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만능주의를 이겨낼 기본 서비스

2024-04-19     정형준

‘의식주’는 초등학교 들어가 거의 처음 배우는 복지 개념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3가지 필수 요소인 옷과 음식과 집을 말하는데, 의식주가 중요한 것은 이를 충족해야 기초 생활을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배운다. 하지만 현대 사회 그것도 발달한 산업 사회에서는 의식주만이 기초생활 조건인 건 아니다. 입을 옷이 있고, 먹을 수 있으며, 잘 곳이 있더라도 생활의 기초를 모두 충족했다고 볼 수 없다.

대표적으로 보건의료 서비스는 기본 서비스 중 하나다. 2018년 논의한 개헌안을 보면 신설 헌법에 ‘건강권’을 포함하고 있다. "모든 국민은 건강하게 살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질병을 예방하고 보건의료제도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며 이에 필요한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고 당시 조문안은 다른 나라의 경우를 보고 기술한 바 있다. 국민의 권리로써 ‘건강권’을 주장하면 당연하게도 국가는 개인에게 보건의료 서비스를 기본으로 제공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법률 조항이 없어도 돈이 없어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적절한 보건 서비스를 받지 못한다면, 이는 ‘건강권’이 박탈당한 상태인 것은 물론, 기초 생활도 할 수 없게 된다는 데 모두 공감할 것이다.

여기다 교육도 현대 국가에서는 기본 서비스다. 적절한 교육을 통해 자율적이고 능동적인 시민을 만들지 못하고, 교육의 기회를 박탈한다면 우리 사회에서 배제되거나 도태를 방치하는 게 된다. 이미 ‘교육권’은 헌법에도 명시하고 있으며, "의무교육은 무상으로 한다"고까지 규정하고 있다. 실제로 의무교육으로 문맹율을 낮추고, 법과 질서 등의 사회 규율을 균등하게 가르치지 못한다면 그 사회 성원의 불평등은 걷잡을 수 없을 것이다.

이처럼 ‘의식주’라는 고전적인 기초 생활 토대 외에도 현대 국가에서 기본 서비스로 제공하고 균등하게 누려야  할 내용이 매우 많다. 먼거리를 자주 이동해야 하는 현대에는 ‘이동권’도 기본 권리 중 하나다. 장애인 이동권이 기본권인 이유다. 또한 최근 통신기술 발달로 시작한 정보 교류도 기본 권리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재난 상황이나 공공 서비스 정보들이 점차 스마트폰과 정보통신 기술로 집적화하고 있는데, 정보통신 접근권이 결여되어 있다면 현대 시민으로서 기초적인 삶을 유지할 수 없다. 통신비 문제, ‘디지털 문맹’이 이에 해당한다. 그래서 ‘정보통신 접근권’도 새로운 기본 서비스와 기본권으로 조망하고 있다.

기술 발전과 사회 변화에 맞춰 여러 가지 사회 서비스가 기본 서비스로 변화하고 있고, 이를 균등하게 최소 수준까지는 공급하는 것이 국가 기능의 변천사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런 기본 서비스의 상당수가 초기에는 시장 기능에 맡겨 있거나, 돈벌이 수단이 되곤 한다. 그래서 이들 서비스를 영리 사업으로 많이 확장해 온 국가는 대체로 이들을 기본 서비스로 인정하지 않는 경향도 크다. 민영 의료보험과 영리 병원의 천국인 미국에는 ‘보건의료 서비스’는 국가가 보장해야 하는 기본 서비스는 아니라고 하는 트럼프 같은 대통령도 있었다. 필수 서비스라고 생각하더라도 ‘적절한’ 수준 문제는 시장에 맡겨 두면 된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이미지 출처 = Pixabay)

한국에서도 극빈층에게만 이런 기본 서비스를 제공하면 된다는 선별적인 복지 개념이 많이 퍼져 있다. 학생들의 무상 급식을 둘러싼 2011년의 논쟁이 대표적이다. 물론 기본 서비스의 모든 영역을 국가가 제공하고 공급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돈이 없어서 병원에 가지 못하거나 적절한 교육을 받지 못한다던가, 돈이 없거나 적절한 장비가 없어 이동을 하지 못한다면 이는 국민의 기초 생활을 책임진 것이라고 볼 수 없다. 따라서 대부분의 선진 국가는 이런 기본 서비스의 상당 부분을 공공에서 운영한다. 영국, 북유럽 국가, 스페인, 이탈리아는 국가가 의료 서비스의 재정과 운영을 총괄한다. 흔히 국영의료 서비스(NHS, national health service)라 부르는데, 이런 제도 도입에는 질병 상태를 해소하는 게 사회적 책무라는 근본 이념이 깔려 있다. 교육 제도도 북유럽이나 독일은 대학까지 무상이다. 여타 유럽 국가도 국립 대학의 등록금은 매우 싸거나, 자국민에게는 준무상이다. 교육을 못 받아 아쉽게 더 숙련된 노동을 못하거나 고도화된 연구 과제를 수행하지 못하게 된다면 그로 인한 손해는 사회적 손해일 수도 있다.

