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덥지 않은 다보스 포럼

2023-01-16     박병상

정거장을 지나친 버스를 돌아오게 할 수 없듯, 흘러간 강물을 되돌릴 수 없다. 그렇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다. 기다리면 버스는 다시 오고 강물은 언제나 흐른다. 고급 식당이든 라면 전문점이든, 배불리 먹은 음식은 소화된 뒤 어김없이 배설해야 하는데, 식당은 언제나 맛난 음식을 내어 준다. 생태계의 흐름으로 에너지가 순환되기에 가능한 일이고, 생태계 흐름은 태양 에너지가 거의 무제한 공급되기에 가능하다.

한겨울에 어색한 말이지만, 선풍기를 돌리면 시원하다. 부채를 사용해도 시원한데, 선풍기는 전기 에너지를 소비하고 부채는 근력을 요구한다. 전기를 모르던 시절, 커다란 부채를 연신 흔드는 왕실의 시종은 왕이 느끼는 시원함보다 훨씬 더워야 했을 게 틀림없다. 선풍기를 켜면 그런 일은 없다. 하지만 지구가 뜨거워졌다.

냉장고 문을 열면 찌개와 국 끓여 더워진 부엌이 잠시 시원해진다. 그렇다고 계속 열어 놓을 수 없다. 냉기가 빠져나가면서 쉼 없이 모터를 돌리는 냉장고가 버티지 못하고 고장 날 테니까. 한데, 에어컨은 계속 켜 놓을 수 있다. 실외기가 열기를 밖으로 빼내기 때문이다. 대신 밖이 그만큼 더워지겠지. 에어컨에 공급하는 전기는 저절로 만들 수 없다. 생산하는 과정에서 적지 않은 열이 발생한다. 에어컨이 식힌 열보다 훨씬 많다.

대통령이 스위스 다보스를 다녀온단다. 16일부터 20일까지 개최되는 세계경제포럼(WEF)으로, 해마다 이맘때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리므로 ‘다보스 포럼’이라 말하는데, 올해 주제는 “조각난 세계에서의 협력”이라고 한다. 잘사는 국가의 정상과 세계 굴지의 기업인이 모여 전쟁과 감염병으로 흐트러진 국제 협력을 회복해 새로운 성장의 시대를 구축하자는 논의가 점잖게 이루어질 모양이다.

포럼 시작 전, 다보스 포럼은 논의를 위해 ‘글로벌 위험 보고서’를 11일 발표했다고 언론이 밝혔다. 세계 여론을 주도하는 학자, 기업, 관료, 사회단체를 망라하는 1200여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는 기후위기 시대에 세계가 반드시 주목해야 할 사안이다. 앞으로 10년 이내에 가장 심각하게 위험을 초래할 것으로 선정한 32가지 중 1위부터 4위가 기후와 생태계 위기였다.

1위는 ‘기후변화 완화 실패’, 2위는 ‘기후변화 적응 실패’, 3위는 ‘자연재해와 극단적인 기상 현상’, 4위는 ‘생물 다양성 손실과 생태계 붕괴’라고 국제사회는 응답했다는데, 재벌과 경제계 인사를 대거 동반하는 우리는 세계의 논의 흐름을 주도할 수 있을까? 주도? 출발부터 경제에 방점을 찍었으니 터무니없다. 망신당하지 않으면 다행이리라.

2023년 1월 16-20일 동안 스위스 다보스에서 세계 경제 포럼(WEF)이 열린다. (이미지 출처 = weforum.org)

지난 세기 중반에 활발하게 활동한 미국의 경제학자 케네스 볼딩은 “유한한 세상에서 지수 함수 같은 성장이 영원히 계속되리라 믿는 이는 정신 나간 사람이거나 경제학자, 둘 중 하나”라고 말했다. 부자나라의 생활환경이 깨끗해 보이는 건 생산과정, 자원 채굴 과정에서 오염물질을 공장과 군말 없는 노동자를 가진 국가, 남은 자원이 있는 국가로 전가한 까닭이다. 그런 불평등한 관계가 지속되면서 경제 불평등과 감염병이 불거졌을 뿐 아니라 불평등이 걷잡을 수 없게 커졌다. 그럼에도 모든 걸 차지한 자의 포악한 탐욕은 그치지 않았고, 전쟁으로 이어지게 했다. 조각난 세계에서 다보스 포럼에 참석하는 부자들은 어떤 논의에 나설까?

태양에너지를 동화시키는 식물이 있기에 동물이 살아간다. 죽은 동식물을 처리하는 미생물 덕분에 생태계는 건강하게 순환되지만, 인류의 끝 모를 탐욕으로 생태계를 형편없게 훼손시키고 말았다. 포유류만 보자. 포유류 무게의 30퍼센트가 사람이다. 나머지 70퍼센트 중 67퍼센트가 가축이다. 그런 생태계는 존재할 수 없다. 석유 에너지가 뒷받침하기 전에 존재한 적 없다. 언제까지 유효할까? 인류 사회만 조각난 게 아니다. 사람이 독차지한 생태계는 끔찍하게 찢어졌다. 기후 위기와 감염병 위기는 인간이 크게 교란한 생태계 흐름의 결과다.

부자가 많은 도시는 농촌보다 깨끗한가? 부자나라의 하늘이 깨끗한 이유와 비슷하리라. 강을 틀어막아 상수원을 독차지하는 도시는 더러워진 하수를 밖으로 버린다. 에너지를 동원해 정화하고 버린다고 강변하지만 완벽하지 않고, 그로 인한 생태계 교란은 도시가 책임지지 않는다. 수소차와 전기차가 달리는 도시도 마찬가지다. 수소를 분리하고 전기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오염물질을 밖으로 버린다. 바깥의 식민지를 착취하지 않으면 화려할 뿐 아니라 거대한 자태를 유지할 수 없는 도시와 부자나라만이 아니다.

조금이라도 더우면 에어컨 켜고 더우면 보일러 작동하는 우리는 경제가 성장하지 않으면 행복하지 못할 것이라 믿는다. 글로벌 위험 보고서를 작성한 다보스 포럼까지 그렇게 믿는 듯하다. 이런 풍요와 행복은 지속될 수 없다. 우리는 생태계와 인류 사회의 연결을 단절시키는 데 그치지 않았다.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현세대와 이어질 미래세대의 생존을 차단하고 말았다. 예전에 없던, 어떤 생태계에 없던 패악이 아닐 수 없다.

에너지 보전법칙은 물리학에 한정하는 게 아니다. 일찍이 케네스 볼딩이 지적했듯, 경제도 마찬가지다. 기후 위기 시대의 생존은 생태계 안정으로 가능할 텐데, 50년 넘게 실천보다 말을 앞세운 다보스 포럼, 아무리 지적이고 점잖더라도 올해 역시 미더울 수 없다.

박병상

60플러스 기후행동, 상임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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