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종, 캐나다 참회순례 소감과 다양한 주제에 답변
기내 회견서 은퇴설, 독일 교회에 보낸 서명 없는 성명서 등 질문
(편집 : 장기풍)
“캐나다 기숙학교는 원주민에 대한 대량학살입니다”
교종 기내 회견, 참회순례 소감과 은퇴설 등 다양한 주제에 답변
프란치스코 교종은 7월 29일 캐나다에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80여 명 수행 기자와 기내 회견을 갖고 이번 캐나다 ‘참회순례’ 소감과 건강, 은퇴 계획 등 기자들의 다양하고 날카로운 질문에 진지하게 답변했다. 교종은 기내 회견을 시작하면서 기자들이 이번 여정에서의 수고를 잘 알고 있으며 기자들을 파견한 언론사에 감사한다고 말했다. 아래는 회견 내용 요약.
(문) 저는 캐나다 원주민으로 기숙학교 생존자 후손인 <CBC라디오> 제시카 기자입니다. 생존자와 가족들은 교종의 사과에 따른 구체적인 행동을 보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원주민들에 대한 구별이 여전히 캐나다와 미국의 헌법과 법체계에 명시돼 있으며, 원주민들이 계속해서 그들의 토지를 사기당하고 권력을 박탈당하는 상황에서, 여정 중 이러한 취지의 성명을 발표할 기회를 놓친 것이 아니었을까요?
(답) 저는 이것이 모든 식민주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사람, 심지어 오늘날까지도 이데올로기적 식민화는 같은 패턴을 갖고 있습니다. ‘여기에 속하지 않는 자는 열등하다.’ 열등할 뿐 아니라 약간 미친 신학자들은 그들에게 영혼이 있는지 의심하기도 했습니다. 인간평등에 대한 소리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소수였습니다. 인간평등에 대한 의식은 서서히 다가왔습니다. 왜냐하면 인간 무의식 속에는 여전히 무언가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들의 문화를 서구적인 것으로 바꾸는 식민주의 태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우리는 그들이 가진 가치를 잃어버립니다. 예를 들어, 토착민들은 창조와 조화를 이루는 커다란 가치를 가지고 있으며, 제가 아는 몇몇 사람은 그것을 '잘 사는 것'이라고 표현합니다. 그것은 우리 서구인들이 이해하는 것처럼 잘 쓰거나 달콤한 삶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원주민들에게 잘 산다는 것은 화합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며, 그것이 큰 가치입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머리로 생각하는 데 익숙하지만 원주민들은 일반적으로 머리, 마음, 손의 세 가지 언어로 자신을 표현하는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서구 사회는 다소 과장되고 신경증적 발달로 가속화된 진보주의입니다. 개발은 좋습니다. 그러나 '개발, 개발, 개발'에 대한 불안은 좋지 않습니다. 과도하게 발달된 상업문명이 잃어버린 것 중 하나는 '시(詩)의 능력'입니다. 토착민은 그 시적 능력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식민주의 교리는 나쁘고 불공평합니다. 아메리카 식민화로 돌이켜보면 영국, 프랑스, 스페인, 포르투갈 식민지에는 항상 위험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우월하고 너희들은 그렇지 않다'라는 의식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오늘날도 식민주의가 존재합니다. 사실을 알고 무엇이 잘못됐는지 고쳐야 합니다. 미얀마 로힝야족은 시민권도 없습니다. 오늘도 그렇습니다.
(문) 캐나디안 프레스 호보슨 기자입니다. 교종님은 종종 명확하고 정직하며 직접적 용어로 말할 필요가 있다고 하셨습니다. 캐나다 진실화해위원회는 기숙학교 시스템을 ‘문화적 집단학살’로 묘사했으며 그 표현은 단순히 ‘집단학살’로 수정됐습니다. 지난주 교종님 사과 말씀을 들은 사람들은 ‘집단학살’이라는 용어가 사용되지 않은 사실에 개탄했습니다. 그 용어를 사용하고 교회 구성원들이 이 ‘대량학살’에 가담했다는 것을 인정하시겠습니까?
