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해 봐, 전쟁이 났는데 아무도 전쟁터에 안 나가는 거야!”

전쟁을 거부하라

2024-05-14     게르만 호흐

2024년 4월 22일,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SIPRI)는 2023년 전 세계 군사비 지출 분석 결과를 발표했다. 이는 2조 4400억 달러(3358조 6600억 원)로 사상 최고치였다. 비교를 위해 유엔 연구 결과를 참조하면, 전 세계 모든 사람에게 적정한 양의 식량을 제공하는 데 매년 390-500억 달러가 필요하다. 이 액수는 세계 군사비 지출의 단 2퍼센트에 불과하다. 경악할 만한 불균형 아닌가! 나치는 “버터 대신 대포!”라는 슬로건으로 식량보다 군비 확충이 우선임을 선전한 바 있다.

2009년 이래 전 세계 모든 대륙에서 국방비 지출이 동시에 증가했다. 이러한 증가의 주요 동인은 우크라이나 전쟁, 가자 전쟁,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긴장 고조다. 미국은 9160억 달러로 세계 최대의 국방 예산을 책정하고 있고, 중국이 2960억 달러로 그 뒤를 따른다. 나토 국가 모두를 더하면 전체 군사비 지출의 55퍼센트에 이른다. 미국에서는 3.4퍼센트, 유럽에서는 2.8퍼센트, 중국에서는 1.7퍼센트의 경제 생산량이 군사비로 흘러 들어간다. 특히 러시아(1090억 달러)와 우크라이나(648억 달러)의 군사비 지출이 급격히 증가했다.

이제 유럽은 러시아보다 군비에 더 많은 돈을 쓰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경우 지난해 357억 달러에 달한 미국과 유럽 국가의 군사지원비도 추가해야 한다. 그럴 경우 우크라이나 예산은 러시아 국방비의 91퍼센트에 달한다. 2014년 이후 우크라이나의 군비 예산은 1272퍼센트 증가했다. 미국은 최근 610억 달러 규모의 새로운 원조 패키지를 승인했다. 이스라엘에 264억 달러, 타이완에 81억 달러를 추가로 지원했다. 이는 현재 지정학적 핫스팟을 정확히 반영한다. 서방세계에서는 여러 언론과 정치인이 마치 지구가 멸망 위험을 벗어난 듯 환호했다. 주요 방산업체 주가는 큰 폭의 상승으로 화답했다. 무기 산업은 세계적인 군사화 추세 덕분에 승승장구하고 있다. 이는 또한 미연방 하원 공화당 의장인 마이크 존슨이 군사 지원에 대한 공화당 승인을 정당화할 수 있는 근거가 되기도 했다. 서방세계 최대 탄약 생산업체인 독일 무기회사 라인메탈도 엄청난 수익 증가를 기록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전에는 연간 7만 발의 탄약을 판매한 데 그쳤지만, 생산 능력은 2024년 말까지 70만 발, 2027년에는 110만 발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이 중 우크라이나로 전달되는 탄약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할 것이다.

대규모 군사 지원에도 우크라이나는 심각한 문제에 직면해 있다. 러시아 침공으로 전쟁이 시작된 이래 인명 피해가 경악할 정도로 늘어났다. 우크라이나 군인 수십만 명이 목숨을 잃었고, 그로 인해 우크라이나 군대가 수세에 몰렸다. 현재 수십만의 신규 병력을 모집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러시아의 공식 정보에 따르면, 매달 자원입대자 3만여 명으로 병력을 증강할 수 있는 러시아군과 달리 우크라이나군은 국가 차원의 공식 동원령에 의존하고 있다. 그런데 국민들은 이에 저항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소식통을 인용한 폴란드 신문 <제치포스폴리타>의 보도에 따르면, 지난 2년 동안 군 복무 대상인 우크라이나 남성 약 100만 명이 우크라이나 국내에서 숨어 지냈다. 이와 비슷한 수의 남성이 대부분 유럽연합에 속하는 해외 국가로 도피했다. 군복무 연령에 해당하는 우크라이나인 약 20만 명이 독일에서 피난하고 있다.

수천 명의 우크라이나인은 군 복무를 피하기 위해 루마니아 국경에 있는 티서강을 헤엄쳐 건넜다. 이들 중 24명은 도강 중 목숨을 잃었다. 도망치는 사람들이 선택하는 탈출 경로는 상당히 위험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전쟁이 시작된 직후, 징집 연령에 달한 우크라이나 남성은 더 이상 국경을 넘어 왕래할 수 없게 되었다.

