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직임을 버린 인류의 위기
5월 중순인데 강원도에 대설주의보가 발령되었다. 뉴스 사회자는 최대 7센티미터 정도 쌓일 수 있다며 주의를 당부했는데, 꽃샘추위를 넘는 기상이변이다. 5월에 아이젠을 챙기지 않을 테니 무리한 산행은 자제해야겠지만, 예년의 날씨로 금세 돌아갈 것이다. 23.5도 기운 상태로 1년에 한 차례 태양을 공전하는 지구의 날씨는 1년 주기로 반복하므로 일탈은 오래가지 않을 것이다.
46억 년 전, 태양에서 분리된 지구는 23.5도 자전축으로 하루 한 차례 돌고 위성인 달은 한 달에 한 차례 지구를 타원으로 돌면서 중력을 전한다. 밀물과 썰물이 그렇다. 지구 무게의 80분의 1인 달은 표면의 열을 거의 잃었지만, 지구는 여전히 뜨겁다. 살짝 굳은 지각 바로 아래 펄펄 끓는 마그마는 화산과 지진으로 주름진 지각을 끌어 올리거나 뒤집으며 시시때때로 바다와 육지를 거대하게 변형한다. 그렇더라도 지구에 전하는 태양 에너지의 총량은 변하지 않는다.
위도와 지형에 따라 지구의 날씨는 다채롭다. 북반구 중위도의 우리나라는 사계절이 뚜렷한데, 산간과 섬 날씨는 평야와 같지 않다. 날씨가 만드는 생태계는 경이롭기 그지없다. 46억 년 지속된 공전과 자전, 그리고 달의 중력은 지각에 무궁한 생태계를 펼쳐 놓았다. 바다에서 형성된 생태계는 대략 5억 년 전, 먼지와 방사능이 크게 줄어든 육지로 올라왔으며 바다와 육지에서 다채롭게 진화한 동식물로 구성된 생태계는 변화하면서 균형을 유지했지만, 5차례 대멸종을 겪어야 했다. 지진이나 화산, 그리고 운석 충돌로 움직임을 별안간 잃었고 당시 생물종의 4분의 3이 100만 년에서 1만 년 사이에 멸종했다. 생태계 균형을 무너뜨린 환경 격변이 원인이었다.
6500만 년 전, 다섯 번째로 일어난 대멸종은 멕시코 유카탄반도를 강타한 운석을 원인으로 추정한다. 거의 2억 년 번성한 거대 동식물 대부분이 고작 1만 년 동안 사라졌지만, 인류가 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생물의 진화 과정은 참으로 모질다. 시간이 길든 짧은, 변화무쌍한 생태계에 거칠게 적응해야 한다. 필연은커녕 의지와 무관한 진화는 발전도 개선도 아니다. 다양성을 기반으로 움직이는 운이다. 지구 자체의 환경과 생태계의 변화는 종잡기 어려운데, 어떤 종의 불행이 새로운 종에게 진화의 기회가 될 수 있지만 예측은 불가능하다.
사람의 진화를 연구하는 인류학은 변화를 기억하는 다양한 화석으로 당시 환경과 생태계를 추정하는데, 현생 인류는 그중 하나다. 오직 호모 사피엔스만 살아남았다. 나머지 모두 사라진 이유가 있을 텐데, 이 원고의 주제는 아니다. 사냥 흔적을 자연에 남긴 크로마뇽인을 조상으로 여기는 인류는 대략 100만 년 전 생태계에 등장한 뒤 1만 1500년 전 경작을 시작했다. 자신의 터전에 편견을 갖기 시작한 사건이었다. 필요한 식물을 심으려고 다른 식물을 파냈다. 심은 식물을 탐하는 동물을 해충이라며 내쫓거나 죽였고 해충을 먹거나 쫓아내는 동물을 반기며 길들였다. 그러다 급기야 사람 사이에 편견이 생기고, 우열로 변질된 편견은 자비 없는 경쟁을 자신의 사회 안에 불러들였다.
