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술 파밀리아, 자연권으로서의 이주 권리

2024-05-07     김민

비오 12세는 여러모로 흥미로운 인물이다. 그는 홀로코스트에 대해서 라디오로 중개한 성탄 메시지를 통해 여러 차례 비난하였고, 실제로 전쟁 중에 유대인 난민들이 무사히 피난할 수 있도록 실질적인 도움을 제공하였다. 하지만 동시에 교황대사 시절 오늘날의 시각에서는 상당히 위험한 수준의 반유대적인 언행들, 예컨대 유대-볼셰비즘과 같은 레토릭을 사용한 까닭에 오늘날까지도 반유대주의 내지는 홀로코스트 옹호자가 아니냐는 의심을 받고 있다.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이 벌어지기 바로 직전 교황으로 선출된 비오 12세는 특이하게도 성탄 라디오 메시지로 전쟁의 폭풍과 그 희생자들에 대해서 발언하였다. 다른 교황들과 달리 그는 교황령이나 회칙보다는 마치 독일에서 나치가 그랬던 것처럼, 미국에서 루스벨트가 그랬던 것처럼, 그리고 전시 영국에서 처칠이 그랬던 것처럼, 비교적 새롭고 훨씬 영향력 있는 매체를 통해서 여러 국가의 수백만 사람에게 말을 건넸다. 물론 파시즘과 나치즘, 그리고 소비에트 러시아에서 교황령이나 회칙이 전달되기 어렵다는 이유도 있겠지만, 그가 매우 지적이면서도 금욕적인, 다시 말하면 라디오 같은 어딘가 포퓰리즘적인 냄새가 물씬 나는 근대의 기물과는 거리가 먼 캐릭터임을 감안하면 그 자체로 흥미로운 셈이다. 아마도 유능한 전기 학자가 그에 관해 좋은 전기를 내놓는다면 이 흥미로운 역설을 더 쉽게 이해하게 되리라.

비오 12세의 성탄 라디오 메시지는 상당히 흥미롭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 시기 동안 그의 성탄 메시지는 변화하는 전황을 매우 충실히 반영하였는데, 주로 나치로 인하여 탄압받는 유럽 민족들과 유대인들을 위로하고 전쟁 난민들에 대한 지원을 촉구하는 내용이었다. 바로 이런 이유로 가톨릭 사회교리(혹은 가톨릭 사회적 가르침)를 연구하는 이들이 비오 12세를 연구할 때에는 성탄 라디오 메시지를 참조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1952년 8월 1일 비오 12세는 그로서는 드물게 교황령 형태로 사회교리에 관한 문서를 발표하였다. ‘엑술 파밀리아’ 혹은 ‘엑술 파밀리아 나자레타나’라는 문서는 이렇게 시작한다. “피난 온 나사렛의 성가족(Exsul Familia Nazarethana)은 모든 난민 가족의 원형입니다.” 엑술 파밀리아는 꽤 상당한 분량의 문서로, 사실 전쟁 기간 동안 성탄 라디오 메시지에서 흘러나온, 전쟁과 그 희생자들에 대한 비오 12세의 고민과 성찰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문서는 크게 네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비오 12세 교종 (이미지 출처 = catholicherald.co.uk)

비오 12세 교종 (이미지 출처 = catholicherald.co.uk)

주제1: 이주민과 난민의 원형, 이집트의 성가정

첫째, 비오 12세는 이주민과 난민의 원형을 이집트로 피난 온 성가정에서 찾으면서 예수님의 육화 사건을 난민의 시간으로 확장시킨다. 예수님의 육화 사건은 기적과 수난, 죽음과 부활로만 요약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겪는 모든 고통의 순간까지 망라하는 것이고, 그런 점에서 이집트에서의 성가정은 모든 종류의 유배 중에 있는 이들의 시간을 품게 된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교회는 이주민과 난민의 고통과 시련에 동참해야 하고 이들을 돌봐야 하는 것이다.

주제2: 교회는 어떻게 이주 난민과 함께해 왔나?

둘째, 바로 이러한 까닭에 교회는 늘 이주민과 난민과 함께했다. 비오 12세는 문서의 상당한 부분을 할애해서 교회가 어떻게 이주 난민과 함께했는지 교회 이주 사목의 역사를 회고하였다. 이 부분에서 특기할 만한 것은 비오 12세가 이주 난민을 위한 교회의 돌봄 역사를 조망하는 시각 두 가지다. 우선 비오 12세의 눈에 비친 이주 난민은 오늘날 우리의 시각보다 상당히 넓다. 전쟁 포로들, 신대륙으로 이주한 개척자들-우리 입장에서 ‘식민자’라는 불쾌한 느낌의 존재이긴 하지만-, 신대륙에서 마주한 원주민들, 아프리카에서 강제로 끌려온 흑인들, 그리고 순례자들, 외항 선원들 모두가 이집트에서의 성가정이라는 레토릭의 우산 속에 포함된다.

