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살이공동체, 윤 정부의 이승만 기념관 건립에 엄중 경고

창립 26주년 감사미사에서 반대 입장 표명

2024-03-04     경동현 기자

지난 3월 1일, 예수살이공동체가 창립 26주년 감사미사에서 윤석열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이승만 기념관 건립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이날 한국순교복자수도회 본원에서 열린 미사에 예수살이공동체 구성원 100명가량이 참석했다. 

미사 말미에 입장문을 낭독한 공동체 대표 김승한 신부(의정부교구)는 1998년 창립 이래 사회 현안에 대해 구체적인 입장 표명을 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라고 밝혔다.

이번 반대 입장 표명은 최근 공동체가 역사 순례로 진행하고 있는 연례행사, 특히 지난해 6월 제주 4.3 순례, 9월 공동체 이름으로 4.3 희생자 추모비를 세운 흐름(기사 참조 “지나치지 않겠습니다, 송령이골에 추모비 세우며”)과 연결되어 있다고 설명했다.

예수살이공동체는 창립선언문에서 “복음의 자의식으로 자신을 회심 개조시키고, 나아가 의식의 삶을 지속시켜 줄 수 있는 공동체 운동을 통하여 세상의 변혁을 도모하려 한다”고 밝히고 있듯이, 이 땅의 그리스도인이 한국의 역사를 등한시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견지해 왔다.

지난 3월 1일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본원에서 열린 예수살이공동체 창립 26주년 감사 미사에서  '이승만 기념관 건립 반대 입장문'을 김승한 신부가 대표로 낭독하고 있다. ⓒ경동현 기자

윤석열 정부의 이승만 띄우기는 기념관 건립 추진에만 그치지 않는다. 국가보훈부는 지난해 3월 이승만 기념관 건립을 정부 사업으로 공식 추진한다고 밝혔다. 이어 국방부는 지난해 연말 새로 발간한 정신전력교육 기본 교재에 이승만 전 대통령을“혜안과 정치적 결단으로 공산주의 확산을 막은 지도자”로 평가하는 내용을 넣었다. 나아가 국가보훈부는 올해 1월의 독립운동가로 이승만을 한국의 독립을 세계에 호소한 인물로 선정해 '흑역사'는 침묵하며 찬양에만 열을 올린다는 논란을 빚은바 있다.

지난달 23일 오세훈 서울시장은 시정 질문에서 “다큐 영화 '건국전쟁'이 상영된 게 일종의 공론화와 공감대 형성과정”이라며,“기념관 입지가 어디가 바람직한지 본격적으로 논의할 시점에 왔다”고 주장했다. 그는 경복궁 동편에 있는 부지 면적 3만 7117제곱미터(서울광장의 약 3배)의 송현광장이 유력 후보지로 거론된다고 밝혔다.

예수살이공동체 대표 김승한 신부(의정부교구)가 입장문을 낭독하고 있다. ⓒ경동현 기자

이에 예수살이공동체는 입장문에서 범정부 차원에서 진행하고 있는 역사왜곡 시도에 대해 "역사적 분탕질을 멈출 것을 엄중히 경고"했다. 기념관 건립을 반대하는 이유로 ① 이승만은 독립 유공자로 볼 수 없다는 점, ② 이승만은 민족의 염원인 친일파 청산을 방해한 민족 죄인이라는 점, ③ 제주 4.3 사건과 관련해 초기에는 미군정의 책임이 크지만, 이후에는 이승만의 만행으로 볼 수 있기에 민간인 학살범이라는 점, ④ 3.15 부정선거에서 알 수 있듯이 민주주의와 헌정 파괴범이라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이승만 기념관 건립에 대해 불교계에서는 지난해부터 조계종과 태고종을 중심으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개신교 <CBS노컷뉴스>는 인터넷에서 “경복궁 옆 ‘이승만 기념관’ 건립”에 대한 독자 설문을 진행하는 등 종교계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예수살이공동체의 "이승만 기념관 건립 반대 입장문. ⓒ경동현 기자

아래는 예수살이공동체의 반대 입장문 전문이다.

시대착오적인 이승만 기념관 건립을 반대한다!

국가보훈처가 이승만 기념관 건립 예산으로 460억 원을 책정한 사실이 확인되었다. 이는 다른 전직 대통령의 기념관 건립에 투입된 예산보다 최소 2배 이상 큰 규모다. 건국의 아버지 운운하며 이승만에 대한 재평가는 이미 오래전부터 시도되었다. 특히 현 정권은 이승만 재평가를 명분으로 극우 보수층 집결을 시도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에 우리는 민족사의 대죄인(大罪人) 이승만 기념관 건립을 반대한다!

