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핵운동의 미래.... 답은 현장에 있다

영덕 주민투표를 통해 본 한국반핵운동과 민주주의 3 원자력진흥의 민주주의인가, 반핵의 민주주의인가

2021-12-03     김준한

이 글은 지난 11월 11일과 18일, 영덕핵발전소반대범군민연대와 핵재처리실험저지30km연대가 진행한 토론회에서 핵폐기를위한전국네트워크 운영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김준한 신부(부산교구)가 발표한 내용으로, 한국의 반핵운동 역사와 의미, 그리고 핵재처리 반대 싸움의 과정을 짚고 있습니다. 대선 후보자들의 핵발전 관련 입장을 확인하는 것이 중요한 지금, 앞으로의 방향을 함께 고민하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발제문은 6번에 걸쳐 연재합니다. - 편집자 주

영덕 주민투표를 통한 반핵운동의 미래 제안

운동의 현장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어느 곳이든 자신이 처한 자리가 모두 현장이고, 만나는 모든 사람이 반핵운동을 위한 연대의 동지입니다. 하지만 갈수록 전형적인 운동방식이 확산되면서 대도시의 광장에서 펼쳐지는 집회문화로 귀결되는 것은 새롭게 검토해 봐야 할 것입니다.

다양한 운동방식이 구시대적인 발상으로 제거되고 인원동원적 방식으로만 진행되는 것은 운동의 다양성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분명한 것은 많은 경우 핵시설이 들어서는 곳은 소외된 지역이기 마련이고, 이 지역 현장에서 직접 대결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핵시설에서 떨어진 도시 광장에서만 벌어지는 운동은 한계가 있습니다.

핵발전소가 건설되는 지역, 그중에서도 건설이 진행되는 그 현장을 찾고 그곳을 중심으로 현장 활동을 권장하는 것은 핵시설의 가공할 위력을 직접 온몸으로 느끼면서 지역민의 아픔을 공감하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가능하면 그 현장에서 모여 목소리를 높이는 다양한 전술을 구사할 필요가 있습니다.

영덕은 그런 면에서 현장의 상황을 직접 확인하고 몸소 체험한 주민들이 주도적으로 나서면서 그에 걸맞는 운동방식을 스스로 만들어냈고, 전술의 유연함, 상황 적응성, 그리고 물리적인 한계를 뛰어넘을 창의적인 발상이 가능했던 것입니다.

또 과거의 고색창연한 운동방식이라고 비판하고 폐기한 다양한 전술을 복원할 필요도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어느 지점이나 방법에 머무르지 않고 다양한 방식으로 접근할 가능성을 열어 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갈수록 기자회견, 소규모의 집회, 항의방문 정도로 그쳐버리는 반핵운동의 양상이 바로 현장의 생생한 체험을 통해 바닥에서부터 다시 시작하는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핵시설을 직접 목격해야 합니다.

핵기술은 에너지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문제라는 사실을 다시 확인하자

영덕 주민투표에 대한 한 주민이자 활동가의 소회가 떠오릅니다.

그는 핵발전소 건설의 검은 손길이 중앙정부와 지자체를 통해 진행되는 와중에 일본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가 터지는 사고를 보게 되었고, 이제 더 이상, 도망갈 곳이 없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합니다. 완전히 개인적인 삶을 살겠다던 자신과 지난 시간에 대해 '반성'하며 한 달간 울었던 그는 자연스럽게 '개인적인 삶'을 넘어 '세상 밖으로' 나서게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물론 이는 한 사람의 소회지만, 핵의 문제가 그저 사고에 따른 안전성 문제, 에너지 시스템의 문제, 기술적인 차원의 점검이 아니라 핵이 모든 문명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삶의 양식의 차원에서 핵문명을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굳이 제가 에너지전환운동과 갈라서서 대치하려는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원자력진흥세력과 에너지전환운동이 결합한 ‘에너지동맹’의 우려가 있다고 말하는 이유는, 원자력진흥세력은 그만큼 가공할 힘을 발휘하는 만큼 독자적인 반핵운동, 강력한 반대의 세력을 구성할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2016년 한일탈핵평화순례에서 고리 1-4호기 현장을 찾은 수도자들. ⓒ정현진 기자

인위적인 조직 통합보다 운동의 진정성 속에서 만나자

영덕 주민투표를 준비하면서 조직 간 혼선은 생각보다 복잡했고 또 당연한 결과이기도 했습니다. 먼저 영덕 주민들과 전국 단위 조직의 의견 불일치, 영덕 지역 내 단체 간의 운동 전술 불일치는 마지막까지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지만, 어쩌면 그런 겉으로 보이는 불협화음은 주민투표 운동의 영역을 확장시키고 내실을 다지는 좋은 거름이 됐습니다.