두 번째로 특기할 시각은 비오 12세가 이들에게 교회의 돌봄이 필요한 이유를 주로 사목적인 것에서 찾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문서에 인용한 제4차 라테란공의회 문헌에서 아주 잘 드러난다. “우리는 대부분의 국가, 도시, 교구에서 다양한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하나의 신앙에 묶여 있지만 다양한 의식과 관습을 가지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도시나 교구의 주교들이 그들의 의식과 언어에 따라 전례를 거행할 적절한 사람들을 파견할 것을 엄숙히 권고한다. 그들은 교회의 성사를 집행하고 말과 행동으로 백성을 가르칠 것이다.” 이 사실은 엑술 파밀리아 역시 매우 전통적인 이주사목의 패러다임 속에 갇혀 있다는 것을 말해 준다. 이주와 난민 문제는 이들이 신앙 속에서 보호받지 못하는 것에서 시작하였다는 관점 말이다.

다행히도 비오 12세는 이주의 근본 원인에 대해서 언급한다. 이것이 세 번째 주제이고, 엑술 파밀리아가 이주사목을 위한 마그나 카르타(대헌장)이라고 불리는 이유다.

주제3: 이주할 수 있는 권리

셋째, 비오 12세는 근대의 이주가 경제적 불균형에서 비롯한 것이라고 지적하면서 하느님의 피조물인 인간은 마찬가지로 하느님께서 빚어 만든 토지에 얼마든지 이주할 수 있는 권리를 누릴 수 있다고 지적하였다. 즉 이주의 권리는 자연권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자연법 자체는 인류에의 헌신 못지않게 이주의 길을 사람들에게 열어 줄 것을 촉구합니다. 만물의 창조주는 모든 선한 것을 모든 사람의 선익을 위해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모든 곳의 토지는 많은 사람을 부양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국가의 주권은 존중되어야 하지만 이 땅에 대한 접근성이 그 어떤 부적절하거나 부당한 이유로 다른 나라에서 온 궁핍하지만 선량한 이들에게 거부될 정도로 과장되어서도 안 됩니다.”

엑술 파밀리아의 이 인용문은 1948년 12월 24일(또 성탄 전야다. 사람들이 가장 마음이 약해 있을 때!) 미국 주교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재인용한 것이다. 우리에게는 의외이지만 미국의 이주민에 대한 태도는 양가적이었다. 이주민의 국가로 시작했지만, 영국이나 독일 외에 아일랜드나 이탈리아 출신들에 대한 차별과 혐오는 그 뿌리가 오래되었고, 이들에 대한 혐오는 흑인 혐오로 손쉽게 전환되었다. 그리고 19세기 들어서 중국인 혐오, 20세기 초에는 일본인 혐오로 넘어오게 된다. 그런 점에서 민족들의 용광로라는 오래된 레토릭은 이주민에 대한 미국 사회의 양가감정을 아주 손쉽게 은폐하는 기만의 언어라고까지 할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미국 사회는 다시금 고립주의라는 고치 속으로 들어가려고 하였고 이민법 제한을 통해서 이주민 유입을 통제하려고 하였다. 이에 대해서 비오 12세는 미국 주교들에게 이 이민법의 개정을 막아 달라고 요청하였던 것이다. 토지와 항산(恒産)이 부유한 미국에게 이주의 권리를 인정하고 가난한 국가들을 떠난 이들을 받아들여 달라는 것이다.

주제4: 이주사목의 행정 규범

네 번째는 상당한 분량이긴 하지만 우리가 고위성직자나 주교가 아닌 한에서 그다지 관심이 없는 이주민에 대한 사목적 권한이 어디에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다루는 일종의 행정적인 주제다.

엑술 파밀리아는, 사실 비오 12세도 의식하지 못한 것이기는 싶지만, 어마어마한 주제를 건드리고 있었다. 이른바 주권과 이주할 수 있는 권리의 문제. 이 뇌관은 1952년 당시에는 아무도 인지하지 못하고 묻혔으나 매우 뜻밖에도 2017년 폭발하게 된다. 그것도 뜬금없이 미국에서.

김민 신부(사도 요한)

예수회 한국관구, 예수회 인권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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