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시설은 시설 권한 박탈 아닌 장애인 권리 찾기"

[인터뷰]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김정하 활동가

2021-11-15     정현진 기자

지난 8월 정부는 장애인의 주거결정권 보장과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권리를 우선 고려하는 ‘탈시설 장애인 지역사회 자립 지원 로드맵’을 발표했다. 로드맵에 따르면 2022-24년까지 3년간 시범 사업을 거쳐, 2025년부터 41년까지 탈시설 지원사업을 본격 추진하고 완료할 계획이다.

이러한 로드맵 계획에 대해, 사회복지시설과 시설 거주 장애인 가족(부모), 탈시설을 지지하고 진행해 온 단체들은 각각 다른 입장에 놓여 있고, 그에 따라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는 지난 10월, 정부의 이번 로드맵이 장애의 정도와 상황의 개별성을 따지지 않고 일괄적으로 추진한다고 보고 그 방향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그동안 탈시설을 지원하고 진행해 온 장애인 단체는 탈시설과 정부의 로드맵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일반 시민들은 시설에서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 잘 모릅니다. 시설 안에서 아주 구체적으로 어떤 삶을 사는지 제대로 알 수도 없지만, 막연하고 선한 생각으로 그곳에 돌봄과 보호, 안전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죠. 하지만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도 삶이 있고, 주어지는 보호와 안전이 삶의 전부는 아닙니다. 매일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때론 늦잠을 자고, 입고 싶은 옷을 골라 입고, 필수적인 것들을 제공받는 것 외에도 사소하고 일상적인 대화가 필요하기도 합니다.”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김정하 활동가는 탈시설은 장애인 개개인의 삶의 질과 돌봄 서비스의 질을 높이고 지역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보다 자유롭게 자신의 삶을 추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정하 활동가는 장애인권 활동가이자, 스스로 시설을 폐지하고 탈시설을 추진해 온 사회복지법인 프리웰 대표이사이기도 하다.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김정하 활동가. 그는 "탈시설은 대안 없이 다시 가정으로 돌려보내자는 것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정현진 기자

프리웰은 1981년 설립된 장애인 시설 ‘향유의 집’에서 일어난 비리와 인권침해로 2013년 비리 관련자들이 물러난 뒤 새로 구성된 사회복지법인이며, ‘인권, 탈시설, 자립생활’을 천명했다. 2016년부터 지원주택 제도를 통해 탈시설을 추진했고, 2021년에는 프리웰 산하 3개 시설의 탈시설을 추진했다. 현재 3번에 걸쳐 76명의 자립을 진행하고 거주시설 1개소 폐지를 마쳤다. 그 가운데 6명은 가족의 반대로 프리웰 산하 다른 거주시설로 옮겼다. 

김정하 활동가는 탈시설 추진 이유에 대해, “운영자가 아무리 노력해도 집단거주시설 운영 시스템의 한계가 명확하고, 개인의 삶이 없고 존재와 소속, 존엄한 삶을 누릴 수 없으며, 특히 발달장애인 집단서비스는 인권침해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고, 개인 발달의 기회가 박탈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김 활동가는 “경증 장애인은 물론 최중증 장애인도 그들이 살고 있는 환경의 모든 것을 느낀다. 최중증 장애인들은 누워서 천장만 바라보고 지내게 되는데 의사표현이 불가능해 개별 서비스, 응급시 지원을 제때 받지 못해 심하면 사망에 이르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는 “극단적 사례뿐 아니라 종일 누워서 정해진 시간에 주어지는 식사, 목욕, 용변처리 외에는 타인과 관계를 맺고 심정적 교류를 나누지 못한다. 하루 종일 친근한 말 한마디 듣기가 어렵다는 것”이라며, “이런 이들 가운데 지역으로 나와 개별적 돌봄 서비스를 24시간 받으면서 표정이 생기고 언어가 발달하기도 하는데 새로운 사회적 자극을 얻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탈시설 로드맵 실행은 기존 사회복지시설 운영에 큰 지각변동을 가져올 수 있고 이는 탈시설을 반대하는 이유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장애인 자녀를 시설에 둔 부모들은 자녀들의 보다 인권적으로 나은 삶을 위한 로드맵을 오히려 반대하고 있다. 어떤 상황인 것일까?