(이미지 출처 = Pixabay)

정부와 군 지도부는 앞으로 병역을 기피한 이들에 대해 더 엄격한 조치를 취할 예정이다. 지난 4월 중순, 우크라이나 의회는 복무 의무가 있는 18살부터 60살 사이 모든 남성은 첫 번째 판정에서 징병이 면제된 대상자까지 포함해 60일 이내 징병청에 신고해야 한다는 새로운 동원법(動員法)을 통과시켰다. 해외에 살고 있는 우크라이나 국민들 역시 자신의 개인정보를 등록하거나 업데이트할 의무가 있다. 전자 등록도 가능하다. 등록 의무를 준수하지 않으면 여권 또는 기타 개인 서류 발급이나 연장 같은 영사관 서비스를 받을 자격을 잃는다. 또한 등록하지 않은 우크라이나 재외국민은 우크라이나 시민권을 박탈당할 위험이 있다.

한편, 우크라이나 국민이 체류하는 국가들, 특히 폴란드, 에스토니아, 리투아니아 그리고 독일까지도 이제는 이들에게 고국으로 돌아가라는 압력을 가하고 있다. 예를 들어, 최근 폴란드 외무장관은 이렇게 말했다. “젊은 우크라이나 청년들이 카페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보면, 우리 국민들은 분노하는 것 같습니다. 우크라이나를 돕는 데 얼마나 많은 노력이 드는지 들어 알고 있으니까요.” 우크라이나와 에스토니아 정부는 에스토니아에 살고 있는 우크라이나인의 본국 송환에 곧 합의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 키이우를 방문한 미국 국무부 유럽 및 유라시아 담당 차관 제임스 오브라이언은 “우크라이나는 전투에 필요한 인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다시 한번 강조했다. 그러니까 “서방세계의 자유”를 우크라이나인 스스로 “마지막 1인까지” 싸워 지켜야 하는 셈이다.

전쟁 초기부터 최전선에서 싸워 왔고 이제는 시급하게 귀향을 요구하는 군인에게도 이 동원법은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이 부대들의 예정한 해체가 연기되어 군인들이 계속 전선에 남아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인원 충원이 안 되기 때문에 이들이 전선을 떠나면 전선은 무너진다. 해당 군인들 사이에 엄청난 분노가 일어나면서 탈영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전쟁이 시작된 후 우크라이나 헌법이 원래 보장했던 양심적 병역거부 권리는 새롭게 적용한 계엄령에 의해 폐지되었다. 양심적 병역거부자는 이제 수년간 징역형에 처해질 수 있다.

5월 15일은 세계병역거부자의 날이다. 세계 수많은 조직과 단체들이 이날 군사화, 전쟁 및 군복무에 저항하기 위해 세계적인 “전쟁을 거부하라(Refuse War)” 캠페인을 시작한다. 최근 설문조사에 따르면 군복무 연령의 우크라이나 남성 중 70퍼센트 이상이 군입대를 원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제평화기구들은 우크라이나인뿐만 아니라 러시아와 벨라루스의 양심적 병역거부자와 탈영병을 기소로부터 보호하고 이들이 망명 자격을 얻을 수 있도록 힘을 기울이고 있다.

독일의 두 단체 ‘프로 아쥘(Pro Asyl)’과 ‘커넥션(Connection)’의 추산에 따르면, 최소 25만 명의 군 복무 대상자가 2022년 2월부터 2023년 9월 사이 러시아를 떠나 아르메니아, 조지아, 카자흐스탄, 세르비아, 튀르키예 등의 국가로 가 보호를 요청했다. 서유럽으로 진출할 수 있었던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예를 들어 독일에서는 2023년 말까지 군복무 연령에 이른 러시아 남성 약 3500명이 망명을 신청했지만 지금까지 이들 가운데 겨우 90명만 망명 자격을 인정받았다.

독일에서 평화운동이 정점에 달한 1980년대에 이런 슬로건이 인기였다. “상상해 봐! 전쟁이 났는데 아무도 전쟁터에 안 나가는 거야!” 이 슬로건은 현재에도 여전히 의미가 있다.

게르만 호흐(Germann Hoch)

독일 프라이부르크 출생. 프라이부르크 대학에서 라틴어 및 그리스어, 프랑크푸르트 대학에서 정치학과 독문학을 복수전공했다. 기쎈 대학에서 '외국인을 위한 독일어(Deutsch als Fremdsprache)' 전공으로 석사 학위를 받고, 프랑크푸르트 대학 강사로 재직했다. 한국에 와서 한양대학교 독어독문학과 교수로 일하고 정년퇴임한 뒤, 번역과 독일어 교육을 계속하고 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