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싸움, 애초 10년은 기본이라 생각했죠"
세월호 일반인 희생자 유가족 전태호 관장
인천 부평구 승화원에 있는 ‘세월호 일반인 희생자 추모관’.
2016년 개관한 일반인 희생자 추모관에는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이들 가운데, 단원고 희생자가 아닌 일반인 희생자 44명이 잠들어 있다.
이들은 회갑 기념 여행을 떠났던 초등학교 동창 12명, 제주로 자전거 여행을 떠났던 동호회원들, 탑승객과 승무원, 구조 작업 중에 숨진 잠수사 2명이다. 끝내 시신조차 수습하지 못한 권재근 씨와 권혁규 군 부자의 유골함 안에는 유골 대신 유품을 태워 넣었다. 순직을 인정받기까지 오래 기다렸던 단원고 기간제 교사들은 현충원에 안장한 뒤에도 유골함은 아직 이곳에 남아 있다.
추모관은 세월호 참사 직전의 선 내 CCTV 영상, 당시 세월호 상황을 그대로 축소, 재현한 모형, 희생자 유품, 샌드 아트 추모 영상과 조형물을 설치한 추모실, 제례실, 안치단으로 구성했다.
세월호 참사로 아버지를 잃은 전태호 관장(세월호 일반인 유가족협의회 위원장)은 추모관 이곳저곳을 안내하면서, 전시한 추모글, 작품 심지어 건물 외벽에 사용한 대리석 성분까지 따져 가며 이곳을 만드는 데 공들였다고 설명했다.
일반인 희생자들의 연고지와 국적이 모두 다르지만, 경기도 다음으로 희생자가 많았던(17명) 인천에 추모관을 마련했다. 인천가족공원(승화원)은 전국에서 두 번째로 큰 규모로 연 2만여 명이 방문한다. 올해 10주기를 맞아 인천교구 정의평화위원회와 성당에서도 찾았다.
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 활동에 참여했던 전태호 관장은 진상규명 과정, 연대 단체들과 관계 속에서 갈등이 없었던 것은 아니라면서도, “여러 참사의 가족들과 함께하기도 하지만, 세월호 참사 가족들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이 잘 이뤄지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고 말했다.
세월호 참사의 특성상, 참사 공간과 지역, 일차적 책임 소재가 선사에 있고, 구조 방기 책임이 국가에 있다는 것이 비교적 분명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전 관장은 이태원 참사 역시 국가가 책임 방기한 것은 같지만, 행사 주최측이 분명하지 않기 때문에 세월호보다 더 큰 고충을 겪고 있다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가장 뼈아픈 건, 내인설과 외인설로 갈린 진상규명 과정
아버지가 세월호 참사로 목숨을 잃은 뒤, 미국에 살던 아버지의 친구들이 한국으로 날아왔다. 참사 직후 농성하는 가족들을 보며 놀란 그들은 전태호 관장에게 “한국은 인권이 없느냐”고 물었다. “인권이 없는 나라”라고 답한 그는 그 지점에서 이후 행보를 출발했다.
그는 선박 사고가 일어난 자체보다 진상규명을 하는 과정에서 내인설과 외인설로 갈라져 싸웠던 것을 가장 큰 문제였다고 지적하고, “사고 이후 구조하지 않은 것이 참사였다. 국가는 국민에게 국방, 납세, 교육의 의무를 다하도록 하면서, 정작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야 한다는 의무를 져버렸다. 헌법을 지키지 않는 국가에 대해 국민들이 왜 의무를 다해야 하나”라고 반문했다.
그는 지휘부에 대한 책임을 명확하게 묻지 않고, 현장에 있었던 이들을 꼬리자르기 하듯 처벌하면 앞으로 또 다른 재난 현장에서 누가 달려들어 구조할 것인가라며, “수뇌부의 책임을 제대로 묻는 것은 다른 재난을 막기 위해서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참사 전 개인 사업을 하던 전태호 관장은 세월호 참사 1년 뒤, 하던 일을 접었다. 두 가지를 병행하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이고, 일이 지체되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 성격 때문이기도 했다. 가족들에게는 “그동안 벌어 놓은 것으로 살라”며 활동에 뛰어들었다. 한 학교의 학생들이 단체로 희생된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일반인 희생자들에 대한 집중도나 연대의 정도가 적었다는 것도 한 이유였다.
벌써 10년, 또는 여전한 10년. 그러나 그는 처음부터 정부를 상대로 한 싸움은 기본 10년 이상은 될 거라고 생각했다. 이미 그전에 진상규명이 필요한 사건들이 빨라야 20년 이상이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는 10년이 이렇게 빨리 흐를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사실 이런 공감과 연대가 얼마나 가겠냐고 생각했어요. 근데, 한 달 두 달, 1년이 지나도 같은 거예요. 워낙 큰 사건이지만 사회적 기조도 많이 변했고요. 국민들도 잊지 않고 계속 화두로 만들어 주니까. 물론 10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뭘 하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지만, 해결되지 않은 일은 계속해야 한다는 분들이 계시고요.”
전태호 관장은 스스로 보수주의자라고 말했다. 그러나 세월호 문제는 진보, 보수가 아니라 상식 문제다. 그는 “보수와 진보가 아니라 가장 중요한 것은 유가족의 입장”이라고 말했다.
전 관장은 “사람답게 살 수 있는 나라 만드는 게 첫 번째고 그러려면 진상규명이 또 첫 번째다. 결국 10년째 이야기한 재발 방지를 위해서고, 대한민국을 안전하고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라면서, “권한만 있고 책임은 없는 상태가 이 모든 것을 만들었다. 책임이 있어야 일을 제대로 할 수 있다. 세월호 참사에서 여전히, 최종 물어야 할 책임은 구조 방기에 대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석균 전 해경청장, 대통령에게는 미안하고 유가족에게는 미안하지 않은가
참사 앞에서 누구의 정권이냐 따지지 않아야
그는 김석균 당시 해경청장 한 사람만 처벌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냐면서도, 최근 김석균 씨가 낸 책 "바다의 징비록"에 대해서는 화를 감추지 않았다. 전 관장은 “유가족에게는 미안한 마음이 없는 건가”라며, “어처구니가 없었다. 무엇을 잘못 했는지,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정말 모르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 그는 해경을 비롯해서 모든 시스템은 현장 중심으로 재편해야 한다며,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고 요청하는 이유는 안전 사회를 위한 유가족들의 책임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전태호 관장은 마지막으로 “이런 참사 앞에서 제발 네 정권, 내 정권 따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하며, 일반인 희생자 추모관과 안산 생명안전공원를 비롯한 추모 공간에 대한 일부 부정적 여론에 대해서도 죽음과 추모, 애도는 늘 우리 곁에 있는 일이어야 한다, “혐오의 시선을 거둬 달라”고 당부했다.
그는 추모관을 곧 확장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참사 뒤 2년 만에 개관했지만 규모가 작아 그 뒤로 밝혀진 사실에 대한 내용들을 담지 못하고 있고, 추모객들을 맞이하기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인천시에 확장을 위한 요청도 해 놓은 상태다.
그는 참으로 아픈 말이지만, 이태원 참사 가족들에게 “죽을 각오로 싸우라”고 말했다고 했다. 애초 20년도 짧다고 여기며 싸움을 시작한 그에게, 진상규명으로 정부의 책임을 온전히 묻기 위한 길은 이제야 절반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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