이런 기본 서비스에 대한 합리적 사회적 합의는 비용 문제뿐 아니라, 국민이 있는 곳이라면 지역적으로도 균등하게 서비스를 공급해야 한다는 인식으로 나아가게 된다. 일정 수준의 사람이 사는 곳이라면 관공서, 경찰, 소방서 같은 공공기관 말고도 학교, 병원, 통신사가 따라가야 한다는 것이다. 상식적으로 병원이나 학교가 없는 곳에서 사람이 계속 살 수 있다고 믿는 게 이상하다. 교육을 다 받은 건강한 사람들만 사는 지역이 건전하고 지속가능한 지역이 될 리도 만무하다.

결국 우리가 원하던 원하지 않던 국가와 사회의 기능 강화는 복잡하게 발전하는 게 현 시기의 특징이다. 교육, 의료, 이동, 통신 등등을 모조리 사업으로 시장에 맡겨도 아무 문제 없다는 신자유주의 사고는 파산한 지 오래다. 이를 명확하게 보여 주는게 ‘코로나19 팬데믹’이다. 신종 감염질환에 맞닥뜨려서는 백신도 공적 자원으로 개발하고 공공으로 제공했으며, 주요 국가들은 병원을 국유화 하고 의사들을 더 양성, 고용하고, 교육 서비스의 공공성도 강화했다. 미국조차 의료 서비스를 준공영화하거나 의료장비 공급을 공공화했다. 코로나19 이후 ‘큰 국가가 돌아왔다’며 일시적 공공화에 대한 뉴노멀을 선언하는 담론이 유행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런데 아쉽게도 한국 사회만 코로나19 시기를 거치면서도 주요 사회 서비스 공공화에 첫발도 떼지 못했다. 코로나19 방역 성공에 도취해 민간의료 기관의 동원을 등한시했고, 광범한 백신 보급이 끝난 2021년 후반부터서야 대대적인 감염 환자가 발생해 의료 서비스를 공공화하지 않아도 큰 타격을 받지 않았던 덕분이다. 그런데 이런 상황은 현재 정부가 추진하는 2000명 의대 증원에 대한 전공의 파업 사태로 볼 때 역설적으로 최악의 상황을 만들고 있다. 코로나19 시기에 공공 병원을 늘리고 대형 병원의 기능을 조정했다면 현재만큼의 진료 공백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다시 말해 전공의 진료 공백이 주요 대형 병원의 병상가동률을 반토막 내고 있는데, 이는 코로나19 시기를 거치면서도 국가가 의료공급에 투자하지도 않고 통제 수단을 마련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거꾸로 코로나19 시기 공공 병원의 헌신은 잊혀졌고, 공공 병원은 적자를 일으키는 애물단지로 불렸다. 그 결과 공공 병원 노동자들이 임금체불을 막아 달라면서 작년 말에는 국회 앞에서 20여 일간 단식농성까지 했다.

유독 한국이 여타 국가들과 달리 코로나19 시기와 현 상황에서도 이런 기현상을 보이는 것은 여전히 의식주 말고는 시장에 맡기면 된다는 시장근본주의가 만연해 있기 때문이다. 주택도 주거 목적이 아니라 투자 목적이 되는 상황을 오래 방치했을 정도니 교육이나 의료는 어떤 대우를 받았을지 뻔하다. 거기다 이동 문제와 정보통신 접근권에는 기본 사회 서비스라는 개념이 거의 없다. 그 결과 이런 시장만능주의는 우리 사회의 여러 가지 모순을 부추기고 있다. 막대한 돈을 내면서 사교육을 받고, 수능 응시생의 30퍼센트 이상이 재수를 선택하는 건 단적인 경우다. 지방에서 KTX를 타고 수도권 빅5 병원으로 원정을 와야 하는 상황과 지방 소멸은 동전의 양면이다. 공공으로 교육과 의료를 기본 서비스로 제공했다면 이러한 선택은 일부에 그쳤을 텐데, 불필요한 낭비만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저출생으로 한국이 소멸한다고 정부는 호들갑만 떨고 있고, 막상 국민들이 사는 데 필요한 기본 서비스 제공은 방치한다. 이러한 문제에는 우리의 삶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기본서비스 전반을 국가와 사회가 책임지지 않아도 된다는 허위의식도 있다. 따라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한국 사회 모순을 해결하는 첫 단추는 시장만능주의를 벗어던지고, 공공 서비스를 전 부분에서 획기적으로 높이는 것이다. 이번 총선 결과는 집권 세력에 대한 심판이 분명했는데, 민생을 돌보지 않은 정부 여당에 국민들이 내린 표심은 결국 기본적인 삶을 챙기지 않았다는 표현이다. 여당이던 야당이던 이대로 국민들의 기본적인 삶을 챙기고 공공 서비스를 늘리지 않는다면, 다중 위기 시대에 숱한 재난을 이겨낼 수도 없고, 우리의 미래는 더욱 암울해진다. 만시지탄이지만 의료 대란을 볼 때도, 저출생 문제를 볼 때도, 기본 서비스 공공화를 이제는 당장 시작해야 한다.

정형준

재활의학과 전문의,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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