영덕의 반핵운동은 처음, 중심지인 영덕 읍내가 아니라 영해 등 영덕에서도 변방지역에서 먼저 그 북소리를 울렸습니다. 당연히 더 큰 조직, 더 사회적 파장력이 강한 단체에게 주도권이 주어지는 형식으로 주민투표가 진행됐다면 단언컨대 주민투표는 결코 성사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단체 간 불일치는 운동의 방향에 대한 노선투쟁을 활성화시키고 그것이 서로를 갉아먹는 소모적인 내부투쟁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창발적으로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내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만약 손쉽게 인위적 조직 통합에 너무 과도한 에너지를 소비했다면, 통합된 조직 내의 원활한 의사소통과 자유로운 의견 개진 창구가 차단되어 운동의 다양성은 상실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물론 하나의 연대체 내부적으로 유의미한 노선투쟁이 자유롭게 개진된다면 더할 나위가 없습니다. 하지만 운동이 확장되고 다양한 전술이 구사되기 위해서는 운동조직의 발전적인 분화와 경쟁은 오히려 반핵운동 성장의 밑거름이 될 수 있습니다. 그에 더해 내부적 논쟁을 소모적인 투쟁력 저하의 주범이라는 낙인찍기로 규정하고 오직 외부의 적인 원자력진흥세력만을 문제 삼자는 말은 운동의 질적 저하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지양해야 합니다.

영덕은 주민투표를 통해 자발적인 민의를 말 그대로 저변에서부터 확보하면서 개인과 조직, 조직과 조직의 연대와 논쟁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 주었고, 이 점은 향후 전개될 다양한 반핵운동에서도 참고해야 할 사례입니다.

어떤 식의 민주주의인가, 반핵의 민주주의를 고민하자

반핵투쟁 현장에서 조직된 주민투표의 전술은 반핵의 민의를 모으는 과정으로 이후 자주 활용됐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또한 정부의 원자력진흥을 위한 요식행위로 적극 이용되었다는 점에서 양날의 칼과 같다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단적으로 영덕에서는 2005년 중저준위핵폐기장과 관련해 관주도의 주민투표가 있었고, 신규 핵발전소 반대투쟁의 일환으로 2015년은 민간주도 주민투표가 진행됐습니다. 반핵운동 차원에서 민주주의는 원자력진흥의 민주주의냐 반핵의 민주주의냐로만 나누어지는 것이며, 결코 다수결에 따른 형식적인 절차에 순응하는 그런 민주주의를 선택해서는 안 됩니다.

1978년 상업운전을 개시한 고리 1호기를 비롯한 모든 핵발전소 건설이나 1989년 이래로 아홉 차례 이상 진행된 핵폐기장 건설 시도까지 일련의 과정과 결정은 중앙정부의 일방적인 결정이었고, 결국 2004년 부안핵폐기장 반대투쟁과 민간주도 주민투표로 더 이상 일방적인 정부결정으로 추진될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2005년 경주와 영덕 등에서는 부안에서 행한 민간주도의 주민투표가 관주도의 주민투표로 변질되었으며, 3000억 지원금 문제로 지역 간 경쟁을 부추겼습니다. 2013년 박근혜 정부가 추진한 사용후핵연료공론화위원회는 2005년 주민투표에 이은 관주도의 이른바 원자력진흥의 민주주의 절차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역시 향응과 파행을 거듭한 민주주의였습니다. 문재인 정부 이후 추진된 신고리5,6호기공론화위원회는 신규건설중단, 수명연장금지를 앞세운 공론화로, 이것이 과연 원자력진흥의 민주주의인지 반핵의 민주주의인지 지금이라도 물어야 합니다.

이즈음에서 영덕과 삼척의 주민투표에 대한 규정과 그간 정부가 태도에서 2017년 신고리 5, 6호기 공론화를 규정할 수 있습니다.

삼척과 영덕 핵발전소백지화 주민투표는 반핵의 민주주의로서 민간주도로 추진되었으며, 전국적인 연대를 만들어낸 사례입니다. 그러나 이후 문재인 대통령의 신규 핵발전소 건설 백지화 선언은 주민주도의 반대투쟁에 의한 결과였음에도 불구하고, 최근 해외에서 에너지동맹에 대하여 언급한 것을 포함하여 이전의 신고리 5, 6호기 건설재개를 위한 공론화를 경제성을 중심으로 공론화하는 등 원자력진흥과 반핵 사이의 모순된 갈지자 행보로 보이며 처음의 탈핵정부라는 공약은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그런 면에서 2021년 3월 18일 권고안 발표로 활동을 마무리한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재검토위원회는 신고리 5, 6호기 공론화위원회에 이어 현 정부의 왜곡된 원자력진흥 민주주의의 전형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최근 더불어민주당 김성환 의원 외 24명의 의원이 공동발의한 고준위핵폐기물관련특별법안은 중간저장시설과 영구처분장건설 후보부지에 대하여 반드시 주민투표를 거치도록 명시하고 있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차기 정부에서도 현재 발의된 법안이 통과된다면, 제2 제3의 부안과 영덕이 재현될 수 있습니다.

