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주교단, 한반도 평화 위한 새로운 연대 시작
가톨릭한반도평화포럼, 10월 5-6일 미국 워싱턴 D.C.에서 열려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 주교회의 민족화해주교특별위원회, 민족화해위원회 한미 주교단 만나 구체적 발걸음 약속, 미 국무부에 입장 전달
“이제 시작입니다”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 한국천주교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민족화해주교특별위원회가 미국 천주교주교회의 국제평화위원회와 공동 주최한 가톨릭한반도평화포럼을 통해 한반도 평화를 위한 한미 가톨릭교회 공조의 새로운 발걸음을 시작했다.
“한반도 평화의 난관 타개”를 주제로 10월 5-6일 미국 워싱턴D.C. 가톨릭대학에서 열린 포럼에는 한,미,일 북한 문제와 평화 관련 정치, 외교, 북한학 전문가들이 한반도 평화를 위한 다양한 관점을 발표하고 논의했다. 이번 학술대회는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가 2017년부터 매년 열었으며, 올해 처음으로 미국에서 열렸다.
이번 포럼이 미국에서 열린 것은 미국이 한반도 문제에서 빼놓을 수 없는 당사국이고 특히 북미 관계가 한반도 평화와 종전에 핵심인 만큼 한국 교회가 미국 교회와의 구체적 연대를 적극 모색했다는 의미가 있다. 또 미국 교회와 만나 한반도 평화를 위해 한미 교회가 어떤 방향을 정하고 구체적으로 요청할 것인지를 정리하고, 한국 교회 주교단 내 대화와 공감을 이끌어낸 것이 성과로 꼽힌다.
이번 학술대회에는 민족화해주교특별위원회 소속 김희중 대주교(광주대교구장), 정순택 대주교(서울대교구장), 이기헌 주교(의정부교구장), 김주영 주교(춘천교구장 및 민족화해위원장), 박현동 아빠스(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장)가 참석했으며, 미국 천주교주교회의에서는 데이비드 말로이 주교(미국 주교회의 국제정의평화위원장, 락포트교구장), 티모시 브롤리오 대주교(미국 군종교구장), 마이클 멀비 주교(코르푸스 크리스티 교구장), 리차드 페이트 주교(데모인 교구 전 교구장), 엘리야 제이던 주교(레바논의 성모 마리아 마론파 교구장)등과 크리스토프 피에르 대주교(주미 교황대사) 등이 참석했다.
학술대회 이틀째인 6일, 한국 주교단은 미국 주교단과 만나 한반도 평화, 특히 북미 관계 개선을 위한 새로운 방법을 제시하고 이를 한미 주교단이 구체적으로 함께 노력하자는 의견에 공감을 이끌어냈다. 또 한미 주교단이 함께 미국 국무부 관계자를 만나 이같은 의견을 전달했다.
한국 주교단은 한반도 정전체제를 끝내기 위한 실질적인 노력의 필요성, 국제사회의 대북 경제 제재로 북한의 취약계층이 피해를 입고 있다는 우려, 북한 주민의 해외 이동권 금지 해제 등 인도주의적 관점에서 북한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고 미국 주교단에 설명했다.
함께 참석한 박현동 아빠스는 “미국과 한국의 주교단이 북한 문제와 한반도 평화 문제 해결을 위한 의견을 충분히 나눴으며, 공조와 연대를 위해 서로 무엇을 원하고 요구하는지 구체화하는 데 어느 정도 접근했다”고 한국 기자단에게 밝혔다.
박 아빠스는 미국 주교단에게 대북 정책의 변화가 절실하다고 설명하고, 무엇보다 인도적 지원과 (그동안 실효성 없다고 판단된) 대북 제재 완화, 북한의 강제적 핵무기 포기보다는 스스로 쓰지 않도록 분위기 전환 등을 요청했다면서 매우 우호적이고 긍정적인 분위기였다고 밝혔다.
박 아빠스는 “한국 주교단이 절박함으로 미국에 직접 와서 여러 의견을 발표하고, 한국 교회의 입장을 이야기한 것 자체가 새로운 접근법이었던 것 같다”며, “이번 시도, 새로운 관계의 시작을 통해서 여러 수준으로 접근할 수 있는 물꼬를 튼 것 같다”고 말했다.
한미 주교단 만남 뒤, 미국 데이비드 말로이 주교, 티모시 브롤리오 대주교, 엘리야 제이던 주교와 한국 주교단은 미 국무부 관계자들을 만났다.