(답) 맞습니다. 얼른 그 말이 떠오르지 않아 사용하지 않았지만, 집단학살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이 이번 여정의 목적입니다. 예를 들어, 저는 이런 것들을 비난했습니다. 아이들을 데려가는 것, 문화를 바꾸는 것, 사고방식을 바꾸는 것, 전통을 바꾸는 것, 인종을 바꾸는 것, 말하자면 전체 문화를 바꾸는 것입니다. 네, 전문용어로 ‘대량학살’입니다. 하지만 얼른 생각나지 않아 사용하지 않았지만 사실관계는 설명했습니다. 맞습니다. 네, 대량학살이었습니다. 당신은 이것에 대해 참작할 수 있습니다. 분명히 집단학살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문) 알라즈라키 크래스티치 TV 소속 마리아 발렌티나 기자입니다. 우리는 오늘 아침 교종님께서 이번 캐나다 순방을 ‘신체적 한계’라고 부른 것은 건강 때문이라고 이해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알고 싶습니다. 이후 교종님 여행 계획을 말씀해 주실 수 있습니까? 이대로 여행을 계속하고 싶다면? 어떠한 제한으로 여행할 수 없거나 가능하다면 무릎 수술로 더 많은 문제를 해결하고 이전처럼 여행을 허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답) 고맙습니다. 전과 같은 속도로 여행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제 나이 한계로 교회를 섬기기 위해서는 조금이라도 기력을 모아야 하고, 반대로 한 발짝 물러날 가능성도 생각해야 합니다. 몸은 정직합니다. 이것은 재앙이 아닙니다. 교종을 바꾸는 것도 가능합니다. 모든 변화는 가능하고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으로 제 자신을 조금 제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에게 무릎 수술은 선택사항이 아닙니다. 의료 전문가도 그렇다고 말했지만 마취의 문제가 있습니다. 10개월 전 6시간 넘게 마취했는데 아직도 그 후유증이 남아 있습니다. 그것이 제가 완전히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이유입니다. 하지만 계속해서 여행을 만들고 사람들과 가까워지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그 이상은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보충 질문) 카자흐스탄으로 여행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그리고 카자흐스탄에 간다면 우크라이나도 가야 하지 않을까요?
(답) 저는 우크라이나에 가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제가 바티칸에 도착해 어떤 상황인지 봐야 합니다. 그러나 카자흐스탄은 일단 가고 싶습니다. 이동이 많지 않고 종교회의가 있는 조용한 여행입니다. 그러나 모든 것은 잠시 ‘현상 유지’입니다. 남수단도 가고 콩고도 가야 하는데 캔터베리 대주교님과 스코틀랜드 주교님 셋이서 함께 하는 여행입니다. 2년 전 우리 셋이 함께 바티칸 수양회에 참석했습니다. 콩고는 우기 때문에 내년이 될 것입니다. 모든 선의적인 구상이 있지만 제 다리 상태가 말하는 것을 지켜봅시다.
(문) 파리마치 캐롤라이나 피고찌 기자입니다. 교종님은 오늘 아침에 여행 중에 항상 하시는 것처럼 퀘벡 대주교관에서 가족들인 예수회 지역 회원들을 만났습니다. 9년 전 브라질에서 돌아왔을 때, 저는 교종님께 여전히 예수회를 느끼는지 물었습니다. 교종님 대답은 긍정적이었습니다. 12월4일 그리스에서 예수회원들을 만나 교종님은 “과정을 시작하면 발전하게 놔두고 일을 키우고 나서는 은퇴해야 합니다. 모든 예수회원은 이렇게 해야 합니다. 어떤 일도 개인에게 속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주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언젠가 이 말씀이 예수회 출신 교종님께도 적용될 수 있을까요?
(답)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보충 질문) 그것은 교종께서 예수회처럼 은퇴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까?
(답)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주님의 뜻을 행하려고 합니다. 예수회 출신 교종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가라고 말씀하시면, 앞으로 가야 합니다. 주님이 모퉁이로 가라고 말씀하시면 모퉁이로 가야 합니다.
(보충 질문) 교종님이 말씀하신 것은 그 시점에서 죽음을 예상한다는 것을 의미합니까?
(답) 우리는 모두 죽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보충 질문) 제 말은 그 전에 먼저 은퇴하시지 않겠느냐는 질문입니다.
