교회 기구에서 대표나 주요 직책을 맡고 있는 평신도 사목활동가가 이끌어 가고 있는 교회 문화나, 프란치스코 교황직 아래 교황청 여러 기구에서의 평신도 등용 사례들, 또 독일 주교회의처럼 여성 평신도가 주교회의 사무총장직을 수행하고 있는 사례, 또 미국 여러 교구에서 평신도 (여성) 설교자들의 활약은 역설적으로 한국 교회의 성직중심주의로 소외된 평신도상을 예외적인 것으로 만들어 가고 있다고 보인다. ‘성직중심주의에 대한 비판을 위한 비판’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평신도 사목활동가나 일꾼들을 어떻게 지원하고 양성할 것인가를 (적어도 1회기 시노드 종합보고서에서 제시한 만큼이라도) 구체적으로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이제라도 한국 교회를 ‘위기’에서 구해내고자 한다면 투신할 각오가 돼 있는 청년 사목 활동가들을 지원하고 양성하는 것이 가장 시급하고 절실한 과제 중 하나로 보인다.
시노드, 아직 끝나지 않았다
저 워크숍의 관심사와 비슷한 주제를 다룬 ‘세계 가톨릭 교회개혁 네트워크’(CCRI)의 온라인 세미나에서 나온 제안은 더 구체적이었다. 지난 5월 초에 개최한 이 회의에는 5대륙 24개 나라에서 50여 명이 참가했으며 논의 결과를 교황청 시노드 사무국으로 직접 전달하였다. 이 교회 개혁 그룹에서 나온 제안은 여럿이나 이 글의 맥락과 관련된 것만을 소개하면, 우선 본당과 교구의 대표기구인 ‘사목위원회’나 ‘사목평의회’에서는 논의뿐만 아니라 의사 결정도 할 수 있어야 하며 그것의 활동을 신자들에게 정기적(3년)으로 보고해야 한다고 제시한 점이 눈에 띈다. 또한 교회 통치(Church governance) 문제에서 성직자에게만 그 자격을 제한하여 평신도, 특히 여성의 참여를 배제하고 있는 교회법(129조와 274조)의 개정을 촉구하기도 했다.2) 이는 ‘시노드 1회기 종합보고서’ 제8장에서 ‘사목구조’(pastoral structures)를 다루면서 ‘평신도의 참여를 북돋고 은사와 직무를 활성화하도록 돕는 방식으로 재조직되어야 한다’(12항)는 제안에 상응하는 응답으로 보인다. 나는 이와 관련해 지난번 칼럼에서 “본당과 교구에 설치된 기존의 사목회나 참사회를 본당 사제의 취향이나 소수의 참사들과 주교만이 모여 결정하는 형태가 아니라, 명실공히 평신도가 광범위하고 왕성하게 참여해 정책을 함께 논의하고 결정하는 공식 틀”3)로 바꿔야 한다고 제안한 바 있다. 이는 현재 교회법상 본당 신부와 교구장 주교의 ‘자문’ 기구에 불과한 사목평의회를 ‘공동합의적 길’을 따르는 의결기관으로 만들자는 제안이며, 또 이는 시노드 1회기 종합보고서의 ‘교회법 개정 필요성’(1장 18항, 12장 10-11항, 13장 4항)과도 상응하는 대목으로도 여겨진다.
그러나 한국 교회에서는 이런 얘기에 대해 어떤 울림이나 공명이 전혀 되지 않는 듯이 잠잠하기만 하다. 그 낯선 ‘시노달리타스’라는 단어를 아무렇지 않게 강변해 오던 신학자와 성직자들은 어디에 가고 마치 시노드가 이미 다 끝나 버린 것처럼 침묵하고 있는가. 특히 시노드가 한창인 지난해 10월 열린 추계 주교회의 정기 총회나 올해 열린 춘계 총회 결과에도 시노드와 관련한 내용은 전혀 없었다. 또한 로마에서 열린 1회기 시노드 총회가 끝나고 난 뒤에 그 회의에서 어떤 결과가 있었는지, 무슨 내용으로 어떤 논의가 있었고 아시아, 특히 한국 교회에는 어떤 점에서 의미가 있었으며, 따라서 2회기 때는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등에 대해서 그간 시노드 준비 과정에 참가해 온 전체 ‘하느님 백성’에게 그 어떤 공식 보고도 없었다.4) 이런 무관심과 모르쇠의 태도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이는 1회기 종합보고서에서 "내년 시노드 과정에 부제, 사제, 주교들이 더욱 능동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방식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제안이나, 또 총회 2회기 이전에 "공동협의성(synodality)의 근본 원리와 실천을 심화시키는 신학적 작업을 증진할 것을 제안"한다는 권고와도5) 배치되는 모습이다. 사실이 그러하다면 한국 교회에서 그동안 신자들에게 ‘경청과 성찰’을 그토록 강조해 왔음에도 정작 교회 지도자들은 경청도, 성찰도 하지 않고 있다는 말밖에 안 되지 않는가? 이런 예단이 사실이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바라건대, 아직 2차 회기 총회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있으니 진정성 있는 리더십을 보여 주기 바란다. ‘검찰 독재’로 민주화의 후퇴와 경제 양극화에 따른 고통을 강요당하고 있는 이 시대에 다시 한번 한국 천주교회가 희망이 되도록 교회 개혁으로서의 ‘시노드의 길’에 성직자들이 적극 나서 주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1) 노주현, 「교회와 함께 걷는, 평신도를 만나다-세계 평신도 직무자 모임의 울림」, 천주교의정부교구 사목연구소, 2023.12. 52쪽. 이 모임에는 한국을 포함해 4개 대륙 10개국에서 전문 평신도 활동가 21명이 참석했다
2) Submission from Catholic Church Reform International CCRI Agenda Issues for 2nd Assembly of the Synod on Synodality (https://catholicchurchreformintl.org/with-the-greatest-gratitude/); 제129조 ① 하느님의 제정으로 교회 안에 있고 재치권이라고도 불리는 통치권의 자격자들은 법 규정에 따라 성품에 오른 이들이다.; 교회법 제274조 ① 성직자들만이 그 집행에 성품권이나 교회 통치권이 요구되는 직무를 얻을 수 있다.
3) 황경훈, “베칭 주교가 옳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2024.01.30
4) “세계주교시노드 제16차 정기총회 참석한 정순택 대주교”, <가톨릭신문> 2023.11.14. 이 인터뷰에서 1회기 시노드 총회의 일반적인 분위기나 논의 주제에 대한 인상평은 간략히 들을 수 있었으나, 종합 보고서에서 제시한 구체적인 제안들을 한국 교회에서 어떻게 받아들이고 논의하여 2회기 시노드 총회를 준비할 것인가에 대한 얘기는 전혀 없었다.
5) Synthesis Report, XVI ORDINARY GENERAL ASSEMBLY OF THE SYNOD OF BISHOPS First Session (4-29 October 2023), Part I, no.1-n and 1-p.
황경훈
우리신학연구소 선임연구원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