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탈주민 사는 지역으로 찾아간 첫 공간 ‘평화의 씨앗’

성가소비녀회 의정부관구, 별내 분원 열어

2022-03-18     김수나 기자

성가소비녀회 의정부관구가 북한을 떠나 남한에 정착한 이들이 지역 사회에 깊이 뿌리내리도록 돕기 위해 공간을 마련했다.

공간의 이름은 성가소비녀회 의정부관구 ‘별내 분원(평화의 씨앗) 공동체’다. 이곳은 북한이탈주민의 초기 정착 지원을 넘어서서 이미 정착한 북한이탈주민들이 지역 안에서 안정적 삶을 살아가도록 다양한 활동의 구심점이 될 예정이다.

평화의 씨앗은 경춘선 별내역(경기도 남양주시)에서 걸어서 15분 거리에 있는 아파트로, 성가소비녀회 의정부관구는 이 공간을 전세로 얻어 지난 2월 말 입주하고, 3월 17일 축복미사를 봉헌했다. 

성가소비녀회 의정부관구는 그간 사도직 활동의 하나로 서울 청림동(구 봉천3동)에서 북한이탈주민을 위한 쉼터인 꿈터를 운영해 왔다.

최근 남한으로 들어오는 북한이탈주민이 급격히 줄어드는 등 사목 환경의 변화와 북한이탈주민 사목 활동의 확장을 위해 꿈터 활동을 마무리짓고 평화의 씨앗을 열게 됐다. 성가소비녀회 의정부관구가 기존 쉼터 등의 형태가 아닌 북한이탈주민 거주 지역 안에서 센터 형태로 사목하게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공간 운영은 진 마리앙즈 수녀(평화의 씨앗 원장)와 권 아니타 수녀가 맡는다.

진 수녀는 북한이탈주민 지원을 위한 각종 행사와 모임, 돌봄과 쉼터의 자리로서 더 많은 이가 모이도록 큰 평수의 공간을 마련했다면서 관구가 속한 의정부교구 지역의 센터로서 북한이탈주민 사목이 교구 차원으로 확장돼 나가는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다양한 이들을 만나고 지원하는 기회이자 새로운 사목 환경에 대한 시도”라면서 “인근 지역에 사는 북한이탈주민들을 먼저 만나고 서울 쉼터에서 인연이 됐던 이들과도 연결해 지원활동을 더욱 확대해 나가고, 초기 정착 지원에 집중됐던 쉼터와는 달리 좀 더 다양하고 깊은 관계로 확장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역과 가까운 곳에 공간을 마련한 것도 좀 더 많은 이가 찾아올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신도시인 별내에는 북한이탈주민이 정부에서 배정받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 임대아파트가 많이 있다.

성가소비녀회 의정부관구 ‘별내 분원(평화의 씨앗) 공동체’ 축복미사 모습. ⓒ김수나 기자
성가소비녀회 의정부관구 ‘별내 분원(평화의 씨앗) 공동체’ 축복미사 모습. ⓒ김수나 기자

북한이탈주민에 대한 사랑이 민족화해 활동의 시작

이날 평화의 씨앗에서는 이기헌 주교(의정부교구장) 주례와 강주석 신부(의정부교구 민족화해위원장), 박성욱 신부(의정부교구 사회사목국장)의 공동 집전으로 축복미사가 봉헌됐다.

이 자리에는 강신숙 수녀(성가소비녀회 의정부관구장) 등 성가소비녀회 의정부관구 수도자들과 이재정 신부(별내 성당 주임)와 김지수 신부(별내 성당 부주임) 및 봉사자들, 북한이탈주민인 김 프란치스카 로마나와 한 소피아 씨 등이 함께했다.

김 프란치스카 로마나 씨는 남한에 온 지 20년째로 정착 초기부터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와 빈민사목위원회 등에서 활동해 오고 있다. 정착 12년째인 한 소피아 씨는 7년 전 남한 생활의 어려움을 신앙에 의지하며 이겨내고자 스스로 성당을 찾아 세례를 받았고, 북한이탈주민 지원 활동을 함께하고 있다.

이날 강론에서 이기헌 주교는 “통일과 민족화해를 지향하는 교회로서 그 출발은 기도”라면서 “민족화해위원회 활동을 잘하기 위한 시작은 먼저 북한이탈주민을 사랑하고 그들에게 애정을 갖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주교는 북한이탈주민의 역사는 6.25전쟁 때부터이고 자신은 “새터민 1호”라면서 “1.4후퇴 때인 4살 무렵 (남으로) 넘어와서 고향을 잘 모르지만, 자라면서 이북 이야기만 듣고 이북 음식만 먹고 살다 보니 평양의 지명도 다 알 정도고, 신학교도 평양교구로 들어간 터라 탈북자에 대한 애정이 깊다”고 말했다.