이런 일련의 흐름을 두고 본다면 우리는 공론화를 포함한 주민투표가 반핵운동 차원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냉철하게 판단할 필요가 있습니다. 가장 우선적으로 우리는 주민투표를 반핵운동 차원에서 하는 것이지 그저 형식적인 절차로 앙케이트 조사나 여론 조사를 거쳐 그 결과에 순응하기 위해 전술로 택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명확히 해야 합니다. 반핵운동의 일환으로 진행되는 주민투표는 그런 면에서 원자력진흥의 민주주의인지 반핵의 민주주의인지 그 출발점을 분명히 하고 반핵운동의 맥락 속에서 채택여부가 결정되어야 합니다.

반핵운동 역사를 중심으로 새로운 교육 커리큘럼을 마련하자

반핵운동은 핵산업의 고도의 기술집약적 특성에 걸맞게 그 개념이 복잡하고 전문적입니다. 그러다 보니 많은 경우 반핵운동세력 내에서조차 전문가의 위상이 과도하게 우위를 점하고 대중적 결합 가능성은 하위의 변수로 참조되는 식으로 흘러가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반핵운동을 하려는 것이지 핵전문가가 되려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시민들에게 핵기술의 특성을 가르치려는 것이 아니라 핵 없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점에 대해 활동의 근거를 제안하는 활동가가 되고자 합니다.

그런 면에서 지금까지 반핵운동 관련된 강의와 교육 커리큘럼은 많은 경우 핵발전의 안전성, 원리, 특성 등에 대한 교과서적인 지식 전달에 그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운동을 하는 사람으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고민해야 한다면, 우리가 시민들과 함께 나누어야 할 것은 적절한 전략과 전술에 대한 사례분석과 창의적인 논쟁일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위한 가장 좋은 교육은 지금까지의 반핵운동의 역사에서 우리의 선배들이 택한 전술과 현장에서의 실패와 성공담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지난날의 반핵역사의 내용은 그저 사건의 연도와 지명 정도로만 기억할 뿐 그들의 생생한 투쟁의 현장 보고서를 체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연대의 힘을 발휘하는 것은 지식이 아니라 현장에서 듣는 투쟁의 숨소리일 것입니다. 영덕에서의 반핵운동은 주민들을 대상으로 핵기술에 대한 기술적 검토 이전에 주민들 삶의 자리에서의 핵발전의 의미와 우리가 살고 싶은 세상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는 반핵운동가의 수많은 고민과 노하우가 녹아 있는 어쩌면 가장 차원 높은 운동방식이 숨어 있었던 것이기도 합니다.

그런 면에서 차후에라도 반핵역사의 현장의 목소리를 공유할 수 있는 교육과 거기서 길어 올린 아직도 유효한 전략과 전술을 복원하여 현재의 운동을 위한 새로운 동력으로 삼을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가장 설득력 있게 사람의 목소리를 들려주고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주기 위해서라도 영덕 주민투표를 위시한 반핵운동의 역사를 체계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는 자료 정리 및 교육 커리큘럼의 개발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영덕 주민투표, 그 이상의 반핵운동을 위한 제안들

우리가 흔히 기자회견이나 성명서에 첨부하던 ‘우리의 요구’ 형식을 빌려 한국 반핵운동의 미래를 위한 제언을 단순하게 명제화하여 제시하고자 합니다. 이는 영덕 주민투표의 역사를 통해서 직접적으로 도출한 것은 아니더라도 넓은 의미에서 그로부터 연상했던 것인 동시에 새로운 방향에 대한 제언입니다. 2008년에 발간되어 후쿠시마 사고가 터지고 얼마 안 된 2011년 6월에 한국어로 번역된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체르노빌의 목소리” 한국어판 서문 마지막에 저자는 “나는 과거에 대한 책을 썼지만, 그것은 미래를 닮았다”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과거를 닮은 미래가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는 서글픈 인상을 남기기도 하는 구절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더 이상 과거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일전을 각오하고 새롭게 결의해 나아가기를 바랍니다.

(4편으로 이어집니다)

 

김준한 신부

부산교구 남산 성당 주임, 핵폐기를위한전국네트워크 운영위원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