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지만 변화하는 교회, 아래의 목소리를 더 크게!

우신연 세미나 ‘교회 여성 지도자와 교회 개혁’ 크리스틴 수녀, “시노드가 불러올 변화에 주목하세요”

2021-11-26     김수나 기자

교도권의 제재에도 가난한 이들의 목소리가 되길 주저하지 않았던 미국 수녀들의 활동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래디컬 그레이스(Radical Grace)’.

2015년 제9회 여성인권영화제 초청작으로 한국에 소개됐던 이 영화에 나온 크리스틴 솅크(Christine Schenk) 수녀가 한국 신자들을 만났다.

우리신학연구소가 24일 온라인으로 진행한 세미나에서 크리스틴 수녀와 참가자들은 ‘교회의 여성 지도자와 교회 개혁’을 주제로 교회 내 여성 문제를 비롯해 지금 진행되고 있는 세계주교시노드의 의미까지 다양하게 나눴다.

세미나에서는 ‘래디컬 그레이스’ 상영과 함께 초기 그리스도교에 존재했던 여성의 복음 선포자로서의 권위, 설교자이자 지도자로서의 여성의 삶을 고고학적으로 추적한 크리스틴 수녀의 저서 “크리스피나와 자매들(Crispina and Her Sisters)”에 대한 강의도 진행됐다.

2017년 출간된 “크리스피나와 자매들”은 크리스틴 수녀가 로마 등지에 있는 4세기 전후 카타콤(지하에 좁은 통로로 이루어진 무덤으로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로마 제국의 박해를 피하는 데도 쓰임)의 프레스코화와 석관 등 유적을 고고학적으로 분석한 결과물이다.

크리스틴 솅크 수녀의 저서 "크리스피나와 자매들 : 초기 그리스도교에서 여성의 권위", 포트리스 출판사(Fortress Press), 2017. (사진 출처 = 크리스틴 솅크 수녀 강의자료)

책에는 초기 그리스도교에서 여성들의 복음 선포와 신앙에 대한 권위를 실증적으로 확인하는 과정이 담겼다. 크리스틴 수녀는 이 분야에 대한 첫 학자로서 뛰어난 고고학적 가치를 인정받아 미국기자협회의 상을 받았다. 이 책은 아직 한국어로는 번역되지 않았다.

초기 교회에서 여성은 로마 제국에 예수 운동을 확산시키는 지도자였다. 여성 부제는 과부나 여성 사업가들의 재정을 관리하고 이를 교회와 약자를 위해 쓰도록 권장했다. 여성은 부제직뿐 아니라 복음 선포자, 선교사, 가정 교회 지도자, 예언자 등으로 리더십을 발휘했다. 그러나 남녀 성적 분업을 기반으로 한 당시 사회문화는 교회에서도 규범이 됐으며 여성은 조용해야 한다는 가르침이 강조됐고, 그리스도교의 급속한 확장에서 여성들의 대항 문화적 권위 행사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교회와 사회문화가 여성을 공식적으로 제재했지만 여성들은 계속 가르치고 설교하고 복음을 전하고 세례를 베풀었다. 여성은 가정, 교회, 사회를 그리스도적 문화로 바꾸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고 그 흔적은 고고학적으로 여전히 남았음을 이 책은 밝히고 있다.

“교도권에 도전해 교회를 분열시킨다.”
“애들을 건드리는 신부보다 나쁜 수녀들”
제재와 비난에도 멈추지 않은 수녀들

한국어 제목으로 ‘주님은 페미니스트’라고 번역됐던 ‘레디컬 그레이스’는 가난한 이들을 위한 사회변화, 가부장적 교회 개혁 등을 위해 교회의 제재와 비난에도 굽힘 없이 나아간 진, 시몬, 크리스틴 세 수녀를 중심으로 한 이야기다. 가난한 이들과 수형자를 위해 야학 등의 활동을 하는 진 수녀, 버스를 타고 미국 전역을 돌며 오바마 대통령의 선거 공약인 의료보험 개혁법안을 지지하는 운동을 벌인 시몬 수녀, 여성 성직자를 인정하지 않는 가톨릭교회의 가부장적 제도에 질문을 던지며 로마로 날아가 초기 교회의 여성 직분을 연구하는 크리스틴 수녀.

미국 주교회의는 이러한 수녀들의 활동을 교도권에 대한 도전이자 교회 분열 행위로 보고 교황청에 조사와 제재를 촉구한다. 수녀들이 소속된 여성수도자지도자회의(LCWR, 1956년 설립된 미국의 수녀회 장상, 지도자들의 협의기구로 사회정의에 적극 참여. 미국 여성 수도자의 80퍼센트가 소속, 현재 규모는 약 5만 명 남짓)가 동성애와 피임, 낙태, 여성사제 운동 등 가톨릭교회가 금지하는 교리에 대해 교회와 다른 태도를 취한다는 이유였다. 

