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차별받지 않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할까"

성소수자 이웃들과 함께한 의정부교구 뿔나팔 미사

2024-05-02     경동현 기자

1일 의정부교구 정의평화위원회는 이번 월례 뿔나팔 미사에서 성소수자 부모모임에 함께하는 부모들을 초대했다. 미사에서 성소수자와 그 가족들의 일상을 나누고, 교회가 어떻게 이들과 함께 살아갈 수 있을지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

정의평화위원장 최재영 신부가 미사 주례하고, 원동일 신부와 이종원 신부가 공동 집전했다. 주교좌 성당 내 사적지 성당에서 40명 남짓 신자를 비롯해 성소수자 부모모임의 부모들, 성소수자 인권 증진을 위해 연대하는 이들의 모임인 ‘가톨릭 앨라이 아르쿠스’ 관계자들이 함께 봉헌했다.

특별히 이날 영화 '너에게 가는 길'에 출연했던 나비(정은애 소화데레사) 씨가 20분가량 트랜스젠더 아들을 둔 엄마로 살아온 이야기를 담담하게 들려주었다. 그는 성소수자 혐오세력에게서 받는 차별보다 교회나 가족처럼 같은 집단에 속해 있다고 생각한 사람들에게서 받는 차별이 더 아프다며, 참석자들에게 "주변에 성소수자가 있다면 ‘잘못되거나 힘들게 태어났으니 힘냈으면 좋겠다’가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 누구도 차별받지 않는 세상을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할까를 생각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라고 전했다.(전문 맨아래)

이날 미사에서는 나비 씨의 이야기를 듣고 4개 그룹으로 나누어 그룹 나눔이 이어졌다. ⓒ경동현 기자, 박진균

그 뒤 이어진 그룹 나눔에서는 성소수자 부모모임에서 온 이들과 신자가 10명 정도씩 모여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날 이 자리에 참여한 이들 대부분은 성소수자 당사자와 가족을 처음 만난 이들이다. 덕소 성당의 스텔라 씨는 “저는 학교에서 아이를 가르치고 있는데, 나눔을 하면서 저의 무지를 알게 됐습니다. 아이들이 가정적으로 어려움을 겪거나 그럴 경우 나름 섬세한 촉을 갖고 살핀다고 생각했는데, 그동안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을 못했다는 걸 알게 돼 좋은 시간이었고, 그분들에게 힘을 실어 주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고 소감을 전했다.

예수살이공동체에서 활동하는 루시아 씨는 “아이들도 힘들었겠지만, 어머니들도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것 같고,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이 바뀌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나눔할 때 성전환 수술 비용도 보험 적용을 받지 못해 많이 든다는 걸 알게 됐고, 차별금지법에 대해서도 관심 갖는 시간이 됐습니다”고 말했다.

의정부교구 정의평화위원회에서 주관하는 뿔나팔 미사는 매달 첫 번째 수요일에 봉헌한다. 지난해까지는 교구 내 본당(성당)을 순회하고, 올해부터 주교좌 성당 내 사적지 성당에서 미사에 참여하는 이들과 다양한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듣고, 그룹 나눔을 하면서 시노달리타스(함께 걷기) 경청 모임 방식으로 진행하고 있다. 다음 달 뿔나팔 미사는 6월 5일 저녁 7시 30분 같은 장소에서, '효순이 미선이 사건'을 주제로 진행할 예정이다.

뿔나팔 미사에서 성소수자 가족으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 나비(정은애 소화데레사) 씨. ⓒ경동현 기자

다음은 나비 씨의 나눔 이야기 전문이다.