부모들의 입장 역시 처한 상황, 위치, 입장에 따라 다르다. 또 시설협회의 입장을 대신 표출할 수밖에 없는 부모들도 있다. 시설에 자녀를 맡긴 부모, 시설을 운영하고 있는 부모, 가정에서 자녀를 돌보는 부모 등 각기 입장은 다르지만 명확한 요구는 “지역에서 제대로 살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돌봄 서비스를 확실하게 보장해 달라는 것”, 즉 로드맵으로 장애인들이 어떤 삶을 살아갈 수 있을지 뚜렷하고 확실한 그림을 보여 달라는 것이다.

김정하 활동가는 이에 더해, “로드맵 추진으로 시설이 모두 문을 닫는다면, 부모 입장에서는 다시 집으로 데려오는 것 밖에는 대책이 없는 것처럼 알려져 있다”면서, 하지만 시설이 문을 닫는 경우, 지금까지 대체기관과 지자체가 이를 지원해 왔다고 설명했다.

“또 하나는 이미 한국 사회에서 장애인 가족으로 살면서 오랫동안 너무 깊은 상처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왜 가족이 장애인 돌봄을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느냐는 시선, 그리고 할 수 없이 자녀를 시설에 맡길 수밖에 없었던 과정의 고통이 있습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이들 가족에게는 그래서 ”자신의 자녀들이 지금 있는 곳에는 아무 문제가 없어야 한다“는 생각이 작용하고 있어요. 시설에 맡길 때의 트라우마가 탈시설 과정에서도 똑같이 두려움과 고통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죠.”

김정하 활동가는 자녀를 시설에 둔 가족들이 막상 탈시설을 반대했다가 막상 탈시설 이후에 잘 살아가는 것을 보고 찬성하게 된다면서, “현재 부모들의 이야기는 모두 진실이고, 심정적으로 맞는 이야기다. 경험이 없는 상황에서 장애가 있는 자녀들이 지역 사회에서 독립적인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고 인식하는 것은 어렵다. 또 그 이전에 있었던 고통의 기억이 크기 때문에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탈시설은 탈가정이며, 지역 사회 구성원으로 독립하는 것”

“탈시설을 원한다. 하지만 정확한 그림을 보여 달라”는 요구를 감안하면, 정부는 로드맵이 하고자 하는 탈시설이 무엇인지 청사진과 설계도를 그 당사자들에게 확실하게 보여 줘야 한다. 하지만 현재 지자체가 지원하는 탈시설의 성공 사례는 서울, 대구, 부산 등 몇몇 지자체에만 검증된 정도다. 전국적 시행의 상을 제시하려면 관련법 개정이 필요하다. 하지만 법개정보다 로드맵이 먼저 발표돼 중앙정부 차원의 구체적 그림은 나올 수가 없었다.

김정하 활동가는 이런 정부의 안일한 태도를 지적했다.

그는 “보건복지부 입장에서는 국제 기준이나 유엔권고 이행 의무가 있어 추진해야 하는데, 반대 세력이 있는 것”이라며, “정부는 정책의 당위성에 중심을 두고 가야 하는데 반대 세력 핑계를 대면서 그 뒤에 숨어 있는 것이다. 적어도 서울시의 성공적 탈시설 서비스 제공 사례는 부모들에게 제시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현재까지 이미 실현되고, 앞으로도 가능성 있는 사업의 상이 있는데, 이를 제시하지 않으니 부모들 사이에서도 불필요한 두려움과 오해가 생긴다는 것이다.

탈시설 당사자들의 메시지. (이미지 출처 =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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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하 활동가는 종교법인의 입장에 대해서도 입을 열면서, 종교법인의 역할과 입장을 알지만 여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탈시설은 법인의 권한을 빼앗으려는 것이 아니라고 강조하면서, “종교법인이 사회복지시설을 운영하는 경우, 시설이 복지시설과 (종교적) 선교의 장이라는 성격이 섞여 있는 것 같다”면서, “종단은 위탁운영을 하는 것일 뿐 (사회복지는) 종교의 영역이 아니다. 오랫동안 사회복지 영역에서 종교가 많은 역할을 해왔지만 사회복지가 국가의 영역으로 분명히 확인된 현재에도 탈시설이 마치 종단의 권한과 재산을 빼앗으려는 것으로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그동안 사회복지법인 즉 운영자가 시설 공간에 대한 점유권, 서비스 제공 권한을 가졌다면, 탈시설은 장애인에게 (주택)점유권, 서비스 선택권 등의 권한을 주자는 것”이라며, 탈시설 반대의 어떤 면에는 이런 권한을 빼앗긴다는 위기감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탈시설을 반대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의사결정이 어려운 이들을 대상으로 탈시설을 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의사결정이 어려우면 스스로 하는 선택이 아닌 일방적 정책에 의한 강제라는 것이다.