(답) 주님은 사임을 말씀하실 수 있습니다. 명령하시는 분은 주님이십니다. 성 이냐시오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피곤하고 병들었을 때 정해진 기도를 거를 수는 있었지만 양심의 성찰을 면제한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하루에 두 번 오늘 내 마음에 일어난 일을 보십시오. 비록 죄는 없지만, 오늘 나를 감동시킨 정신은 무엇인가? 우리의 소명은 오늘 일어난 일을 찾는 것입니다. 가설이지만 만약 주님께서 나에게 무엇인가를 말씀하시고, 나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고, 내가 영감을 받았다는 것을 알았다면 나는 주님께서 무엇을 요구하시는지 알기 위해 분별해야 합니다.
주님은 나를 변방으로 보내기를 원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분이 책임지고 계십니다. 이것이 예수회의 종교적 삶의 방식이며, 영적 분별력을 갖고 결정 내리고 길을 선택하고 헌신하는 것입니다. 분별은 예수회 소명의 핵심입니다. 매우 중요합니다. 이 점에서 성 이냐시오는 영적 분별에 대한 경험이 그를 회심으로 이끌었기 때문에 매우 훌륭했습니다. 그리고 영성훈련은 실제로 분별력의 학교입니다. 따라서 예수회는 소명에 따라 분별력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상황과 자신의 양심을 분별하며, 내려야 할 결정을 분별해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주님이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든 열려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영성입니다.
(보충 질문) 그러면 당신은 교종과 예수회, 어느 쪽에 가깝다고 느끼십니까?
(답) 저는 교종이나 예수회를 측정한 적이 없습니다. 저는 예수회의 관습을 가진 주님의 종이라고 느낍니다. 교종의 영성은 있을 수 없습니다. 각 교종은 자신의 영성을 나타냅니다. 아름다운 마리아 영성을 지닌 성 요한바오로 2세를 보십시오. 그는 이전에도 그것을 가지고 있었고 교종으로서도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그동안 자신의 영성을 이어 온 많은 교종을 생각해 보십시오. 교종권은 영성이 아닌 직업, 기능, 봉사입니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영성과 은총, 신실함, 그리고 자신의 죄를 안고 직책을 수행합니다. 교종의 영성은 없습니다. 예수회 영성과 교종의 영성을 비교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후자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해했나요?
(문) CIC 세베리나 엘리자베스 바르토니첵 기자입니다. 어제 교종님은 대화에 귀를 기울이고 대화에 참여하는 방법과 좋은 관계를 촉진하는 교회 형제애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 독일 시노달 방식에 대한 바티칸 성명서 본문이 서명 없이 발표되었습니다. 이러한 의사소통 방식이 대화에 기여하거나 장애가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답) 먼저 그 성명서는 국무부에서 작성한 것이라고 말하지 않은 것은 실수였습니다. 국무부에서 작성한 것 같은데 잘 모르겠습니다. 사무국으로 서명하지 않은 것은 악의가 아닌 공직자의 실수였습니다. 그리고 시노달웨이에 저는 혼자 편지를 썼습니다. 기도, 반성, 상담이 있는 한 달입니다. 그리고 저는 총회 방식에 대해 말해야 했던 모든 것을 말했습니다. 그 이상은 말하지 않겠습니다. 그것은 2년 전 제가 쓴 총회 방식의 교종의 교도권입니다. 저는 꾸리아에서 상담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꾸리아를 건너뛰었습니다. 길을 찾는 교회를 위한 목자로서, 형제로서, 아버지로서, 신자로서 제 길을 걸어왔습니다. 그것이 제 메시지입니다. 쉽지 않다는 것을 알지만 그 편지에는 모든 것이 담겨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문) 이그나치오 잉그라오 이탈리아 국영TV 기자입니다. 이탈리아는 현재 국제적으로 우려되는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습니다. 경제 위기, 대유행, 전쟁이 있는 지금 우리는 정부도 없습니다. 교종님은 이탈리아 멘토이십니다. 마타렐라 대통령 생일 축하 전보에서 당신은 이탈리아의 몇 가지 어려움과 중요한 선택을 말씀했습니다. 드라기 총리의 몰락을 어떻게 보셨습니까?
(답) 우선 저는 이탈리아 국내 정치에 간섭하지 않습니다. 둘째, 드라기 총리가 국제적 수준의 인물이 아니었다고 말할 사람은 없습니다. 그는 유럽중앙은행 총재였다는 좋은 경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는 직원 중 한 명에게 딱 한 가지를 질문했습니다. 이 세기에 이탈리아에는 몇 개의 정부가 있었습니까? 그는 나에게 20개라고 대답했습니다. 이것이 제 대답입니다.