천주교의정부교구 정의평화위원회가 주최하는 귀한 자리에 참여할 수 있어서 영광입니다. 저는 성소수자부모모임에서 나비라는 활동명으로 활동하고 있는 트랜스젠더 아들을 둔 엄마 정은애입니다. 냉담 중이기는 하지만 본명이 소화데레사인 천주교 신자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성소수자가 매우 희귀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소수자이기는 하지만 그렇게 희귀하지는 않습니다. 흔히 퀴어라고 부르는 성소수자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어느 문화권이든 약 5-10퍼센트 정도가 존재한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인구는 천만 명이 넘으니 5퍼센트만 추정해도 최소 250만 명의 성소수자가 존재합니다. 물론 이 통계는 정확한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리나라는 어떤 통계도 성소수자를 설문에 넣은 적이 없고, 응답하기도 어렵기 때문에 외국 여러 나라의 공공데이터를 통해서 추정하는 수치입니다.

저도 제 자식을 통해 알기 전에는 살면서 만난 성소수자는 중학교 때 보았던 레즈비언 친구 1명뿐입니다. 성소수자 최소 250만 명이 어떤 숫자인가 가늠을 해 보겠습니다. 제가 올해 40년 근무한 소방공무원입니다. 저 같은 소방공무원을 포함해서 대한민국의 모든 공무원 숫자가 작년 기준 120만 명 정도라고 합니다. 그리고 현역 군인이 60만 명 안팎이라고 합니다. 합하면 180만 명이겠지요. 우리나라 모든 공무원과 군인을 합한 숫자보다 더 많은 숫자의 성소수자가 있는 것으로 추정합니다. 확률로 치면 주변에서 만나는 20명 중에 1명 이상이 성소수자라는데 왜 우리는 성소수자를 만난 적이 없을까요? 그만큼 안전하지 않다고 생각하기에 본인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겠죠.

우리나라에서 성소수자라고 말하는 순간에 당사자들은 각종 혐오와 차별에 노출될까 봐 두려워합니다. 일단 성소수자들이 문란하거나 괴이하다는 선입견을 가진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본인의 삶에 매우 중요한 부분인 성정체성이나 성적 지향에 대해 남에게 말하지 못하는 비밀을 갖게 됩니다. 그 비밀의 무게와 상황을 감당하기 어려워 커밍아웃(다른 사람에게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하거나 아웃팅(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자신이 알려지는 것)을 당하게 되면 그 충격과 고통은 매우 큽니다. 설상가상으로 그로 인해 가까운 사람, 가족으로부터 거부당하게 되면 정말 심각한 상황을 맞게 됩니다. 통계에 따르면 부모로부터 거부당한 청소년 성소수자는 자살 위험이 8배 정도라고 합니다. 특히 많은 사람이 오해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성소수자들이 에이즈에 걸리기 쉽다고 생각하는 부분입니다. 에이즈는 안전하지 않은 성관계에서 생기기 쉬운 질병이지 동성애자에게서 생기는 병이 아닙니다. 또한 에이즈는 현재 세계적으로 치료 방법이 검증되어서 우리나라에서도 에이즈 환자의 평균 수명은 70세 이상입니다. 비교해 보면 우리나라 에이즈 환자의 사망 원인은 에이즈 때문이 아니라 자살인 경우가 더 많습니다. 사회적 낙인이 더 아프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혐오나 차별이 그렇게까지 아픈 것이냐 묻는다면 “예”, 아플 뿐만 아니라 그 혐오의 말들이 칼이 되어 죽음에 이르기도 합니다. 하버드 대학교 보건대학원 데이비드 윌리엄스 교수는 “차별은 실제로 경험하지 않아도 아프다”고 합니다. 또한 흔히 말하는 ‘혐오세력’이라고 하는 사람들에게서 받는 차별보다 같은 집단에 속해 있다고 생각한 사람들에게서 받는 차별이 더 아프다고 합니다. 교회나 가족 내에서 받는 상처가 더 아픕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교회 안의 성소수자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이성애 중심의 이분법적 질서와 기독교적 세계관이 지배하던 중세 유럽에서는 동성애자를 범죄로 명시하였습니다. 1973년 미국정신의학회에서 동성애는 질병이 아니라고 결론을 내렸습니다만 아직도 일부 기독교도 사이에서는 이른바 “전환치료”라는 잔혹한 인권 유린이 자행되고 있습니다. 동성애자가 TV에 나오면 마치 아이들이 다 동성애에 물드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드라마와 영화에서 90퍼센트 이상은 이성애를 그리고 있습니다. 사회의 영향을 받아서 동성애자가 되는 거라면 왜 10퍼센트 가까운 성소수자들은 그 영향으로 이성애자가 안 되는 걸까요? 또한 이렇게 성소수자를 혐오하는 사회에서 할 수만 있다면 남들처럼 살고 싶지 왜 굳이 혐오당하고 공격받는 성소수자로 살고자 하겠습니까? 성소수자는 의지로 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사는 것이 가장 행복하도록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만약 누군가 여러분에게 자신이 성소수자라고 커밍아웃을 한다면 정말 당신을 믿기에 할 수 있는 말입니다. 당황하지 마시고 “말해 줘서 고맙다”고 손잡아 주시면 좋겠습니다.