이 자리에는 미 하원의원 브래드 셔먼, 드류 퍼거슨, 앤디 김, 마이클 켈리, 그레이스 멩 등 6명 의원실 보좌관이 참석했다. 특히 브래드 셔먼 의원은 한반도 종전선언을 지지하고 있으며, ‘한반도 평화법안’을 발의한 바 있다.
주교단은 이 자리에서 평화의 중요성과 가치, 개인 경험에서 비롯된 전쟁의 참혹성을 강조하는 한편,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한 미국 정부 차원의 전향적 태도와 노력을 요청했다. 또 북핵과 관련해 미국은 북한이 핵을 이미 보유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고려해야 문제 해결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대북 제재 역시 지금까지 전혀 실질적 효과가 없었으며, 오히려 북한의 약자들에게 피해가 집중되고 있다고 지적하고, 인도주의적 지원을 요청했다.
주교단은 대북제재 2327호에 따른 해외 북한 주민 강제 소환에 대해 말하고, 인적 교류는 허가해야 한다며, 북핵을 비롯한 대북 정책에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창의적 해법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한국 주교단 간담회>
학술대회를 마치며 주교단은 출국 전 모든 일정과 성과에 대해 설명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주교단 5명은 지난 5년간 진행된 한미 학술대회의 연장선을 넘어 생각지 못한 큰 성과를 얻었다고 말했다. 특히 미국 주교단의 형제애를 바탕으로 한 적극적 호응으로 한반도 평화를 위한 한미 교회의 공동 노력을 확인했고, 한국 교회 내부에서도 더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노력의 실마리를 얻었다고 평가했다.
“이번 포럼은 상당이 큰 프로젝트였습니다. 이 성과를 위한 지난 노력에 감사합니다. 또 하나는 함께해 주신 미국 국제정평위 주교님들의 형제적 지지를 굉장히 강하게 느꼈습니다. 앞으로 우리가 한반도 평화에 대해서 목소리를 더 크게 낼 수 있겠다는 큰 희망을 본 것이 가장 큰 소감입니다.”(정순택 대주교)
“어느 미국 추기경님이 한반도 평화 문제는 미국인의 시각이 아니라 교회의 정신과 가르침에 따라 용기를 갖고 접근해야 한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는데, 아마 이번에 그것이 무엇인지 보여 주신 것 같습니다. 북핵 문제, 한반도 평화 문제는 새롭고 창조적인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형제가 되고 서로 우호적인 관계를 맺는 것이 우선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평행선을 계속 달릴 수밖에 없습니다.”(이기헌 주교)
“앞으로 우리가 조금 더 적극적이고 구체적인 한반도 평화 해법을 도출하기 위한 첫걸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는 아주 간절하면서도 급하지 않게, 준비를 착실하게 하면서 한반도 평화를 지지하는 이들과 공감대를 넓히고, 더 기술적이고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하기를 바랍니다. 이번에 구체적인 결실이 나오지 않았지만, 앞으로 큰 길을 내딛는 데 아주 소중한 결실을 볼 수 있었습니다.”(김희중 대주교)
“대화라는 것은 한번에 모든 것을 소통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꾸준하게 여러 다른 단계의 대화를 하면서 이뤄 나가는 것 같습니다. 그런 점을 이번에 다시 돌아보게 됐습니다. 단 한번으로 우리의 모든 의사가 전달된 것은 아니지만, 또 다른 차원의 대화가 앞으로는 계속 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새롭게 인식한 것 같습니다.”(박현동 아빠스)
주교들의 주요 총평 뒤 이어진 질의 응답은 다음과 같다.
이번 한국 주교단 내 합의된 의견과 성과가 민족화해위원회 차원에서 진행될 것인지, 아니면 한국 주교단 전체로 확대, 공유될 것인지 궁금합니다.
김주영 주교 : 전체 교회 차원에서 공유되고 함께 추진될 것을 희망하고 그것이 한반도 평화를 위해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아직 이 자리에서는 정해진 것이 없습니다.
