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 점점점 2
“다울이, 다랑이 조용히 못해? 다나도 이제 그만 울어. 그 정도 했으면 됐지 언제까지 울거야?”
급기야 나는 지금 당장 모든 소란을 종식시키고 싶은 조급한 마음에 노발대발 화를 내고 말았다. 험악한 분위기를 알아차리고 다울이 다랑이는 입을 꾹 다물었다. 하지만 다나는 여전히 구슬프게 울었다. 그만 울라고 호통을 치면 칠수록 더 서럽게 울었다. 달팽이가 죽어서 슬픈 것 더하기, 자기 때문에 죽었다는 사실에 대한 죄책감 더하기, 울고 싶은 마음을 몰라주는 엄마에 대한 야속함까지 더해져 울지 않을 수 없었던 모양이다. 결국 다나는 울다 지쳐 잠이 들었다. 눈언저리가 벌겋게 퉁퉁 부은 채로.
자식 키우는 부모들은 알겠지만 울다 잠든 아이 얼굴을 보면 마음이 찢어지게 아프다. 조금 더 기다려 줄 걸, 충분히 공감해 줄 걸, 왜 그러지 못해 아이 마음을 더 아프게 했을까 뉘우치고 또 뉘우치게 된다. 그깟 달팽이 한 마리 때문에 이게 뭔 난리인가 싶기도 하다가, 달팽이 한 마리는 생명이 아니라는 거냐, 내가 나한테 대들기도 했다가, 아무튼 매우 복잡한 심경이 되었다. 앞으로 수없이 많은 헤어짐이 있을 텐데, 그때마다 이렇게 괴로운 상황에 맞닥뜨려야 하는 걸까? 어떻게 해야 잘 떠나보내는 것이 될까? 애도란 무엇일까?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 밤새 뒤척일 수밖에 없었다.
다음 날 아침, 다나는 점점이를 혼자 조용히 묻어 주었다고 했다. 나는 어젯밤의 소동일랑 다시 까맣게 잊어버리고 밭에서 노각 오이를 따고 있었는데, 내가 딴 오이에 달팽이 한 마리가 앉아 있는 게 아닌가? 점점이보다 약간 더 큰 달팽이였다.
“다나야, 달팽이야, 달팽이! 얼른 나와 봐!”
내가 크게 소리치자 다나가 번개처럼 달려 나와서는 조심스럽게 달팽이를 건네받으며 말했다.
“우와, 점점이가 나한테 자기 친구를 보내줬나 보다. 이제 정말 잘 돌봐 줘야지.”
그렇게 해서 점점이가 살던 집에 점점점이가 살게 되었다. 점점이보다 조금 더 몸집이 크니까 점점점이. 다나는 점점점이를 잘 돌봐 주려면 달팽이에 대해 더 잘 알아야겠다는 생각을 한 모양인지 “달팽이의 비밀”이라는 책을 찾아와서는 읽어 달라고 했다. 달팽이에게 비밀이라고 할 것이 있을까 싶으면서도 어쩔 수 없이 읽어 주게 되었는데 생각보다 흥미로웠다. 내가 흥미진진하게 기억하게 된 내용 몇 가지를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 달팽이는 겨울잠을 잔다. (한여름에 햇볕이 너무 뜨거워지면) 여름잠도 잔다.
암수한몸이지만 알을 낳으려면 다른 달팽이와 짝을 지어야 한다.
잠들어 있는 달팽이는 물방울이 몸에 닿으면 깨어난다.
귀가 없어서 소리를 듣지 못한다. 눈도 어두워 아주 가까운 곳만 볼 수 있다. 대신에 작은 더듬이가 아주 민감하다. 맛을 느끼고 냄새를 맡는 것도 작은 더듬이를 통해 가능하다.
혀에 수많은 이빨이 나 있다. 이빨이 닳게 되면 새 이빨이 또 나온다.
선조들은 바다에서 살았다.
사실 다랑이 다울이 어릴 때도 이 책을 읽어준 기억은 있는데 그때는 이렇게까지 신기해 하며 달팽이의 세계에 빠져들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 지난밤 점점이라고 하는 작은 달팽이가 불러일으킨 큰 소란 때문에 내가 달팽이라고 하는 작은 존재를 더 궁금하게 여기게 된 게 아닌가 싶다. 특히 책의 마지막 맺음말 부분에 "이제는 뭍에서 살게 된 달팽이가 아직도 발 밑에 늘 ‘바다’를 만들며 살아가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 대목에서는 어쩐지 코끝이 찡해지기까지 했다. 달팽이가 바다를 만들며 살아가는 존재였다니!
약간 황당하면서 놀라운 일은 다나가 별안간 점점점이를 밭에 돌려보내주기로 한 것이다. 갑작스러운 심경 변화의 원인을 물어보니 달팽이가 자기 마음대로 살게 해 주고 싶어서라는데, 아무래도 바다에서 온 큰 존재를 작은 플라스틱통 안에 넣어 두는 게 미안해서가 아니었을까? 아무튼 점점이와 점점점이 덕에 나도 큰 세상을 만났다. 잘 지내라, 점점! 잘 살아라, 점점점!
* 애도란 상실과 함께 사는 것이고, 그래서 상실이 의미하는 게 무엇인지, 세계가 어떻게 변했는지, 그리고 우리가 여기서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면 우리 자신이 어떻게 변해서 우리의 관계들을 어떻게 새롭게 해야 하는지를 잘 인식하게 되는 것과 관련이 있다. 이 맥락에서 우리가 얼마나 의존하고 있는지, 그들과 우리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자각하게 할 것이다. - "트러블과 함께하기", 72쪽에서

정청라
흙먼지만 풀풀 날리는 무관심, 무 호기심의 삭막한 땅을
관심과 호기심의 정원으로 바꿔 보려 합니다.
아이들과 동물들의 은덕에 기대어서 말이죠.
무구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명랑한 어른으로 자라나고 싶어요.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