저는 2021년 '너에게 가는 길'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에 출연하였습니다. 게이 아들을 둔 엄마인 비비안 님과 트랜스젠더 엄마인 제가 주인공으로 출연하였지요. 현재 넷플릭스와 디즈니 플러스, 유튜브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그 영화에는 고 변희수 하사의 강제전역과 트랜스젠더 숙대 입학 거부사건 등이 생겼을 당시 아들이 세상의 그런 혐오와 차별로 인해 자살 위기에 처한 모습을 보고 제가 절망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런 아들을 보다 못해 저는 이렇게 독백하였습니다. “네가 세상을 떠나고 싶다면 같이 스위스로 가서 존엄사를 택하자. 네가 사는 것이 힘들어 죽음을 택한다면 그걸 말릴 수 없는 상황이 올 수도 있는데 죽는 순간에 아프지 않게 외롭지 않게 내가 그 순간에 같이 있을 게” 오죽하면 제가 이렇게 마음을 먹었을까요.

2018년 제1회 인천퀴어문화축제에 가서 아이와 함께 단지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매를 맞고 옷이 찢기고 화장실도 가지 못하게 사실상 감금을 당하는 상황을 겪고 나니 아이가 고통을 당할 때 “힘을 내!” 응원만으로는 아이를 살릴 수 없다는 걸 알기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저와 다른 성소수자 부모들은 '성소수자 부모모임'에 참석해서 우리의 아이들과 같은 처지인 성소수자 당사자들을 돕는 일을 합니다. 하지만 좋은 의도를 갖고도 때로는 잘 알지 못해서 이른바 ‘선량한 차별’을 하기도 합니다. 영화에서 비비안 님은 아들이 게이라는 커밍아웃을 받고 “엄마가 힘들게 낳아 줘서 미안해”라고 눈물을 흘립니다. ‘아들이 혼자서 그 비밀을 갖고 얼마나 힘들었을까’ 생각하는 정말 좋은 엄마였지만 잘 모르기 때문에 또 하나의 상처를 주게 된 것이죠. 아들이 힘들었던 것은 게이로 태어나서가 아니라 사람들이 게이를 차별하고 혐오하는 세상에 태어났기 때문인데 엉뚱하게 개인을 자책했던 겁니다.

이제 우리 부모들은 성소수자의 힘든 삶을 개인의 불행으로 생각하거나 정신력과 의지로 극복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대한민국 헌법에서는 모든 사람은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갖고 국가는 이걸 보장할 의무를 가지고 있다고 했습니다. 또한 세계인권선언에 따르면 모든 사람은 존엄과 권리에 있어 동등하며 차별 없이 모든 권리와 자유를 향유할 자격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차별받을 때 우리가 가만히 있는다면 우리 또한 성별 학벌, 지위, 재력, 나이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억울하게 차별당할 때 다른 사람도 가만히 있을 겁니다. 그러니 주변에 성소수자가 있다면 ‘잘못되거나 힘들게 태어났으니 힘냈으면 좋겠다’가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 누구도 차별받지 않는 세상을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할까를 생각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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