(보충 질문) 이탈리아의 이 어려운 선거를 생각할 때 정치 세력에 어떤 호소를 하십니까?
(답) 정치인의 책임과 시민 각자의 책임입니다.
(문) 클레어 지안그레이브 <RNS> 기자입니다. 많은 가톨릭신자뿐 아니라 신학자들은 피임약에 관한 교리의 발전이 필요하다고 믿습니다. 전임 요한바오로 1세도 전면 금지 조치를 재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이에 대한 교종님 견해는 무엇입니까? 이와 관련한 재평가에 열려 있습니까? 아니면 부부가 피임약을 고려할 가능성이 있습니까?
(답) 매우 시의적절한 질문입니다. 그러나 도그마인 도덕은 항상 발전의 길에 있지만 같은 방향으로 발전한다는 것을 아십시오. 한 가지 분명한 점을 말씀드리자면, 제가 다른 시간에 말한 것 같습니다. 도덕적 또는 독단적 문제의 신학적 발전에는 매우 명확하고 빛을 발하는 규칙이 있습니다. 10세기 프랑스 성 빈센트가 했던 말입니다. 그는 진정한 교리가 전진하고 발전하기 위해서는 조용해서는 안 되며, 그것은 세월에 의해 강화되고, 시간에 의해 확장되고, 나이에 의해 향상될 수 있도록 발전한다고 말합니다. 즉, 시간이 지남에 따라 통합되고 확장되고 조용하지만 항상 진행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학자의 의무는 연구이고 신학적 반성이며, ‘아니오’를 전제하고 신학을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교도권은 “아니오”라고 말할 것입니다. 신학적 발전은 열려 있어야 합니다. 신학자들은 그것을 위해 존재합니다. 그리고 교도권은 한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돼야 합니다.
피임 문제와 결혼 문제에 대한 여러 출판물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총회에서 가설을 세우고 토론하고 제안하면서 우리는 분명히 해야 합니다. 이 대회를 만든 이들은 자신의 의무를 다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교리에서는 전진하려고 했지만 교회적 의미에서는 제가 성 빈센트 규칙에 대해 말했듯이 밖으로 나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교도권은 예, 또는 아니오 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너무 많은 것이 호출됩니다. 예를 들어 핵무기를 생각합니다. 오늘 나는 공식적으로 핵무기 사용과 소유가 부도덕하다고 선언했습니다. 사형에 대해 생각해 보십시오. 도덕적 양심이 잘 발달됐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는 그것을 부도덕에 가깝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분명히 하자면 교리나 도덕이 발전하면 좋지만 성 빈센트가 말한 세 가지 규칙이 있습니다. 저는 이것이 매우 분명하다고 생각합니다. 교회적 의미에서 발전하지 않는 교회는 거꾸로 가는 교회이며, 이것이 오늘날 스스로 전통이라고 부르는 수많은 사람의 문제입니다. 그것은 전통적이 아니라 ‘후향적’이며, 뿌리 없이 거꾸로 가고 있습니다. 지난 세기 항상 그렇게 해왔고, 그렇게 되었습니다.
뒤를 돌아보는 것은 교회와 함께 앞으로 나아가지 않기 때문에 죄입니다. 전통은 누군가 연설에서 말한 것 같습니다. ‘전통은 죽은 자의 살아 있는 믿음’입니다. 전통은 뿌리이자 교회가 앞으로 나아가는 영감이며, 항상 수직적입니다. 그리고 ‘뒤돌아보기’는 뒤로 가고, 항상 닫혀 있습니다. 나무뿌리처럼 항상 열려 있고 나무가 자라는 전통의 역할을 잘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한 음악가는 매우 아름다운 문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구스타프 말러의 말처럼 이런 의미의 전통은 미래의 보증이지 박물관 조각이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전통을 닫힌 것으로 생각한다면 그리스도교의 전통이 아닙니다. 여러분을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은 뿌리입니다. 그래서 당신이 말하는 신념과 도덕은 방금 언급한 성 빈센트의 이 세 가지 규칙과 함께 뿌리의 물의 방향으로 가는 동안은 괜찮습니다.