특히 미국 주교회의가 피임과 낙태를 조장한다며 의료보험 개혁법안에 대한 반대를 공식 천명했음에도 수녀들은 대다수 가난한 이들을 위한 법안이라며 공개적으로 지지하고 나섰는데 이 때문에 LCWR는 2009년부터 4년에 걸친 교황청의 조사와 2012년부터 최대 5년에 걸쳐 전면 개조라는 제재를 받게 된다.

바티칸의 사찰과 미국 주교회의의 탄압에, 한평생 신앙에 삶을 바친 수녀들은 자신들의 삶이 부정당하는 좌절을 겪지만, 뜻을 굽히지 않고 ‘버스를 탄 수녀들’ 캠페인을 벌이며 의료개혁 법안이 가톨릭 사회교리 정신에 꼭 들어맞는다는 사실을 알려 나간다. 결국 교회의 탄압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즉위한 뒤인 2014년 말 교황청이 LCWR의 입장을 인정하면서 계획보다 빠르게 끝난다. 2015년 4월 교황청은 이례적으로 유튜브 중계를 통해 LCWR 수녀들의 활동에서 대화에 귀 기울이는 법을 배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크리스틴 수녀는 “조사절차는 바티칸이 먼저 시작한 것이 아니라 미국 주교들의 요구로 시작됐다”면서 “이는 당시 이슈에 대한 제소가 아니다. 여성이 자기 결정권을 행사하는 것에 대한 교회 남성들의 50년간 이어진 불만의 표현”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바티칸이 유튜브를 통해 전 세계적으로 수녀들이 동시대에서 매우 중요한 활동을 하고 있다고 한 것은 매우 큰 변화를 가져온 이슈”라면서 “바티칸이 지금까지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제재해 온 역사를 볼 때 여성 수도자들의 역할을 인정한 것이 얼마나 중요한 변화인지 알 수 있다”고 말했다.

크리스틴 솅크 수녀. (사진 출처 = 영화 '래디컬 그레이스' 홈페이지)

우리 신앙의 중심은 가난하고 약한 이들

이날 대화에서 크리스틴 수녀는 신앙인들이 낙태(임신 중지), 성소수자, 의료보험 체계 같은 사회 이슈를 다룰 때 가난한 이들을 중심에 둘 것, 교회의 평등한 의사결정 구조와 교회 중요 직분에 여성 참여 등을 강조했다. 이를 위해 지금 진행되는 지역 시노드에서 개인이나 단체별로 의사를 적극 개진하라고 제안했다. 또 교회 쇄신을 위한 최우선 과제로는 사제직 개혁을 제시했다.

미국 많은 주에서 임신 중지는 법적으로 보장된 권리이면서도 중요한 도덕적 이슈다. 크리스틴 수녀는 이 문제에서도 가난한 이들의 사회적 위치와 그 삶이 어떤지에 더욱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봤다.

그는 “임신 중지가 도덕적 이슈이긴 하지만, 법적으로 보장된 상황에서 우리가 여성에게 어떤 선택을 하라고 강요할 수는 없다”면서 “(임신 중지를 하지 말라고)강요한다면 어려운 상황에 있는 여성들은 어떤 식으로든 임신 중지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데, 그러면 의료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에 있는 여성의 삶은 더 힘들어지고 생명을 위협받게 된다”고 말했다.

단순히 생명 지지라는 프로라이프(pro-life)나 프로 벌쓰(pro birth)라는 아기의 출생에 대해서만 도덕적, 교리적으로 따지는 것은 옳지 않은 태도이므로 교회는 이 문제를 전체적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프로라이프라면 뱃속의 아기뿐 아니라 아기를 낳고 기를 때 가난한 여성에게 음식, 주거, 의료보험 등을 어떻게 제공할 것이지 포괄적으로 언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성소수자 신자들, 예수의 길을 따르는 모범

크리스틴 수녀는 “성적 지향성은 하느님의 선물이다. 하느님이 성소수자들을 창조하셨고 그들에게 특별한 선물을 주신 것”이라며 “성소수자 신자들이 보여주고 있는 길들은 교회의 거부를 당하면서도 교회를 떠나지 않고 남아 어떻게 예수의 길을 진실하게 다룰 것인가에 대해 모범을 보여준다.  그들이 보여주는 활동과 모습에 매우 많은 영감을 받고 있고 감사하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에서 성소수자에 대한 교회의 거부는 제도 교회를 대변하는 소수 구성원이 가진 성소수자 혐오 때문이며 사실 사제, 수도자, 평신도 등 많은 이들은 성소수자를 포용하고 그들을 동등한 자녀로서 함께 살아가야 한다고 보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현실은 교회의 태도에 실망한 나머지 많은 이가 교회를 떠나고 있고 이들을 붙잡기에 교회의 변화는 매우 느리다. 이에 대해 크리스틴 수녀는 교회와 공동체를 깊이 사랑했던 자신의 경험을 들려주며 최근 바티칸에서 불고 있는 변화에 주목해 보라고 제안했다.

