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 재처리 실험 본진 대전에서 경주로....이제 전국적 문제다
핵 재처리 실험의 역사적 맥락과 의미 3
이 글은 지난 11월 11일과 18일, 영덕핵발전소반대범군민연대와 핵재처리실험저지30km연대가 진행한 토론회에서 핵폐기를위한전국네트워크 운영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김준한 신부(부산교구)가 발표한 내용으로, 한국의 반핵운동 역사와 의미, 그리고 핵재처리 반대 싸움의 과정을 짚고 있습니다. 대선 후보자들의 핵발전 관련 입장을 확인하는 것이 중요한 지금, 앞으로의 방향을 함께 고민하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발제문은 6번에 걸쳐 연재합니다. - 편집자 주
원자력진흥 정책의 폐기 없이 핵 재처리 실험 막을 수 없다
“우리나라는 우리 국민이 지킬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하고자 하는 일을 의연한 자세로 강력히 추진할 때, 그리고 미국이 도와주지 않더라도 우리는 끝내 해낼 수 있다는 능력을 보여줄 때 비로소 미국은 협조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자주국방입니다.”
이는 1972년 7월 20일, 박정희 당시 대통령이 국방대학원 졸업식에서 한 연설문 내용입니다.
사실상 핵무기 개발을 노골적으로 암시하는 이 연설은 핵기술을 확보하려는 원래의 목적을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특히 ‘자주국방’이라는 용어가 현재 문재인 정부에서도 자주 거론되고 핵잠수함 개발 등에 적용되는 것을 보더라도 우리나라의 원자력진흥정책은 핵무기 개발로 나아가는 변곡점에 도달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전통적 핵무기 보유국이 핵무기 개발에 이어 핵무기 기술 확산 저지와 상업용 전기 생산을 위해 핵발전으로 나아간 것과 달리 한국, 일본과 같은 후발주자들은 핵발전 기술 확보를 통해 핵무기 개발로 나아가는 역순을 밟고 있습니다. 이런 정부의 원자력진흥정책에서 핵 재처리 기술은 특별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핵 재처리 기술은 소듐냉각고속로와 연계해 아직 기존 핵무기 보유국에서도 완성된 기술이 아닙니다. 모두가 실패하고 있는데도 이를 계속 추진하는 이유는 기존의 핵무기 보유국과 대등한 지위를 확보하기 위한 선두적 작업입니다.
결국 핵 재처리 실험을 원천적으로 막기 위해서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 때부터 추진해 온 ‘원자력진흥정책’ 자체를 중단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더구나 올해 2021년은 6차 원자력진흥종합계획(2022-2026)이 수립되는 해입니다.
앞선 1차부터 5차에까지 이르는 원자력진흥의 흐름은 늦어도 내년 초 수립될 6차 계획에서도 그대로 재현되리라 예상됩니다. 차기 정부가 보수든 진보든 이런 정책적 일관성에는 변함이 없을 것입니다. 이런 때일수록 각각 분리된 개별적인 사안에 함몰되지 않고 전체적 틀 속에서 원자력진흥정책 자체에 문제를 제기하고 반핵운동 진영이 다시 한번 결집해야 합니다.
제2의 대전, 경주 혁신원자력연구단지를 막아야 한다
‘미래 혁신 원자력 시스템 핵심기술’ 주목
우리나라 원자력진흥정책의 제1 주체가 바로 정부라면, 그 정책 실행의 본산은 한국원자력연구원입니다. 한국원자력연구원은 반세기가 넘는 세월 동안 대전에서 다양한 핵기술 연구 및 실험을 진행해 왔습니다. 하지만 이에 그치지 않고 전북 정읍의 첨단방사선연구소, 경주의 양성자과학연구단에 이어 현재 기장에서는 수출용신형연구로가 추진 중이며, 가장 중요하게는 경주에 또다시 제2 원자력연구원 수준의 혁신원자력연구단지가 ‘문무대왕과학연구소’라는 이름으로 설립되고 있다는 점이 대단히 우려스럽습니다.