1. 이승만은 독립 유공자로 볼 수 없다!

국가유공자 지원 등이 주 업무인 보훈처는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국가유공자법)에 근거해 국가유공자 기념관을 만들고 관리한다. 이승만이 초기에 독립운동에 참여했던 사실까지 부정할 수는 없지만, 그가 헌신적으로 조국의 독립에 매진했는지 의심의 여지가 많다. 1919년 9월, 미국 대통령 윌슨에게 국제연맹 조선 위임 통치안을 제출했다. 이를 두고 이완용은 있는 나라를 팔았지만, 이승만은 없는 나라를 팔았다고도 한다. 이처럼 임시정부 대통령직을 맡았으나 성의를 보이지 않고 정부의 위신을 손상해, 결국 1925년 3월 임시정부 의정원에서 탄핵당했다.

2. 이승만은 민족의 염원인 친일파 청산을 방해한 민족 죄인이다!

36년간 일제 강점을 청산하기 위한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탄압했다. 일제에 부역한 인사에 대한 청산을 위해 결성된 반민특위는 용공 조작의 원조 격인 ‘국회 프락치 사건’으로 좌절되었다. 스스로 독립운동가를 자처한 이승만은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위해 친일파에게 재기의 기회를 주었고, 이는 두고두고 한국사회의 고질적 병폐로 자리 잡았다. 이때 청산되지 못한 친일파는 친미 반공주의자로 둔갑해 친일 부역의 역사적 범죄를 은폐한 채 한국사회의 기득권을 차지했으며, 한국사회의 발전을 외친 민중을 탄압하는 데 앞장섰다.

3. 이승만은 민간인 학살범이다!

사실 한국사회에서 민간인 학살이 대대적으로 자행된 것은 이승만 집권기다. 제주 4․3은 초기에는 미군정의 책임이 크지만, 이후에는 이승만의 만행으로 봐야 한다. 또한 한국전쟁기 보도연맹 대학살 등 이승만의 민간인 학살은 가히 충격적이고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만행이다. 그럼에도 한동안 우리는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러한 만행이 하나둘씩 밝혀지는 지금 우리는 이승만의 만행을 더욱더 뚜렷하게 확인할 수 있다.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 책임이 있는 인물을 위한 기념관 건립에 국가 예산을 투입하는 것은 도저히 용인할 수 없는 일이다.

4. 이승만은 민주주의와 헌정 파괴범이다!

전직 대통령 기념 사업 주무 부처는 행정안전부로, ‘전직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률’(이하 ‘전직대통령법’)에 근거해 관련 사업을 지원해왔다. 일단 우리는 대통령 직무와 관련해서 민주주의와 헌정 파괴범인 이승만을 이미 앞서 언급한 그의 여러 죄상과 아울러 전직 대통령으로 예우할 수 없다. 이승만은 자신의 권력 유지를 위해 헌정을 짓밟아왔으며, 그 유명한 사사오입 3선개헌에서는 절정에 달한다. 3․15 부정선거에 저항한 한국 민중의 4․19혁명으로 이승만의 독재는 멈추었지만, 선량하고 관대한 한국 국민은 책임을 묻지 않았다.

한국사회는 이제 독재국가와 후진국에서 민주국가와 선진국으로 힘차게 나아가고 있다. 이런 역사의 진전 앞에 반민족, 반민주, 반통일의 헌정 파괴 및 민간인 학살범을 국부로 숭앙하고 기념관까지 설립하자는 것은 절대 용납할 수 없다. 이는 민족 민중의 도도한 투쟁과 건설의 역사적 전통을 훼손하는 것이며, 친일 반공 기득권 세력의 역사 세우기와 다름없는 행태다. 이에 우리는 이승만 기념관 건립을 결사반대하며, 역사적 분탕질을 멈출 것을 엄중히 경고한다!

그리스도인은 예수가 구체적 삶으로 보여준 길을 따르는 이들이다. 개인의 영달과 부귀를 위해 민족의 아픔을 외면했으며 자신의 권력욕을 위해 수많은 생명을 고통과 죽음에 이르게 한 이승만의 삶의 궤적은 우리의 스승이자 벗인 예수의 그것과 정반대의 길이다. 이에 우리 예수살이공동체는 그러한 자를 기리는 그 어떠한 기념물도 이 땅 위에 세우는 것을 반대한다.

2024. 03. 01. 예수살이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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