크리스틴 수녀는 “가부장적 구조가 교회에 남아서 교회를 바꾸어 나가는 나의 바람과 운동을 막을 수는 없다. 교회를 떠나지 않은 것은 그동안 만난 많은 사제들, 사람들, 수도자들의 역할이 컸고 교회와 공동체를 진심으로 사랑하기 때문”이라면서 “그러나 모든 이(성소수자, 여성, 페미니스트 등 모두)가 이처럼 결정할 수는 없다. 교회의 가부장적, 억압적 구조로 당신이 하느님의 소명을 실현하기 너무나 힘들면 교회를 떠나 다른 길을 찾아도 격려받아야 한다. 하느님은 한 교단보다는 훨씬 크시기 때문에 각자의 선택을 존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크리스틴 수녀가 한국 신자들과 나눈 글. (이미지 출처 = 크리스틴 솅크 수녀 강의자료 갈무리)

아래로부터 위로 가는 평등한 의사결정
그간의 변화, 시노드가 불러올 변화들에 주목

특히 역대 어떤 교황보다 여성의 목소리, 그 영향력이 교회 안에 드러나길 바라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단행한 최근의 변화들에 주목했다.

지난해 8월 교황청 재무평의회 평신도 위원 7명 가운데 6명을 여성으로 임명, 올해 1월 여성도 독서직과 시종직에 봉사할 수 있도록 교회법 개정, 2월 중요 안건에 대한 투표권을 가진 세계주교대의원회의 사무국장에 이어 11월 바티칸 행정부 사무총장을 여성으로 임명한 것 등이 그 예다. 지금까지 남성만이 맡아온 교회 내 직분에 처음으로 여성을 기용한 것이 사실 매우 느린 변화라는 지적도 있지만 크리스틴 수녀는 여전히 가부장적 구조에 놓인 여러 지역 교회에는 매우 중요한 변화라고 봤다.

크리스틴 수녀는 “교회가 늦게 변화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한편으로 매우 빠르게 변화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를 통해 그전에는 상상할 수 없던 변화들이 이미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지금 교회가 가장 빠르게 변화해야 할 문제로 사제직 개혁을 꼽았다. 실제로 지금 미국에서는 많은 교회가 사제 부족으로 문을 닫고 있고 사제직 자체에 여러 구조적 문제가 있어 개혁이 가장 시급하다는 것이다. 이에 관해 이번 시노드에는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

한편 크리스틴 수녀는 교회는 부제직과 사제직은 엄연히 다른 역할이라고 가르치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인식하듯 부제직이 사제직으로 가기 위한 경로가 된다는 관점은 옳지 않으며, 부제직이 인정되면 바로 사제직이 될 수 있다는 성급한 전망도 경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평신도들이 교회 활동 참여와 의사 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현재 아마존 시노드에서 논의되고 있는 사안도 변화를 위해 중요한 의미가 있다. 크리스틴 수녀는 이번 시노드가 “교회의 구조를 바꾸고 위에서부터 내려오는 목소리가 아닌 아래의 목소리가 어떻게 전달되는지에 중점을 둔 회의이므로 부제직이나 사제직 논의에서도 매우 큰 변화가 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특별히 권고하고 싶다며 “교종은 시노드 과정에서 우리 같은 가톨릭 신자들의 목소리를 매우 듣고 싶어 한다”면서 “자신의 교구 주교가 보수적이라도 개의치 말고 개인적으로든 단체를 만들던 바티칸 홈페이지에 접속해 관련 자료를 공부하고, 여러분들의 의견을 직접 표현할 길을 적극 찾아 의견을 펼쳐야 하고 또 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역 교회의 의견 개진과 수렴은 2022년 4월에서 8월까지로 연장됐다.

이날 온라인 세미나에는 실시간으로 50여 명이 참여했다. 이어 12월 우리신학연구소는 의정부교구 정의평화위원회와 함께 미얀마, 홍콩, 한반도 평화를 위한 종교 시민사회의 역할을 주제로 토론회를 연다. 이 토론회는 2차 세계주교시노드 최종 문헌 ‘세계정의’ 발간 50주년을 기념하며, 동아시아 평화를 위한 한국 천주교회의 연대를 모색하는 자리다. 토론회는 <가톨릭평론> 유튜브 채널에서 실시간으로 중계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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