한반도 평화를 이루는 방법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공식 내용이라고 발표할 수는 없겠습니다. 하지만 미국 교회 또 연관국을 비롯한 보편 교회와 연대하기 위한 큰 발자국을 뗀 것이고, 앞으로 동북아평화연구소,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 등을 통해서 연대하고, 학자들이나 교회 지도자들과 함께 지평을 넓혀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종교계, 학계, 정치계 그리고 나아가 민간 차원의 공공 외교 등이 다 어우러져야 하기 때문에 앞으로 그런 방향으로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학술대회 발표와 논의를 통해서 우리는 아직도 북한의 특수성, 현재 북한 사회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는 공감대가 형성됐습니다. 따라서 북한을 알기 위한 교육의 필요성이 제기됐는데요. 김희중 대주교님께서 이러한 교육에 대해 특별히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김희중 대주교 : 우리 청소년기부터 평화의 가치에 공감할 수 있는 영역을 좀 넓히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가 장기적으로 이뤄져야 하는데, 필요할 때 반짝 진행됐다가 사라지는 그런 행사 위주의 활동은 위험 부담이 있다는 생각입니다.
평화는 복음의 핵심적 가치의 하나이기 때문에 예수님이 탄생하실 때 천사의 노래가 평화로부터 시작됐고 또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평화를 말씀하셨고, 부활하신 후 첫 인사도 평화의 인사였습니다. 그러나 이런 ‘평화’가 사변적이고 추상적인 가치가 아니라 일상 안에서 어떻게 평화적 관계를 맺고 평화의 가치를 구현할 수 있는지 그런 체계를 갖춘 교육을 시도하면 좋겠습니다. 천주교뿐 아니라 사회, 종교 모든 면에서 평화의 가치를 증진시키는 교육이 사회 전반적으로 확산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평화교육이 추상적인 가치를 말하는 단계를 넘어야 한다면, 우리가 그동안 이야기해 왔던 민족의 화해, 일치가 어떤 화해이고 어떤 일치인지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이야기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교회가 어떤 노력을 할 수 있을까요?
김희중 대주교 : 화해와 일치가 무엇인가, 어떻게 이뤄져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 먼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화해를 한다는 명분으로 과거사에 발목 잡혀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과거의 이러저러한 일들을 거론하다 보면, 오히려 나아가지 못하거나 더딘 진행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래서 과거의 구체적인 사건, 상황에 대해서는 이미 우리가 다 알고 있고, 한쪽의 입장에서 말하다 보면 상대방에 대한 섭섭함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오히려 화해를 위한 행위가 중단될 수 있습니다. 그 대신 같은 비전을 가지고 함께 할 수 있는 일부터 해나가면 좋지 않을까요? 함께 하다 보면 과거의 것은 서로 이해하면서 넘어갈 수 있습니다.
일례로, 개신교와 가톨릭교회가 조금 가까워진 것은 서로 교리를 이해했기 때문이 아니라 민주화운동이나 사회복지 활동을 함께 하면서 서로 공유하는 영역을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이기헌 주교 : 이번에 논의됐던 것들 가운데 가장 많이 이야기됐던 것이 아마 ‘구체성’에 대한 것일 것입니다. 미국 주교님들도 구체적인 이야기를 듣고 싶어 했고요. 현재 ‘화해’에 대한 문제는 사실 우리 남쪽 사회 안에서 좀 더 이뤄져야 하고, 그래서 제일 필요한 것은 우리 신자들의 화해 교육, 평화 교육입니다.
요즘 각 교구마다 평화학교를 운영하고 있고, 특별히 시기적으로 좋은 것은 우리 교회가 지금 시노달리타스를 이야기기하고 있으니까 대화와 경청이 이뤄짐으로써 한국 사회 안에서 화해와 갈등 해소가 될 것이라는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하나 제안하는 것은, 우리 평신도들 중심으로 심포지움 한번 열어 보자는 것이고, 그러면서 세대간 갈등이나 이념 갈등 등을 대화를 통해, 서로 경청하면서 신자들 안에서도 자신과 다른 입장, 의견에 대해 이해하고 듣고자 하는 태도들이 확대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정순택 대주교 : 조금 뒤집어서 생각을 해 보면 한반도 평화의 문제는 폭력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70여 년 전 우리의 한국전쟁이라는 폭력이 오늘날에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전쟁과 같은 폭력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또 우리 사회 안에서도 성폭력, 가정폭력 등의 폭력이 횡행하고 있습니다. 남북한의 평화 문제가 뒤집어서 보면 우리가 사는 세상에 만연한 폭력과 무관하지 않다면 이는 우리 모든 사회구성원의 문제입니다. 분단과 평화의 문제는 일부 관심 있는 몇몇이나 한두 세대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삶 전반의 문제입니다. 그렇다면 일상의 폭력 문제와 연계해서 우리 사회가 다 함께 고민하고 참다운 평화를 풀어 갈 방법을 고민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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