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인권 개선 위해 교회는 인권 변호사 돼야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 ‘북한 인권 개선 위한 종교 역할’ 학술대회

2021-11-05     배선영 기자

정치적 비판 소재 아닌 북한 인권에 대한 새로운 담론 제시
북한 인권 문제는 "지금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실체"
북향민 사목, 지역 본당에서 해야

11월 3-4일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가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한 종교의 역할’을 주제로 제5회 국제학술대회를 열었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북한 인권은 북한 정권을 비판하기 위한 소재로 쓰이거나 또는 북한에 인권 문제는 없다는 북한 당국의 입장과 다를 바 없는 양극단의 의견이 팽배했다. 대북 지원 관련 단체나 기관은 북한과의 화해와 협력, 교류에 지장을 줄 우려 때문에 인권 문제에 대해 소극적 태도를 보였다.

지난 6월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는 이런 침묵을 깨고 북한 인권에 대한 새로운 담론을 만들기 위해 ‘북한 인권’을 주제로 세미나를 열었다. 이 연장선에서 열린 이번 국제학술대회에서는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해 종교계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모색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를 중심으로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한 한국 종교계의 역할에 관해 발표한 송병구 목사(NCCK 화해통일위원회 부위원장)는 “남북교회의 만남과 대화 이래 NCCK는 북한의 인권 문제에 대한 권면을 자제해 왔다. 지금껏 단 한 차례도 북의 인권에 대해 불편한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고 심지어 탈북자 문제에도 소극적이었다"며, "1970-80년대 NCCK가 일관되게 인권 운동에 해왔던 것에 비춰 보면 의외의 일”이라고 말했다.

남한 개신교회 대표자들과 북한의 조선그리스도교연맹(이하 조그련) 대표단은 1986년 스위스에서 처음 만났다. 1990년대 중반 북한이 최악의 식량난을 겪은 시기, 한국 교회는 국내와 국제사회의 지원을 이끌어냈다. 이를 계기로 개신교회 여러 교단, YMCA 등 시민단체와 조그련의 대화 창구가 열렸다. 최근에는 평화조약 캠페인과 종전평화선언 운동을 함께하고 있다.

송 목사는 “NCCK가 북의 인권 문제에 침묵한 것은 북한의 인권 현실을 몰라서가 아니라 남북 교회 간 대화를 지속하기 위한 목적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북한 인권에 대해 목소리를 높인들, 그런 적대적 감정을 가진 외부인의 간섭으로는 북한 인권 문제를 개선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또 “NCCK의 방식은 북한이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보통 국가로 인정받는 가운데 체제가 위협받는다는 두려움 없이 자발적으로 인권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찾으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끝으로 그는 북한 인권 문제가 “지금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실체”라고 강조하며, 당장 정부와 민간, 교회와 시민사회, 세계 시민과 국제기구가 공통의 지혜와 행동을 모아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동서독 교회들은 지난 수십 년 동안 한결같이 인권 변호사가 되었습니다. 즉 분단은 비인간적이고 부당한 것이며 인간 존엄에 거슬리는 것이라고 다양한 방법으로 정치가들에게 경종을 울렸습니다. 우리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갈등과 파괴 앞에서 분별 있는 대화 상대자로서 교회와 그리스도인은 필요합니다”라는 독일 분단 때 동독 교회 루츠 모티카프 목사의 말을 인용하며, 교회의 중요한 역할이 인권 변호사가 되는 것임을 강조했다.

송병구 목사(NCCK 화해통일위원회 부위원장) (이미지 출처 = 천주교 의정부교구가 유튜브에 올린 동영상 갈무리)

이어 팍스 크리스티 코리아 이성훈 공동대표(안셀모)가 가톨릭계의 입장과 역할을 발표했다.

그는 서울대교구 등 일부 교구와 수도회, 단체가 북한 인권에 관심을 표명하고, 관련 활동을 하지만, 주교회의 차원의 사목교서나 성명서 등 공식 입장이 없는 것을 짚었다. 이에 대해 그는 “가톨릭 사회교리가 있는데도 남남 갈등과 남북 갈등의 복합적 성격을 고려해 북한 인권에 대한 공식 견해를 밝히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고 추측했다.

