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평화와 군사 훈련

2023-04-24     정현진 기자

북한이 핵과 미사일 위협을 높이면서, 한국과 일본은 미국의 지지와 매개로 한미일 간의 군사적 협력을 구체화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 들어 한일 군사 훈련은 지난해 10월, 올해 2월 22일과 4월 17일까지 세 차례나 진행됐다.

정부는 이에 대해 북한의 무기 도발에 대한 안보의 일환이라고 했다. 한일 또는 한미일 사이의 군사, 국방 협력을 활성화하는 발판이 될 것이라는 입장이지만, 군사훈련이 북한의 무기 도발을 멈추게 할 수는 없다는 의견도 지배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얼마 전, 교회 내 한 그룹 안에서 “북한이 군사적 도발을 계속 하는데, 교회가 한일 군사훈련을 지지하는 성명을 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왔다는 말을 들었다.

우크라이나전으로 3차 대전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라는 우려, 한반도를 둘러싼 미국의 중국 견제, 일본의 군국주의 움직임 등을 볼 때, 이는 단순히 남한의 안보, 정치적 이념의 문제가 아니다.

군사 훈련은 전쟁을 전제로 한다. 자국의 안보와 국가 간 협력을 이유로 내세우지만 그 방법이 군사력과 힘의 과시다. 북한의 상황을 볼 때, 그것은 또 하나의 도발이자 악순환이다.

한반도와 러시아, 미국, 일본, 중국, 타이완 등 주변 관련국들 간의 정치, 경제적 관계 등 복잡한 상황이 있고, 스스로의 안전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문제는 오늘의 ‘안보’라는 것이 어느 상황에서도 무력으로 지킬 수 없다는 것이다. 교회의 오랜 가르침은 줄곧 평화에 의한 평화를 말하고, ‘정당한 전쟁론’조차 빛이 바라고 있다. 또 남북한 사이의 긴장과 갈등을 뛰어넘기 위해서 더 이상 “힘의 과시나 경제적 압박과 같은 강경책은 안 된다”는 입장이다.

“전멸의 공포를 통한 세계 안정의 유지를 주장할 수는 없습니다. 이 세상은 핵의 구렁텅이로 이어지는 벼랑 끝에 매달려 있고 무관심의 장벽에 갇혀 있는 지극히 불안정한 평형 상태에 놓여 있습니다. 그러한 상태에서 인간과 피조물이 서로를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 버림을 받는 비극적 상황들을 불러오는 사회 경제적 결정들이 내려집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평화와 상호 존중의 여정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까? 위협과 공포의 병든 논리를 어떻게 깨뜨릴 수 있습니까? 현재 만연하고 있는 불신의 힘을 어떻게 타파할 수 있습니까?”(2020년 프란치스코 교종, 53차 세계 평화의 날 담화 중에서)

화해와 일치를 말하는 교회가 해야 할 일은 평화의 메신저가 되고 평화로써 평화를 구하는 것이라고 우리는 늘 말하고 들었다. 한편으로 비폭력, 평화, 대화, 일치와 화해는 너무나 이상적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래서, 그럼에도 교회의 방식이어야 한다.

매일 저녁 9시, 알람을 맞춰 놓고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를 바치는 이들에게, “무기 도발에 맞선 군사훈련 지지”는 어떤 의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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