경주 문무대왕과학연구소는 올해 7월 21일 착공해, 2025년까지 5년간 총 3263억 원(국비 2453억 원, 지방비 810억 원) 투입이 확정된 상태입니다. 당연히 이 사업도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19년 11월에 개최된 원자력진흥위원에서 정부 정책으로 확정됐습니다.
구체적으로 문무대왕연구소는 첫째, D.N.A(Data·Network·AI) 등 첨단기술을 접목한 원전 안전 혁신기술, 둘째로 방폐물 안전관리 및 원전 해체기술, 마지막으로 소형모듈원자로(SMR) 등 미래 혁신 원자력 시스템 핵심기술의 연구-실증-산업화 연구개발을 위해 구축되는 대규모 연구시설로 설립 추진됐습니다. 핵 재처리 실험과 관련해 가장 우려스러운 지점은 바로 마지막 ‘미래 혁신 원자력 시스템 핵심기술’입니다.
이미 1997년부터 한국원자력연구원은 파이로프로세싱을 진행했고, 같은 해 시작한 제1차 원자력진흥종합계획 때부터 스마트 원전 등 차세대 원자로 개발이 언급되었을 뿐만 아니라 뒤이어 소듐냉각고속로가 언급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본격적 연구와 실증작업이 대전이 아닌 경주에서 진행될 우려가 큽니다.
그런 면에서 핵 재처리 실험은 결코 대전에 국한되지 않고 경주로 확대되어 전국적인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또 경주 문무대왕과학연구소 사업은 2009년부터 경상북도가 용역을 발주해 계획하는 ‘동해안 원자력 클러스터’의 실체인데, 우려가 현실이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대구 경북지역은 이 문제를 당면한 현안으로 받아들여 적극 대응해야 합니다.
더불어 정부는 구체적으로 파이로프로세싱이 경주 문무대왕과학연구소에서 진행된다고 표현하지 않았지만 사실상 이 연구소를 제외하고 대규모 실증연구가 가능한 곳은 없습니다. 이에 우리는 지금까지의 대전의 반핵운동에서 그칠 것이 아니라 이 사안을 전국적으로 확대해 대응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속적 반핵 운동과 미래를 위한 제언
핵 재처리 실험의 위험과 중요성을 많은 사람이 깨닫게 되기까지 대전 시민들의 노고가 있었음을 기억하고 연대해야 합니다.
2015년 2월 24일, 대전 지역의 25개 시민사회단체와 지역주민 조직 등은 ‘대전유성 민간원자력환경안전감시기구 조례제정운동본부’를 출범시켰습니다. 특히 이 운동본부에서 주목할 점은 운동조직이 아니라 주민조직이 그 중심에서 운동을 이끌었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 2017년 1월 17일 출범해 지금껏 싸우고 있는 ‘핵재처리실험저지를위한30km 연대’ 활동에도 연대해야 합니다. 이제 2022년을 앞둔 시점에서 핵 재처리 실험 저지를 고리로 정부의 원자력진흥정책 폐기에 쐐기를 박는 새로운 운동의 형태가 등장하기를 바랍니다.
2008년에 발간돼 후쿠시마 사고 뒤인 2011년 6월에 한국어판이 출판된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체르노빌의 목소리” 한국어판 서문 마지막에서 저자는 “나는 과거에 대한 책을 썼지만, 그것은 미래를 닮았다”는 말을 남겼습니다.
과거를 닮은 미래가 오늘도 계속되고 있는 서글픈 인상을 남기는 구절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과거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일전을 각오하고, 새롭게 결의하고 나아가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반핵운동이 운동 진영 내 성급한 합의 전 치열한 논쟁을 시작하고, 정당정치의 가능성을 열어두되, 그에 얽매이지 않는 시민반핵 정치로 독립되며, 에너지전환과 연대하면서도 독립적 반핵운동의 길로 나갈 것을 제안합니다.
김준한 신부
부산교구 남산 성당 주임, 핵폐기를위한전국네트워크 운영위원
(오늘로 김준한 신부의 글 게재를 마칩니다. 게재를 허락해주신 김준한 신부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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