이 대표는 가톨릭교회가 민족 화해와 한반도 평화, 최근에는 기후위기 등 생태환경을 위해 애써 왔는데, 북한 인권을 새로운 이슈가 아닌 이런 노력의 연장선상에서 다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민족 화해와 평화의 중심축을 유지하되, 북한과의 대화와 협력에 인권, 빈곤 퇴치, 생태환경 등 다양한 분야로 확대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어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한 가톨릭교회의 역할로, 전 교회적으로 평신도, 수도자, 성직자들에게 북한 인권에 대한 가톨릭 사회교리 교육을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또 한반도 평화와 북한 인권을 둘러싼 남남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가톨릭교회 안, 에큐메니컬 차원, 종교간 대화, 시민사회와 국회의원, 정부 정책 담당자 등 다양한 차원에서 소통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세계 주교시노드에서 한반도 평화와 북한 인권에 대해 소통하고, 시노드 문서에 반영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이성훈 대표는 현재 일부 수도회와 단체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는 북향민(북한 이탈주민) 사목을 지역 본당에서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북향민 사목은 통일 사목의 핵심 과제며, 지역 본당 공동체에서 북향민을 환대하고, 함께 활동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해선 국내뿐 아니라 국제 활동도 필요하다. 특히 국제사회에서 북한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강하기 때문에, 앞서 말한 가톨릭 사회교리 교육과 소통이 국제적 차원에서도 필요하다.

한국전쟁 70년인 지난해 시작한 한반도 종전 평화 캠페인이 진행 중이다. 가톨릭에서도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를 비롯해 여러 단체가 참여하고 있다. 이 대표는 이 캠페인과 더불어 ‘한반도 평화를 위한 국제 가톨릭 네트워크’를 만들어 중장기적이고 체계적 캠페인을 벌일 것을 제안했다.

이성훈 공동대표(팍스 크리스티 코리아) (이미지 출처 = 천주교 의정부교구가 유튜브에 올린 동영상 갈무리)

이어진 토론에서 북한 인권을 보는 다양한 시각이 오고 갔다. 우선 변진흥 박사(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 연구위원장)는 3일 발표에서 박한식 명예교수(조지아대)의 사과와 오렌지 비유가 적절했다고 언급했다. 

박한식 교수는 서양문화를 기반으로 북한을 이해하려는 경향이 있다며, 북한을 있는 그대로 볼 것을 강조했다. 그는 미국과 한국은 맛있는 사과지만 북한은 오렌지라며, “북한을 절대로 쓸모없고 작은 못생긴 사과로 정의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변진흥 박사는 박 교수의 의견에 동조하며, 사과 맛이 아니라고 해서 오렌지를 마치 썩은 사과처럼 생각하는 자기 식의 판단은 문제가 있지 않냐고 반문했다. 그는 “북한 인권 상황에 대해 우리가 아니라 북한 주민이 대답할 문제이고, 우리가 그들을 대변하면 실제 문제를 해결할 주체가 소외되지 않겠냐”며 문제에 대한 접근을 달리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반면에 이성훈 대표는 북향민의 이야기를 듣고, UN 보고서를 읽고 종합적으로 보면 북한 인권 상황은 “열악하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식량난이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며, 북한 인권 상황이 심각하다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했다.

법타 스님(평화통일불교협회 이사장)은 “독재 국가에 주권은 없다. 주권이 없는 나라 국민에게 자유도 없고, 대부분 먹고 살 길이 대부분이 없다. 가장 기본적인 식량 즉 생존권이 침해당하고 있다”고 북한의 인권 상황을 심각하게 여겼다. 그는 목숨을 걸고 탈출한 이들이 북한에 송환돼 생명을 위협받는 일이 없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천도교를 대표한 노태구 교수(경기대, 민족통일학회장)는 통일을 미국이나 유엔의 시각이 아닌 자주적이고 주체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가톨릭이 진정한 한민족의 평화와 통일을 모색하는 바람직한 모습이라고 말했다.

11월 3-4일 참회와 속죄의 성당에서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가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한 종교의 역할’을 주제로 국제학술대회를 열었다.  (사진 출처 = 천주교 의정부교구 페이스북)

앞서 3일에 진행한 학술대회에서는 드류 크리스천슨 신부(예수회, 조지타운대 교수), 헤이즐 스미스 교수(런던 SOAS 한국학연구센터), 박한식 명예교수(조지아대)가 북한 인권과 식량권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 세 발표자도 북한 인권을 보는 관점이 달랐다.

드류 크리스천슨 신부는 북한 인권 상황을 심각하게 보고, 가톨릭교회가 전문성을 갖추고 관련 단체, 정부와 협력해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해 애써야 한다고 했다.

헤이즐 스미스 교수는 인권으로서의 생명권이 중요하고, 북한에 가장 시급한 것이 이 생명권과 생존권이라고 했다. 그는 국제적으로 북한을 악마화 하는 부정적 인식이 북한에 대한 정보를 곡해하게 만든다며, 서구 사회에서 북한 정보가 부정확하다고 말했다. 그는 식량난 해결을 위해 원조 등 교회의 역할을 강조했다.

박한식 교수는 서구와 미국의 관점에서 볼 때 이해할 수 없는 북한만의 고유한 특징이 있다며 상대적 관점을 강조했다. 북한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외부에서 강제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노력으로 인권을 개선하도록 도와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생색내지 않고 도와주는 것이 종교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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