경쟁에서 승리한 자는 편견을 강화하며 차별을 가혹하게 부추긴다. 승자는 우월해지고 패자는 열등해진다. 편견이 삶을 지배하면서 인간은 자신과 자연의 다양성을 지워 나갔다. 다양성을 잃은 사회는 권력을 쥔 자가 요구하는 목표를 향해 줄을 서면서 단순해진다. 다양성이 제거되는 현상을 승자는 발전으로 이해하는데, 승자가 권력을 독점하는 사회는 변화를 거부한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승리에 집착하는 사회는 갈등을 쌓는다. 시대와 장소에 따라 다양하게 형성된 문화마저 경쟁의 대상으로 변질되면서 반목과 갈등은 인류 역사에 각인되고 말았다.
복잡하고 커다란 도구를 사용하면서 인류는 편견의 규모를 키웠다. 필요한 도구를 스스로 만들고 고치던 인류는 자연 속에서 이웃을 배려하며 공존했지만, 인구가 늘어나면서 심각해지는 갈등과 경쟁을 회피해야 했다. 자연이 제물이 되었다. 자연을 허물며 갈등을 해소하던 인류는 생태계의 균형을 무너뜨리기 시작했는데, 규모가 커지면서 분별을 잃었다. 자연에서 구하던 소박한 에너지를 버리고 화석연료를 태우며 통제할 수 없는 에너지를 사용하면서 인류의 편견은 탐욕으로 변질돼 자연에 돌이킬 수 없는 부담을 전가했다. 어느새 80억을 맞은 인구는 위기를 자초하고 말았다.
파괴한 핵으로 괴멸적 에너지를 손에 쥔 인간은 생명체의 핵을 파괴해 유전자를 꺼냈다. 핵을 잃은 자연은 46억 년 동안 유지하던 움직임을 잃었다. 균형 잃은 생태계가 속절없이 무너지자, 인류는 생존 기반을 잃었다. 자연은 어떻게든 움직여야 한다. 5차례의 대멸종 역사를 기록하는 지구는 새로운 지층을 준비한다. 가장 늦게 끼어든 인류를 제거해야 생태계가 움직이지 않겠는가. 지구는 이전보다 현저히 빠른 '제6의 대멸종'을 준비한다. 위기를 위기로 인식하기를 거부하는 인류는 자신이 방조한 ‘인류세’(Anthropocene)를 마주한 것이다. 초미세먼지, 마이크로플라스틱, 방사능을 고농도로 포함하는 인류세 지층 위에 어떤 생태계가 펼쳐질지 상상하기 어려운데, 인류는 존재할 수 없다.
권력을 쥔 인류는 겁나지 않은가 보다. 5월에 대설주의보가 발령되고 동남아시아는 체감온도 섭씨 50도를 오르내리지만, 대한민국은 움직일 생각이 없다. 기상이변이 무섭게 다가오고 수많은 기후학자는 서둘러 대비하자고 목이 쉬는데, 강 건너 불이다. 하지만 지각에 기록된 역사가 증명하듯, 균형 잃은 생태계의 파국은 명백하다. 기반을 잃은 인류는 버틸 재간이 없다. 시간은 얼마나 남았을까?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의 학자들은 10년 안에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데, 대한민국 정부는 여전히 모르쇠다.
많은 환경운동가는 에너지 대안을 요구하고, 솔선을 모르는 정치인도 일부 동조하는데, 에너지 대안? 안일하다. 기후위기 극복을 넘어 미래세대의 생존 기반을 확보하는 대안을 찾아 서둘러 실현해야 한다. 생태계의 회복탄력성으로, 다양성으로 가능하다. 대안은 생태계가 움직이던 과거에 있다. 경쟁과 갈등을 피해 공감과 연대로 자연과 공존하던 조상의 삶이다. 파국을 늦추려면, 권력자부터 솔선수범하는 가혹한 희생이 필요하다. 힘겨워도 미래세대의 생존을 위해 어쩌면 가장 이성적이면서 도덕적인 도전이고, 절박한 실존적 의무다.

박병상
인천 도시생태ㆍ환경연구소 소장, 60+기후행동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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