김정하 활동가는 “하지만 외국에서는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이들도 탈시설을 하고 있다. 사실 의사소통을 할 수 없는 이들이 시설에 들어갈 때도 그들의 의사가 아니었다”면서, “오히려 의사소통 능력이 없는 이들이 탈시설의 대상이다. 그런 이들일수록 권리와 인권을 침해받기 쉽기 때문이다. 탈시설은 본질적으로 더 좋은 환경을 지원하기 위한 것인데, 의사표현을 할 수 없어서 안 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말했다.

“원래 아동 인권에 적용되는 유엔 단체의 원칙인데, ‘최대이익, 최소제약’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아동의 최고 이익에 비춰서 결정하라는 것으로, 아동이 부모로부터 학대를 당했지만 갑자기 부모와 분리됐을 때 오히려 아동이 더 불안할 수 있다는 것이죠. 이때 어느 서비스가 더 친인권적인지 보고 아동의 최고이익에 따라 판단하라는 이런 원칙은 장애인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또 최소제약은 안전과 보호를 위해서는 제약이 필요하지만 다만 최소한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는 이러한 사회복지의 원리와 철학을 이해한다면, 탈시설 권리를 의사소통 여부 등을 이유로 반대할 수 없다면서, “탈시설은 주거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주거 서비스를 제공하되, 그 형식은 집단거주시설 방식은 아니어야 한다는 것이다. 탈시설을 하더라도 위기나 응급상황에 따라 단기 긴급시설 보호를 할 수도 있고, 돌봄인력이 가정으로 파견될 수도 있다. 위기나 응급상황 이후에는 장기적으로 대응할 다른 지원계획을 설립하고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본적으로 탈시설이 당연하고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정책으로 드러난 로드맵에 대한 우려가 없을 수는 없다.

김정하 활동가는 “장애인의 범위를 최소화 한 것, 아직 전국적 시행을 위한 관련법이 갖춰지지 않은 것, 2041년이라는 기간과 진행 속도의 문제, 기존 시설 사업자들의 서비스 검증과 관리 시스템 미비” 등을 꼽았다.

그는 먼저 장애인으로 등록된 이들이라면 그들이 신체, 발달, 정신 어느 유형이든 어느 시설에 있든 탈시설 서비스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면서, “그렇지 않으면 어떤 장애를 갖고 있느냐가 또 다른 선 긋기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앞서 이야기했듯 장애의 구체적 상황에 따라 확실한 그림을 제시하는 것이 로드맵의 핵심이라면서 그러기 위해서는 관련법 개정이 빨리 진행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2020년 현재 시설 장애인 평균 연령 약 40살, 시설 거주 기간 약 19년인 상황에서 2041년이라는 기간은 장애인들의 삶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탈시설은 규모나 장소와 상관없이 “시설적 문화와 방식”을 제거하는 것이 목적이라며, “기존 시설 사업자들이 기존 사업을  접고, 장애인을 위한 새로운 주거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데, 그럴 경우 서비스 품질을 총체적으로 관리할 시스템이 필요하다. 하지만 현재 로드맵에서는 그 부분이 빠져 있다. 이와 관련해 들어간 것이 ‘원스트라이크아웃제’이지만 오히려 반대에 부딪히고 있다”고 설명했다.

‘원스트라이크아웃제’는 시설에서 비리나 인권침해가 발생한 경우, 한 번 만으로도 시설 폐쇄 등의 강력한 행정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관계법령으르개정하겠다는 정부의 계획이다.  현재는 경고, 시설장 교체, 시설 폐쇄 등으로 3번에 걸친 행정 처분으로 이행된다. 

김정하 활동가는 마지막으로 “탈시설이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얼마나 많은 기회를 주는 것인지 안다면 더 많이 지지할 수 있을 것이다. 탈시설이 나빠서가 아니라 얼마나 절박한지 몰라서 반대가 있는 것”이라며, “멀리서 막연히 바라보면 시설에서도 잘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개개인 삶을 면면히 보면 그렇지 않다. 단지 사고 없이 안전하기만 하면 되는 상태에 멈춰 있다”고 말했다.

그는 “시설의 삶에 대해 무관심도 관심도 아닌 상태에서 시설 거주자들의 생활 구석구석에 구체적 관심을 가져 준다면 탈시설의 목소리에 보다 큰 지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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