(문) 스페인 라디오 방송의 에바 페르난데스 기자입니다. 오는 8월 말 컨시스토리(추기경 회의)가 있습니다. 최근 많은 사람이 교종께 사임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느냐고 묻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번에는 묻지 않겠지만 우리는 궁금합니다. 당신의 후임자가 어떤 특성을 갖고 있는 것이 바람직한지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까?
(답) 그것은 성령의 역사입니다. 아시죠? 나는 감히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성령은 나보다, 우리 모두보다 더 잘 할 수 있습니다. 성령은 교종 결정에 항상 영감을 줍니다. 성령은 교회 안에 살아 계시기 때문에 성령이 없는 교회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성령은 차이를 만드시는 분이시며, 소음도 일으키시며 오순절 아침을 생각하게 하신 다음 조화를 이루십니다. '통일'보다 '조화'를 이야기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단결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조화입니다.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점진적인 조화를 주십니다. 나는 성 바실리가 성령에 대해 정의한 것을 좋아합니다. “Ipse armonia est.”(그는 조화입니다.) 성령은 먼저 카리스마로 당신에게 소리를 내기 때문에 조화입니다. 그러므로 이 일은 성령님께 맡기도록 합시다. 제 사임에 대해 저는 당신 중 한 분이 나타나는 모든 징후를 입력한 멋진 기사에 감사하고 싶습니다. 이것은 의견을 제시하는 기자의 좋은 작업이지만 기호로 제공하는 지하 언어의 진술뿐만 아니라 모든 신호를 보고 확인합니다. 표지판을 읽는 방법을 알고 있거나 적어도 그중 하나일 수 있으므로 해석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좋은 작업입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문) 피비 네이턴슨 <ABC> 뉴스 기자입니다. 죄송합니다. 같은 질문을 많이 했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건강상 문제와 함께 이 시간에 은퇴할 때가 됐다는 생각이 떠오르셨나요?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든 문제가 있었나요? 이런 생각을 하게 된 힘든 시기가 있었나요?
(답) 문은 항상 열려 있고, 정상적 옵션이지만 오늘까지 나는 이 문을 두드린 적도 없고, 이 방에 들어간다고 말한 적도 없고, 가능성을 생각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후일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지금은 솔직히 그렇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번 여행도 조금은 시험이 되었고, 이 상태로는 여행을 할 수 없는 것도 사실입니다. 여행의 스타일을 조금 바꿔 줄여야 하고, 해야 할 여행 약속의 빚도 갚고, 재정렬해야 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말씀하실 것입니다. 문은 열려 있습니다, 그것은 사실입니다. 그리고 마치기 전 저에게 매우 중요한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여기 캐나다 여행은 성 안나의 모습과 매우 관련이 있습니다. 나는 여성에 대해 몇 가지를 말했지만 특히 나이든 여성, 어머니, 할머니에 대해 말했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을 강조했습니다. 신앙은 사투리로 전해져야 하고, 분명히 그것은 어머니, 할머니의 사투리입니다. 우리는 그분들의 사투리로 믿음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믿음의 전달과 발전에서 여성의 역할입니다. 기도하는 법을 가르치는 것은 어머니, 할머니이고, 아이가 신앙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먼저 설명하는 것도 어머니, 할머니입니다. 나는 이 변증법적 믿음의 전달을 여성적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 이렇게 말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신학적으로 어떻게 설명합니까? 믿음을 전하는 것은 교회이고 교회는 신부이며, 남성이 아닌 여성이라고 말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남성주의 목회적 환상이나 어떤 남성주의 권력보다 더 중요한 여성 교회, 어머니 교회에 대한 사상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어머니 교회, 교회의 모성. 그것은 주님 어머니의 모습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모성 사투리로 신앙을 전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나는 마카베오의 순교를 읽음으로써 이것을 발견했습니다. 어머니가 어머니의 사투리로 그들에게 영혼을 주었다고 두세 번이나 나옵니다. 믿음은 사투리로 전달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사투리는 여성들이 사용합니다. 교회는 여자이고 교회는 신부이기 때문에 이것은 교회의 큰 기쁨입니다. 이것을 성 안나를 염두에 두고 분명히 말하고 싶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기다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푹 쉬시고 좋은 여행이 되십시오.

장기풍(스테파노)
전 <평화신문> 미주지사 주간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