이기헌 주교는 1947년 평양에서 태어났으며 오랜 기간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장(2012-21년)을 지냈고, 지금은 주교회의 민족화해주교특별위원장으로 교회의 민족화해 사목에 남다른 경험과 애정을 갖고 있다.

이 주교는 북한이탈주민은 누구보다 따뜻한 위로가 필요한 이들이라면서 “그들이 수녀님들께 많이 의지하고 어려움을 나누면서 이곳이 위안의 자리이자 사랑의 공간이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성가소비녀회의 설립자 정신은 강생이다. 강생은 예수님께서 우리와 똑같은 인간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오신 것으로, 그 가운데 가난하고 버림받고 소외받는 사람들을 위한 강생”이라면서 “수녀님들이 새터민들에게 강생의 신비를 나눠 주는 수도자가 되시면 좋겠고, 이곳이 찾아오는 이들이 큰 힘을 얻는 복음자리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미사 뒤 이 주교는 평화의 씨앗에 격려금을 전달했다.

이날 한 소피아 씨(녹양동 성당)는 “이런 공간이 있음으로써 서로 만남의 자리가 되고, 어려움을 겪는 북한이탈주민들이 와서 쉴 공간이 되면 좋겠다”면서, “사실 사람들이 몰라서 이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더 많은 이에게 알려서 센터를 많이 활용하게끔 저희도 노력하겠다”고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말했다.

이날 이기헌 주교는 "북한이탈주민에 대한 애정과 사랑이 민족화해 활동의 시작"이라고 강조했다. ⓒ김수나 기자
성수로 축복하는 이기헌 주교. ⓒ김수나 기자

사목이 필요한 곳으로 찾아가는 것이 복음 

강주석 신부는 “이번에 성가소비녀회 의정부관구가 지역 안으로 들어간 것은 단지 쉼터나 사회복지 차원에서 북한이탈주민을 지원하는 단계를 넘어서서, 이들을 위한 사목이 좀 더 깊은 관계 맺음으로 들어가게 된 것”이라고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말했다.

강 신부는 최근 몇 년 새 남한에 들어오는 북한이탈주민의 수가 많이 줄어들고 이미 정착한 이들이 더 늘어난 상황에서 단순한 정착 지원을 넘어서야 하는 사목 환경의 변화도 있다고 설명했다.

또 그는 건물을 지어 공간을 마련하지 않고 이번처럼 공간을 임대하는 방식은 건물이나 센터를 중심으로 사목활동이 고정되지 않고 상황에 따라 도움이 필요한 이들이 있는 곳으로 찾아가는 사목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는) 사목을 위해 사람들을 데려오거나 정부 지원 절차에 얽매이지 않을 수 있어 더욱 복음적”이라고 말했다.

천주교는 군종교구를 뺀 15개 교구에 설치된 민족화해위원회를 중심으로 초기 정착 지원, 멘토링, 청소년 학습 및 교육, 심리 지원, 의료 및 긴급 재난 지원, 가족 지원과 평화 교육 등 다양한 지원활동을 하고 있다.

남한에 들어오기를 원하는 북한이탈주민은 보호 요청 및 국내이송, 조사 및 임시 보호 조치와 사회 적응 교육시설인 하나원에서 12주, 400시간의 과정을 거친 뒤 남한에 정착한다. 정부는 이들의 초기 정착을 위해 주거 및 정착금, 취업과 교육 등을 지원하고, 이 과정에서 지역 적응, 정착 도움, 전문 상담 등에 민간이 참여한다.

김정은 국방위원장 체제의 안정화와 코로나19로 인한 국경 봉쇄 등의 영향으로 현재 새로 남한에 들어오는 북한이탈주민은 급격히 줄어든 상태다. 통일부 자료에 따르면, 그 수는 2011년 2900여 명대였으나 2012년부터 1000여 명대로 줄었고 2020년에는 200여 명대로 급감했다.

이날 강신숙 수녀(성가소비녀회 의정부관구장) 등 성가소비녀회 의정부관구 수도자들과 별내 성당 주임 및 부주임 신부와 봉사자, 북한이탈주민 등이 함께했다. ⓒ김수나 기자
성가소비녀회 의정부관구 ‘별내 분원(평화의 씨앗) 공동체’가 있는 아파트 전경. ⓒ김수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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